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歸化) 성씨(姓氏)
단일민족 아니어서 더 자랑스럽지 않은가
우리 역사 속 '귀화인'의 존재감 부각
박기현 지음 / 역사의 아침 펴냄 / 1만2000원
최근 각 신문 방송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 뉴스중 하나. 요즘 결혼하는 8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을 한다는 소식. 국제결혼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건만 왜 뜬금없이 이 소식이 '뉴스'가 됐을까. 그것은 바로 통계의 힘일 것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수치가 나왔기 때문에 뉴스가 된 것.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제 정말로 반만년 동안 이어져 내려 온 단일민족의 자부심은 끝나는 건가"라는 회의감도 적잖이 가졌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던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단일민족일까. 역사연구자이자 신간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歸化) 성씨(姓氏)'의 저자인 박기현 씨는 단호히 '노(NO)'라고 답한다.
그는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에 취해 있기보다 우리가 다양한 민족들과 조화로운 결합을 이루며 살아 온 '열린 사회' 였음을 인정하는 것이 더 당당하다고 주장한다.
그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저자는 소위 '성공한 귀화인'이랄 수 있는 수십명의 이방인을 소개하고 있다. 통계로조차 잡힐 수 없을 만큼 많았던 이민족 출신 한국인 가운데 그나마 한 성씨(가문)의 시조가 됐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사람들을 간추린 것이다.
조선 태조 때, 지금의 오키나와인 유구국의 왕 온사도가 식솔들을 데리고 망명한 후 조선 조정으로부터 융숭한 대우를 받았으며 그 일행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야기. 현재의 베트남인 안남(安南)국의 왕족으로서 고려 고종 13년(1226년)에 망명해 온 이용상이 이후 변방을 노략질하던 몽골족을 물리치는 공을 세워 화산 이(李) 씨의 시조가 된 역사적 사실도 나온다. 특히 시조의 망명 이후 77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 화산 이 씨 종친회 대표들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베트남 대통령과 3부 요인으로부터 국빈급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고려 고종때 원나라 공주를 따라 왔던 위구르 출신 장순룡은 덕수 장 씨의 시조가 됐다. 또 가야의 수로왕 왕비가 된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은 김해 허 씨의 시조가 됐으며 이성계의 조선 개국 일등공신이 된 여진족 출신 장수 이지란은 청해 이 씨의 시조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가깝게는 일본 중국에서부터 멀게는 인도 베트남 네덜란드까지, 우리 역사에는 수많은 귀화인들이 어엿이 살아 있고 그 후손들 또한 현재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방인들이 한반도에 찾아 들 수 있었을까? 가야를 포함한 4국시대 이전부터 이미 이 땅 한반도는 활발한 해상 무역활동을 통해 적어도 동아시아권에서는 높은 지명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분석이다. 또한 무엇보다 이방인을 내치기보다는 따뜻하게 안아주고 쉽게 융화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선조들의 지혜와 마음씨도 한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새삼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인다.
따라서 앞으로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