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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에 수상한 상패
가난했던 유년 시절과 남다른 효심
서 목사는 처음부터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인물은 아니다. 어머니 한 분을 제대로 모시겠다는 일념으로 홀연 단신으로 1965년 16살 나이에 상경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에게 서울은 도전 그 자체였다. 그러나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지 않고 10대 후반부터 우산공장에 보증을 서고 부랑 청소년들에게 우산 장사를 할 수 있는 길을 터준다. 당시 우산공장 대표였던 박정숙 여사는 “태어나서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며 그의 행적을 또렷이 기억했다. 또한 자신의 방 두 칸을 터서 당시 5만원 상당의 호마이카 전축(당시 집 한 채 값)을 구비해 어머니와 동네 어르신들의 노인정을 마련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드리게도 했다.
서재필 목사는 어머니 한 분을 제대로 모시겠다는 일념으로 홀연 단신으로 1965년 16살 나이에 상경한다. 효심은 그를 정의로운 삶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안위(安慰)만을 생각 않는 정의감
그러던 중 69년, 7월 약관의 나이인 20살,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한다. 세운상가에서 불량배들이 거래처 상인의 돈을 뺏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소행을 목격한 이후 청계천 일대를 ‘정화대상지역’으로 정하고 틈이 날 때마다 불량배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불량배들에게 붙들려 맞기도 하였고 여러 명과 홀몸으로 맞서기도 여러 차례. 그러나 굽힘없이 꾸준하게 그들을 설득해 나갔다.
아들이 걱정되어 선도 활동을 만류하셨던 서 목사의 모친.
결국 아들의 뜻을 따라 선도회 창립에 함께 하셨다. 최덕례 여사는 서 목사의 든든한 멘토였다(세운 청소년 선도 발족 회원들과의 한 장면. 1974년 12월 29일 세운청계상가 왼쪽에서 세번째 서재필 회장과 어머니 최덕례 여사)
서 목사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도 생겨나 74년 12월 24일 ‘세운청소년선도회’를 아마존 살롱에서 창설하고 “우리는 먼저 걸어왔으니 한 알의 썩은 밀알이 되어 정의로운 인간이 되겠다.”는 내용으로 8명의 동료와 함께 서약한다. 그 후 구두닦이 터를 사들여 깡패나 전과자에게 2인 1조로 3개월에서 길게는 5개월 간 무료로 대여해 주어 그들이 재활 능력을 키우도록 도왔다. 서 목사의 선도 사업은 지금에 와서도 배울 점이 많은 방식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미 간파한 대안이었다.
세운헬스크럽 세운상가 4층(1977년~1985년).
한 때 체육관으로 각광 받던 곳이 컴퓨터 산업의 발전으로 갑자기 부동산 열풍이 불어 온다. 이 열풍이 체육관을 집어 삼키는 단초가 됐다.
청소년 선도의 중요성을 내빈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서재필 관장
아마존 살롱 홍양희 대표는 기꺼이 장소를 제공해 주었고 사회는 현 전국주례인협회 장태수 회장이 맡아서 했다.
어머니와 지인들의 만류와 그를 음해하는 사람들로부터 “깡패 두목, 건달 우두머리”라는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서재필’식 선도 사업은 계속 되었다. 그런 그가 76년 5월 30일 밤10시 구속되는 일이 발생한다. 사사건건 제지당하던 불량배들이 서 목사를 거짓 목격자를 내세워 폭력 및 갈취로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세운상가 상인들의 탄원으로 1개월의 구치소 생활을 마치고 풀려났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서 목사는 77년 12월 29일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로 사회 정화와 청소년 선도에 앞장선다’라는 관훈을 현관 입구에 걸고 ‘세운헬스크럽’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청소년 선도 사업에 몰두했다.
손녀딸을 안고 있는 서재필 목사와 부인 권명순 여사.
2017년 11월 22일, 두 손녀딸이 태어났다. 이날은 서재필 목사가 21년 전 목회를 시작할 무렵 주보 첫 회를 발행한 이후 1122호 째를 맞이하는 주간이었다. 큰 딸 서세정 강사는 결혼을 늦게 했으나 3주 먼저 양수가 터져 출산을 했고, 서유민 목사는 5년 만에 임신을 해서 예정일 보다 이틀 늦게 순산했다(사진 왼쪽부터 서세정 강사 딸 ‘은설’과 서유민 목사 딸 ‘리나’, 태어난 순서로 ‘은설’이 언니가 됐다)
불행 앞에서의 불굴의 의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목사가 개관한 체육관 건물은 세운상가 일대에서도 요지에 속했다. 컴퓨터 산업이 번창할 무렵이라 권리금이 무려 5,000만원이나 되었다. 지금의 10억대 압구정동 아파트 32평을 77년도에 700만 원 정도 분양했으니 큰돈이었다. 시간이 지나 체육관 자리를 욕심낸 정체불명의 세력이 사람들을 시켜 계획적으로 체육관 안에서 난동을 부리게 하여 체육관 운영을 어렵게 했다.
지금도 후학 육성을 위해 사재를 털어 후원을 하는 등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체육관 운영이 위기에 처하면서 83년 인천 간석동 집을 팔아 서울 오류동에서 월세를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이사한지 5일 만에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77년 결혼한 부인과의 사이에 당시 셋 딸을 두고 있었던 서 목사에게 연탄가스중독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총명했던 첫째, 둘째 딸은 죽고 서 목사와 부인은 살아도 식물인간이 될 처지가 되었다. 이때 서 목사에게 도움을 받았던 지인의 간곡한 부탁으로 가망이 없다던 의사를 설득해 고압산소치료를 받고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이웃 주민들로 부터 감사패를 받은 서재필 목사
(사진 왼쪽부터 김윤욱 회장, 정춘길, 서재필 목사, 김환전, 진철)
가스사고로 받은 보상금 700만원으로 체육관 재건에 나서 관원이 250여명까지 모을 수 있었다. 이때 체육관을 노려 지난 일련의 사건을 일으켜왔던 윤 모 씨가 "지금 세상은 돈이면 검찰도, 경찰도 안 되는 게 없는데 공무원도 아닌 형님이 왜 자기가 죽는 줄 알면서 타협하지 않느냐? 형님은 이제 끝이다"라며 협박이 통하지 않자 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과 회유에도 서 목사는 타협을 거부하고 당당히 맞서게 된다. 결국 84년 10월, 그는 보건범죄특별단속법으로 또다시 구속되고 만다. 그 당시 일반 체육관은 척추교정이나 지압 등이 공공연히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서 목사는 구속되었고 결국 체육관은 문을 닫게 되었다.
‘사법질서를 유린한 양승태를 즉각 심판하라’는 대국민 성명서를 낭독하는 서재필 목사.
불타는 복수심과 뜻하지 않은 부르심
부인 권 여사는 서 관장을 처음 만난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서재필 씨는 씨도 좋고 나무도 좋은데 돋지 아니할 곳에 돋고 뻗지 아니할 곳에 뻗은 것만 쳐주고 다듬어 주면 국제시장에 내놔도 거목으로 인정받는 데는 손색이 없겠군요. 그 일을 제가 하지요.”라고 아내가 되어 주겠는 약속을 하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러나 서 목사에게는 남은 것이 없었다. 이미 가세는 기울었고 사람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부인 권명순 씨는 세상에 대한 미움을 키워가는 그를 혼자두지 않았다. 전주여고와 전북교대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녀가 여러모로 차이 나는 서 목사와의 인연은 그의 강직하고 성실한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무너지는 남편을 놓아둘 수만 없어 무일푼으로 변호사를 찾아 나섰다. 그래서 만난 사람이 체육청소년부 차관,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의원을 역임한 바 있는 김용균 변호사였다. 김 변호사가 충분히 정상을 참작하도록 변론하여, 5~6년 형에서 수감 6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빼낼 수 있었다.
김용균 변호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서재필 목사.
법무법인 세민 김용균 대표 변호사는 서재필 목사가 모함으로 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때 무료 변론하여 6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빼낸 인물이다. 김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청소년 차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정의감과 실력을 고루 갖춘 인물로 서 목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30년 만에 세계청소년 복음화 운동본부 창립 감사패를 전달한 서 목사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악의 뿌리를 처단할 생각으로 가득 찼다.
어느 날 방화 도구와 흉기를 가방에 챙기고 결전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윤 씨와 의형제 김 씨로부터 만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희대의 법조 브로커 윤 씨 무리를 처단하기 위해 방화 도구와 흉기를 가방에 챙기고 약속 장소로 찾아간 서 관장의 결연한 모습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이때 부인 권명순 씨가 기지를 발휘하여 가방에 든 흉기를 몰래 빼돌렸다. 한편 철천지원수인 그들을 죽이기 위해 가방을 연 서 관장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87년 어느 날, 건강하기만 했던 그가 극심한 패혈증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안암동 한석 의원에서 치료 불가 확진을 받고 경희의료원 2782호실에 입원하고 있었던 서 관장은 놀라운 경험을 한다. "같은 병실에 신창동 교회 신도가 있었습니다. 신도들과 함께 심재식 목사님이 찾아왔어요. 그 당시 나는 신앙심이 깊지 않았지만 물에 빠진 심정으로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서 관장은 당시의 경험을 "마치 집채만 한 바위가 내 머리를 누르는 것 같았고 기도소리는 천둥소리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때 서 관장은 자만했던 자신을 뉘우치며 하나님의 도구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안수 기도를 받은 다음 날 36,500이었던 백혈구 수치가 정상치인 5,500으로 떨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KBS TV 인간극장 5부작 출연(2016년도)
둘째딸 서유민 목사와 덴마크 사위 에밀 라우센을 주인공으로 한 이들 가족은 2016년 12월 19일~23일 KBS1TV에서 방영한 ‘인간극장’에도 등장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서재필 목사는 본지 2018년도 신년사에서 “두 딸을 잃은 이후 34년 만에 그것도 한 날에 두 손녀딸을 얻었으니 아내와 저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분만이었는데도 큰 딸은 3주 먼저, 둘째 딸은 이틀 늦게 순산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라며 “저는 청소년 사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정이 회복되면 청소년 문제와 비행은 줄어들게 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기성세대와 가정에서 어른인 우리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저버렸기 때문에 비행청소년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 강원도에 확보된 5만여 평의 부지에 앞으로 5-10년 안에 세계청소년수련원을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남은 생애에 꼭 성취해야할 목표입니다.”라고 포부를 밝힌 바가 있다.
서재필 목사 가정은 유명 CF모델이기도 하다. 유튜브 조회 780만 건을 기록하며 대중적 인기도 끌었다. 지금 보아도 글로벌 장인의 훈훈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오랜 고난을 겪은 후 세상을 바로 보는 이들 가족의 마음은 남다르다. 이타적인 삶이 몸에 배어있다. 서 목사 가정은 악을 선으로 바꾼 놀라운 기적의 결과물이다(사진 출처: LG유플러스 공식 유튜브/ 글로벌 장인 서재필 씨의 가족, 2017년 1월 촬영)
서재필 목사는 KBS TV 인간극장 5부작 출연(2016년도)과 LG유플러스 CF에 가족 모두 출연(2017년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영광스럽고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서 목사는 휴식을 취할 법도 하지만 평생을 관통하는 희망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런 그에게 희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닌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다. 서 목사가 살아온 여정에서와 비슷한 고통을 나눌 만한 사람은 드물다. 인생에 나침반으로 존경할 만한 서 목사를 통해 2019년 새해에도 실천하는 희망을 가져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태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