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1일부터 23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친구와 함께 부부동반으로 일본 오사카를 여행했다. 일본 여행지는 오사카와 고베, 교토, 나라 4곳이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알찬 관광을 했다.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은 여행사에서 계획한 장소를 관광했고, 둘째 날은 자유 관광을 했다. 첫째 날에는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고베로 이동하여 고베시청전망대와 차이나타운, 메모리얼파크를 구경했고, 아리마로 이동하여 온천욕을 했으며, 다시 오사카로 이동하여 오사카성과 신사이바시, 도톰보리를 구경했다. 둘째 날은 자유 관광으로, 四天王寺, 남바역(難波驛)에서의 일본 시장, 우메다역(梅田驛)에서의 한큐백화점(阪急百貨店) 등 오사카 시내를 전철을 이용하여 구경했다. 셋째 날은 교토의 淸水寺와 헤이안신궁, 나라의 동대사와 나라공원을 관광했다.
여행도중 음식도 좋은 추억 거리를 만든다. 여행가기 전 딸아이가 ‘아빠, 오사카는 음식이 유명하니, 맛좋은 것 많이 자시고 오세요.’라고 말했다. 오사카를 여행하다 보니 음식골목이 많았고, 사람들도 많았다. 일본에 왔으니 일본 특색의 음식을 먹어야 되지 않겠는가? 고베의 차이나타운, 오사카의 신사이바시, 남바역과 우메다역 근방의 음식거리에서 우동, 벤또, 다꼬야끼(문어 넣은 음식), 규동(흰쌀밥에 소고기를 넣은 음식), 오꼬노미야끼(희망하는 재료를 넣어 부치는 부침개), 회초밥 등을 먹었다. 일본 음식은 깨끗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았다. 음식의 양도 먹기엔 부족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남지도 않았다. 우리도 음식은 남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행을 했으니, 느낀 것이 없을 수 없다. 그것도 처음 가본 곳에서야. 나는 일본을 처음 여행했다. 일본에 관한 기본적 상식도 없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일본의 역사를 공부했다. 하지만 일본에 관해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본 오사카를 관광하면서 느낀 것은 순수한 나의 느낌 그대로다. 내가 느낀 것은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첫째는 일본이 검소하고 실리적이다.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로 우리나라의 배가 넘는다. 전체 국민소득으로는 미국, 중국 다음으로 세계 3위의 국가다. 그런데 도심의 건물을 보면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고 빛나는 건물이 없다. 겉으로 보기 투박하게 보인다. 아주 높은 건물이 많지 않는 것은 지진 때문이라고 해도 외관을 화려하게 장식하지 않는 것은 일본의 소박함 때문이 아닐까? 정원과 집들도 자그마하다. 농촌지역으로 나가도 우리나라 별장과 같이 거대하고 큰 건물을 보지 못했다. 비슷한 형태의 건물들이 쭉 나열되어 있다. 도심지의 전철 역사도 평범하다. 전차의 폭도 좁고 투박하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다 있다. 내가 묵은 호텔이 신대판에 있는 Wing 호텔이다. 호텔의 방 크기가 폭 2m, 길이 4m 정도로 우리나라 작은 방 수준이다. 그런데 호텔이란다. 하지만 그 안에 화장실, 침대, 화장대, 텔레비전 등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깨끗했다. 2일간 잠을 자면서 불편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둘째 질서를 잘 지킨다. 음식골목을 가면 사람들이 많다. 가끔 음식점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새치기는 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큰 소리를 떠드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내가 여행한 오사카, 교토, 고베, 나라 등은 가까이 있는 도시들이다. 그들 도시 간에는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다. 앞차 가까이 붙어 앞차를 위협하는 차가 없다. 다들 안정거리를 유지하여 달린다. 물론 경적도 거의 울리지 않는다. 도심 거리도 마찬가지다. 평일 도심거리를 가도, 차가 밀리지 않는다. 많이 정체된다 해도 10분이면 정체구간을 통과한다. 길거리를 걷거나 시장에서 물건을 구경할 때도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길거리 한 가운데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거나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셋째 청결하다. 길거리에 휴지나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건물 구석이나 길가 어슷한 곳도 깨끗하다. 강가나 바닷가 또는 물이 고여 있는 호숫가에도 휴지나 찌꺼기가 지저분하게 물에 떠있지 않다. 물에 쓰레기가 떠 있는 곳을 한 군데 보았다. 오사카 성 해자다. 여기에 부여물이 조금 떠 있었다. 하지만 그 부유물도 사람이 버린 휴지가 아니라 주변 나뭇잎과 나뭇가지 등이었다. 강이나 바다를 가까이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차를 타고 달리는 가운데 보이는 그곳에는 부유물이 보이지 않았다.
넷째 친절하다. 길을 물으면 모두들 친절히 대답한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반만 시켜도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상품의 가격을 묻고 사지 않아도 기분 나쁘게 대하지 않는다. 한 번은 이러한 일이 있었다. 둘째 날 자유 여행 때였다. 오사카 스카이 빌딩을 구경한 후 일본식 음식인 오꼬노미야끼와 회전식 회초밥을 반반씩 저녁으로 먹기로 하였다. 안내책자에 오꼬노미야끼 잘 하는 집이 매판역 부근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오사카 스카이 빌딩에서 매판역으로 나왔다. 매판역 부근에서 길가는 사람에게 오꼬노미야끼집을 물었다. 그 사람도 그곳을 몰랐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그런데 그 집은 우리가 이미 떠나온 스카이빌딩 건물에 있었다. 그곳으로 돌아가려면 20분 이상 걸어야 했다. 그래서 매판역 부근에서 오꼬노미야끼하는 집을 물었다. 또 그는 스마트폰으로 확인하여 어느 곳이라고 말했다. 그곳으로 가면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시계를 보더니 따라 오라고 했다. 나는 가까운 곳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곳은 지하 몇 2, 3층을 내려가면서 약 10분 정도 소요되는 장소였다. 그 사람은 양복을 입은 30대 정도의 직장인으로 보였다. 너무 고마웠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물어도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일본인은 친절하였다.
마지막 다섯째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 느낌은 위에서 말한 검소하고, 질서 있고, 친절한 것의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다. 3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일본을 평가할 수 없다. 특히 단점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느낀 것을 말한다. 첫날 아리마 온천에 갔을 때다. 안내자가 철분이 많은 금탕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목욕탕은 우리나라 사우나탕하고 달랐다. 우리나라 옛날 목욕탕 같은 느낌이었다. 목욕탕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았다. 목욕을 마치고 열쇠를 반납하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10분 정도 기다렸다. 목욕탕의 옷장(라카)이 다 쳤을 정도의 사람들이 항상 목욕을 하는 것 같다. 목욕탕의 열기 속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욕탕이나 사우나기, 수도꼭지가 있는 곳 모두가 꽉 찼다.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욕탕에 있는 물을 몸에 부어 몸을 씻었다. 욕탕에 빈자리가 보였다. 탕안으로 들어가면서 보니, 사람들이 모두 머리위에 무엇을 얹어놓고 있었다. 수건이었다. 물에 철분성분이 많아 물의 색깔이 녹슨 것 같이 빨갛다. 아마 수건에 빨간 물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얹어놓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이 든 사람, 젊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그랬다. 나도 따라 했다. 하지만 자꾸 수건이 내려왔다. 몇 분 있다가 나는 수건을 물에 담갔다. 내 수건은 뻘건 수건으로 변했다. 집에 와서 아내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수건을 못 쓰게 만들었다고. 나는 불평 없이 수건을 머리 위에 얹어 놓고 있는 것이 답답하게 보였다. 목욕실 안에 수건을 두는 작은 보관대를 두든지, 아니면 색깔이 있는 수건을 대여하든지, 여러 가지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머리위에 수건을 얹고 불평 없이 탕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일본 여행에서 내가 느낀 것은 일본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일본은 여행하기에 아주 안전한 곳이라 한다. 그래서 여행회사에서 삼일 중에 하루를 자유시간으로 주었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까지 일본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긍정적 측면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다. 독도 문제, 과거사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 문제와 관련된 일본 정부의 태도는 섬나라의 답답한 기질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정도의 경제력과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인정할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담대함을 보인다면 더욱 발전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우리나라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런 솔직함과 담대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하여 본다. 일본을 여행한 후 나는 克己와 克物에 대해 생각하여 보았다. 극기는 나를 이기는 것이다. 극기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기의 감정이나 욕심, 충동 따위를 이성적 의지로 눌러 이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신 극물은 나 아닌 다른 어떤 대상을 극복하여, 다시 말해 눌러 이기는 것이다. 예로서 克日이라면 일본을 눌러 이기는 것이다. 극물은 나 아닌 상대를 눌러 이기는 것이다. 극물에는 화해의 개념이 포함되지 않는다. 상대를 눌러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극물에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포함시킨다. 그러나 극기는 다르다. 극기는 자신의 이성에 의해 조정된다. 따라서 극기는 마지막에 화해로 간다. 天理의 궁극적 목적은 조화와 화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극물보다는 극기가 더 어렵고 높은 단계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 정서상 일본에 대한 극기는 어렵다. 임진왜란과 근대의 침략에 대한 아픔이 아직까지 치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극일은 현재 우리 민족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극일을 위해서 나는 상대 즉 일본의 좋은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을 감정적으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을 반대한다. 대신 우리는 일본 우익 세력의 國粹的 狹小性을 경계해야 한다. 독도는 분명히 우리 땅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에 대해 일본 정부는 보상해야 한다. 일제 식민지는 우리가 원했던 것이 아니다. 그로인해 우리 민족은 많은 고통을 받았고, 발전을 저해 받았다. 일본이 계속 억지 주장을 편다면, 우리의 힘을 강하게 하여 우리 민족이 받은 고통을 일본에 되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은 일본을 정벌하는 것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일본에서 검소하고, 청결하고, 질서 있고, 친절한 것을 느꼈다. 내가 느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내용들이다. 사실 그것은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발전하더라도 오래갈 수 없다. 오래가더라도 구성원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일제식민지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서양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입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의 좋은 전통의 맥을 잇지 못했다. 우리 조상들은 예의를 중시했다. 검소하고, 청결하고, 질서 있고, 친절한 것은 예의의 기본이다. 따라서 나는 우리의 실력을 키우지 않고, 말로만 일본을 욕하는 명분론자를 반대한다. 일본의 우익세력의 몰염치한 억지주장을 경계하고 비판하면서도 또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 내가 느낀 일본의 장점은 우리 조상들의 전통문화 속에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이 되는 윤리를 실천할 때, 우리 사회는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우리 민족은 행복한 삶을 향유할 것이며, 우리를 자극하는 일본 우익세력의 뻔뻔함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일본을 여행한 후, 실질보다는 겉만 중시하고, 자신이 해야 할 것은 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주장하고, 큰 소리만 치면 법과 관습과 예의도 무시되며, 길거리에 휴지와 과자봉지를 함부로 버리며, 아이들이 식당과 같은 다중장소에서 뛰어다녀도 부모는 좋다고 웃고 있으며, 고속도로에서 앞차 뒤에 바짝 붙어 앞차를 위협하는 것 등과 같은 것을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