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상냥한 마음의 천사
대천사 라파엘도 미카엘과 마찬가지로 칼데아인들의 신이었는데, 당시에는 라비엘(Labbiel)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라파엘이란 말의 어원은 '신의 열(熱)'을 의미한다. 그는 미카엘, 가브리엘과 나란히 가장 유명한 세 천사로 꼽힌다. '치유를 행하는 빛나는 자', '인간의 영혼을 지키는 자', '의사', '외과의', '에덴 동산에 있는 생명의 나무의 수호자' 등등으로 칭해지고 있다.
이러한 칭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파엘은 인류의 보호자로서 특히 의학 지식에 관해 아주 해박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창세기」에는 기이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행하고 있던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어떤 자가 나타나 야곱과 씨름을 했다.
'······그분은 야곱을 이겨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를 다치게 되었다. 그분은 동이 밝아 오니 이제 그만 놓으라고 했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복을 빌어주지 않으면 놓아드릴 수 없다고 떼를 썼다. 일이 이쯤 되자 그분이 야곱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창세기」 32:26~29)
내용 중에 '하느님'과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는 부분은 천사를 말한 것이다. 천사와 격투해 이긴다는 것은 단순히 체력이 뛰어난 것뿐만 아니라, 야곱이 정의의 신념과 행동력에 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옛이야기를 존중해, 지금까지도 동물의 대퇴 관절 위에 있는 허리뼈(환도뼈)의 큰 힘줄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튼 야곱은 천사와의 싸움 후 상처 때문에 다리를 절었다. 그런데 이 상처를 치유한 것이 바로 대천사 라파엘이었다고 한다.
인간으로 변신해 악마를 퇴치
라파엘이 발군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토비트서」를 통해서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유대인 토비트는 아시리아 군대의 포로가 되어 고향에서 포로의 땅으로 끌려가 살았는데, 그 와중에도 유대교의 생활 규범만은 충실히 지켰다.
어느 날 밤, 살해된 동포의 시체를 매장한 탓에 몸이 더러워진 토비트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뜰에 누워 잤다. 그때 참새 똥이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토비트는 실명을 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슬퍼하며 신에게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같은 무렵, 메디아 땅에서는 토비트의 친족인 라구엘의 딸 사라가 신에게 죽음을 빌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일곱 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남편들이 모두 신혼 첫날밤에 악마 아스모데우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때문에 그녀가 악마에게 홀렸다는 나쁜 소문이 주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었다. 이것은 죽음과도 같은 치욕이었다. 토비트와 사라의 통절한 애원은 하늘에 계신 신의 귀에 들어갔다. 신은 두 가지(토비트와 사라)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대천사 라파엘을 그들 곁에 파견하기로 했다.
어느 날 토비트는 메디아의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것을 생각해내고, 아들 토비아에게 돈을 받아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토비아는 메디아로 가는 길을 잘 알고 또 신뢰할 수 있는 길동무를 찾았다. 바로 그때 아자리아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나타났다. 사실 아자리아는 대천사 라파엘이 변신한 것이었다. 토비아는 아자리아와 함께 가기로 했다. 메디아로 가는 도중에 토비아가 티그리스 강에서 발을 씻었는데, 커다란 물고기가 그의 발을 물었다. 이를 본 아자리아는 토비아에게 그 물고기를 잡도록 했다.
아자리아는 토비아에게 말했다.
"물고기를 갈라서 그 담즙(쓸개즙)과 심장과 간장을 꺼내 몸에 발라두시오. 약으로 도움이 될 테니."
토비아는 아자리아에게 물었다.
"이런 것이 대체 어떤 병에 효과가 있단 말입니까?"
"물고기의 심장과 간을 악마나 악령에 홀려 있는 사람 앞에서 태워 연기를 내시오. 어떤 악령이라도 그 사람에게서 도망가버릴 겁니다. 담즙은 하얀 얼룩(현재의 백내장)이 생긴 눈에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눈에 담즙을 바른 후 숨을 불어넣으시오. 그러면 눈이 치유됩니다."
마침내 메디아 마을에 도착하자 아자리아는 토비아에게 같은 민족의 여성인 사라와 결혼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이미 일곱 명이나 되는 남편을 죽게 만들었음을 마을 소문으로 알게 된 토비아는 주저했다.
"악마는 그녀에게 접근하는 모든 남자를 죽인다고 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단 하나뿐인 아들입니다. 나 외에는 부모를 장사지낼 자식이 없습니다. 아버지보다 일찍 죽는 것은 유대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입니다."
아자리아는 토비아를 타일렀다.
"악마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고 그녀와 결혼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시오. 우선 그녀의 방에 들어갔을 때 물고기의 간장과 심장을 향로 위에다 두시오. 악마는 그 연기에 쫓겨 도망갈 것이고, 그녀 옆에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게 될 것이오."
토비아는 마음을 굳히고 사라의 집으로 찾아가 결혼 신청을 했다. 사라의 아버지 라구엘은 가문의 오명을 벗을 좋은 기회라 여겨, 토비아의 용기를 칭찬하며 결혼을 허락했다. 그리고 신혼 첫날밤, 토비아가 아자리아의 지시대로 물고기 심장과 간장을 향로에 태우자, 악마가 그녀에게서 도망쳐갔다. 그 뒤를 아자리아가 쫓아가서 잡았음은 물론이다. 사라의 아버지 라구엘은 딸의 불명예와 불행이 사라진 것을 기뻐하며, 용기 있는 토비아에게 감사의 표시로 재산의 반을 내주었다. 토비아는 아버지가 빌려준 돈도 어렵지 않게 회수한 뒤 새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하나뿐인 아들의 귀환을 기다리던 토비트와 그의 아내는 아들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자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비탄에 잠긴 생활을 했다. 그때 새 아내와 재산, 노예, 소와 양을 데리고 토비아가 돌아온 것이었다. 토비아는 아자리아에게 들은 바대로, 부친의 눈에 물고기의 담즙을 떨어뜨렸다. 이윽고 토비트의 눈에 빛이 돌아온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량없는 기쁨으로 토비트 일가는 축하 잔치를 벌였다. 그때 아자리아가 나타나 토비트와 그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이야기했다.
'······"신을 찬양하고, 모든 살아 있는 것 앞에서 주가 당신에게 해주신 수많은 은혜를 주를 향해 표현하시오. ······나는 당신을 시험해보기 위해 당신이 있는 곳으로 파견되었던 것이오. 신은 또한 (당신과) 당신의 며느리 사라를 치유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소. 나는 주의 영광스러운 옥좌 옆에서 봉사하는 일곱 천사 중의 하나, 라파엘이오."'(「토비트서」)
라파엘이 몸소 정체를 밝히자 두 사람은 놀라서 땅에 엎드렸다. 그리고 신의 위광을 온몸으로 느꼈다.
죽은 자의 나라의 안내인
「에녹서」에도 라파엘을 묘사한 부분이 적지 않다. 에녹이 신의 옥좌 앞에 갔을 때, 신을 찬미하는 네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
'선택받은 자와 영혼의 주를 확실히 믿고 따르는 선택된 민족을 칭송하는 둘째 천사의 음성이 들렸다.'(「에녹서」)
동행하는 천사에게 질문하니,
"둘째 천사는 인간의 모든 병과 상처를 주관하는 라파엘."
이라고 대답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죽음도 라파엘의 영역이었던 것일까. 천계를 돌다가 에녹이 죽은 자의 나라를 견학했을 때의 일이다.
'그러고서 나는 특별한 곳에 갔다. 그(우리엘을 말함)는 서쪽에 있는 크고, 높고, 단단한 바위산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움푹 파인 깊고 폭넓은 평지가 네 군데 있었다. 너무 미끄러워 자칫하면 뒹굴 것 같은 그곳은 언뜻 보기에 깊고 어두웠다. 그때 나와 같이 있던 거룩한 사자 중의 하나 라파엘이 말을 걸었다. "이곳은 영혼, 죽은 자들의 혼이 모여들도록 만들어진 장소입니다. 모든 인간의 영혼은 이곳으로 돌아옵니다. 여기는 그들을 머물게 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이며 그들이 재판을 받는 날까지, 그들의 행로가 정해질 때까지(그곳에 머뭅니다)······." 나는 또한 죽은 인간들의 영혼을 보았다. 그들이 고발하는 목소리는 하늘까지 닿고 있었다. ······ "이렇게 하늘을 향해 계속 고발하고 있는 영혼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는 내게 대답해주었다. "형 카인에게 살해된 아벨이 내는 영혼의 음성입니다. 그는 그(형)의 자손이 땅에서 멸종되어 인간의 후손들 사이에서 모습을 감출 때까지 계속 고발할 것입니다."'(「에녹서」)
계속해서 라파엘은 에녹에게 설명했다. 그곳에 있는 세 개의 웅덩이는 죽은 자의 영혼을 세상에 있을 때의 행위에 따라 각각 분류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에 비해 의인(義人)의 영혼은 또 다른 곳, 반짝반짝 빛나는 '물의 샘'에 놓여진다고 한다.
당당한 신의 사자 라파엘
밀턴은 『실낙원』에서 라파엘이 신의 명령을 받고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방문하는 모습을 아름답고 장엄하게 묘사했다. 그 무렵 에덴 동산에 사탄이 침입할 것을 우려한 신은 두 사람에게 충고의 말을 전하기 위해 라파엘을 사자로 내세웠다.
'날개 달린 천사 라파엘은 임무를 받자마자 지체없이 찬란한 날개로 몸을 감싸고 함께 서 있던 무수히 많은 불꽃 천사의 무리 가운데서 시원하고 씩씩하게 솟아올라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천사의 합창대는 재빨리 좌우로 갈라지며 하늘을 쏜살같이 날아가는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길을 열어주었다. 마침내 하늘 문에 이르자, 지고한 건축가의 성스러운 작업에 의해 만들어진 대로 황금 돌쩌귀가 회전하며 저절로 크게 열렸다.'(『실낙원』)
여기에서 '불꽃 천사'란 세라핌을 말한다. 신에게 임무를 부여받고 날아가는 라파엘을 보면서 그 주변에 있던 천사들에게까지 긴장이 넘쳐흘렀던 것이다.
라파엘이 하늘의 문을 통과하자 작은 구체(球體)인 지구가 보였다. 그리고 지구의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이 솟은 '신의 나라', 즉 에덴 동산이 있었다. 그곳은 온통 삼나무로 덮여 있었다.
라파엘은 머리를 숙이고 창공으로 솟아올라 천체와 천체 사이를 날아갔다. 바람을 타고 조용히 날개를 펼쳐 강하고 빠르게 움직이며 부드러운 공기 속을 날아갔다. 이윽고 지구에 가까이 다가갔다. 지상의 하늘을 날고 있던 새들 눈에는 라파엘이 나는 모습이 불사조같이 비쳤으리라. 대천사라는 관록이 있어서인지, 웅대한 우주 공간을 날아가는 라파엘은 지상의 모든 생물을 압도하는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낙원에 도착한 그는 세 쌍의 날개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날개 하나는 어깨에서 가슴을 뒤덮고 있었는데, 마치 왕자의 숄처럼 보였다. 허리를 휘감은 중간 날개는 허리 부분부터 넓적다리까지 다채로운 색깔로 빛나는 깃털로 뒤덮여 있었다. 세 번째 날개는 하늘처럼 파란빛을 띤 깃털로 다리에서 발목까지 덮여 있었다. 그가 날개를 휘두르자 주위에 향기가 가득 찼다. 낙원을 지키던 경비 천사들이 즉시 그를 알아보고는 그의 신분과 고귀한 사명에 최고의 경의를 표했다.
<출처 : 천사 - 마노 다카야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