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기차여행(역답사) - 셋째 날(서울역/진주역)(4)
1. 서울역
- 여행 중에서 만난 ‘서울역’은 평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서울역 주변 풍경의 랜드마크인 ‘대우빌딩’을 비롯하여 익숙하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서울역 주변은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이 공존하면서 미래로 향하고 있었다. 서울역 위를 달렸던 고가도로가 시민공원으로 바뀌어 ‘미래로’로 이름 붙여진 이유를 여행 중에서 만난 서울역을 바라보면서 이해되었다.
- 서울역은 서울의 중심이었다. 역 앞에 만들어진 버스 환승지대는 이 곳이 서울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많은 버스들이 환승역을 중심으로 서울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마치 심장에서 신체의 모든 피가 순환하듯이 서울의 교통을 흐르게 하고 있다. 서울을 상징하는 남산이 보이고, 오랜 시간의 역사를 증명하는 남대문과 새로 신축된 현대식 건물이 자연스럽게 어울려져 있는 장소, 그 속에서 박물관으로 바뀐 구 서울역의 건물은 풍요로운 도시 ‘서울’의 깊이를 증명하고 있다. 같은 대상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것의 인상은 분명 달라진다. 일상적인 감각으로만 이해되었던 ‘서울역’이 아니라,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역은 매력적인 공간의 미학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2. 진주역
-KTX 구매량을 모두 소진시켜서 ‘진주’를 향하는 기차는 새마을호를 이용했다. 새마을호도 약간의 시간적 차이를 제외하고는 KTX와 동일했다. 기차의 내부 장식과 안락함은 오히려 KTX보다 나아보였다. 오전 09:08에 출발한 새마을호는 14:09에 진주에 도착했다.
- 진주역에 내리자 예상치 못한 모습과 만났다. 너무도 커지고 화려해진 ‘진주역’이었다. 진주에 가졌던 조금은 복잡하고 무질서한 인상을 완전하게 삭제시키는 새로운 도시의 얼굴이었다. 현대식 역사 밖에는 신축된 고층 아파트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다. 나중에 택시 기사에게 들은 이야기로 약 2년전에 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심에서 상당히 떨어진 거리 때문에 새로 생긴 역을 진주 시민들이 마냥 반가워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도심에서 편안하게 이용하던 열차를 버스로, 때론 택시까지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역 주변에서 숙박하려던 원래 계획도 수정해야 했다. 역 주변에는 어떤 숙박 장소도 없었기 때문이다.
- 덕분에 진주역에서 도심의 진주성까지 걷게 되었다.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도심을 걸으면서 진주에 대한 과거의 인상이 많이 개선되고 있음을 느낀다. 아름답지만 조금은 좁고 답답했던 ‘진주’에 대한 인식은 그져 스쳐지나갔던 진주 도심의 인상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도심까지 향하는 넓은 도로와 중간에서 만나는 남강은 도시를 여유롭고 풍성한 장소로 만들고 있었다. 국립대학 경상대와 LG에서 운영하는 ‘연암공과대학’ 안내판이 보인다. 연암공과대학은 형이 추천하여 조카가 졸업한 학교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은 형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여행은 때론 누군가의 기억을 갑자기 소환하는 장소와 조우하게 만든다. 그러한 돌발적인 순간도 고정되지 않고 흘러가는 존재에게 주어지는 삶의 과정일 것이다.
- 진주성 주변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골든 트립 호텔’에 숙박했다. 어젯밤 밤열차로 하룻밤의 숙박비를 절약했으니 계획된 여행비용에서 오버하지는 않는 것이다. 코로나19임에도 숙박료는 6만 5천원으로 제법 비쌌다. 호텔숙박이 좋은 점은 모델과 같이 칙칙하고 습한 기운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조금은 개방되고 밝은 공간은 여행 중에 경험하게 되는 어두운 느낌을 조금은 지워주는 효과가 있다.
- 짐을 정리하고 밤의 남강을 걷기로 했다. 진주성 주변에 진주성에서 출발하여 진양호를 돌고 진주를 살펴볼 수 있는 ‘에나길’ 안내가 세워져있었다.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는 코스다. 전체를 돌기에는 무리여서 진주 남강을 중심으로 3시간 정도 산책했다. 도심 내부에 커다란 강이 흐르고 그곳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한 시민들이다. 특히 밤에도 치안에 대한 부담감 없이 걸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남강이 서울의 한강보다 좋은 점은 접근이 편하고 걸을 수 있는 길의 너비가 오히려 크다는 것이다. 훨씬 여유롭게 밤하늘 등불의 호위를 받으며 걸었다. 최근 여행을 하다보면 도심의 모습이 정형화되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쉽지만 도심 내부의 공원과 길을 만들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여행자에게는 훌륭한 도시의 모습이다. 그런 조건들이 도시의 내부를 자연스럽게 답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강을 돌고 밤의 조명으로 장식된 ‘진주성’을 바라본다. 임진왜란 3대 승전 중 하나였던 ‘진주성’ 전투, 한쪽은 남강이며 다른 쪽은 높은 산악지대로 일본군이 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두 쪽의 방향밖에는 남지 않는 천연의 방어지대이다. 진주성 전투의 승리는 임진왜란의 흐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파죽지세로 조선을 점령하던 일본에게 가장 큰 고민은 식량과 군수품 문제였다. 바다를 통해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서해안쪽으로 진출하려는 계획이 이순신의 수군에게 막히자 다음으로 시도한 것이 육지를 통해 전라도 쪽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진주성은 전라도 곡창지대로 가기 위해 돌파해야 했던 방어망이었다. 진주성 승리는 이런 일본의 야심을 막고 조선의 안전을 유지하게 만들었던 중요한 전투였던 것이다. 이 곳을 책임졌던 김시민의 죽음은 진주성의 슬픈 전설로 남게 된다.
첫댓글 같은 대상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라! ㅡ 공간의 미학을.
흘러가는 존재에게 주어지는 삶의 과정......
여행이 삶이고, 삶 또한 여행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