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新보부상”
5일장 돌며 가축 파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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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골계를 잡기 위해 닭을 통에 넣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이영선 할머니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5일장’, 지금은 대형마트이나 백화점에 밀려나지만, 예전만 못해도 사람구경 물건구경에 찾아오는 사람이 더러 많다. 사고팔고 흥정하고 목청을 높이는 과정에 구수한 정이 오가는 5일장은 지역마다 날짜를 달리해 서고 있다. 울산장(태화장)은 5일, 호계장은 1일, 언양장은 2일, 남창장은 3일 등 지역을 돌며 시장구경 나가보는 것도 큰 활력소가 된다. 왁자지껄한 시장에서도 여성의 몫은 대단히 크다. 특히 가축시장의 경우에는 남성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여성이 척척 잘도 해 낸다. ‘가축시장’의 당당한 여성 이영선 할머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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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내 인생'
◈‘新보부상’, 요즘은 ‘울상’
“오늘이 3일이니까 남창장에 할머니께서 납시겠네.”
할머니를 백방으로 수소문하였더니, 할머니를 자주 뵌 적이 있는 한 주부가 알려주었다. 할머니를 찾아 예전 울산에서 가장 크게 장이 섰던 남창장으로 달려갔다.
남창장의 맨 끝 쪽에 자리 잡고 있는 가축시장을 찾기란 힘든 일이 아니었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시키는 걸 보면 분명 근처에 가축시장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옛날 꽤나 인기가 있었던 가축시장이며, 이곳에서 닭을 잡고 오리를 잡는 이영선 할머니는 걸죽한 입담으로도 유명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5일장을 돌며 닭, 오리 등을 직접 잡아 팔고 있는 이씨 할머니는 말하자면 新보부상이다. 요즘처럼 조류독감 경보가 울리면 할머니 마음은 울상을 짓는다.
“이런 고비가 한 두 번이라야 말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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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식구(?)
◈“도우미가 있어야 하는기라”
할머니가 청춘을 바친 삶의 터전인 가축시장을 찾는 사람이 뜸해지자 할머니는 가만히 있어도 어깨가 축 늘어난다. 간간히 주문하기 위해 사람이 찾아오면 흥정과 함께 거래가 성사되고 그때부터 할머니 손은 무척 빨라진다.
이번엔 토종닭 주문이다. 할머니는 긴 통 안에 닭을 집어넣고 순식간에 모가지를 비틀었다. “꽥”외마디 소리가 들리는 가 동시 펄펄 끓는 물에 담가 털을 뽑고 털이 제거되면 강한 불로 한번 그을린다.
그 과정이 어찌나 신속한지 곁눈질로 지켜보면서 탄복을 하고 말았다.
“한 50년을 했으니, 눈을 감고도 척척할 수 있는 거지”라고 말하며 허허 웃는다. 할머니가 흥정하고 닭이나 오리 등을 잡는 동안 할머니 일을 거들어 고기를 장만하는 젊은 남성이 있다.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할아버지(할머니의 남편)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자 손이 필요하던 차에 구한 청년이다.
할머니는 청년을 남창장에서 알게 됐고, 청년은 닭 50~60마리와 오리 토끼 등을 1t트럭에 싣고 5일장을 다니며 할머니의 발 역할을 톡톡히 해 오고 있다.
“혼자서는 일을 못하제. 누군가는 도와야 하는데, 마침 운전도 잘하고 일도 척척 잘해 여간 고마운 게 아인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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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가축, 그리고 오른쪽 맨 끝이 가축을 잡는 곳.
◈타고난 건강(?), 일이 있기에 가능
굳이 나이 밝히기를 꺼려하는 할머니는 웃으며 “50대 후반으로 보면 고맙지.”라고 말한다. 실제 할머니는 70대 초반이라고 하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외모도 젊게 보이지만, 무엇보다 기력이 성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갖고 있다. 해 젊은이 못지 않은
놀라운 것은 전혀 피곤한 기색 없이 꼿꼿하고 당당하게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보통 할머니 나이면 기력이 쇠퇴해져 장날을 도는 것조차 힘이 들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몸이 밑천인데 아플 겨를이 어딨노.”
할머니는 장이 서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고 말한다.
“그래야 밥이라도 먹지. 한 군데서만 일하면 우째 밥을 먹겠노. 그래도 요즘 같으면 정말 묵고 살기 힘들다”라고 말하며 긴 한숨을 쉰다.
◈평생 해 온 일
울산에 거주하며 울산장은 물론 부산일대와 양산일대도 다닐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할머니. 할머니의 식구(?)중 오골계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몸에 좋고 가격도 높으니까 특별히 신경을 써야하는기라.”
가축들을 돌보는 일부터 파는 일을 할머니가 전부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잠시 쉴 틈도 없다.
“이 일을 해서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묵고 살기도 했으니까 지금도 손을 놓을 수 없제.”
평생 해 온 일이기에 애착도 큰 이 일은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특히 닭 모가지를 비트는 일은 여성은 물론 남성도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닌 것.
◈일 하는 ‘기쁨’
가축시장에서 50년이나 일을 했다는 할머니는 오랜 기간 해 온 일이 쑥스러운 모양이다. 왜 기간을 묻냐며 한다.
“요즘같이 첨단의 시대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신기하제.”
흥정이 잘 안되면 화도 내는 할머니지만, 속내의 부드러움을 감추고 있다. 워낙 오랜세월동안 힘든 일을 해 온 탓에 이력이 생겨도 곱절은 생겼어도, 타인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뭐 잘난 일이라고 사진을 찍노. 내사 마 일만 열심히 할 수 있으면 좋?N는데 사람들이 당체 찾지를 않네.”
단골들이 형성돼 찾아들기는 하지만, 그 수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니 할머니의 시름은 점점 깊어간다.
그럼에도 특유의 당당함과 기운 찬 모습, 할머니의 기운 찬 모습을 보며 ‘열심히 사는 행동’을 본받게 된다. 오래 건강하게 사시기를 소망하며, 할머니에게 “파이팅”을 전하고 돌아섰다.
고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