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녘이다. 비를 맞으면서 들깨를 시집 보냈다.
땅에서 나는지 아니면 쏟아지는 비에서 나는지 모르게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아니지 이건 들깨가 시집간다고 좋아서 내는 풋내인 것 같다. 예전부터 들깨는 비오는 날에 딴 곳으로 옮겨 심어야 열매가 튼실하고 들기름도 많이 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돌깨가 된다고 들었다. 비옷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제법 굵다. 허리가 지끈거리고 장홧발이 푹푹 빠져도 할 수 없다. 비올 때 이식하지 못하면 큰 물통에다 물을 대어가면서 해야 하니 몇 배의 노력과 고생이 따른다.
올해는 봄 가뭄이 바짝 심했다. 나라가 어수선하고 온 세계가 전쟁과 경제난국으로 시끄러우니 기후도 잔뜩 성이 난 모양이다. 촌로들은 몇십 년 만의 가뭄 소태라고들 했다. 비를 기다리는 심정은 농작물이나 농부의 마음이나 똑같다. 농작물이 물 냄새를 못 맡아서 말라가고 타들어 가는 것을 보노라면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농사를 지어 본 사람만이 아는 간절함이다. 6월 말경에 드디어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우리 지방도 엊저녁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접하곤 잠을 설쳤다. 자다가 두세 번 깨어 들창문 쪽으로 눈이 갔다. 잠결에 또르락! 또르락!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얼른 밖을 내다보니 반가운 빗소리였다. 그 후부터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4시 반에 일어나 일을 시작했다. 200여 평의 밭에 서너 시간 걸려 들깨를 옮겨심고 나니 허리와 다리가 저렸지만 서늘한 새벽공기와 온갖 새소리의 자연교향곡 덕분에 이겨냈다.
도심에서 살면서 몇 년 동안이나 가장 멀리 떨어진 오지 쪽으로 낙향 할 곳을 물색했다. 어찌 인연이 닿아 이곳 깊은 산골에 들어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황무지 밭을 개간하여 밭을 일구고 집을 짓고 개울가에 정자까지 세웠다. 살고 보니 차츰 임산배수林山背水라 칭해도 될만큼 앞뒤좌우 산세가 좋고 특히나 집 앞의 개여울이 맑고 깨끗하여 마음에 들었다. 넓은 마당에 정원을 꾸미고 잔디와 각종 꽃을 심고 끝자락에 손수 작은 연못을 팠다. 계곡물을 끌어들여서 수련과 어리연, 국화 그리고 인동초, 창포, 등 각종 수생식물를 심었다. 요즘은 오전마다 노란 어리연과 수련이 피어나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정원’ 같은 정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못가엔 각종 나무와 꽃을 심었다. 산에서 캐온 산벚과 진달래, 홍단풍나무, 경산 나무시장에서 구입한 선비나무인 회화나무와 백일홍, 반송, 오죽 등등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나무와 꽃밭속에 파묻혀 세상모르고 살아간다.
며칠 전엔 식구가 여덟이나 늘었다. 식구라 해봐야 두 내외에다 알 낳는 토종닭 열다섯 마리와 반려견인 보리 한 마리 등이다. 딱새(되새)란 놈이 새 식구가 된 셈이다. 파란 알을 여섯이나 부화하여 요즘 짹짹거리고 난리가 났다. 좀 웃기는 친구들이다. 이른 봄날 새벽마다 두 마리가 번갈아 투명유리 들창을 두드리며 잠을 깨우더니만 잠잠해서 어디 좋은데 둥지를 틀었나 싶었다. 5월 중순쯤 모처럼 제비 한 쌍이 날아왔다. 며칠 동안 집 주위를 배회하더니만 어느 날 현관문 안 천장 구석 벽에다 집을 짓기 시작했다. 허공 같은 외벽에 열심히 진흙과 지푸라기를 물고 와서 집을 짓는 모습이 짠하였다. 생각 끝에 모서리를 이용하여 그 밑에 못과 철사로 나무판을 대주었다. 좀 편하게 둥지 짓는 공사를 하라는 뜻으로. 웬걸, 며칠 있다 보니 제비는 사라지고 딱새가 드나들었다. 살펴보니 나무판 위에 딱새란 놈들이 옳다구나 둥지를 튼 게 아닌가! 텃새가 철새를 밀어낸 셈이다. 덩치는 제비보다 훨씬 작은데 어찌하여 생존경쟁에서 이겼는지 아니면 제비가 양보했는지 알 수가 없다. 매일 매일 쳇바퀴 같은 산골의 일상에 그래도 두 내외간에 대화를 할 수 있게끔 매개체가 되어준 그것만 해도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산에서 산다는 게 무슨 자랑이나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다.
물질과 문명의 이기에 맹종하면서 살아야 하는 염량세태의 혼탁한 세상살이에서 벗어나고픈 단순한 생각이었다. 물론 무위자연이나 안빈낙도의 삶에, 도연명을 닮고픈 심정으로 산에 들어왔지만, 실천은 어렵다. 그저 물처럼 나무처럼 욕심 없이 살고픈 단 하나의 소박한 꿈을 이루고 싶다. 좀 아이러니한 것은 지난 번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산에 사는 덕을 좀 봤다. 일상에서 마스크와 관계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가 무서워 산으로 도피한 것도, 현명하게 앞을 내다본 심미안도 없는데..., 남들은 묻는다. 깊은 산중에 살면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으냐고? 글쎄다. 지루할 새가 없다. 정말 할 일 없으면 정자에 앉아 개울물 소리를 듣거나 하늘을 쳐다보면서 멍 때린다. 산마루에 걸친 구름도 잠시 쉬어 가려는 듯 벗이 되어준다. (2022.06)
첫댓글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연상 시키네요ㅡ
어차피 돌아가야할 곳입니다ㆍ
풍경이 눈에 선하네요 가보고 싶은 풍경
마지막 문장이 여운이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