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담동 나폴레옹베이커리에 들어서면 여느 빵집에서는 볼 수 없는 각양각색의 케이크와 과자가 시선을 빼앗는다. 1999년 11월에 문을 연 이곳은 매일 10명가량의 연예인이 드나들 정도로 청담동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나폴레옹 청담점에서 볼 수 있는 달콤하고 화려한 케이크와 제과는 대부분 이성민(34) 씨의 손길을 거친 작품이다. 동료들은 그를 ‘케이크 데커레이션의 달인’이라고 부른다.
이성민씨는 고향이 맛의 고장인 전주다. 학창시절, 그는 빵집을 지날 때면 항상 걸음을 멈췄다. 먹음직스러운 황갈색 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학교를 마치고 전주에서 가장 큰 빵집인 ‘풍년제과점’ 앞을 매일 지나다녔습니다. 돈이 있으면 언제라도 들어가 빵을 사먹곤 했죠. 그때 누구보다 맛있는 빵을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죠.”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제빵제과기술을 배우러 서울로 올라왔다. “제빵사가 되겠다고 하니 부모님이 완강하게 반대하셨습니다. 집안에 의사가 많았는데 부모님은 저도 의대에 진학하기를 바라셨죠.” 하지만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는 서울 신사동에 있는 대한제과학원에서 1년 동안 기술을 배웠고 이듬해 2급 제과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제빵제과의 본고장 유럽서 10년 유학
그는 87년 ㄱ제과점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제빵제과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2년 동안 근무하면서 하루에 14~15시간 일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빵제과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제대로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89년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는 제빵기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동양 청년에게 그리 녹록한 땅이 아니었다. 무작정 파리의 한 제과점에 취직한 그는 설거지,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며 곁눈질로 기술을 배워나갔다. 제과점에서 숙식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월급은 우리돈으로 10만~15만원에 불과했다. 그는 유명하다는 제과점을 찾아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유럽 전역을 떠돌며 꾸준히 기술을 터득했다.
“유럽에는 제과, 초콜릿, 케이크 등 한분야에서만 수십 년 동안 기술을 닦은 장인들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기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청년을 금방 인정해주지 않았죠. 어느 정도 실력이 붙었다고 생각했지만 중요한 일은 맡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유럽에 온 지 7년째, 프랑스 제빵제과 경연대회에 참가한 그는 한국인 최초로 공예과자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후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프랑스 유명 제과점인 모뒤(maudui)에서는 부공장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10년 동안의 유럽 생활을 접고 99년 한국에 돌아왔다. 삼선교에서 35년 동안 제과점 운영해온 나폴레옹이 청담동에 지점을 내면서 그는 총 책임자로 스카우트됐다. 그의 특기는 케이크 장식과 프랑스식 과자, 초콜릿 등으로 청담동지점에서 프랑스 스타일의 신제품을 다수 개발했다. 그는 지금도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종합 빵집으론 전문성·품질관리 한계
이성민씨는 빵 만드는 기술은 끝이 없다고 말한다. “좋은 빵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힘든 작업입니다. 기술을 제대로 배우려면 10년으로도 부족하죠.” 그는 지금도 짬짬이 시간을 내서 프랑스 제과점을 방문해 신제품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는 “유럽이나 일본은 제빵제과 각 분야가 전문적으로 발전한 반면 우리나라는 하나의 가게에서 모든 종류를 취급하는 종합 빵집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케이크, 초콜릿을 특화한 전문점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하나의 제과점에서 150~200가지 빵을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전문성이 없고 가짓수가 많아 품질관리에 미흡할 수밖에 없으며 기술 발전에도 한계가 있다. 이성민씨는 “일본은 거의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한국은 이들 나라에 비해 30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는 단순한 빵보다는 초콜릿, 무스케이크, 양과자 등 특화제품의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제과점들도 소비자가 원하는 품목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좋아하던 일도 직업으로 하면 지겨워진다는 얘기는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도 빵을 만들고 자신이 만든 빵을 먹어보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그는 집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빵을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제는 빵의 겉모양만 봐도 어떤 맛이 날지 짐작이 간다나. 그는 단지 ‘케이크 데커레이션의 달인’이 아니라 ‘제빵제과의 달인’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