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창업 붐이 일면서 코스맥스와 한국콜마의 지난해 연 매출이 1조원을 돌파했다. 로드샵(길거리 매장) 브랜드의 부진이 이어지는 등 화장품 산업의 성장세가 주춤한 가운데 주요 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만 실적이 좋아졌다. 국내 화장품 창업이 늘어난 데다가 K뷰티 바람을 타고 국내 ODM사에 화장품 생산을 맡기는 중국 등 해외 고객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코스맥스 색조 화장품 생산 공장 / 코스맥스 제공
코스맥스와 한국콜마(70,400원▲ 800 1.15%)의 성장세는 실적 악화로 고전 중인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의 행보와 대조된다. 2000년대 화장품 한류를 주도했던 미샤·스킨푸드·토니모리 등 로드숍 브랜드는 지난해 줄줄이 적자를 냈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 닫는 매장도 속출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태로 중국 관광객이 급감한 데다가 다양한 브랜드를 파는 편집매장과 온라인으로 화장품 유통 채널이 바뀐 데 제때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소비자들이 로드숍의 저가 화장품보다 소셜미디어에서 입소문 난 화장품이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브랜드를 선호하게 된 영향도 크다. 연 5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아모레퍼시픽(184,500원▼ 10,000 -5.14%)도 중저가 브랜드 고전, 중국 판매 부진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기대 이하의 실적을 기록했다.
200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로드숍 화장품은 최근 실적 악화로 부진을 겪고 있다. / 조선DB
자체 브랜드 없이 화장품 회사로부터 위탁을 받아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코스맥스(125,000원▲ 1,500 1.21%)와 한국콜마는 이런 변화를 기회로 삼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화장품 제조·판매업체는 처음으로 1만개를 넘어섰다. 2015년 6422개, 2016년 8175개에서 지난해 1만1834개로 증가했다.
화장품 창업이 늘면서 ODM사에 화장품 생산과 개발을 위탁하는 1인 브랜드와 온라인 기업이 급증했다. 대다수 신규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마케팅에만 주력하고 화장품 생산은 기술력 좋은 ODM사에 맡기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에 코스맥스와 한국콜마가 보유한 고객사는 지난해 말 기준 각각 600여개로 늘었다.
(왼쪽부터) 로레알에 인수된 스타일난다의 화장품 브랜드 ‘3CE’와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사람) 임블리가 출시한 화장품 브랜드 ‘블리블리’ / 각사 제공
세계 1위 화장품그룹 로레알이 지난해 4000억원에 인수한 스타일난다의 화장품 브랜드 ‘쓰리컨셉아이즈(3CE)’가 대표적이다. 3CE의 브랜드와 디자인 등은 스타일난다가 기획했지만, 화장품은 코스맥스에서 만들었다. 지난해 소셜미디어에서 입소문을 타고 완판 행진을 이어간 신규 화장품 브랜드 ‘블리블리’도 코스맥스에 화장품 생산을 위탁했다. 이밖에 올리브영·롭스·랄라블라 등 국내 헬스앤뷰티(H&B) 매장에서 판매하는 브랜드의 상당수가 ODM사에 화장품 생산을 맡긴다.
국내 ODM 업체의 생산과 기술 역량이 좋아진 데다가 K뷰티 열풍이 이어지면서 중국, 미국 등 해외 고객사도 증가하는 추세다. 프랑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이 운영하는 화장품 편집매장 세포라에서 판매중인 자체브랜드(PB) 화장품 중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가 많은데, 모두 국내 ODM사에서 제조한 것이다.
코스맥스는 최근 태국 1위 화장품 회사 미스틴을 포함해 미국·스페인·터키·베트남 등 다양한 해외 고객사를 확보했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600여개 고객사 중 절반이 해외 기업"이라고 말했다. 한국콜마는 중국 강소성에 무석 공장을 가동하면서 생산역량을 연 15억3000만개로 늘렸다. 국내 3위 ODM 업체 코스메카코리아(28,150원▼ 850 -2.93%)는 미 화장품 잉글우드랩 인수를 통해 미국 80여개 고객사를 추가했다.
(왼쪽부터)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 각사 제공
그 결과 지난해 1~3분기 코스맥스와 한국콜마의 화장품 부문 누적 매출만 각각 9900억원, 9700억원을 기록, 이미 2017년 연 매출을 넘어섰다. 4분기 매출까지 더하면 양사의 화장품 매출은 지난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ODM사의 온라인 브랜드와 해외 고객사 비중이 높아지면서 올해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최서연 한양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공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선 코스맥스의 외형 성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국콜마도 CJ헬스케어 인수 효과가 나타나면서 올해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ODM사는 다양한 고객사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역량을 키우고 고객 정보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코스맥스는 지난해 아시아 최초로 비건(동물성 원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제품) 생산설비 인증을 획득했고, 한국콜 마는 지난해 20개 이상의 특허를 등록하는 등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코스메카코리아는 해외 시장에서 R&D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연구소를 세웠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화장품 산업은 이제 벤처 브랜드의 시대로, ODM 업체들의 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면서 "성공하는 신규 화장품 브랜드는 대부분 톱3 ODM 회사에서 만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