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청와대에서
옛 궁궐의 흔적을 찾아 헤매이다
조선시대 궁궐에는 왕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만큼 그들이 사용했던 많은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들은 용도와 주인의 신분에 따라 건물 이름에 붙는 끝 글자가 모두
달랐다.
이를 건물의 등급에 따라 서열을 매기면,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으로 나타낼 수
있다.
전殿은 궁궐 안에서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이다. 왕, 왕비, 상왕, 대비, 왕대비 등 궐 안의
웃어른이 사용하는 건물에 붙는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행사나 공적인 활동이 행해지곤 하였다. 전의 종류로는 근정전, 사정전, 교태전 등이 있다.
당堂은 전과 규모는 비슷하나 격은 한 단계 낮은 건물이다. 좀 더 사적인 건물로 쓰였다. 이들로는
양화당, 희정당 등이 있다.
합閤과 각閣은 부속 건물일 수도 있고, 독립 건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전과 당의 부속
건물이나 혹은 그것을 보위하는 건물이다. 규장각, 동십자각, 곤령합 등이 이에 해당된다.
재齋와 헌軒은 왕실 가족이나 궁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물로, 재는 숙식 등 일상적
주거 기능이나 독서나 사색을 하는 기능으로 사용되었고, 헌은 공무적인 기능을 갖고 있었다. 집옥재, 구성헌 등이 바로 그것이다.
루樓는 바닥이 지면에서 사람 한길 높이 정도의 마루로 되어 있는 집으로,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
경회루가 그 대표격이다.
정亭은 흔히 정자를 말한다. 연못가나 개울가 또는 산 속 경관이 좋은 곳에 있어 휴식이나 연회
공간으로 사용되는 작은 집이다. 향원정, 상양정 등이 있다.
이렇게 건물 신분에 따라 이름을 달리 하는 조선시대 궁궐은 내전內殿과 외전外殿, 동궁東宮, 생활주거
공간, 후원後苑, 궐내각사闕內各司, 궐외각사闕外各司, 궁성문宮城門 등의 공간 구조로 배치된다.
내전은 크게 대전大殿과 중궁전中宮殿으로 구성된다.
대전은 왕이 기거하는 공간으로 여러 채의 건물이 있는데, 왕이 일상적으로 머무는 집은
연거지소燕居之所라고 한다. 대전은 왕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주요 인물을 만나 중요 현안을 긴밀히 의논하는 핵심 공간이다.
청와대에서 이 기능을 갖고 있는 곳은 본관의 대통령 집무실이다.
이에 비해 편전便殿은 왕이 주요 신료들을 만나 공식적인 회의를 하는 곳이다. 청와대에서는 서쪽 별채
세종실과 본관에 있는 집현실이 그 기능을 한다.
중궁전은 왕비가 기거하고 활동하는 공간으로, 중전과 중궁이라고 부르는데 위치상 궁궐에서 가장 중앙에
있다. 청와대에선 본관 1층 중앙에 있는 영부인 집무실이 이에 해당된다.
외전은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를 만나 의식과 연회를 베푸는 곳이다. 외전의 중심은 정전正殿 또는
법전法殿이라고 부르는 건물이다.
정전은 궁궐에서 외형상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있어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건물로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그 대표적인 건물이다.
청와대에서는 본관 2층에 있는 접견실과 1층에 있는 인왕실 및 동쪽 별채인 충무실 등이 그 역할을
한다. 정전은 회랑回廊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회랑을 둘러싼 네모난 넓은 마당이 엄격한 의미의 ‘조정朝廷’이다.
조정이란, 말뜻 그대로 왕과 신료가 조회를 하는 뜰이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가본 사람은 누구나
보았을 것이다.
근정전과 인정전 앞뜰에는 문무백관 신료들이 그 서열에 맞게 정1품과 종1품부터 9품까지 모두 설 수
있도록 구역을 구분해 놓았다. 이곳은 조회 이외에도 외국 사신이 왔을 때 국가 공식 행사가 거행되는 곳이다. 청와대에서는 외국 정상을 위한 공식
환영식이 열리는 본관 앞 ‘대정원大庭園’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동궁은 차기 왕위 계승자인 세자의 활동 공간이다. 지금은 최고 통치권이 세습되지 않고,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청와대에는 이런 공간이 따로 없다.
후원은 말 그대로 궁궐 뒤에 있는 휴식 공간으로, 왕이 휴식을 취하고 왕실 가족을 위해 연회를 베푸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후원은 논과 밭을 두어 왕이 직접 농사를 체험하는 공간으로도 사용됐으며, 인재를 뽑는 과거시험장으로 활용하였다. 즉,
청와대 터 전체가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지금의 청와대에서는 청와대 중앙에 있는 녹지원과 녹지원에 있는 상춘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궐내각사는 궁궐 안에 들어와 활동하는 관리들의 활동 공간이다. 청와대에서는 비서실인 여민관과 경호실
등이 이에 속한다. 궐외각사는 궁궐에 인접한 곳에 있는 국가 관청으로 의정부, 육조·사헌부·한성부 등이 이에 속한다. 현재의 정부 종합청사와
각종 정부기관이 이에 해당된다.
조선시대에는 광화문 앞부터 광화문 네거리까지 양쪽에 의정부, 육조, 사헌부, 한성부 등의 관아건물이
들어서 있어 육조거리라고 했다. 지금도 이곳에는 정부 세종로청사와 별관인 외교통상부청사, 문화관광부, 정보통신부 등의 주요 부처가 자리하고
있다. 육조거리를 지금은 세종로라고 한다.
청와대는 경복궁의 후원 터에 들어섰기 때문에 옛날 조선시대 궁궐만큼의 규모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건물 수도 많지 않다.
이에 청와대의 건물은 궁궐보다 크고 복합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내전과 외전의 역할은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에서 이루어진다.
궐내각사는 여민관에서 한다. 경호실과 춘추관 등의 일부 건물이 독립적으로 있기는 하지만, 왕조시대의
건물 규모와 수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다. 또 대통령과 영부인이 사용하는 건물은 일상생활을 하는 공간과 공무를 수행하는 공간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
청와대가 옛날 궁궐과 다른 점은 궁녀와 내시와 같은 인력이 없다는 것이다. 외빈 초청행사 시 음식은
특급호텔 요리 팀에게 맡긴다. 대통령의 출가한 자녀는 모두가 청와대 밖에서 산다. 따라서 왕실 가족을 위한 공간처럼 별도의 주거공간이 필요
없다.
청와대에서 새롭게 태어난 또 다른 옛 궁궐의
단상들
건축양식에서 볼 때 청와대는 우리 전통 건축양식인 목조건물이 거의 없다.
본관과 춘추관은 목조건물 모양을 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본관 내부도
현대적 감각을 살려 설계되었으며, 건물 안은 서구식 대저택처럼 공간이 탁 트였고 계단도 위치해 있다. 그러나 지붕 추녀, 용마루, 잡상雜像,
추녀를 떠받치고 있는 다심포多心包 형식, 공포恐怖 모양의 전등, 문틀 등은 우리의 전통문양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현대적 감각으로 변형시켜 전통미가
물씬 살아나도록 건축하였다.
청와대 건물 내부에 비치한 가구들을 보면 우리 전통 가구와 도자기로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옛날
궁궐에서 사용하던 것과 같이 화려하지 않고 사대부가에서 사용하던 것과 같은 투박하고 소박한 것들이 비치되어 있다. 또 청와대에는 우리 산하를
그린 동양화와 서양화가 걸려 있다. 청와대에 걸리는 그림은 청와대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도 있지만, 많은 그림들이 각 정권의 취향에 따라 임대되는
경우가 많다.
본관에서 궁궐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것은 지붕이다. 본관 지붕 양식은 한옥 건축에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붕에 올려진 기와는 하나하나가 도자기처럼 구워진 청기와로 1백 년 정도의 수명을 갖는다고 한다. 용마루 양
끝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모습을 양각한 취두가 있다. 또한 팔작지붕의 추녀마루에는 지붕 규모에 맞게 5~11개의 잡상이 무서운
형상으로 앉아 외부로부터 오는 잡스런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
이밖에 옛 궁궐의 문과 청와대의 문을 비교하여 살펴보면, 궁궐의 궁성문의 경우에는 거대한 구조물 위에
활시위처럼 휜 우진각의 큰 지붕이 올려져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궁성문을 흉내 낸 것은 춘추관 출입문과 본관에서 영빈관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등 일부분이다.
대부분의 문은 철창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붕도 없다. 궁 담도 마찬가지다. 궁궐은 거대한 성벽으로 돼
있어 좀처럼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그러나 청와대의 담은 청와대 앞길을 지나면서 볼 수 있듯이 철창으로 되어 있어 담 안이 훤히
보인다.
뿐만 아니라, 영빈관은 완전한 퓨전 건축물이다. 외형은 그리스와 로마신전 같다. 내부 공간은 탁
트였고 천장도 높아 서양의 궁전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벽과 천장이 태극과 무궁화 등 우리 전통문양으로 꾸며져 있다.
물론, 청와대에서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린 건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후원에
있으면서 주로 연회장이나 정상회담장으로 쓰이는 상춘재常春齋는 재료에서부터 건축양식 모두 우리의 전통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미를
오직 상춘재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아쉬움을 갖게 한다. 물론 모든 건축물을 전통적으로 지었다면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실용성이 많이
떨어졌을 것이지만 말이다.
청와대에 있는 건물들의 이름은 조선시대 궁궐 건물같이 일관된 규칙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통령이 대부분 시간을 보내며 공적인 업무를 하는 본관은 2층의 본채와 단층 별채 2개 등 3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채는 별도의 이름이 없으며 별채는 세종실과 충무실로 불린다. 또 대규모 연회장으로 사용되는 곳은 영빈관이라 부르며,
대통령의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는 사적인 공간은 관저라고 불린다.
이밖에 비서실 직원들이 근무하는 곳은 여민관이며, 대통령의 활동을 기록하고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사용하는 곳은 춘추관春秋館이라 부르고 있다. 옛 궁궐의 건물 뒤에 붙는 이름은 대부분 관館이었다. 관館자는 공공기관의 건물 뒤에 붙는 것으로,
왕이나 왕실 가족이 사용하는 건물 이름 뒤에는 붙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본관과 본관 별채의 이름을 ‘000전’ 또는 ‘000합’, ‘000각’이라 하고,
영빈관을 ‘000루’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전통적이면서도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우리 시대의 궁궐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 건축은 우리 전통을 따르려고 했으나
우리 전통 건물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는 왕조 시대의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를 겪은 뒤 현대 국가를 세우면서 최고 통치 기관의 규모가 옛
궁궐의 일부분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건물은 여러 기능을 가진 건물을 건축하게 되었고, 왕조 시대와 같이 세습적인 왕과 왕실
가족을 위한 공간이 필요 없게 되었다. 하지만 최고 통치 기관의 이름으로 일제의 잔재를 없애며, 우리의 전통을 하는 최고 통치 기관이자,
우리시대의 궁궐이다.
이에 비해 일제의 잔재를 걷어내고 한참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경복궁과 창덕궁 등의 조선시대 궁궐은
옛날의 화려했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지만, 거주하는 주인이 없고 통치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제된 궁궐의 모습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