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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예수님의 생명을 경험하라
이 세상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물론 수십억의 인구 중에 그리스도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유신론자들 모두 하나님에 대한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유신론자에 속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저마다 생각하는 하나님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기록된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 배웁니다. 그리고 그 생각에 따라 우리는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보이는 신앙생활의 성격과 방식은 곧 그 사람이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반영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성경이 약속하는 것과는 달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약속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로 생명을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은 풍성한 생명을 공급받는다는 말입니다. 기력이 쇠한 어르신들을 위해 어떤 자녀들이 링거를 통해 영양을 공급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로서 내려오는 생명을 공급받는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더 활력 있고 넘치는 생명력을 보이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삶을 경험하지 못하는 원인 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배웁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그림이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라고 하면 아이들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그릴 것입니다. 그것은 생김새가 달라서라기보다는 그 이미지가 다른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동일한 이치로 이 시간 제가 여러분에게 종이를 드려 여러분이 생각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림을 상상해서 그려보라고 할 때 각자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얼굴에 대한 그림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화가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하나님에 대한 오해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잘못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한 그림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적인 고용주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적인 고용주로 봅니다. 그분은 고용주고 여러분은 직원입니다. 더구나 그 고용주는 나를 피로 산 분이기 때문에 더욱 빚이 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고용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쉼 없이 일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도의 일만을 하는 것으로 임무를 다 했다고 여길 것입니다. 이정도 하면 야단맞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만큼 일할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 회사 사장이 아버지라면 그 회사에서 일하는 자기의 자세가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내 보스가 내 아버지라면 아버지를 위해 일하는 방식이 바뀔 것입니다. 그 회사는 아버지의 것일 뿐 아니라 내 것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그것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게 고용을 받은 사람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엄청난 것을 상속받게 될 상태에 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4:4-7)
사도 바울이 이야기 합니다. 너희는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아들이다. 아들이면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라고 합니다. 물론 사도바울은 자신을 표현할 때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종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이렇게 스스로 원해서 종이 되려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출21:6)
50년마다 찾아오는 희년(禧年)이 되면 종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데 그러나 종들이 더 있기를 희망한다면, 그들이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떠나기를 싫어하면 문설주에 귀를 뚫으라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상전을 섬기는 것이 종이기 때문이 아니라 상전을 너무나 사랑하고 섬기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은 너무나 섬기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종이 되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기: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첫 번째 오해인, 신적인 고용주라는 생각을 고치기 위하여 어떤 제안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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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심판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살펴보시면서 언제 실수하나 지켜보는 분이신 줄 아십니까? 이것은 두 번째로 잘못 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가혹한 심판자로 보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하나님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상에 앉아서 내가 언제 실수하는지 바라보는 분이라고......
잘못된 일이 생기면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돌이키라고 이런 시련을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의 셋째 딸이 다섯 살쯤 되었을 때,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른 아이의 실수로 이마가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놀라서 달려가보니 이미 아이의 이마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누군가 손수건으로 지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가면서 이렇게 속으로 외쳤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제가 죄를 지어서 아이가 다쳤습니다.” 즉각적으로 하나님께서 저의 죄 때문에 아이에게 벌을 내리셨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신 줄은 알지만 내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 같이 사랑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그 때 참을성 없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자주 때리는 편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곧 자신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삶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기쁨을 앗아갈 것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는 것은 어려운 일 아닙니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일은 어렵습니다. 하나님일지라도 나를 싫어하고 있다면 그분 앞에 나가기 힘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오해입니다. 저는 지금은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대해서도 좀 더 관대한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기: 하나님을 가혹한 심판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특징을 보입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왜 위험한 생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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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는 하나님
세 번째로 어떤 경우에는 멀리 있는 하나님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멀리서 우리를 바라본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작은 일에 대하여서는 말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굉장한 일만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구체적인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에서 큰 왕으로서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라보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3)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가까이 된 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이 말씀에서 가까이 되었다(헬라어 ἐγγὺς 엥귀스)는 말은 서로 껴안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한 지구를 멀리서 바라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제일 가까이 계신 분입니다. 이 세가지가 잘못된 하나님에 대한 개념입니다.
생각해 보기: 에베소서 2:13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가까이 계십니다. 얼마나 가까이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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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
하나님의 성품을 알려면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귀 기울여야 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웃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웃고 계신다고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고요? 세상에는 너무나 심각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웃는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무드를 굉장히 부드럽게 만드셨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위에서 믿는 모든 자의 죄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빈 무덤은 하나님에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승리가 쟁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아주 좋은 무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대우하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십자가 사건 이전의 일입니다. 십자가 이후의 백성들에 대한 열정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인하여 기뻐하시며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흥분되어 있는 하나님을 상상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를 바라보면서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상상해 보십시오.
생각해 보기: 위 구절 스바냐 3:17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이 것은 그 동안 내가 알던 하나님과 어떻게 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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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위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보십니다. “모세야, 엘리야야, 아브라함아, 다윗아! 다 이리와! 봐라! 천사들도 다 와서 보아라! 이 아들을 보아라. 얼마나 아름답니! 내가 만든 아들이다! 너무나 아름답다. 너무나 자랑스럽다.” 에베소서2장에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영원토록 이 사람을 사랑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 전부를 반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만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알고 있습니까? 정말로 알고 있습니까? 정말로 여러분의 귀중함을 알려준 자가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육체를 가지고 이 안에 오신다면 이 수많은 사람 중에 당신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 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얼굴을 쓰다듬으시며 “나는 너를 너무 너무 사랑한다. 너는 너무나 귀한 존재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의인이고 너 혼자 죄를 지었다 해도 너를 인하여 왔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원했는가 하면 천상을 버리고 이곳에 내가왔다” 말하면서 여러분을 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진짜입니다. 그분께서는 사랑하시며 웃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고 계실 때 화가 나서 바라보시지 않습니다.“너 왜 잘하지 못했니?”하고 야단을 치지 않으십니다.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기: 위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것이라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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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를 용납하며 우리를 지지하십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대로 완전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믿고 있습니다.
부부가 나이 들어 청춘의 싱그러움은 잃어가지만 그의 사랑이 식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주름이 늘고 뱃살은 두꺼워졌지만 사랑은 더욱 애틋해가기만 합니다. 많은 믿는 자들이 자신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잘못된 것을 자꾸 들추어냅니다. 그러나 신랑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너는 완전하지 않지만 나는 상관 안 해”하고 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죄인이었을 때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분이 여러분이 완전하지 않다고 여러분을 버리신다고요?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생각해 보기: 우리의 기도생활을 생각해 봅시다. 나는 주님께 어떤 말씀을 주로 드립니까? 회개의 고백입니까? 아니면 간구입니까? 아니면 감사와 신뢰의 찬양이 담긴 고백입니까? 우리의 기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어떤 모습인지를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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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어떤 교회는 하루에 몇 시간은 꼭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범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도를 전혀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보다 조금 나을 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를 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께서 나를 완전히 용납하시고 나와 대화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주님을 만나고 싶어할 것입니다. 저는 저를 인정해주시는 목사님 내외를 만나러 수유리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행하는 행위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통한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삶을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기: 누가 기도할 수 있습니까? 기도가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권이라면 어떤 사람이 이런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까? 나의 기도는 의무입니까, 특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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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죄 용서에 대한 오해
예수님의 생명을 완전히 경험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용서하심의 개념에 대해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완전히 용서함을 받았다는 개념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받았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기를, 자신들이 받은 가장 큰 복이 무엇인가 하면 죄 용서 받고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갈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세상은 역시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허덕이며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주일이면 다시 교회에 와서 그 동안 세상에서 진 짐을 다 내려놓고 죄의 봇짐도 풀어놓고 다시 일주일을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노후 연금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 몸이 아파 고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과 비슷한 처지입니다. 죽어서 천국에는 가겠지만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지금 함께 살아가는 은혜에 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초월적이고 기적적인 삶입니다. 고난 중에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삶입니다. 옥중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4). 이것은 기뻐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그런 기쁨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권면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감옥에도 있지 않는데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각해 보기: 구원 받는 것을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진 위험성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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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죄사함 받아서 천국에 가는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그것보다 더 큰 것입니다. 바로 구원은 천국을 마음속에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또한 생명도 받습니다. 구원을 주실 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에 대하여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완전히 용서받았음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2:13-14)
성경이 말하기를 예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고 합니다. 모든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죄라 함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모두 포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죄의 고소장을 지워버리시고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신 이유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서 함께 거하시기 위함입니다. 고전 6:17에서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내가 지금 저쪽으로 옮겼는데 주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우리 안에 계십니다. 어딜 가든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생각해 보기: 골로새서 2:13~14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를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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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의 승리는 주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일을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감사하며 그것으로 인한 확신과 평강 속에서 살아갈 때 생명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묵상할 때 훨씬 용이해집니다. 그러므로 아래의 내용을 잘 읽고 묵상하면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교정해나갑시다.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l 요1:12 그는 나를 그의 가족으로 불렀다.
l 요15:1-5 그는 나를 그의 친구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l 요15:6 그는 나를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선택했다.
l 행1:8 그는 나를 증인이 되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l 롬5:1 그는 나를 용서했고 의롭게 만들었다.
l 롬6:1-6 그는 나를 죽음의 죄의 힘에서 일으켰다.
l 롬8:1 그는 나를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l 고전1:30 그는 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했다.
l 고전2:12 그는 나에게 성령을 주셨고, 그래서 나는 그에 의해서 나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것들을 알게 되었다.
l 고전6:19 그는 그의 값으로 나를 샀고, 만들었다.
l 고후1:21 그는 나의 상속할 유산으로 성령을 주셨다.
l 고후5:17 그는 나로부터 새로운 인격을 만들었다.
l 갈2:20 그는 나의 소중한 삶이 되었다.
l 엡1:3 그는 나에게 모든 성령의 은사를 주셨다.
l 엡1:4 그는 내가 새롭게 태어나기 이전에 나를 선택했다.
l 엡1:5 그는 나를 그의 양자로 택했다.
l 엡1:7-8 그는 나에게 그의 은혜를 아낌없이 주었다.
l 엡2:5 그는 나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l 엡2:6 그는 나를 일으켰고,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l 엡2:18 그는 나를 성령을 통하여 그에게 직접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l 빌3:20 그는 나에게 천국의 시민이 되게 하였고, 거기에 그와 함께 앉도록 하였다.
l 골1:13 그는 나를 어둠으로부터 빛의 왕국으로 옮겼다.
l 골1:14 그는 나의 생애의 모든 죄를 용서했다.
l 골2:7 그는 나를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도록 하였고 그의 위로 자라게 했다.
l 골2:10 그는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하였다.
l 골2:11 그는 나를 원죄로부터 구속하였다.
l 골2:12-13 그는 나의 옛사람을 장사해버렸고, 새로운 사람으로 나를 일으켰다.
l 딤후1:7 그는 나에게 성령의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셨다.
l 딤후1:9 그는 나를 하나님의 사역의 한 부분으로 만드셨다.
l 히2:11 그는 나를 성화시키셨고, 그의 형제라고 불러주셨다.
l 히4:16 그는 나에게 그분께 나아가는데 담력을 주셨다.
l 벧전2:5 그는 나를 살아있는 돌로 만드셨고, 그의 영적인 집에 한 부분이 되게 하셨다.
l 벧전2:9 그는 나를 선택된 족속, 특별한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만드셨다.
l 벧후1:4 그는 나를 대단히 위대한 사람과 거룩한 나라에 동참하게 될 귀중한 약속을 주셨다.
l 요일1:9 그는 모든 불의로부터 나를 계속적으로 깨끗케 하셨다.
l 요일5:18 그는 나를 사탄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보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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