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기회가 다아 오월전야제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것도 예전에 쳤었던 풍물을 가지고 다시 시내를 뛰게 되어 내심 기대되기도 했다.
나는 풍물단이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한 30분 앞서 광주공원으로 갔는데, 그 때는 하늘에 구름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풍물패를 만나는 거라 속으론 약간 설레임이 일었다.
한 40분정도 지났을까 여기저기서 치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가만히 보니 학생들은 아니었고 오육십대의 성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예전과 달리 풍물의 저변이 많이 확산되었음을 느꼈다.
나는 가락이 산만하지 않도록 깃발로 장단을 맞추어주는 역할을 맡으면서 굿이 시작되기 전에 치배들의 식사를 배급하는 일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식사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하늘이 흐리기 시작하더니 밥도 다 먹기 전에 한 두방울 빗줄기가 내렸다.
여기저기서 각 패마다 앉은반으로 풍물을 치며 서로의 호흡을 맞추어 보는 도중에도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이런 상태기 계속되면 구도청까지 풍물을 치며 갈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일었다. 그러나 풍물을 손에 잡고 두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점차 세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없이 굿을 이어갔다. 절로 나오는 집단의 어울림과 흥이라는 것은 날씨와 관계없이 누가 강제로 시키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더 세게 몰아칠 때 쯤 광주공원에 모인 풍물패는 원래의 시간에 맞추어 향교를 지나 구광주은행사거리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다른 장소에서 출발한 풍물패와 합류하여 518전야제 천인풍물단의 굿을 펼쳤다.
광주전남에 있는 굿쟁이들이 모여 오월행사를 참가한다는 것은 참으로 뜻 깊다.
강산이 세 번 변한 세월동안 정권도 바뀌고 광주 역시 변화의 흐름을 따라 힘겹게 살아가는 가고 있지만 30년 전의 그 함성은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천인풍물단이 한 자리에 모여 그 함성과 함께 한다는 것은 광주의 오월을 우리 스스로가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진행요원 홍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