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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91:14-16
요즘 연예의 톱 뉴우스는 박철 옥소리 부부의 이혼, 이영하 선우은숙 부부의 이혼에 관한 기사입니다. 특히 이영하 선우은숙 부부는 연예계에서도 잉꼬부부로 소문난 부부여서 이혼 소식은 충격적입니다.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는 결코 헤어지지 않겠다,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던 굳은 맹세는 산산이 부서진 조각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만나기도 잘 하지만 헤어지는 것도 잘 합니다. 너도 나를 버리고, 나도 너를 버리는 일에 익숙합니다. 20년을 함께 살고, 30년을 함께 살아도 끝까지 부부로 해로한다는 보장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 설교의 제목은 <내가 저와 함께 하리라>입니다. 따라해 봅시다. ->내가 저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믿습니까?
신구약 성경의 전편에 흐르고 있는 중요한 사상은 <하나님이 그 백성과 함께 하신다>고 하는 임마누엘 사상입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을 보면 <나와 함께> <너와 함께> <그와 함께> <우리와 함께> <그들과 함께> 등의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심을 가리켜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임마누엘은 히브리어 임(함께) + 마누(우리) + 엘(하나님)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택하신 백성들과 함께 하십니다. 저들의 순경 때도 함께 하시고, 저들의 역경 때도 변함없이 함께 하십니다. 낮에도 함께 하시고 밤에도 함께 하십니다. 성경은 보면 혹독한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한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는가? 믿음의 선배들이 혹독한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죽음의 풀무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저들을 붙들어 주시고, 능히 견디고 이길 힘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Ⅰ. 저와 함께 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은 몇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첫째, 축복의 싸인입니다.
<내가 함께 하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받은 자는 환경과 처지를 초월하여 모두 엄청난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다윗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둘째, 소명감당의 원동력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속박에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킨 지도자입니다. 그가 출애굽이라고 하는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동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임마누엘의 약속이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소명을 내렸습니다. 소명을 받은 모세는 두려워 떱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두려워 떨고 있는 모세에게 주신 결정적인 싸인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셨기에 모세는 바로에게 자기 백성을 내 놓으라고 소리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셨기에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셨기에 광야 40년 동안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었고, 크고 작은 송사를 재판할 수 있었고, 저들의 삶을 신앙인의 삶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모세가 받은 임마누엘의 약속은 출애굽 운동과 40년 광야 운동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셋째, 환난과 고통을 이기는 힘입니다.
장자권을 가로챈 야곱은 에서의 낯을 피해 밧단아람으로 도망쳤습니다. 그곳에서 20년의 불모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환난과 고통의 세월이었습니다. 야곱이 20년 동안 환난과 고통을 이길 수 원동력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임마누엘의 약속이었습니다.
Ⅱ. 환난 때에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데, 언제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까? ->환난 때에
하나님께서 환난 때에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환난>은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심히 괴롭고 곤고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환난>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가? 헬라인들은 곡식이 껍질이 벗을 때 느끼는 아픔과 고통을 환난이라고 불렀습니다. 헬라인들은 곡식을 타작할 때 마당에 곡식을 깔아 놓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 황소로 하여금 대못을 촘촘히 박은 큰 침목을 잡아당기게 합니다. 황소가 침목을 이리저리 끌면 짓누르는 압력에 곡식의 껍질이 벗겨집니다. 이때 곡식이 느끼는 고통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 고통을 가리켜 환난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마다 당하는 환난의 정체는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번창하던 사업이 어려움이 찾아와 환난을 겪습니다. 어떤 사람은 승진에서 누락되어 고통 중에 있고, 어떤 사람은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며, 어떤 사람은 가정이 파탄이 나고, 어떤 사람은 극심한 영적 갈등에 빠져 방황하고, 어떤 사람은 질병의 침노를 받아 고통 중에 있습니다. <환난의 정체>는 다르지만 <환난의 때>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곤고한 때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낙심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때입니다.
우리가 환난의 폭풍에 노출될 때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통하고, 성공의 길을 걸어갈 때에는 우리 주위에 사람이 많습니다. 선배도 나를 찾고, 후배도 나를 찾습니다. 친구도 나를 환대하고, 형제도 나를 환영합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 나를 환대합니다. 벗을 찾아가면 벗은 버선발로 달려 나와 나를 환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환난을 당하여 형편이 어려워지면 입속에 있던 떡을 나누어 먹던 친구도 나를 외면합니다.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지면 피를 나눈 형제도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버선발로 달려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던 친구도 대문을 닫아걸고 외면합니다. 모두 나를 모르는 척 외면합니다. 모두 나를 떠나갑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나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며,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참고 견딜 수 있는데 내 곁에 나와 함께 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참기 어렵고, 견디기 힘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환난은 성도의 마음도 무너져 내리게 하지만 믿음도 무너져 내리게 합니다. 환난을 당한 성도 중에 <부모도 나를 떠나고, 형제도, 친구도 나를 외면하고, 하나님도 나를 떠나셨다. 하나님도 나를 외면하셨다. 하나님이 환난의 구덩이에 빠진 모른 척 하신다>고 말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으면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다>고 말하겠습니까마는 믿음의 성도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 백성을 떠나지 아니하시며, 자기 백성을 환난의 자리에 홀로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등을 돌리고, 떠나갈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박대하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형통할 때에도 함께 하시고, 성공시대를 열어갈 때에도 함께 하시지만 특별히 환난 중에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고통당하고, 환난 당하는 그 자리에 함께 하셔서 나의 고통에 참예하시고, 나의 고통의 짐을 들어주시고, 나를 위로해 주시고, 나를 격려해주시고, 나에게 이길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환난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지 더 좋지 않으냐>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환난의 바람은 믿는 자라고 해서 비켜가지 않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도 불신자들과 똑같이 환난을 당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큰 환난을 당하고, 더 극심한 환난을 당하고, 더 고통스러운 환난을 겪습니다.
주의 말씀을 증거하던 선지자 예레미야는 토굴에 갇힘을 당했습니다.
기도의 사람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돌에 맞고, 태장으로 맞고, 굶고, 헐벗고, 옥에 갇히는 수난을 당했습니다.
환난은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을 주는 아픈 것이지만 믿는 자들이 당하는 환난은 하나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표시입니다.
환난의 폭풍은 우리를 신앙 성숙의 항구로 인도합니다.
환난의 폭풍은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주를 의지하게 하고,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 믿음을 더욱 성장시키며, 기도의 삶을 더욱 견고케 합니다.
환난의 날을 맞이함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챤스가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이 환난을 당할 때 함께 하시며, 그 고통을 이기게 하시며,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며,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신앙 성숙의 경지로 인도하셔서 반석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저의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리라 - 저는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떨립니다.
저의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리라 - 저는 말씀을 기억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큰 위로를 얻습니다.
저의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리라 - 저는 말씀을 가슴에 새길 때마다 무한한 용기를 갖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소망을 갖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Ⅲ.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본문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기막힌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시편 91편 15절에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목적은 우리를 온갖 문제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영화로운 존재로 만들어 주시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정말 믿습니까? 믿으면 두 손 들고 아멘합시다.
기도원에서 들었던 간증입니다.
파출부를 하면서 어렵게 외동딸을 키우던 어떤 과부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몇 년 전부터 자꾸 목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아프다고 해도 살기에 바빠서 여사로 들었습니다. 어느 날 목이 너무 아프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해서 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후두암이었습니다. 수술을 권유받았으나 암이 상당히 진행되어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었고, 병원비도 없었습니다. 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속에서 집사님이 생각한 것은 임마누엘의 하나님, 환난 날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내 딸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집사님은 딸을 데리고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15일 금식을 작정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루에 다섯 번 열리는 집회에 딸과 함께 참석하며 살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 13일째 되는 날에 딸이 말하기를 목에 불이 들어온 것처럼 뜨겁다고 했습니다. 너무 뜨거워서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속에서 무엇이 끓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급히 화장실로 데려갔더니 시뻘건 피를 토했습니다. 다음날도 피를 토하고, 또 다음날도 피를 토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딸은 마음이 편안하고, 목도 별로 아프지 않고, 말도 수월하게 했습니다.
작정했던 15일간의 금식이 끝났습니다. 이제 죽을 먹으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기도원으로 올라간 지 한 달 만에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딸을 보니 도무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다시 진단을 받아보니 거짓말처럼 암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집사님에게도 만성적인 허리병이 있었습니다. 다시 기도원으로 올라가 딸을 고쳐주신 하나님께 자신의 허리병도 고쳐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집사님도 고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나무 감사했습니다. 은혜에 보답코자 집사님은 감사연보를 드렸습니다. 그 봉투 안에 든 것은 몇 만원이 전부였습니다. 집사님은 너무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 많이 드리고 싶지만 가진 것이 없어서 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제가 돈을 많이 벌면 꼭 은혜에 보답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집사님의 머리속에는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어 건축헌금도 많이 드리고, 선교헌금도 많이 드리고, 십일조도 많이 드릴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집사님에게는 재물은 없었지만 음식을 잘 만드는 달란트가 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집사님이 만들면 다 맛있다고 하며 한 그릇 뚝딱이었습니다. 그래서 식당봉사는 늘 집사님의 차지였습니다. 주위에서 김밥장사를 해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반찬장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막상 하려고 해도 밑천이 없어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누가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탁자 두 개를 놓을 수 있는 작은 가게를 얻어 김밥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반찬도 만들어 놓고 함께 팔았습니다. 김밥을 말면 팔리고, 김밥을 말면 팔렸습니다. 김치도, 마른 반찬도 만들어 놓기가 무섭게 다 팔렸습니다.
도시락 주문도 쇄도했습니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 종업원을 두 명, 세 명을 두고 일했습니다. 가게가 점점 번창하여 마침내 도시락을 만드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여러 학교에 도시락을 납품을 하게 되었습니다. 밀려오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어 규모를 확장했습니다. 지금은 일하는 종업원이 200명이고, 일 년 매출이 약 200억이 된다고 합니다. 이번에 선교헌금으로 1억, 건축헌금으로 20억을 드렸다고 합니다.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 이 말씀은 누구에게 주시는 약속이며, 누가 받아야 합니까?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주시는 약속이요, 내가 받아야 할 약속입니다.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 여러분의 환난의 날에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을 온갖 고통의 문제에서 건져주시고, 여러분을 영화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Ⅳ. 간구하라
건짐과 영화로움에 이르는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수도사가 성전에 올라와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수도사의 기도의 영역이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자 마귀가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성령도 찾아오시지만 마귀도 찾아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왜 찾아올까요? ->성령은 성도들의 기도를 돕기 위해서 찾아오시지만 마귀는 방해하려고 찾아옵니다. 기도 중에 잡념이 생기고, 무서움이 생기고, 졸음이 오는 것은 마귀의 방해로 인한 것입니다. 그때에는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마귀가 수도사의 귀에다 속삭입니다. -> “너는 쓰레기 같은 놈이 아니냐? 네가 수도사가 되었다고 해서 너의 과거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기도한다고 해서 너의 영성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수도사가 흔들리지 않자 마귀는 꽃병에 있는 꽃을 빼서 수도사의 얼굴을 향해 던집니다. 수도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땅 바닥에 흩어진 꽃을 다시 꽃병에 뽑고 다시 기도합니다.
마귀는 맛있는 음식을 한 상 차려 놓고 먹으라고 합니다. 먹어야 기운이 나서 기도도 잘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수도사는 미동도 움직이지 않고 기도합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유혹하고, 방해해도 꼼짝하지 않자 최후의 방법을 동원합니다. 마귀는 수도사를 성전 밖으로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수도사는 끌려 나가지 않으려고 발부둥쳤습니다. 누가 이겼을까요? 수도사는 마귀를 이기지 못하고 밖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성전 기둥을 붙잡기도 하고, 바닥에 눕기도 하고, 젖 먹었던 힘까지 동원해 보았지만 마귀를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성전 문까지 끌려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문지방을 잡았습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즈음에 <주여>하고 소리를 지르자 마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수도사는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감사도 잠시 뿐 생각해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따져 물었습니다.
수도사 : 도와주시려면 진작 오셔서 도와 주시야지 이게 뭡니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놓고 왜 저를 혼자 내버려두셨습니까?
예수 : 나는 네가 성전에 올라와 기도할 때부터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네 곁에 있었다.
수도사 : 제 곁에 있었다면 제가 마귀의 시험을 받고, 싸우고, 성전 밖으로 끌려 나갈 때에는 왜 도와주지 아니하셨습니까?
예수 : 네가 나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지 않느냐? 너는 네 힘으로, 네 능력으로 마귀를 이기려고 했지 결코 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나를 찾지도 않았고, 내 이름도 부르지도 않았다. 나는 네가 내 이름을 부를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시편 120편 1절에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다”고 했습니다.
시편 116편 8절에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다”고 했습니다.
시편 34편 6절에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다”고 했습니다.
시편 91편 14절 상반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91편 14절 하반절에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91편 15절 상반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91편 15절 하반절에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부르짖어 간구하는 자, 곧 전심으로 찾고 찾으며, 도움을 청하는 모든 사람을 가까이 하시고, 그 마음의 소망을 만족케 하시며, 그 사람의 어깨를 짓누르는 모든 유형, 무형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환난 날에 우리가 피난처로 삼고, 요새로 삼아야 할 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셔서 새 사냥꾼의 올무와 극한 염병에서 우리를 지켜 보호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난은 사람을 차별하여 찾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얼마든지 환난의 폭풍우에 노출될 수 있고, 환난의 풀무에 던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환난의 떡을 먹고, 환난의 물을 마시고, 환난의 잠을 자야 하는 것은 분명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닥친 환난은 환난을 통과함으로 얻는 유익과 축복이 많습니다. 환난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환난의 날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세상은 나를 버려도, 세상은 나를 외면해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나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능한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 숨겨주시고, 유형, 무형의 온갖 문제에서 건져 주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사업의 문이 닫혔습니까?
열매가 토산치 못하여 땅에 떨어집니까?
질병의 침노를 받아 건강을 잃었습니까?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온갖 문제에서 건져주시고, 영화롭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환난의 날도, 고통의 날도, 눈물의 날도 축복과 형통으로 나아가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됩니다. 믿기를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