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일 (2014. 8. 19. 화요일) - 모스크바
00시 10분(한국시간 03:10). 미몽(迷夢) 속에서 기상하여 짐을 정리한다. 하차시간이 아직도 두 시간 넘게 남았는데, 짐을 한편에 모아 놓고 침상에서 졸린 채 하차를 기다린다.
시차가 점차 벌어져 세 시간 차이가 되니 조금씩 시차의 질곡에 빠져든다. 시차는 휴대폰에서 로밍시간과 한국시간으로 구분하여 자동으로 표시된다. 해외에서의 휴대폰은 비록 인터넷이 안 되는 지역에서도 사진기 기능과 시차를 알려주는 시계 기능으로도 충분히 유용하다. 대도시 인근 호텔에서는 인터넷이 가능하여 더욱 유용하고. 너무너무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 예카데른부르크
02시 49분 (모스크바 시간 00:49). 정시에 열차는 예카데른부르크 역에 도착한다. 우리가 타고 온 열차는 울란우데를 출발하여 모스크바까지 가는 열차이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는 열차로 28시간 거리이다.
원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총 156시간을 달린다. 우린 예카데른부르크에서 열차여행을 마치고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로 대체한다. 06:15 모스크바 행 비행기 출발시간까지 시간이 여유롭다. 버스로 공항을 가면서 시내를 거쳐 한밤중 시내투어가 시작된다.
[ 심야의 예카데른부르크 - 니콜라이 2세가 최후를 맞은 성당. 현재는 기념관이다 ]
차창 밖 먼 하늘에는 그믐달이 청량하다. 엊그제 열차 속에서는 반달이 열차를 쫒아오더니 오늘 새벽에는 그믐달이 우리 버스를 따라온다.
시내 복판에 KIA MORTORS 적색 조명간판이 선명하다. 어느 도시에도 있는 레닌광장과 전제왕조시대의 구 시가지를 지난다. 옛 동네임에도 도로가 굉장히 넓다. 100년 전에도 저렇게 넓은 도로가 있었던 것인가? 전통 건물의 새벽 야경이 퍽 아름답다.
예카데른부르크는 1721년에 형성되기 시작한 도시로, 명칭은 여왕 예카테리나 2세 이름에서 유래한다. 현재 130만 명이 거주한다.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이 볼세비키에 의해 살해당한 곳이기도 하다. 우랄 산맥에 위치한 이 도시는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로로 유명하다.
06시 15분 (서울시간 09:15) 예카데른부르크 공항에서 모스크바 행 비행기를 탄다. 비행시간은 2시간 20분 걸린다.
◉ 모스크바 도착
06시 40분 모스크바 세르게네 공항 도착. 예카데른부르크에서 2시간 반 정도를 비행기로 날아왔건만, 현지 시간은 06:40분이다. 2시간의 시차 때문이다(한국과는 5시간의 차이).
상공에서 내려다 본 모스크바는 숲속에 조성된 커다란 공원이다. 새벽안개 덮인 삼림도시가 평화롭게 보인다. 공포의 도시로 각인된 역사가 오래지 않아서, 설레임이 크다. 공항건물에서 밖으로 나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대형 광고간판이다. 한국의 위상을 나타내는 듯하여, 반갑고 기쁘다. 이곳에서 현대자동차는 독일 차와 대등하게 고가 브랜드로 통한다니 대견하고, 그 회사와 우리나라에 감사드린다.
오늘은 두 번의 아침을 맞는다. 열차에서 내려 예카데른부르크에서 새벽을, 비행기에서 내려 2시간의 시차 덕에 모스크바에서 또 아침을 맞는다.
07시 30분, 공항에서 버스로 시내 투어가 시작된다.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변에도 자작나무 숲이 가득하다. 군데군데 다챠(별장) 지역이 보인다. 시내 근교에는 고층아파트 숲이 즐비하다. 교통이 상습적으로 체증된다고 하는데, 오늘은 별로 심하지 않나 보다.
[노고데비치 호수 공원 ]
◉ 노고데비치 호수
첫 번째 관광은 노고데비치 호수 지역이다.
구세주 성당이 위용을 자랑한다. 성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성당의 종소리가 울린다. 08시 50분이다. 러시아 정교에서는 구 시계를 사용하는데, 10분 늦단다. 이곳은 원래 성당을 스탈린이 파괴하여 수영장을 만들었던 곳으로, 최근성당으로 복원되었다.
성당 뒤편에 흐르는 모스크바 강의 다리 위에서 멀리 보이는 크렘린 궁전은 장관이다.
노고데비치 호수공원은 수녀원, 수도원 묘지 등 유적지도 많지만, 시민들이 산책지로 더욱 사랑을 받는 곳이다. 지금도 호수가 공원에는 아침 산책객들과 우리 같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우리는 공원에 널부덕하게 앉아 김밥으로 간식을 대신한다.
노고데비치 수녀원에는 표도르 황제가 이복 누나(쏘피아)를 유배안치 시킨 역사적 장소이다.
수도원 묘지는 유명인사들의 묘지이다. 안톤 체홉, 후루시쵸프, 엘친 등의 묘가 보인다. 수많은 묘석과 자연석에 새긴 흉상 등 묘비는 그 자체가 예술품이다. 조각공원을 연상시킨다. 한국인으로는 항일독립운동가인 김규면 선생이 안장되었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생소한 이름이다.
◉ 모스크바 시내
알르바트 거리는 길이가 1.7km인, 일종의 예술의 거리이다. 초입에 푸쉬킨의 박물관이 있다. '빅토르 초이'의 추모공원이 있다고 하여 일행이 운집한다. 적지 않은 길 벽에 추모 그림과 낙서가 난잡하다. 생소한 이름이다. 오늘따라 내가 많이 무식함을 느낀다.
오전시간이라 아직 붐비지는 않지만 관광객들이 넘친다. 길거리 화가들이 작품 진열을 시작한다. 오며가며 눈으로 고르다 가져가기 쉬운 소품을 하나 구입하다. 모스크바 거리 풍경이다.
[알르바트 거리에서 그림 한 점 구입 ]
시내 중심가에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이 보인다. 급상승한 한국의 위상을 모스크바에서 확인한다. 반공교육에 익숙해진 우리 세대에게 세계의 현실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12시 정각, 모스크바 국립대학에 들어선다. 1755년 로마노프에 의해 설립된 러시아 제1의 대학이다. 특히 본관건물은 스탈린이 제2차 대전 중 독일인 포로들을 시켜 지은 건물로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소위 스탈린 양식의 건물이다. 건물 앞에는 설립자 로마노프의 동상이 서있다
모스크바 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참새언덕은 일종의 전망대이다. 평지인 시내에서 다소 높다는데(해발 150 m) 시내조망과 더불어 모스크바 강가의 올림픽 주경기장이 코앞에 있고, 저멀리 구세주성당, 외교부건물 등이 보인다. 옛적에는 참새들이 많았다나---
[ 사진 – 모스크바 대학 또는 참새언덕에서의 전망대 경관 ]
점심식사는 한국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는다.
13시 30분 오후 시내관광을 시작한다. 버스로 레닌대로를 지나면 금방 인류의 첫 번째 우주인 유리가가린의 티타늄 상이 커다랗게 보인다. 마치 스파이더맨을 연상시킨다.
( 크레믈린의 초입 삼위일체 탑 )
◉ 크레믈린
오후의 주관광지는 크레물린 궁이다. 크레믈린은 '성곽'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며 가장 유명한 크레믈린이 여기 모스크바 크레믈린이다. 성벽의 둘레가 2.23km이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여 입장한다.
14시 정각, 맨 먼저 보이는 삼위일체탑의 웅장함에 첫 번째 탄성이 나온다. 초입지 좌측에는 1750년대 지어진 건물이 품격을 자랑하고, 그 1층 난간에는 나폴레옹 군대로부터 포획한 대포들이 장식용으로 전시되어 있다. 바로 옆 대통령이 집무하는 건물도 좌측으로 보면서 지난다. 지름 3.75m의 루비로 만든 별이 올려진 첨탑의 위용, 수백 톤 무게가 위압적인 깨진 종(황제의 종), 엄청나게 큰 황제의 대포 등은 대국의 역사를 과시한다. 궁안의 성당광장에는 러시아 정교의 대본산인 성모승천대성당이 있다. 내부에는 이콘벽으로 도배되어 있다. 러시아정교는 이콘벽에 기도를 올린다. 내부 상부에는 프레스코화로 된 '천국과 지옥 화'가 벽의 한 면을 장식한다. 성모승천교회 앞에는 성모수태고지성당(황제 개인 성당), 황제가족묘 성당이 있다.
[ 사진 – 성모승천 대성당 또는 이반대제 종탑 ]
이반 3세를 기념하는 '이반대제 종탑'은 화려함은 물론, 91m의 높이가 일단 관광객의 기선을 제압한다.
크레믈린을 나온다. 바실리성당이 거기 있고, 저 넓디넓은 광장이 바로 붉은 광장이다.
15:20 바실리 성당 - 이반4세의 명에 의해 1555-1560년에 지어졌다. 화려함의 극치이다. 사진으로 볼 때는 놀이공원의 시설처럼 보이는데, 실물의 아름다움은 황홀한 정도이다. 내부 입장료도 유료이고 비싸다. 250 루블(8,000원 정도)이다. 가이드 없이 입장하고 보니 실속 없는 구경이다.
[ 바실리 성당- 붉은 광장의 한 쪽에 있다 ]
붉은 광장 - 아름답다는 의미의 '붉은' 광장은 소문과 책에서만 보았기에 내심으로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그런대, 오늘은 행사준비 무대장치에 가려져 있다. 어찌됐든 붉은 광장의 아름다움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니 무척 아쉽다. 맞은편에 있는 오래된 건물(1890-1893년) 백화점 1층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면서 광장주위를 맴돈다.
( 붉은 광장. 행사준비로 시야를 가린다 )
저녁식사(17:40)는 육개장
18시 40분. 횡단열차의 종착지인 모스크바 카잔역에서 횡단 마무리 기념사진을 촬영하다.
저녁 숙소는 24층짜리 홀리데인 인 호텔이다. 모처럼 고급스런 호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