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쟁이
근 한 달을 굶고 헛깨비로 누워 있던
큰어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히데오야 내 아들 히데오야 하고
외치더니 모로 픽 쓰러졌다
해방되기 한 해 전 6월
모심기가 한창인 어느 날이었다
그때 시골에서는 *두레로 모를 심었다
동네 조무래기들은 부모들이 모심기 하는
근처에서 놀았다
위험하다고 가지말라는 둠벙이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놀이터였다
물방개 송사리 소금쟁이를 쫓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베에서 태어나 지난 해
아버지의 고향으로 귀환한
네 살 먹은 히데오도 그 속에 있었다
열 살 먹은 누나가 어린 여동생을 업고
집에서 설겆이를 하고 있을 때
그날따라 감나무에는 유난히
까치들이 난리를 피웠다
그 시각 어린 히데오가 소금쟁이를 잡다
물애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어른들께 외쳤으면 되었을 텐데
무서워서 조무래기들은 모두
줄행랑을 쳤다 그만이었다
모심기를 마치고 참을 먹는 시간에
개구리처럼 배를 뒤집은 애가 발견되었다
큰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애장터에 애를 뺏기고
자리보전하고 누운 여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애는 또 낳으면 되지 않나
남은 애가 둘이나 있는데 이제 좀
정신 차려라
-아무리 잊으려 해도 우리 히데오가
개구리같이 부른 배를 안고 계속 나를 불러요
남편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로만 연명하던 여인은 참척慘慽의
한을 안고 한 달만에 눈을 감았다
미음도 귀하던 시절
젖먹이 어린 것도 죽었다
남은 식구는 삼십대 초반의 아버지와
열 살 먹은 딸이었다
그 겨울밤
뒷산에서 울어대는 짐승 소리와
엄마와 동생들의 원혼이 떠도는 안방에서
딸은 문에 이불을 가리고
거미줄에 잡힌 곤충처럼 떨며
뜨개질로 시간을 밀어내고
사랑방에는 슬픔과 울분으로
내지르는 아버지의 한숨에
추녀 밑에 사는 참새도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소금쟁이 따라 하늘로 올라간
가족은 하늘에 터를 잡고
칼로 생살을 저미는 세월을
이겨낸 서른네 살 홀아비는
열여덟 처녀를 아내로 맞아
다시 일가를 이루었다
해방되던 해였다
*시작노트
재혼한 아버지는 논 갈고 밭 갈고 자식농사를
다시 지었다. 6남매가 태어났다.
그 형제들 중에 기록자로서 내가 있다.
가족사를 기록하는 것은 슬픔을 동반하는
것이다. 이렇게 눈물이 난 적이 없었다.
우선 자식 잃은 슬품에 자신의 생명을 던진
큰어머니의 회한이 안타깝고, 한해에
할아버지 포함 네 명의 식솔을 잃고도 꿋꿋하게
버텨낸 아버지의 기구한 생을 생각해도
먹먹하고, 열 살에 날벼락을 맞고 결혼까지
실패하여 외롭게 살아가는 큰 누님도
가엾기 그지없다. 남은 가족들은 그분들께
빚을 졌다. 명복을 빈다.
*두레는 농촌에서 공동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마을 단위로 만든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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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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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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