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잠을 푹 잘 잔 탓인지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수건을 목에 두르고 마당에 나서니 싸늘한 새벽 공기가 달디 달았다.
가슴속까지 쏴 훑는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드니 맑은 하늘에 새벽별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침은 가다가 먹자는 동생 제안에 따라 이부자리는 얌전히 개서 얹고는 배낭 둘러
메고 어둠컴컴한 새벽 길을 나섰다.
평일인데다가 대성동 길은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교통의 불편함 때문에 잘 찾지
않는 탓인지 등산객은 한명도 볼 수 없었다.
지리산과 김지하.
김지하는 지리산이란 시에서...
"눈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지금도 저 벌판 저 산맥 굽이굽이 가득히
흘러 울부짖는 것이여..." 하며 절규했다.
군부독재의 서슬퍼런 70년대 그 당시 지리산은 빨치산으로 상징 되었기에 지리산은
금기의 대상이었다.
그 산을 이야기하는 것은 전쟁과 분단 그리고 군부 독재로 귀결된 오욕의 역사를
정면으로 문제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도 지리산을 가까이 보았던 김지하는 오랜 옥살이를 치르고, 그의 나이 耳順
근처에 다시 <지리산 근처>라는 시를 썼다.
가긴하지만
근처까지만 가는 길
구름도는
봉우리 저 푸른 빛
영기(靈氣)도 원한(怨恨)도
함께 서린 지리산 저기
안 간다
우러러 볼 뿐
간다만 구례 화엄사
화개까지만
간 건너가고
작은 폐활량에
헐떡이며 쉼 없이 가고
다 가면
못 오리
가긴가지만
근처까지만 가는 그 길
돌아서는 뒤꿈치가
유난히도 둥글고 하얗던 그 날
고달픈 아름다움
가며
가지 않는
이순(耳順) 근처 어느 날
<영기도 원한도 함께 서린 지리산> 이 구절만큼 날카롭게 지리산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 또 있을까...
물소리와 이름 모를 새 소리만이 들리는 산을 오르며 숱한 젊음이 흙으로 돌아간
그 흙 한 줌을 만져 봤다. 어디선가 뻐꾸기가 울었다. 마치 그들이 한을 토해내듯..
▲ 새벽 길에 본 나무의 새 순
▲ 숱하게 본 맑은 계곡 물
▲ 사랑을 나누는 연인 무당 개구리
▲ 잠깐 보고 말 것이지 또 찍을 게 뭐람
▲ 수종이 전혀 다른 나무 구멍에다가 뿌리를 내린 저 나무는 어떻게 자랄지..
▲ 나무 무늬가 마치 기린 목같다.
▲ 이런 길을 계속 오르려니 힘들었다.
▲ 이름도 모를 흰꽃의 향이 어지러웠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대성골
▲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부 능선
이 전망대는 세석으로 오르는 길가에 오른쪽에 있는데 눈여겨 보지 않으면 놓지기
쉽다. 십여명이 둘러 앉아 쉴 수 있는 넙적한 반석이 있다.
이 전망대에서는 대성골의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 보는 맛도 일품이다.
▲ 음약수 이정표
▲ 陰陽水
이 음양수는 돌출된 바위 밑에서 신기하게도 음수.양수 두 줄기의 샘물이 흘러 나온다.
지리산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샘물이라고 한다. 한 쪽 샘은 음지에서, 다른 한쪽
샘은 양지에서 흐르는데 이 물을 마시면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마시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 온다.
이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시니 그렇게 차고 달 수가 없었다. 욕심 사납게 퍼서 마시고
또 마시고 물병에도 가득 채웠다.ㅎㅎㅎ
▲ 음양수 샘가에서 동생과 함께 (등산객이 찍어 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까 대성골을 오를때, 무당개구리 사랑하는 걸 찍다가 넘어졌는데 그때 다쳤던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길 적마다 띠끔꺼리고 아팠다.
▲세석 대피소
▲ 세석의 빨간 우체통 -누군가에게 엽서 한장 써서 보내고 싶었다 -
스틱에 의지해서 걸으려니 걸음도 늦고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천천히 산을 올라 10시반에 세석에 도착했다.
얼마나 천천히 걸었으면 4시간 남짓 되는 코스를 5시간 반이나 걸린 10시 반에서야
도?m한 것이다.
그 곳에서 아침도 아닌, 점심도 아닌 밥을 먹었다.
코펠도 버너도 갖고 갔건만 <햇반>을 뜯지 않은채 끓는 물에 끓여서 갖고 간 걸
오이지 무침과 멸치 볶음으로 먹었다.(추운 겨울철 아니면 햇반을 그렇게 해서 갖고
다니면 2~3일은 상하지 않는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출발했다.
무릎이 아프니까 영 속도가 나지 않았지만 아픈 김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리고
느린 산행을 했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거리가 그리도 길줄은 몰랐다.
▲ 장터목 가는 길
이 곳 장터목까지 오는 동안 아픈 무릎을 동생에게 감추느라 아픈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래도 동생은 내가 지쳐 보였는지 장터목에서 쉬자고 했는데 15일은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으니 한 구간이라도 더 가야했다.
장터목 대피소에 숙박 예약을 했었지만 천왕봉을 지나 치밭목에서 묵기로 했다.
이제 기운을 내서 천왕봉으로...
▲제석봉 오르는 길의 고사목들
▲ 드디어 천왕봉에 오르다.
여기까지 오르는 동안 아픔을 참으라 혼신의 힘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