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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스특허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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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속 섬 사랑 스크랩 파도가 깎아 만든 섬-작약도
킴스특허 추천 0 조회 10 08.09.23 01: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작약도는 연안부두에서 5Km, 월미도에서 3Km 거리에 있는 섬이다. 뱃길 20분이면 족하다. 바삐 살아가면서 먼 섬으로 여행가는 일에 부담 갖는 도시민들이라면 이 섬으로 위안 받을 수 있을 터. 가방 하나 들쳐 매고 간식 정도만 마련해 훌쩍 떠났다 당일 되돌아 올 수 있는 안성맞춤형 섬이다.
 
작약도는 인천시 만석동 북서쪽에 위치한 앙증맞게 생긴 무인도이다. 2만평 규모에 섬 둘레가 고작 1.5km. 그러나 작은 섬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대숲이 꽉 들어차 있다. 이 숲에서 여름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는 가히 장관이다. “맴맴 맴맴 매애~앰” 하고 그치는 순간에 다시 파도소리가 철썩철썩 받아친다. 파도소리 스러지는가 싶으면 다시 매미 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따금 뱃고동 소리가 울린다.
 
숲 속의 오솔길과 해안산책로 따라 

 
 
숲에서 해안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따라가다 보면 산책로가 이어진다. 승용차는 가져갈 수가 없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리어카. 리어카처럼 천천히 사는 문화를 배워볼 수 있는 섬. 적당히 싣고 허리춤에 바짝 당겨 끌고 가는 리어카 문화는 자연과 동행하며 분수를 지키고 만족할 줄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해준다.    
 
작약도라는 섬의 유래는 작약이 많이 자생했다 해서 불렀다는 설과 일제 때 일본 화가가 이 섬을 사들이면서 작약 봉우리를 닮았다 해서 불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 발행한 도서총람에는 본디 이름이 ‘물치섬’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이라 뜻이다.

 
 
실제 지도를 펴놓고 보면 작약도는 영종도와 인천시 좁은 사이에 끼여 있다. 그러니 운명적으로 해풍과 조류를 견디며 서 있었을 작약도. 거센 물결이 밀려올 때마다 온몸으로 짠물을 받아치면서 견뎌 왔을 작약도 옆구리에 팔베개를 하고 바라볼수록 참으로 운명적인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에 씻기고 풍랑에 밀리면서 해안절벽이 깎아져 내렸을 섬. 그렇게 해식애가 발달한 갯바위에서 오징어에 캔 맥주를 마시며 그 뒤안길을 생각할수록 절묘하게도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센 파도와 싸우며 뱃길의 길잡이가 되어 

 
 
그렇게 짜디짠 생을 살아온 작약도는 해방이 되면서 미군의 도움을 받아 한국인 이종문씨가 이곳에 고아원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6.25 전쟁으로 폐쇄되었고 광복 후 적산처리를 통해 개인소유로 되었던 섬은 현재 일부는 국유지, 일부는 개인소유로 돼 있다.
 
여름철에는 송도, 팔미도와 함께 작은 섬으로서 경관 좋은 피서지로 사랑 받고 있다. 갯벌에 절인 듯한 검은 조약돌이 해변을 이루어 그 신비스러움을 더해준다. 썰물 때 이 광경은 독특한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밀물 때 갯바위에서 낚시 할 수 있고 썰물 때 조개를 잡을 수도 있다. 인천시와 가까워 이 지역 청소년들의 해양탐구 현장 학습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해발 57m에 불과한 낮고 작은 섬이지만 가족들과 돗자리 펴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산림이 울창하다. 신미양요 때 미군들은 나무가 많다고 해서 ‘목도’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섬 정상에 딱 버티고 선 게 이름하여 작약도 무인등대. 이 등대는 해방 후에 우리 나라에 설치된 첫 등대이다. 인천항과 주변 섬의 길목으로써 어부들의 등불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지금도 영종도 국제공항과 인천 국제항의 길잡이로서 한결같이 희망의 불빛을 밝혀주고 있다.
 
 
암초 많은 바닷길 밝혀주는 무인도의 무인등대
 
철공소에서 산소 용접 때 순간적인 불꽃을 틔기는 그런 원리를 이용한 소위 아세치렌 전등으로 1949년 7월에 첫 불을 밝혔다. 당시 등대 이름은 무치성 등대. 작약도의 원래 이름이 ‘몰치섬’이었으니 여기서 유래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2년 12월에 20미터 높이 콘크리트 등탑에 태양전지를 이용하며 새롭게 불을 밝히고 있다. 

 
 
이 등대가 밝힌 불빛은 지리적으로 20마일까지 가 닿는다. 암초가 많은 이 일대 항해 선박들에게 작약도 등대는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 거기에 조류마저 심해 어부들은 물론 여객선과 화물선의 눈으로 365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무인도에서 제 혼자 힘으로 불 밝혀 수많은 사람의 안전과 수출 역군으로서도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한다.
 
이 등대 아래서 바다를 바라보면 숲 사이로 빼꼼하게 드러난 푸른 물결 위에 오고 가는 배들과 갈매기 떼들을 구경할 수 있다. 쉼 없이 푸른 하늘에 연기를 뱉어내는 인천공단의 색색의 굴뚝 모양도 나름대로의 색채를 드러내준다. 여공들의 눈빛과 손길로 분주히 움직이며 약동하는 산업현장의 일꾼들 모습까지 그려보게 하는 사색의 공간인 셈이다. 영종도로 드나드는 여객선, 그리고 인천공항을 오고 가는 비행기까지 이 섬은 한국의 역동적인 물살을 바다와 하늘에서 처 올리고 보내는 길목에 서 있다. 

 
 
파도와 싸우며 버터 온 ‘몰치섬’의 원래 이름 되찾아야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치고는 맑은 숲의 공기와 갯바람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꼬마섬 작약도. 무인도이지만 주말이면 해안가 횟집들이 문을 연다. 해안 산책은 30분 정도면 다 돌아 볼 수 있는데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인기다.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이 운행되고 있고  월미도에서도 유람선이 운항중이다.
 
작약도는 2006년에 역사전시관과 심신단련장이 들어선 테마섬으로 거듭난다. 월미도와 자유공원을 포함한 인천의 국제적 문화공간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는데 그 때는 우리 조상들이 불렀던 몰치섬으로 그 이름을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 미니상식| ‘해식애’에 대하여

파도가 섬 기슭에 부딪쳐 침식하면서 생긴 급경사 절벽을 말한다. 쉴새없이 물보라치면서 섬은 계속 깎이고 후퇴를 거듭한다.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듯 부서지는 파도가 거대한 섬을 서서히 밀어낸다. 이렇게 톱니 모양의 심한 굴곡의 해안을 리아스식해안이라고 부른다.
 
폭풍우가 칠 때 그 강도는 거세어진다. 일반적으로 암석해안에서 잘 나타난다. 이렇게 침식되어 섬 쪽이 조금씩 들어간 모습을 ‘파식대’라고 부른다. 섬 기슭 암석이 강하고 무른 정도에 따라 바다에 돌출하거나 바다로 나가떨어지는데 이것이 바위이고 바위섬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바위섬이 추암이나 홍도 등에서 볼 수 있는 촛대바위이다. 전문용어로 시스택(sea stack)이라고 부른다. 해식애에 파도가 계속 부딪치면 해식동굴이 된다. 동굴 아래 작은 돌들이 쌓여 있는데 이는 거친 파도와 폭풍우에 침식된 바윗돌 조각들이다.
 
해식애가 잘 발달한 곳은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그 절벽 위에는 등대가 있다. 등대가 있는 곳은 그래서 경치가 아름답다. 울릉도, 흑산도, 홍도, 고성 해금강, 양양 낙산사, 태종대 영도등대 주변이 대표적인 곳이다.
 
● 작약도 가는 길 

연안부두=>작약도(20분 소요)/월미도=> 작약도(유람선 경유)
인천시 만석동사무소(032-760-9061)

 

 

 

 

<출처;blog.empas.com/ghkdw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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