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동산성- 지정명 기념물 제7호
- 지정일자 1989.3.18
- 위치 서구 월평동 산12-3외 11필지
대전에서 유성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만년교 남쪽 표고 137.8m의 산 위에 자리잡고 있다. 산성 내의 지형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형태이다. 산성 서쪽은 갑천의 지류인 성천(省川)이 흐르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바로 대전 - 공주간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이러한 입지로 보아 월평동산성을 쌓은 목적은 당시의 격전지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 다. 동북쪽으로 구성리산성과 질현성, 서쪽으로는 성북리산성, 남으로 사정성과 연결되어 진다.
산봉우리를 둘러싼 성의 둘레는 약 700m정도로 테뫼식(산정식) 산성이다.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성벽은 거의 무너져 원형을 잃고 있으나 그 테두리는 뚜렷이 확인된다. 서북쪽의 계곡을 둘러싸며 동서 성벽에 이어지는 성벽 안쪽에는 건물터로 보이는 폭 15m 정도의 대지가 있고, 가운데는 서북으로 차츰 내려가 문터부분에서 평평한 대지를 이룬다. 성문은 동, 서 북쪽의 문터가 확인되는데 지금도 통행로로 이용되고 있다. 북문터는 문폭이 3m로 이 성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성벽이 약간 어긋나 있어 통행하려면 s자형으로 굽어 들어가야 한다. 북문터에서는 우물 흔적도 보이는데 이 부근이 매우 습한 것으로 보아 성내의 빗물을 처리할 집수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성내에는 너비 7m-12m의 도랑으로 보이는 통로가 전체에 돌려져 있고 동,서벽의 내부에는 평지가 많아 당시 건물터로 추측된다. 이곳에서 그릇받침조각을 비롯한 백제시대의 토기조각이 수습되었다. 산성의 동남모서리에는 인공으로 만든 언덕이 있는데, 이 곳이 산성내의 최고 높은 곳이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대동지지(大東地志)]를 보면 유성현은 백제시대에는 ''노사지현(奴斯只縣)''으로 불리웠으며, 옛 유성은 유성현으로부터 동쪽으로 4리의 거리에 있었다. 아울러 이로부터 다시 동쪽으로 5리의 거리에 유성산성이 위치한다고 하였다. 또한,백제부흥군이 ''내사지성(內斯只城)''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이 내사지성이 현성(縣城)인지 아니면 관내의 어떤 산성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사지현의 현 지명인 유성관내에 서 찾을 수 있는 구성동산성과 유성산성을 비교해 볼 때 유성산성이 내사지성에 보다 가깝다.
한편 대전광역시에서 이 산성의 동남쪽 외곽 능선지역에 정수장건설을 계획함에 따라 1990년 9월에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이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한 후 국립공주박물관과 합동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곳에서 백제시대 집자리 및 대형 목곽과 목책, 성격이 정확하지 않은 인위적인 구덩이 등이 발굴 조사되었다.
대전광역시 서구 문화관광축제-역사탐방 참조
이하, 대전문화유산울림 사진자료
▼ 월평동산성 문지(문터)
▼ 2001년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월평동산성 발굴조사할 당시 사진
▼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