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물날 저녁 7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하늘을 모시고 사는 삶, 동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김용휘 선생님을 모셔 배움하는 시간 가졌어요. 추석 연휴를 코앞에 두고도 많은 분들이 자리를 찾아주셨어요.
얼마나 긴 세월을 사슬에 묶여
목놓아 통곡하는 어둠으로 갈거나
만석보 터지는 물에 새 길 열릴 때
총성과 말발굽에 아우성치는 산하여
우금치 산마루에 통곡소리 묻히고
무등의 기슭에선 노여움이 춤춘다
오욕으로 얼룩진 압제의 아침에도
동포의 꿈이 숨쉬는 목메임의 산하여
녹두벌의 진군의 외침 되살아 오고
오월의 대지위에 함성이 일어서서
떨리는 외침으로 울려퍼질 때
아-아아 해방으로 부활하는 산하여
아-아아 해방으로
부활하는 산하여
강의에 들어가며 2019년도에 열린 제125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 중 안치환 님의 ‘부활하는 산하’ 공연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 기념식이 정부 주도로서는 처음으로 개최되었다는 것, 그리고 2021년에 출간된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동경대전 해설서가 각계각층의 주목과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을 통해 현재 우리 시대의 대안적이고도 실천적 학문으로 동학이 대두되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우리의 종교도, 우리의 학문도, 우리의 정치도, 우리의 과학도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이 새롭고도 진실된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은 바로 동학, 즉 조선의 학을 바르게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동학은 유구한 조선문명의 총화이며 인류의 미래 이상이기 때문이다.
- 김용옥, <동경대전 1- 나는 코리안이다>, 통나무, 2021년. 11~12쪽 -
그러나 단순히 자생적인 민족종교, 혹은 진보적 개혁 운동, 또는 생명사상의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동학을 좁게 혹은 치우치게 이해할 수밖에 없기에 김용휘 선생님께서는 동학을 창도한 수운(水雲) 최제우의 생애와 사상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말씀하셨어요.
#수운의 생애, 문제의식
수운 최제우(1824~1864)는 경주에서 이름난 학자였던 근암공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서자는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과부였기에 오히려 서자보다 못한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사회의 ‘경계인’으로 살았지요. 그러다 16세에 스승과도 같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9세에 집에 화재가 나서 모든 세간살이는 물론 유학의 서적들도 불타게 되는데요, 오히려 이것이 그가 유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됩니다. 이후 최제우는 10년간 주유천하(周遊天下)하며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백성들의 고난을 온몸으로 목도할 뿐만 아니라, 숨은 선비, 스님, 도사, 무예인 등 온갖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 사상과 수련법, 비결들을 접할 수 있었어요. 수운은 이 길바닥 공부를 통해 당시 조선의 주류학문이었던 유학이 봉건제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만 이용될 뿐 백성을 위한 학문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데서 깊은 문제의식을 갖게 되지요. 불교 역시 오랜 탄압으로 본래적 활력을 잃고 민간에서 기복적 신앙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서학(천주교)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습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에 의해 중국이 무너지는 충격 속에서 수운은 “서양 사람들은 천주를 뜻이라 하여, 부귀는 취하지 않는다 하면서도 남의 나라를 빼앗아 교당을 세우고 도를 행한다고 하니, 어찌 그럴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던지죠.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운은 이 모든 문제의식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은 ‘각자위심(各自爲心)’, 즉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이라 말합니다. 인간이 하늘과 분리된 삶, 즉 천명(天命)을 돌아보지 않고 천리(天理)에 순종하지 않는 삶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수운은 고대 동아시아 성현들이 깨달아 폈으나 그 후로 오랫동안 잃어버린 천도를 다시 조선 땅에서 회복함으로써 학문을 바로 세우고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제하려고 동학을 창도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동’은 ‘서’에 대비되는 ‘동’이 아니라, ‘동국(東國)’의 ‘동’, 즉 '조선'이라는 뜻입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스스로 동국, 또는 해동국(海東國)이라 부르며 우리 역사를 '동사(東史)', 우리 의학은 '동의(東醫)'라 했지요. 그러므로 동학은 ‘동국의 학’으로서 19세기 당시 조선 백성들의 고난에 응답한 우리 학문, 우리 종교라는 구체성과 ‘천도(天道)’라는 보편성을 동시에 지니게 됩니다. 수운은 이것을 ‘도는 비록 천도이나 학인 즉 동학이라(道雖天道, 學則東學)’고 하였습니다.
#수운의 시천주 (侍天主)
수운이 경신년(1860년) 4월 종교체험을 통하여 얻은 깨달음을 정리하여 하나의 철학적 명제로 내놓은 것은 바로 ‘시천주(侍天主)’입니다. 모든 사람(생명) 안에 한울님이 내재해 있다(모셔져 있다)는 뜻이지요. 이는 인간에 대한 재발견,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옴으로써 모든 존재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주체를 자각하고 되살리게 하지요. 실은 어느 종교에서도 시천주의 가르침은 있었습니다. 모든 종교의 보편적 핵심이지요. 그러나 역사의 과정 속에서 진리는 포장됩니다. 교회와 성직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수직적이고 위계적으로 진리를 전하게 되면서 시천주의 가르침은 가장자리로 물러나게 되지요. 그러나 수운은 이것을 가장 전면에 내세웁니다.
수운은 시(時)를 내유신령(內有神靈, 내 안에 거룩한 영이 있다), 외유기화(外有氣化, 바깥으로는 기운의 화함이 있다), 각지불이(各知不移, 하늘의 영기와 분리되어 살 수 없음을 각자가 안다)로 풀이합니다. 즉, 한울을 모신다는 것은 나의 안팎에서 영과 기운으로 작용하는 하늘을 자각함으로써 하늘과 분리되지 않는, 즉 합치된 삶을 사는 것임과 동시에 각자의 독특성을 깨달아 자기만의 향기를 가진 꽃을 피워내는 실천적 삶을 뜻합니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은 시천주를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기다), 삼경(敬天, 敬人, 敬物), 그리고 이천식천(以天食天, 하늘로써 하늘을 먹이다)으로 계승·발전시키지요.
#수운의 한울
수운은 한울을 우주 기운(至氣)이자 내유신령과 외유기화로 작용하는 우주적 영기(우주 생명, 우주 정신)로 보았습니다. 하늘의 기운과 연결되고 안으로 하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수운은 ‘수심정기(守心正氣)’라는 심법(心法)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하늘마음이고, 기운은 하늘기운을 가리키지요. 그래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내 안에 모셔져 있는 하늘의 마음을 발견하여 합치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고, 기운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끊어져 있는 하늘의 기운과 연결되어 그 기운 안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기운 안에서 살게 되면 애씀없이 저절로 하늘의 질서에 부합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을 ‘무위이화(無爲而化)’라 합니다. 계절에 따라 철새가 대륙을 이동할 때에 하늘의 기류를 타려면 어디에 힘을 주고(중심을 두고)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를 알지요. 하늘의 기운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이렇듯 무위이화는 천도에 부합하는 삶으로써 사람이 만물과 더불어 천도, 천리에 순응하는 우주만유의 참된 모습입니다.
주문 열세자는 즉 천지만물 화생의 근본을 새로 밝힌 것이요, 수심정기 네 글자는 천지와 끊어졌던 기운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며, 무위이화는 사람이 만물과 더불어 천도천리에 순응하는 우주만유의 참된 모습이니라. 그러므로 도는 따로 높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몸에 있으며 너의 세계에 있느니라.
- 해월 최시형 -
#다시개벽
동학이 우리 땅에서 우리 백성들의 문제를 고민한 우리 철학이자 우리 종교라는 점에서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 의의가 있습니다. 모든 가치가 자본에 종속되고 계량되는 사회 속에서는 어떤 생명도 생명답게 살 수 없지요. 과학기술을 맹신함으로써 생명의 전일성과 통전성은 무시한 채 관리, 통제의 대상으로써 획일화하는 것은 천도, 천명과 분리되는 삶입니다. 한 아이의 본성, 잠재력, 생명력이 온전히 꽃피게끔 해줌으로써 기가 뻗치게 해주는 것, 곧 기쁨을 느끼게 해야할 교육이 경쟁과 비교, 열등과 불안으로 가득하다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神性)은 두려움, 잘못된 신념과 관습에 의해 가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있는 어둠을 걷어내어 맑고 밝고 따듯하고 평정하며 집중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할 때에 사랑과 빛과 자유와 같은 신성이 발현됩니다. 심즉천(心則天), 마음이 곧 하늘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동학의 정신에 부합하는 문명적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수운은 이를 ‘개벽(開闢)’이라 말합니다. 개벽은 일차적으로 자기 내면의 변혁으로부터 일어나는 영적 혁명이며 나아가 삶의 혁명입니다. 그 원리는 ‘공경’으로서 이는 자기 자신의 존엄(신성)을 회복하고, 모든 존재를 한울님으로 공경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심과 살림, 소유가 아닌 나눔, 고통에 대한 공감이 바로 영성이며 나누는 실천이 참된 종교이지요. 천도의 생명원리에 맞는 도의적이고 생태적인 문명으로 나아가는 개벽이 우리에게 절실합니다.
아아, 신천지가 안전(眼前)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來)하도다. 과거 전세기에 연마장양(鍊磨長養)된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始)하도다.
- 기미독립선언서 (1919.3.1) 中 -
첫댓글 하늘의 기운을 타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고싶다는 꿈을 품게된 강의였습니다. 이시대에 동학을 알게되어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