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이 다소 도발적이다. 과학이 반역이라니.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학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과학은 그런 과정 속에서 발전을 거듭했을 것이다. 저자의 말은 ‘과학자가 반역자여야 하는 이유’의 첫 문장에서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시의 관점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과학에도 유일한 관점 같은 것은 없다. 과학은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관점들로 이뤄진 모자이크다. 그러나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관점들에도 한 가지 공통요소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역의 우세한 문화가 강요하는 제약들에 맞서는 것, 즉 ‘반역’이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관련 분야에 대한 논평과 서평 등을 모은 것이다. 1부는 과학의 현안들을 중심으로 과학자가 정치와 사회에 도발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2부는 전쟁과 평화를 중심으로 과학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그 동안의 과학 발전 과정을 여러 사례로 집중 조명하고 있다. 3부는 과학의 역사와 과학자들을 다루고 있는데 나의 과학적 지식이나 수학적 지식이 매우 일천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4부는 저자의 과학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정리해 두었다. 서평은 너무 날카로워 예리한 칼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마치 선계에 있는 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논평은 또 어떤가. 어떤 과학적 논쟁거리와 관련해서는 저자는 마치 링 위의 심판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나는 책을 한참 읽으면 졸음이 몰려들지만 저자는 나와 반대로 지식이 셈 솟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과학자의 이야기의 경우 내게 익숙한 과학자의 이름도 저저의 손길을 거치면 전혀 모르는 생소한 사람처럼 변한다. 그러고 보면 나같은 그저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 책을 마주하기는 버거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는 논평이나 서평 한편을 읽고도 그 내용을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어 답답했다. 더구나 이 책의 논평이나 서평은 대체로 짤막한 글이어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충분히 소화하기 힘들다. 과학의 발전과 관련한 부분이 그나마 조금은 이해가 가는 듯해 요약했다.
과학은 갈릴레이 갈릴레오나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의 반역자들 덕분에 발전해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전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는데 환원주의가 그렇다. 아인슈타인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이후 이 늪에 빠졌었다.
환원주의는 세상을 단순화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세상을 단 하나의 잣대로 측정할 수 있을 것처럼 간편한 계산식의 발견을 꿈꾸는 것 같은 것 말이다. 물리학이든 수학이든 연구 대상을 하나의 아주 간명한 공식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학을 환원주의 같은 하나의 철학적 관점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추면 안 된다. 그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우를 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부분에서 전체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지식의 폭이 양방향으로 넓어질 때 발전해 가는 법이다.
한편, 과학은 종종 윤리적 문제와 불평등 문제를 불러온다. 응용과학은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에 응하지만 그들은 당장에 돈 되는 것을 원한다. 이를 통해 빈부 차이는 심화된다. 이런 불평등의 문제는 제품 가격의 하락으로 어느 정도 상쇄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이지는 못하다.
오히려 기술의 발달은 빈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윤리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환경운동단체들의 혁혁한 성과를 주목한다. 그러나 이들 운동은 지금까지는 기술이 이루지 못한 선보다는 기술이 야기한 악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앞으로의 운동은 기술의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술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이 윤리적 승리의 끝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적 승리는 사회정의를 추구 하는데 기술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윤리가 나약해질 때 신기술은 인간을 타락시킬 수 있을 것임으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 윤리적 진보를 동반하지 않는 기술적 진보는 선보다 악을 더 조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술적 진보는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현대 과학에는 이단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런 사례를 들고 있는데 그가 바로 토머스 골드였다. 그는 다양한 영역에서 지금까지 과학계에서 정설로 여겨지는 많은 것들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더러 그의 이론이 틀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4, 30년 정도가 지나 그의 이론이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의 이론들은 언제나 독창적이고, 중요하며, 대부분 논쟁 대상이 되었지만 대개는 옳았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는 말은 새로운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딛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서울대학교의 한 연구원이 제1저자로 작성한 논문이 관련 학회에서 우수 논문으로 선정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표절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저자가 이 뉴스를 봤다면 뭐라 할까. 남이 생각지도 못한 뻔뻔한 연구 부정을 저지른 것도 틀림없는 이단아라고 할까?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는 반면 그런 노력에 편승하려는 파렴치들도 꼭 있게 마련이다. 그게 하필이면 우리나라 인재들이라니. 씁쓸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