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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6일.
오늘 대학동창 산행은 우면산이다.
사당역 3번출구에서 10시에 모이기로 했다.
꾸물거리다보니 열시10분이 되어서야 출구에 도착했다.
입춘추위가 요 며칠 매섭게 몰아치고 있는데 오늘 낮부터 풀린다고 한다.
지난달 청계산 모임 때도 일주일간 혹독하게 춥다가 산행 날 날씨가 풀렸는데
이번 달도 퍽 운이 좋은 셈이다.
입구에 용화와 종진이가 서있었다.
“10분이나 지났는데 두명 밖에 없어? 오늘은 좀 이상한 산행이 되겠구나”
라고생각하니 순간적으로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사람은 안왔어?”
다소 맥빠진 소리로 물었더니 편이점 안을 가리키며 들어가라고 한다.
편의점안에 모두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 참석인원은 석희태 이용화 김신기. 최종순. 최예만. 김종진.오삼환.
정진우 그리고 나 이렇게 아홉명이다. 홍인기가 안 보인다.
우면산(해발 293m)은 서초구 서초동. 방배동. 양재동. 우면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산모양이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담하여 산행하기에 즐겁고 평화스런 산이다.
산 속의 여러 계곡에서는 맑은 옹달샘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으며,
울창한 삼림으로 다양한 동·식물군이 자연 서식하고 있다.
계곡마다 약수가 흘러나오고 등산로가 사방으로 연결되어 산행에 편리하다.
사당. 방배. 서초. 남부터미널. 국립국악원. 예술의 전당. 서울시 공무원교육원,
우면동일대. 남태령등 어느 곳에서나 쉽게 오를 수 있으며 원하는 곳으로 내려가기도 좋다.
10시 20분쯤되어 출발했다
사당역에서 도심을 따라 걷다가 산입구에서 콘크리트로 포장된 비탈길을
한참 올라갔는데 그 길이 비교적 지루하고 재미없었지만
다른 코스는 전반적으로 순탄하여 산행이 즐거웠다.
원래 관악산 줄기였던 우면산은 남태령 고갯길 확장으로 관악산과 완전히 분리되었다.
남태령은 본래 여우고개 라고 했는데 조선 시대 정조가 “이 고개가 무엇이냐” 물으니
신하들이 여우고개라 답하기 곤란해 “남태령”이라고 대답한데에서 유래한다.
또 당시 과천현감 중에는 과거를 보기위해 시골서 올라온 선비들에게
남태령을 무사히 넘을 수 있게 보호해 주겠다며 돈을 뜯어내는 사람도 있었다한다.
그래서 "현감이면 다 과천현감이냐?",
"서울이 무섭다고 과천서부터 긴다" 라는 속담이 생겼다 한다.
옛날에도 서울 인심은 야박했나보다.
서울 인심이 야박하여 낭떠러지와 같다는 말만 듣고 미리부터 겁을 먹는다는 뜻이다.
한시간 반 정도 올라오니 정상인 소망탑이 있는 곳이다.
아무리 쉬운 산이라해도 한두곳 깔딱고개는 있는법,
여기서도 깔딱고개 오르는 맛은 그런데로 제맛이었다.
“어떤눔(?)이 우면산을 시시하다 했어?” 숨이 가빠지는 대목에서 누군가 하는 푸념소리....
"나여~" 옆에있던 진우가 대답하며 피식 웃는다.
리더가 길을 잘 인도한다.
오늘 리더는 오삼환인 모양인데 산속 지리를 쫙 꾀고 있는 것 같다.
쉬었다 가자해도 들은척도 않는다. 후미를 두고 저희들만 계속간다.
간식먹는 장소까지 안쉬고 갈 속셈 이었나 보다.
리더의 지시에 따라 아늑하고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싸온 먹거리들을 펼쳤다.
모두들 배낭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것들을 펼쳐놓으니 소풍온 분위기다.
“정태! 전번에 가져왔던 음료수 오늘은 없나?” 희태가 지난달 포도주 맛을 기억하고있네...
3개월 발효시킨 것으로 먹기는 무척 순한데 뒷끝이 쪼금 매워 참으로 별미다.
친구들이 맛있게 마셔주니 한결 고맙다.
홍인기가 빠져서 그런지 오늘은 용화가 말이 별로 없다.
용화에게 너무 시달림(?)당해서 안왔는가? 좀 살살 다루지...
홍인기가 빠지니 분위기가 썰렁하잖아!
오늘 오삼환이 고생많이 했다.
산이 여유있어 대화가 많고 그래서 늑장부리다 보면 갈림길에서 길이 어긋나는 일행생기고,
그때마다 삼환이가 후미를 찾기위해 가던 길 다시 돌아 애태우는데 길은 어긋나버리고
오히려 본인이 길을 잃는 격이 되어 생고생을 많이 했다.
여러 번 산행을 같이해 보니 보통 부지런하지가 않다.
살아온 삶도 그렇게 달려왔으리라.
“윤수그누마(우리끼리 부르는 애칭)도 등산에 참여하면 얼마나 좋아!”
희태가 아쉬운듯 운을 떼었다.
바쁜 일상에 묻혀 잊고 지내던 친구들 얼굴이 산에 올라오면 하나 하나 떠오르나 보다,
“윤수가 얼마전에 안동국시 먹자고 나오라 해서 만났는데 얼굴이 완전히 40대같이 보이더라.
건강이 나빴을 땐 마주 보기가 좀 민망스러울 정도로 얼굴이 안좋았는데
지금, 건강관리를 너무 잘 하고 있는 것 같어,
변호사 일을 하면서 수도자다운 삶을 산다는 것이 보통 의지로 되겠느냐?
凡人들은 흉내조차 낼수없지...”
“ 어이! 그누마가 특별한 운동도 한데?”
“안 물어 봤는데 열심히 할꺼야. 앞으로 등산도 권해보자.”
"언제 대전에 연락해서 그쪽으로도 한번 내려가자 "
김흥수, 이경희 교수님들 생각이 나서인 것 같다.
내려오는 길 여기저기에 서초구에서 시를 담아 깔끔하게 판을 세워놓았다.
석교수가 마음에 안들어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들을 섞어서 "시" 랍시고 붙여놓은 서초구청의 안목을 질타했다.
그점에 대해서는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요즈음 등단했다는 시인들이 자작시라며 쏟아내는 시들이 가관이다.
시는 가장 순수한 정신세계에서 찾을 수 있는 영혼의 소리다.
그 영혼의 소리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언어이다.
가장 순수한 소리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감이가고 감동을 주어
누구든 금방 알아들을 수있게되는 언어이다.
그러한 영혼의 노래는 시인이 피를 말리는 과정을 통해 찾아내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단순히 주워듣고 베낀 말을 섞어놓은 것은 난삽한 낙서에 불과한 것이다.
<살피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얻는 득음의 세계
가을해 짧아가는 노경에 들면
성글 성글 성글어가는 가시틈새에
바람도 햇살도 뒹굴다가는
푸른날
지평을 여는 노을속 아람이
풀벌레 연주하는 풀섶에 앉아
긴 동안거에 든다>
뭔소리여? 죽림선생 해석좀...
이런식의 글들이 그 좋은 경관속 군데 군데 붙어있다. 교수님이 성질 날 만도 하다.
예술의전당 쪽으로 내려와서 시내에 이르렀을 때는 오후두시가 되었다.
찾아간 음식점은 각종국수 해물전을 하는 음식점인데 2층까지 방마다 손님들로 가득하다
“어떤 사람은 대구 사람인데도 안동국시보다 이런국수를 더좋아하는 사람이 있더라” 하자
희태가 반문했다.
"안동국시는 다른 것과 뭐가 틀리느냐? "하기에
다른 것은 기계로 뽑은 국수고 “안동국시”라는 것은 반죽해서 손으로 썰어 만든
국수를 말한다고 하자 아니란다.
“옛날에 우리 모두 손으로 썰어 국수 해먹었잖아 안동만 그런 것 아니잖아” 한다
그러니 손으로 만들었다 해서 “안동국시”라고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좌석 여기저기서 육수를 사골국물로 한다느니. 양념장이 틀린다느니 조미료가 어떻다느니
벼라별 궁리들이 많다. 교수한마디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웃기는 서울 촌놈들...
의성도 상주도 평택도 손국수를 해먹었지만
웰빙시대를 맞아 상술에 능한 사람들이 손국수를 안동이름 붙여 브랜드화 한 것이라고 설명하니
믿지 않는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란다.
아는 것도 많고 정확하기 때문에 보통 때는 모든 사안에 대해 석교수가 얘기하면
그것이 답이된다. 그러나 "안동국시"에 대해서는 너무 큰 의미를 찾는 것 같다.
답답한 심경을 추스르고 쉬운 말로 알아듣게 다시 설명했다.
“안동국시는 밀가리로 만들었고 다른 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 다른점이야”.
내친김에 시중 우스개 소리를 마져 보태었다.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는 것이고 밀가루는 봉투에 담는 것이야
또 봉다리는 조우로 만들고 봉투는 종이로 만들어.
그리고 조우봉다리는 점빵에서 팔고 종이봉투는 상점에서 팔지.
즉 점빵에서 조우봉다리에 담아 파는 "밀가리"로 만든 것이 “안동국시”고
상점에서 종이봉투에 담아 파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 일반 국수야!
어때 분명 다르지?“
씩 웃는 다. 소가 날아가는 새 뭣 보고 웃듯이...
내고향은 의성인데 그곳에서는 국시를 참 좋아했다.
중학때 객지에서 유학을 하다가 방학이되어 고향집에 가면 국시를 실컷 먹는다.
우리집 뿐아니라 이웃집에까지 불려다니며 먹었다.
여름날 멍석에 대가족이 둘러앉아 물항아리에 국시를 가득 퍼놓고
몇 그릇씩이고 맛있게 먹곤 했다.
국시를 먹을 때는 늘 잔치 분위기였다.
경북 북부지구에서 즐겨 먹었던 국시가 언제부턴가 안동국시로 브랜드화 되어
서울 여기저기서 사랑받고 있다.
요즈음 음식점 이름은 “안동국시” 이면서 기계로 뽑은 국수를 쓰는 집도 있다.
이야기가 시골 초등학교로 옮겨졌다.
우리 다닐 때 화려했던 초등학교들이 지금은 대부분 폐교에 이를 정도로
학생들이 줄어든 현실을 개탄했다.
예만아! 너는 이원철, 김흥수와 초등학교부터 같이 다녔나? 하고 물으니
“아~니! 무슨 그런 이야기를 나는 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읍내출신이여!”
하고 익살스럽게 손사레를 졌는다. 좌중이 자지러졌다
“그래 어쩐지 품격이 틀린다 그랬어...”
“그것들이 형편없는 촌것들이었구먼...”
없는 친구들 덕분에 좌중이 마음껏 웃었다.
막걸리가 두어잔 씩 돌아갔는데 모두들 얼굴이 벌겋다.
술취해서가 아니라 무르익은 분위기에 얼굴이 익어가는 모양이다
고등학교 동기중 한명이 말기암에 걸려 용문산 호텔에서 기치료 받고 있는데
오늘 친구들 10여명이 문병을 갔다. 그동안 고스톱 쳐서 심기를 어지럽혔기에
오늘은 고스톱으로 갚아주러 간다고 했다. 하룻밤 새우고 올 모양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여기저기서 탈이 나는 친구들이 많아 안타깝고 애석하다.
만나서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가!
친구라는 것을 때로는 싫어하고 때로는 미워도 하고 철저히 무시하기도 했던
그 질풍노도같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렇게 소중하고 향기로운 것이 또한 친구라는 것이다,
오늘은 용화가 밥을 샀다.
딸이 서울대학병원에 들어갔단다.
의사지원 경쟁률이 높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거뜬히 합격했다고 한다.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아들은 사법고시에 패스하고 딸은 의사가 되어 서울대학병원에 들어가고...
<처현부화소 자효쌍친락 가화만사성>
(妻賢夫禍少 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
“아내가 현명하면 남편이 화가 적고 자녀가 효도하면 두분 어버이가 기뻐하시고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라는 뜻이 아니겠어?
옛 성현의 말이 틀린 것이 없다.
만고의 진리를 우습게 아는 세태가 가소롭다.
죽림비현은 이제 산행과 테니스에 더 정진하시어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리시길...
특히 홍인기 잘 챙겨 가면서...
- 내용이 길어서 오늘은 태그없이 글만 올려드립니다. ‘69여러분! 건강들 하기길...-
첫댓글 수고했어용.배부르고 나서 노래방 대신 예술의 전당으로 간 사연은 없구만요.
예술의 전당 여기저기 가는곳 마다 사람들로 붐벼 다니기가 불편할 정도였어. 왜들 급하게 다 가버렸지? 커피맛이 아주 좋던데...
위에 진우와 희태, 커피마시며 찍은 사진이야. 구도는 잘 잡았는데 실물보다 쪼끔 못나왔어. - 작가 생각 -
즐거운산행 이었나보이 사진상으로,근데 왠지화사한 맛이없군 ㅋ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