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임 감사가 경내에 이르렀을 때 입으로 읊다〔新監司到界口占〕
사절을 펄럭이며 북쪽 변방에 내려오니 / 使節翩翩下朔郵
머나먼 만 리 풍운이 말 앞에 따르누나 / 風雲萬里馬前隨
위명은 저 멀리 황룡새를 압도하고 / 威聲遠壓黃龍塞
호령은 새로 백작 깃발로 떨쳐지네 / 號令新張白鵲旗
산은 동서가 있으니 장상을 아울러 겸하고 / 山有東西兼將相
도는 남북이 없으니 민이를 모두 교화시키리 / 道無南北摠民夷
이 늙은이 오늘날에도 분발하기를 생각하여 / 老夫此日猶思奮
왕정을 짓밟고 월지로 술 마시고 싶다오 / 踏破王庭飮月支
[주해]
[주01]학성록(鶴城錄) : 지봉이 함경도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지은 시들을 엮은 시집이다.
지봉은 당시 이조 참의, 병조 참의, 대사성을 역임하면서 오랫동안 시의(時議)를 거스르다가 마침내 외직(外職)을 청하여 안변부사
가 되어 나이 43세인 1605년(선조 38) 봄에 임소에 나아갔다가 이듬해 봄에 병으로 사직하였다.
재임 당시에 홍수가 크게 나서 백성들의 전답과 가옥이 무수히 파괴되고, 북쪽 변방이 새로 오랑캐의 침입을 받아 수응해야 할일이 많
았는데, 지봉이 요령 있게 무마한 덕분에 백성들이 생업에 안정할 수 있었으니, 그 공로로 조정에서 표창하여 표리(表裏: 겉옥과 속옷)
1습(襲: 한 덩이로 세는 단위)을 하사하였다. 《芝峯集 附錄 卷1 行狀》
참고로 《선조실록(宣祖實錄)》을 상고해보면, 1604년(선조37) 12월 26일 기사에 지봉을 안변 부사로 임명하였다는 내용이 보이고,
1605년 7월 22일 기사에 함경 안문어사(咸鏡按問御史) 이정혐(李廷馦)이 올린 계사(啓辭)에서 “안변 부사 이수광은 자상하게 다
스리고 명령을 번거롭게 내리지 않아 경내의 백성들이 모두 소생되었습니다.[安邊府使李睟光, 慈詳爲政, 號令不煩, 一境之民, 皆得
其蘇.]”라고 보고하자 선조가 표리 1습을 하사하라고 명하였다는 기사가 보인다. 《宣祖實錄 37年 12月 26日, 38年 7月 22日》
[주02] 등주(登州) : 안변의 별칭이다. 안변은 본디 고구려의 비열홀군(比列忽郡)으로 일명 천성(淺城)이라고도 하였는데, 이후 비열주
(比列州), 삭정군(朔庭郡)으로 바뀌었다가 고려에 이르러 등주(登州)로 바뀌고, 현종(顯宗) 9년에 등주 안변도호부(登州安邊都
護府)라 바뀌었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49 咸鏡道 安邊都護府》
[주D01] 신임 감사(監司) : 이시발(李時發, 1569~1626)을 가리킨다. 《선조실록(宣祖實錄)》 38년(1605) 5월 29일 기사를 살펴보면,
당시에 전임 함경도 관찰사 서성(徐渻)이 북도 변경 오랑캐에 대한 사안을 잘못 대처한 까닭으로 그에게 죄를 묻고, 그 후임으로
이시발을 천거한 내용이 보인다.
이시발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또는 후영어은(後潁漁隱),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이대건(李大
建)의 아들로, 1589년(선조22)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都體察使)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으로 활
약하였다.
이후 경상도 관찰사, 형조 참판, 함경도 관찰사, 예조 참판, 병조 참판, 안변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23년(인조 즉위년) 인조반정
이 일어나자 한성부 판윤에 등용되었고, 이어 형조 판서에 올랐으며,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체찰부사(體察副使)로 난의 수습
에 공을 세웠다. 저서에 《주변록(籌邊錄)》, 《벽오유고》 등이 있다.
[주D02] 사절(使節) : 옛날 천자나 제후의 사신(使臣)이 신표(信標)를 나타내는 부절(符節)로 가지고 가던 깃발인데, 여기서는 신임 함경
감사 이시발(李時發)의 사절을 뜻한다.
[주D03] 황룡새(黃龍塞) : 옛날의 성 이름으로 흉노(匈奴)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용성(龍城)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북쪽 오랑캐들이 출
몰하는 먼 변방 지역을 뜻한다.
[주D04] 백작 깃발 : 원문의 ‘백작기(白鵲旗)’는 깃발의 일종으로,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 〈송외생정관종군(送外甥鄭灌從軍)〉에 “오랑
캐가 흘린 피로 황하 물빛을 바꾸고, 그 효수한 머리를 백작 깃발에 매달리라.[斬胡血變黃河水, 梟首當懸白鵲旗.]”라고 한 데서
보인다. 《全唐詩 卷176 送外甥鄭灌從軍》
[주D05] 산은 …… 겸하고 : 신임 감사 이시발이 장수와 재상의 자질 및 능력을 겸비했다는 말이다. 옛날 중국의 속설(俗說)에, 효산(崤
山)과 화산(華山)의 동쪽인 산동(山東) 지역에선 이름난 재상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서쪽인 산서(山西) 지역에선 이름난 장수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하였는데, 《한서(漢書)》 권69 〈조충국전(趙充國傳)〉에 “진한(秦漢) 이래로 산동에선 재상이 나오고 산서에
선 장수가 나왔다.[秦漢以來, 山東出相, 山西出將.]”라고 하고, 《후한서(後漢書)》 권58 〈우후전(虞詡傳)〉에 “관동에서는 재상
이 나오고, 관서에서는 장수가 나왔다.[關東出相, 關西出將.]”라고 하였다.
[주D06] 도(道)는 …… 교화시키리 : 유학(儒學)의 도는 본디 남북(南北)이 따로 없으므로 함경 감사 이시발이 장차 교화를 베풀어 우리
백성뿐만 아니라 오랑캐까지 아울러 감화시킬 것이라는 뜻이다.
원문의 ‘도무남북(道無南北)’은 유학의 도는 본디 남북이 따로 없어 중화의 백성뿐만 아니라 오랑캐 백성들도 감복할 수 있다는
말로, 송나라 소식(蘇軾)이 말년에 중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남도(海南島)인 담주(儋州)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시 〈거처를 옮긴
저녁에 이웃집 아이가 글 읽는 소리를 듣고 흔연히 기뻐하며 짓다[遷居之夕 聞鄰舍兒誦書 欣然而作]〉에 “장구령(張九齡)은 소
석에서 일어났고, 강공보(姜公輔)는 일남이 고향이었다오.
우리도는 남북이 없으니, 오늘날 그런 인물이 안 나올 줄 어찌 알리오.[九齡起韶石, 姜子家日南. 吾道無南北, 安知不生今]
”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詩集 卷41 遷居之夕聞鄰舍兒誦書欣然而作》 ‘민이(民夷)’는 여기에서는 함경도 백성과 변
경의 여진족을 가리키는 말로, 《후한서(後漢書)》 권73 〈유우전(劉虞傳)〉에 “유우가 처음 효렴으로 천거되었다가 얼마 되지 않아
유주 자사로 천직되자, 민이가 그 덕화에 감복되어 선비, 오환, 부여, 예맥 등 무리들이 모두 때에 따라 조공을 바치고 감히 변방에서
소요를 일으키는 자들이 없게 되었다.[虞初舉孝廉, 稍遷幽州刺史, 民夷感其德化, 自鮮卑ㆍ烏桓ㆍ夫餘ㆍ穢貊之輩, 皆隨時朝
貢, 無敢擾邊者.]”라고 한 데서 보인다.
[주D07] 이 …… 싶다오 : 지봉이 노쇠한 오늘날에도 한번 떨쳐 일어나 북쪽 변방의 여진족을 죄다 소탕해버리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원문
의 ‘왕정(王庭)’은 중국의 서북 지방에 활동한 흉노 선우(單于)의 왕정 즉 용정(龍庭)을 가리킨다. 원문의 ‘음월지(飮月支)’는 월
지왕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술을 마신다는 말이다. 월지(月支)는 월지(月氏)라고도 쓰는데 옛날 서역(西域)에 있었던 부족 또
는 나라 이름으로, 흉노(匈奴)가 일찍이 월지왕(月支王)의 군대를 격파하고 월지왕의 두개골로 술그릇[飮器]을 만들었던 고사에
서 온 말이다. 《史記 卷123 大宛列傳》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 김광태 (역)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