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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제의 시집
그녀들의 루즈는 소음기가 장착된 피스톨이다
김윤배 시인
[작품선]
수거되는 기억들 외 4편
‘다사요’는 기억을 수거해가는 일인 회사다 오래된 책들의 낡은 지식과 시집 원고들의 진부해진 의미, 신지 않는 구두들의 뒤엉킨 길과 입지 않는 옷가지들의 포즈, 쓰지 않는 모자들의 바람기가 수거 대상이다 버려야 할 기억들은 지천이다
건장한 사내가 몇 시간을 실어 내간 기억의 흔적들은 가볍고 저렴했다
기억에 대한 자책은 칼날이다 기억은 조악한 문양처럼 어긋나거나 흐려져 있다 기억은 칼날이 긋고 지나간 칼집이다 어느 칼집을 열어도 기억은 흐린 눈동자를 굴리고 있어 아리고 추했다 칼집은 나를 향한 질책이다 기억은 시간을 건너며 상처를 헤집는다
몽환의 파버카스텔
그의 낡은 구두를 네가 기억한다면 그는 어떤 어둠으로 너를 데리고 갔을까
네가 지나간 자리마다 실핏줄처럼 살아나는 고뇌의 흔적이 대지거나 바람이거나 늪지인 것을 알았다면 그는 어느 가슴에 낡은 구두를 걸어두고 싶었을까 그의 퀭한 눈빛과 솟아오른 광대뼈와 날카로운 턱선을 더듬어 나가다 잠시 멈추고 생각 깊던 네가, 흔들리는 불빛 너머 먼 산맥을 짚다 툭 부러지는 죽음을 알았다면, 너는 그의 영혼을 울어준 파버카스텔이겠다
몽환의 파버카스텔, 미지의 심연이여
내 파버카스텔은 나의 흰 뼈다 흰 뼈가 내 낡아가는 시간을 읽고 구릉의 침묵을 읽고 여름 햇살 챙챙한 묘역을 읽었다 묘역에 남아있는 노래는 슬프지 않았다 흰 뼈는 호수의 물결이 바람을 닮아가는 걸 보았다 흰 뼈는 산맥을 태운 오래된 재였거나 무수한 등줄기를 몸속에 세워준 젊은 날의 고뇌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인
드가의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인’은 목이 없다
여인은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목을 소망했을 것이고 그날도 비가 내렸을지 모른다 치맛자락의 섬세한 주름은 습한 마음의 우수다 생애를 생략할 수 없었던 드가는 여인의 목을 생략했을 것이고 여인은 목 없는 전경을 악마의 필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상의 입술과 눈과 귀와 표정을 생략했으므로 여인은 섬세한 치맛주름 속에 한탄을 숨겨 수직의 벽면을 살았을 것이고 떠나고 싶었을 여인은 뜨거운 숨소리를 새겨 수십 년이었을 것이다
목 없는 여인의 숨소리는 힘겹게 건너는 육신의 강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인의 살아 있는 치맛주름이 마음의 협곡이었다
여왕 뒤에서는, 보이지 않는 바벨탑이 여인의 목이었으니
붉은, 검은 그리고 붉은
붉었던 시간이 있다 그때마다 종이학을 접었다 종이학은 밤마다 날아올라 하늘을 덮었다 붉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붉은 그림자였다 그림자를 벗고 밖으로 나갔다 그림자는 검게 변했다 내가 떠나자 더 검어졌다
몽유거나 발광이었다 거대한 묘비들은 침묵의 도시를 만들고 유령들은 밤을 기다린다 밤은 낮은 북소리처럼 죽은 자들의 비어 있는 뼈를 울며 온다 어둠보다 낮은 노래가 도시의 문을 두드린다 지하철이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질주한다 도시는 새벽과 밤이, 남자와 여자가, 시작과 끝이 뫼비우스의 띠로 이어져 있다 나는 뫼비우스의 띠 위에 있다
흙이고 물이다, 붉거나 검거나
고뇌의 마지막은 붉은 혼돈이다 붉은 지평선의 성근 페인팅에 마음을 던진다 붉은 하늘과 붉은 대지를 구분 짓는 흰 여백은 영혼의 계단이다 생성이며 소멸이고 생명이며 죽음인 마지막 붉은 화폭, 누구도 쉬이 떠나지 못한다 나는 가슴을 뜯다 돌아서고 다시 가슴을 뜯는다 붉은 하늘에, 붉은 대지에 검은 피가 번진다
모노크롬의 언어들
캔버스를 단색의 네모들로 채운다
사방으로 닫히고 열리는 네모는 세상의 환유다
네모 안에 네모를, 네모 밖에 네모를 세워
무한 지평을 열어간다
세상은 온갖 색들로 연옥이었고 출구는 없었다
색을 찾아 헤매는 동안 화폭 가득하던 말들은 죽어갔다
캔버스는 공허해지고 세상은 어둡고 차가웠다
산다는 게 얼마나 단순한 건지 깨닫지 못했던 날들은 시간 속으로 스며들었다
캔버스를 고령토로 채우게 된 것은 우연이다
우연은 고통스런 사유의 인대였다
고령토를 말려 균열을 만들고 균열 위에 물감을 바르고 바른 다음 떼어내고 하는 지루한 반복은 생의 위험한 실현이다
그렇게 실현된 생은, 모노크롬의 언어를 얻고 버려진다
[서평]
흰 뼈에 육화된 녹슬지 않는 시정신
이원오(시인)
김윤배 시인은 이번에 ‘그녀들의 루즈는 소음기가 장착된 피스톨이다’ 시집을 냄으로써 모두 13권의 시집을 펴냈다. 이중에는 장시집이 3권이나 포함되어 있다. 이뿐인가. 산문집, 평론집이 각각 1권씩 있으며, 동화집도 두권이나 된다. 1986년 등단하여 36년동안 3년에 한 권의 시집을 내고 틈틈히 다른 책을 낸 것이다. 그 치열함과 열정이 놀랍다.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주요 소재로 삼은 시어를 중심으로 읽었다. 그것이 상징하고, 지향하는 바를 탐구하여 시인의 시정신은 무엇인가를 질문해 본다.
1. 흰 뼈
시집 곳곳에 뼈가 소재로 등장한다. 특히 흰 뼈가 많이 언급되어 있다. 뼈란 무엇인가? 육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사전에서는 척추동물의 살 속에서 그 몸을 지탱하는 단단한 물질로 표면은 뼈막으로 덮여 있고, 속에는 혈구를 만드는 골수로 채워져 있다고 정의를 내린다. 육신을 구성하는 피와 살과 뼈중에서 뼈야말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뼈는 과연 뼈로만 끝나는 것일까.
연인들은 흰 뼈로 살아나 서로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수천 년, 체온을 나누며 서로를 부르는 안타까운 영혼들,
체위를 풀지 않은 채 햇빛을 거부하며 영원을 기원하는 몸짓이다
-「주검을 유적이라고 쓰는 숲」 중에서
아마 폼페이의 유적에서 느낀 시인의 감상일 것이다. 육탈과 산화를 거쳐 유적이 되어 버렸지만 연인은 영원불멸의 몸짓을 남기게 된다. 여기에서의 흰 뼈는 사랑의 영원성일 것이다. 생매장은 다른 별로 옮겨가는 축제라고 속삭였다면 연인은 찰라적 사랑만을 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영원한 죽음으로 치환한 마지막 순간, 처절한 슬픔이자 아름다움으로 읽혀진다.
상처는 그늘을 만나 깊어진다 배티는 그늘의 깊이만큼 사람의 뼈를 익힌다 상처로 붉고 투명한 몸을 가질수 없었던 사람의 뼈가 배티의 바람을 호수로 풀어보낸다 그 후는 서원의 날들이다
-「죄가 아름다운 이유」 중에서
성지는 순교자들의 뼈들이 모인 곳이다.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분들이다. 순교자들은 죄가 없을 것 같은 삶을 살았고, 죽음으로 신앙을 지켰으니 거의 완전무결한 분들이다. 그런데 시인은 역설적으로 성지를 영원하게 하는 것은 죄의 참회라고 해석한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죄의 댓가로 뼈를 내놓았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삶은 오류와 죄의 연속이다. 그런데 참회함으로써 다시 태어난다. 삶이 완벽할 수 없으므로 참회만이 완벽을 담보한다는 것 아닐까. 뼈는 순교자들의 참회와 기도를 새겨놓은 유산이지만 서원을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흰 뼈가 내 낡아가는 시간을 읽고 구릉의 침묵을 읽고 여름 햇살 챙챙한 묘역을 읽었다 묘역에 남아있는 노래는 슬프지 않았다 흰 뼈는 호수의 물결이 바람을 닮아가는 걸 보았다 흰 뼈는 산맥을 태운 오래된 재였거나 무수한 등줄기를 몸속에 세워준 젊은 날의 고뇌다
-「몽환의 파버카스텔」 중에서
흰 뼈란 무엇인가? 백골이자 갑골이다. 갑골은 거북의 등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긴 글자로 문자의 역사다. 시인의 갑골은 시간 – 구릉 – 묘역순으로 옮겨간다. 갑골에 새긴 글은 원시적 글자지만 간혹 고등화된 문자도 발견된다. 문자의 발전사는 갑골에서 시작함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의 시적 영역도 출발지점이 있었을 것이며 문자의 발전사처럼 그 영역이 부단히 확장되고 깊어졌을 것이다.
시인의 흰 뼈는 죽음과도 연결된다. 화산폭발하는 도시의 연인이나 성지의 순교자들, 작가의 화실에서도 흰 뼈는 죽음의 상징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그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성에 도달한다. 시인은 ‘질문은 뼈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며 흰 뼈들은 질문으로 환생을 꿈꾼다’(「질문」중에서)고 단언한다. 그 질문은 무엇일까. 시인에게는 시 아니겠는가. 육신의 탈을 벗어도 시는 남고 시인의 이름은 기억되고 또 환생한다. ‘날카로운 흰 뼈가 내 숨 멎은 하늘이다’(「몽환의 파버카스텔」중에서)처럼 시는 절체절명이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흐가 쓰던 파버카스텔은 자신의 몸에서 뜯어낸 뼈로 만들었다고 한다. 시인은 고흐처럼 예술가의 고뇌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남다른 시정신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2. 비주류
시의 본령은 작은 것과 약자와 변방에 대한 기록일 수 있다. 정사가 아닌 야사의 이야기다. 삶의 주류, 세상과 권력의 주류에서 밀려난 비주류에 대해 시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녀들의 루즈는 소음기가 장착된 피스톨이다 잠시 휘청하는 사이 낙오의 대열에서 쓴잔을 드는 것이 그녀들의 서바이벌룰이었다
- 「인턴사원」 중에서
이 시집의 표제가 된 시다. 카스피해 시추현장에 파견된 여성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왔다. 척박한 나라들이다. 예를들면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00스탄 국가들일 것이다. 우랄강과 포도주가 언급된 것을 보면 러시아일 수도 있고 조지아일수도 있겠다. 원유란 무엇인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이다. 석유는 원유상태에서 발굴하여 정제라는 가공과정을 거침으로써 탄생한다. 인턴사원들은 젊은 여성들이다. 아직 가공되지 않은 원유와 같다. 원유를 시추선의 드릴이 뚫고 있다. 잠재된 욕망은 발화가 필요하다. 시추선의 드릴은 원유를 발화시키는 화약일 것이다. 그녀들 가슴에 뚫려있는 시추공속에서 포도빛깔 절망 넘치는 날 찾는다고 했으니 언젠가는 귀향을 꿈꿀 것이다. 석유의 검은 이미지와 젊은 여성들의 루즈는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인턴사원들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희망이 있지만 확정되어 있지 않다. 한순간에 낙오의 대열로 떨어질 수 있는 비정규직. 여기에 슬픔이 묻어있다.
거미줄에 갇힌 수취인불명의 편지를 보고 있다 편지는 통증으로 채워진 눈빛이며 절연의 마지막 몸짓이다
재래식 화장실로 급히 드는 여자를 보고 있다 여자는 피를 쏟는다 광장시장의 고된 하루가 쏟아진다
툭, 해바라기 꽃이 목을 꺾는다
가슴에 소리 없이 물기가 번진다
- 「응시」 중에서
설명이 필요없는 시다. 고려인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국내 재외동포들의 삶이 그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 일제를 피해 연해주로 이동하고 또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중앙아시아에 버려졌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터를 잡은 이들. 그들의 고국은 어디인가. 그들의 출생국인가 아니면 조국인가. 조국이라는 한국에서도 변방에 버려져 있지는 않는가.
3. 피, 붉은
피는 붉은 색이다. 시인은 도처에서 피와 붉은 색에 대한 이미지를 심고 있다. 그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를 탐구해 본다.
갑상선의 엄마는 우울한 하늘을 부르죠 엄마의 검붉은 생각이 채혈병으로 흘러드는 동안 엄마는 비웃음을 물고 있죠 (중략) 무심하던 엄마가 유리창을 그었어요 유리창에 핏물이 배었어요
- 「자폐의 계절」 중에서
자폐증을 앓고있는 여인에 대한 시다. 자해를 하는 여인의 검붉은 생각이 채혈병으로 흘러들고 핏물로 이어지는 자해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시어는 자폐에 대한 이미지를 붉은 색으로 표현한다. 자폐의 시간은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이므로 원색적이었을 것이다. 원색은 열정의 또다른 표현이다.
붉었던 시간이 있다 그때마다 종이학을 접었다 종이학은 밤마다 날아올라 하늘을 덮었다 붉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붉은 그림자였다 그림자를 벗고 밖으로 나갔다 그림자는 검게 변했다 내가 떠나자 더 검어졌다
-「붉은, 검은 그리고 붉은」 중에서
1970년 2월 25일, 미국 맨해튼 작업실에서 두 팔을 벌린 채 손목의 동맥을 긋고 자살한 화가 마크 로스코의 시신이 발견된다. 의사는 부검 후 그가 항우울증약에 중독되어 있다고 말했다. 로스코는 강렬한 색채를 통한 감정 전달을 추구했다. 철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부와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토록 경멸했던 기득권에 함몰된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이 깊어진다. 결혼 생활은 파국으로 치닫고, 알코올 중독은 심해졌다. 붉은 화폭과 흰 여백은 그의 삶을 대변한다. 시인은 로스코의 붉었던 시간은 몽유거나 발광이 있었다고 판정한다. 기득권에 매몰된 이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가. 자그마한 불이익에도 참지 못하는 기득권. 양심과 저항은 기득권에 도전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기득권에 매몰된 자신을 한탄하며 피로서 속죄한 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늘 때만되면 개혁을 요구하고 때론 순결한 피를 요구한다.
창녀촌의 붉은 지붕들, 하체를
서로의 처마 밑으로 밀어 넣고 푸른 하늘을 덮는다
순결하다는 말은 지붕 위에서 모욕이다
예각의 지붕은 허리에서 둔부까지의 거리를 욕망한다
-「지붕 위의 지붕들」 중에서
‘지붕들이 매독을 황홀하게 꽃피운다는 것을 알고도 사내들은 붉은 지붕을 꿈꾼다’고 노래한다. 지붕은 건물의 맨위쪽에 있어 비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높이 보여 존경스러워보이지만 실은 온몸으로 자연과 맞서야하고 자연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지붕이다. 또한, 욕망을 감춰주는 역할도 한다. 욕망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지붕이다. 지독한 욕망은 유혹을 수반한다. 그 색깔은 붉은 색이다. 그 이미지는 활화산과 유사하지만 한 번 피고나면 재로 남는 속성이 있다. 인생은 붉은 색과의 투쟁이다.
4. 의자
의자란 무엇인가. 사람이 걸터앉는 데 쓰는 기구다. 과연 기구에 불과한 것인가. 영어로 의자에 앉는 사람은 chairman, 의장이나 위원장을 뜻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국가나 정당의 최고 직위를 주석(主席)이라고 표기한다. 의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의자는 권력의 상징이자 권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미관말직이라도 약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의자의 계층은 실로 다양해서 계층화를 이루고 있다.
나는 은밀한 거래였고 굴신의 비겁자였고 등을 보인 배반자였다
나는 권력이었고 권력의 하수인이었고 하수인의 망명지였다
나는 더러운 그늘이었고 더러운 과거였고 더러운 죽음이었다
백년 유언을 앉히던 날의 슬픔을 돌아본다
천년 사직을 버리던 날, 통한으로 무너져 내리던 변방의 성들을 끝내 잊지 못하겠다
-「의자의 명상」중에서
시인은 무수한 혈통을 가진 폐족이라고 선언한다. 사람의 체온을 두려워하고 역사의 흐린 기록을 두려워한다고 단언한다. 칼날 위의 춤은 그렇게 날뛴다고 한탄한다.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의 도덕성과 책임감은 낮지 않다. 그것을 잊는 순간 개인은 망가지고 사회는 부패해진다. 만약 역사의식이 있다면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이의 무게감은 상당할 것이다.
너는 창가의 작은 의자마다 앉아 있는 햇빛 사이에 무릎을 모았다
길이 될 묵상을 햇빛에 헌정한다(중략)
무명순교자의 묘역으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무겁다 고난의 길에서 열네 번 통곡한다 통곡 후에 성자의 상처가 깊이 새겨질 것이지만 길은 묵상보다 생각이 깊다
길을 걸으면 사라진 발걸음 돌아와 통곡 위에 놓인다
- 「배티성지에는 사람의 길이 있다」중에서
14처가 있다. 그리스도의 마지막 시간인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며 묵상하는 기도의 길이다. 무명순교자들은 죽음으로써 그리스도와 같은 길을 걸었다. 창가의 작은 의자는 기도와 묵상을 볼수 있는 창이다. 그 창을 바라볼 수 있는 의자에 앉는 사람은 행운이다. 의자는 국가와 사회가 우리에게 준 삶의 무게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의자는 영원히 있을 수가 없다. ‘흔들의자가 비어 있다 흔들의자에서 보는 소나무 숲이 고요하다’(「일상, 그 깊은 슬픔」중에서)처럼 사물은 보는 처지와 생각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시인은 세상 모든 사물이 은유인 것을 깨달았을때 너는 누구의 은유인지를 질문한다. 짐승울음일수도 있겠다라는 것에 절망한다. 나는 무엇의 은유인가를 자문하게 한다.
김윤배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지금까지 언급한 흰 뼈, 약자, 피 또는 붉은, 의자 외에도 굴신, 질문, 산맥 등의 흥미로운 시어가 등장한다. 그것의 공통점은 본질에 대한 질문과 응답이다.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응시하고 평가하고 전열을 정비한다. 간혹 나타나는 무력감과 나태함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응전이기도 하다. 시는 밤하늘의 별처럼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의 연속이다. 하나 하나의 시에서는 삶과 죽음의 과정이 담겨있어 인생의 축소판이다. 시인은 그 생성과 소멸을 창조해내는 주인공이기에 더없이 고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