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년 4월 26일 ~ 1616년 4월 23일[a])
영국의 극작가,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영어로 된 작품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으며, 셰익스피어 자신도 최고의 극작가로 손꼽힌다.[1]
셰익스피어는 영국 워릭셔 주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 런던으로 와서 배우가 되었으나 《비너스와 아도니스》로 시적인 재주를 인정받고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햄릿》 《리어 왕》 《오셀로》 《맥베스》 등 4대 비극과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헨리 6세》 《폭풍》 등이 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희곡 38편, 154편의 소넷, 2편의 이야기 시와 몇편의 다른 형식의 시가 있다.
그의 작품은 거의 모든 주요 언어로 번역되고 공연되었다.[2]
1.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의 생애
세계 연극사상 최대의 극작가이며 영국문학사를 장식하는 대시인이다. 18세기이래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 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이 발전했고, 모든 비평원리의 선례로 이용되며 극단에서는 셰익스피어 극이 배우의 등용문으로 되어 있다. 영국 르네상스의 정점인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의 중부지방에 있는 워릭셔의 스트랫퍼드 온에이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반농반상으로 한때는 공직에도 재직했으며 어머니는 농가의 딸로 셰익스피어는 그들의 장남이었다. 아버지가 1568년 읍장으로 선출되어 유복한 시민의 아들로 유년시절을 행복하게 보내며 마을의 문법학교에서 공부했으나 13세 때 집안이 몰락하여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18세 때 8살 연상인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3남매를 두었으나 그들은 모두 요절, 18세기 이후 그들의 자손은 단절된 것으로 추측된다. 셰익스피어의 소년시절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록이 없고 연극과의 관계도 분명치 않으며 런던으로 나온 이유나 연대도 자세하지 않다. 런던 시절 배우로서의 생활은 1580년대 말로 추정된다. 런던의 극장 고용원이 되어 어깨너머로 연극이나 문학에 대한 소질을 익혔다. 레스터 백작 밑에서 일을 하다가 엘리자베스 1세 사망 이후 배우단에 가담하여 무대에도 출연하는 한편, 상연용 각본을 가필하는 극단 전속작가로 근무하다가 차차 독립하여 희곡작가가 되었다. 1590년부터 약 20년 동안 극작에 전념하여 모두 37편을 발표하는 등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크게 떨쳤다. 1608년부터 창작력이 쇠퇴하여 1611년에 [눈보라]를 끝으로 붓을 꺾고 고향으로 은퇴하여 평화스런 여생을 보내다가 1616년 4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온화한 셰익스피어'라고 불리었지만 인간심리의 통찰에는 깊은 안목을 가졌고, 완성과정에 있던 근대영어의 잠재력을 극도로 발휘하여 시극미의 최고를 창조했다.
그의 희곡은 총 36편이며 시집은 3권을 남겨 극시인으로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며, 영국이 식민지를 모두 포기한다 해도 셰익스피어를 지킨다고 자랑할 만큼 그는 영국의 자존심이었다.
2. 작품과 시대구분
(1) 제1기: 습작시대
선배배우의 영향을 받은 시대로 3부작 역사극 [헨리 6세]를 그의 처녀작으로 보고 있다. 그 속편에 해당하는 [리처드 3세]는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에 많은 영향을 준 요크가와 랭커스터가의 싸움인 장미전쟁(1455-85)의 최종단계를 그린 것으로 주인공 리처드 3세를 창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또 로마의 희극작가 플라우투스의 작품을 번안한 [실수의 희극]과 익살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당시 인기있던 유혈비극의 로마 사극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등이 초기작품이다. 1592년부터 3년에 걸쳐 런던에 유행한 페스트 때문에 극장은 폐쇄되었고, 셰익스피어는 그동안 2편의 서사시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겁탈]을 사우샘프턴 백작에게 바쳐 그로부터 인정받았다. 극장이 폐쇄된 후 런던극단의 대규모 재편성은 그에게 유리한 기회를 제공했고, 그는 평생 이 극단을 위해 희곡을 쓰게 되었는데 최초의 작품은[로미오와 줄리엣]이다.
(2) 제2기: 역사극과 희극의 완성기
1590년대 후반, 인간에 대한 통찰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리처드 2세]: 시인기질이 있으며 자기도취적인 국왕이 수많은 고난을 겪고 비극의 주인공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역사극.
[한여름 밤의 꿈]: 아테네 교외에서 밤의 숲을 무대로 환상의 세계를 그린 낭만적인 희극. [헨리 4세]: 대표적인 역사극으로 리처드 2세한테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성립한 헨리 4세 치하의 음모와 혼란의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방탕생활을 하는 무뢰한이자 늙은 기사 폴스테프는 햄릿과 함께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성격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핼 왕자와 함께 벌이는 만행은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인간적인 매력 때문에 18세기 이래 셰익스피어의 성격론의 중심이 되어왔다.
[베니스의 상인]: 감미로운 연애희극 속에 욕심 많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등장시켜 사회통념에 따라 악인의 운명을 겪게 하면서도 소수 피압박민족의 슬픔과 분노를 강하게 호소하여 인간에 대한 온정과 공정한 사회의 관찰의 시각을 보여준다.
[뜻대로 하세요]: 아덴 숲을 무대로 궁정에서 쫓겨난 공작과 가신의 전원목가적인 생활이 배경이 되어 젊은 남녀의 연애를 낭만적으로 그린 걸작 희극이다.
[십이야]ㅣ: 1600년 무렵의 작품으로 셰익스피어 최고의 희극으로 평판이 높다. 작품 전체가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서정적인 분위기와, 익살. 재담. 해학 등 희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십이야]를 전후하여 셰익스피어는 로마의 역사에서 소재를 얻어 [줄리어스 시저]를 썼는데, 이때부터 몇 년간을 비극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3) 제3기: 4대 비극의 탄생시기
복수의 비극을 그린 [햄릿], 질투의 비극을 그린 [오셀로], 야심의 비극을 그린 [맥베스], 어리석음의 비극을 그린 [리어왕]등이 있다. 이 4대 비극은 각각 소재도 다르고 다루는 방법도 다양해서 4대비극에 대해서 반드시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모두 '진실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최대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인간의 장대하고 비극적인 세계를 제시하고 죽음과의 관련에서 인간적인 가치탐구'를 시도하여 세계 연극사상 최고의 비극을 창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셰익스피어는 비극뿐만 아니라 [끝이 좋으면 다 좋지]와 같은 희극도 썼는데, 결말이 희극적이지만 줄거리를 억지로 끌고간 부자연스러움과, 작품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도덕성에도 혼미함이 보여 문제희극이라고도 한다. 이 시기 마지막 비극은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등이 있다.
(4) 제4기: 전기극의 시대
폭풍우가 지난 다음의 체념과 화해의 심경을 반영한 전기극의 시대로 [겨울밤 이야기] [템페스트] 등이 있다. 이밖에도 시집으로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죽음]이 있다. 특히 시집 [소네트 집]은 154편으로 된 14행시로서, 정묘한 서정 속에 그의 내면생활이 담담하게 펼쳐져 있어 영국 소네트의 정화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 위키백과
세익스피어의 삶과 문학
-존 매든 감독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중심으로
(중략)
극작가이자 배우로도 활동한 적이 있던 셰익스피어의 생애 자체는 워낙 시기적으로 오래 전인 16세기말에서 17세기초에 걸친 인물이라 아무래도 정보의 정확성이 떨어지다 보니 그에 대한 증언들이란 어쩔 수 없이 다소 전설적이고 모호한 측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 지금으로 봐도 새파란 불과 18세의 어린 나이로 8년 연상의 여인과 결혼한 세익스피어. 당연히 그의 부친인 존 셰익스피어는 그의 결혼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속도위반으로 결혼한지 6개월만에 덜컥 아이를 낳고 말았으니 셰익스피어도 알고 보면 그렇고 그런 젊은 시절을 보낸 보퉁 사람 중의 하나였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그의 젊은 시절에 대해 말도 많고 이러 저런 추측과 낭만적으로 채색된 전설들이 마구 생겨났을 터이고 <셰익스피어 인 러브> 속의 에피소드들도 역시 이런 전설들의 일부를 택했을 것이다. 영화의 이해를 위해 셰익스피어 생존 당시의 몇 가지 실증적 정보를 더 추가하기로 하자.
"1592년 이후 런던에서 본격적으로 극단활동과 극작에 두각을 나타내기 이전 시골에서 상경한 세익스피어는 극단에 고용되어 말을 타고 관람온 신사들의 말들을 돌보는 일을 했고, 이 일이 번창하여 '셰익스피어 보이들'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2)
이러한 사실들은 셰익스피어의 사생아라고까지 소문났던 시인 극작가인 Williamm D'Avenant의 말로서, 물론 이러한 설들이란 추측이거나 여러 설 중의 하나일 뿐이다.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 재위 당시 여왕은 셰익스피어 연극의 단골 관람객 중의 한 사람으로서 연극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극단에 많은 호의를 보이기도 했다.
세익스피어는 초기에 극작가로서 뿐 아니라 쳄벌린 극단(Chamberlain's Men)의 배우로도 성공적인 활동을 한 바있었고, 영화에서 줄리엣 역할의 바이올라(기네스 팰트로우)와 결혼하려는 웨섹스 공작(콜린 퍼스)에 의해, 결국 연적으로 낙인 찍혀 셰익스피어 대신 죽게되는 대학 출신 극작가 말로우.
그를 위시로한 대학 출신 극작가들은 실제 셰익스피어를 경쟁상대로서 생각했었으며 당연히 경계와 질투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또 하나의 정보로서, 당시 런던에는 두 곳의 연극전용 극장이 있었다. 그 중 Blackfriars 극장은 지적이고 고급관객을 목표로 희비극(tragi-comedy)을 전문으로, 또 하나의 극장이던 Glove 극장은 비극을 주로 무대에 올렸다. 물론 대중들의 인기는 단연 전자 쪽이었다. 존 매든은 셰익스피어 개인에 관한 이러한 실제 정보를 바탕으로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내러티브 중심 축을 <로미오와 줄리엣>에다 맞춘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몬테규와 캐퓰리트 두 가문사이의 오랜 갈등관계에 끼여든 두 청춘 남녀의 운명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에 나타나는 운명, 즉 '그리스적 초자연적인 숙명'과는 다른 성격을 띄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남녀 주인공은 셰익스피어「4대비극」의 주인공들이 겪는 내적 갈등을 겪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에게서 '성격은 운명(Character is desttiny)'이라는 세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의 특색을 찾기는 힘든다. 그들은 이미 그들이 선택할 수 없는 운명, 즉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양가의 숙적관계가 가로놓여 있다. 그러나 이 숙적이라는 운명은 저 희랍 극에 있어서와 같은 운명과는 성질이 다르다. 이 작품의 경우, 양가가 숙적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은, 희랍적인 초자연적인 숙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주인공들은 이와 같은 인위적인 외적 갈등 속에서 여러 가지 우발적 사건을 일으키는 가운데,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양가를 화해시킴으로써 미화된다. 하나의 평화스러운 질서가 그들의 죽음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이 경우 그들은 영광의 희생자가 되었다. 극구성으로 보아, 주제인 양가의 갈등은 비련으로 바뀌어 버렸고, 주인공들의 극히 미약한 성격결함마저, 그 동기가 애매하기 때문에, 이른바 세익스피어 비극의 이념 내지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저「4대비극」의 주인공들과 견주어 볼 수 없으며, 따라서 본격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유도, 이러한 것에 있다고 하겠다." (*3)
존 매든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셰익스피어의 모호하게 전설로만 추측되는 젊은 시절을 중심으로 초자연적 운명론적 비극인「4대비극」을 제외하고 단지 두 가문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갈등과 동서고금을 통해 최대의 연애 드라마라 일컬어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택함으로써 고급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특히 톰 스토퍼드의 각본은 실재의 셰익스피어의 삶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병치시킴으로써 원작이 지닌 극적 상황과 작가가 살던 역사적 상황이라는 이중적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관객을 끌어들이게 되는데, 이러한 방법은 당시에 비해 엄청나게 변화된 시각을 지니고 살아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적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케 한다.
결국 예술작품이란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당시의 상황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내지 못한다면 독자나 관객을 이해시킬 수 없게 된다. 예컨대, <로미오와 줄리엣>의 두 가문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을 영화에서는 미천한 극작가 신분의 셰익스피어와 부유한 상인 집안과의 신분상 갈등으로. 또, 로미오와 줄리엣의 관계를 윌 셰익스피어(조셉 파인즈)와 바이올라(기네스 팰트로)와의 관계로 바꿔 각각 극중 극과 현재의 시점으로 평행 편집하는 솜씨 등, 셰익스피어가 살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으로 끌어가는 존 매든의 영화적 재치는 뛰어나다.
그는 한 편의 평범한 로맨스비극을 오늘의 시각으로 새롭게 번역해내는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내러티브와 외관의 형식은 바꾸되 텍스트가 깔고 있는 주제와 의미는 그대로 살려내는, 다시 말해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미 죽어있는 평범한(「4대비극」에 비해) 고전을 해석학의 논리에 근거 재해석하는데 성공하였다. 우선, 존 매든의 이 영화는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패러디한 극중 극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점이 새롭게 해석된 부분인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기둥 주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남녀의 이뤄질 수 없는 비극적 사랑이다. 때문에 영화에서는 그들의 사랑이 죽음의 비극으로 끝나기 전에 일단 좀더 애틋하고 처절한 사랑을 묘사해내는게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시각으로 볼 때 만약 원작을 그대로 영화화했다면 분명 그 들의 사랑이 아무리 절실하고 애틋하였다 하더라도 감상적이었거나 신파로 그칠 확률이 크다. 때문에 존 매든은 이 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해낸다.
가령 셰익스피어와 바이올라의 관계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관계를 앞에서 말한 대로 평행편집으로 뒤섞어 버린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어느 쪽이 연극이고 어느 쪽이 실제의 사랑인지 구별하기가 애매해진다. 연극과 실제의 관계들이 상호 교차하면서 계속 뒤바뀌는 장면과 시점은 관객들로 하여금 예측 불허의 내러티브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점점 호기심은 증폭된다. 셰익스피어와 바이올라가 헤어지기 아쉬운듯 안타까워 하는 침실 장면이 등장하더니 어느새 연극 무대로 뒤바뀐다. 그러니 관객들은 급속도로 빨라지는 쇼트와 장면들의 전환을 뒤따라 가기에 숨이 가쁠 지경이다.
그러나 굳이 두 연인들의 대사를 새겨들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연극의 줄거리는 알고있기에, 단지 그들이 나누는 달콤한 사랑의 모습만을 영상의 이미지로 뒤쫓으면 된다. 그런데, 존 매든의 탁월한 감각은 여기서 다시 한번 더 빛난다. 자, 마지막으로 죽음이라는 비극의 클라이맥스로 끌어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관계가 더욱 실감나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새롭게 첨가된 장면이 바이올라의 친척으로 변장한 셰익스피어와 여왕과의 '내기 신'이다.
사실 예술, 연극이란 여왕이 말한 대로 상상력을 통한 하나의 픽션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여왕은 무대에서 실현되는 배우들의 사랑이란(사실은 실제 연인 관계였지만) 결국 허구적인 연기에 불과할 터이니 사랑이란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냉소해버린다. 존 매든은 바로 이 부분을 새롭게 삽입함으로써 로미오와 줄리엣의 뜨거운 사랑의 모습을 보다 강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존 매든의 이 새로운 시퀀스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예술론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위 무렵은 희극만이 주로 무대에 올려졌으며, 이때의 연극이란 그저 웃고 즐기는 오락의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진정한 연인들의 사랑의 이야기를 무대에 새롭게 올림으로써 상상 속의 픽션이 단지 픽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진정한 욕망이 실제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그의 비극들을 무대화하면서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우리 삶의 운명적 조건을 상상력을 통해서 연극화했던 것인 바, 그것은 하나의 픽션에 불과했지만 그 무대에서의 드라마는 실제 우리 삶의 진실 그 자체였다.
결국 픽션이되 픽션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셰익스피어 자신과 바이올라가 바라는 사랑을 실현할 수 있었으니 바로 이 점에서 존 매든은 예술은 바로 상상력의 가정을 통해서 불가능함을 가능함으로 바꾸는 역설의 진리를 실현한다는, 하나의 예술론을 피력하고 있는 셈이다. "예술은 욕망의, 낭만적인 욕망의 산물인 것이다. 다만 그 욕망이 삶의 전반적 고양을 가져오고 급기야는 바라는 바와 같은 고양된 삶을 살고자 하는, 바라는 것이 바로 삶의 사실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과 사실의 관계를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는 다음과 같이 기이한 역설로 표현한 바 있다.
<우리는 사실을 떠난다, 그리고 그것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그랬으면 하는 사실로 돌아온다. 그것은 그전의 사실도 아니고, 너무나 자주 그래왔던 사실도 아니다.> 우리는 사실을 떠나서 다시 사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 떠남과 돌아옴 사이에 사실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일치한다. 우리는 이 새로 돌아간 사실과 우리의 원하는 것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을 떠나고 사실을 변형시키고 변형시킨 것을 의식하지도 못하는 것 ㅡ 이것이 시의 작업이며 문화의 의미다." (*4)
(중략)
<셰익스피어 인 러브>. 존 매든은 우선 인간에게 비극적으로 부여된 그리스적 초자연적 운명론이라든가 '성격은 운명이다'라는 논리를 주제로한「4대비극」에 비해 비교적 사실적이고 단순한 내러티브로 구성된 <로미오와 줄리엣>을 먼저 택한다. 또한 영화의 사실성과 흥미적 요소를 배가시키기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적 줄거리에 셰익스피어의 전설적인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들을 삽입하기를 잊지 않고 있다.
자, 이제 내러티브는 더 이상 복잡하지 않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그들 자신에게 기인된 것이 아니라 단지 양 가문의 갈등 때문이었다. 더구나 무일푼인 셰익스피어와 부유한 상인 집안의 딸인 바이올라와의 결합이 어데 쉽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러니, 설사 두개의 에피소드들이 혼합되어 평행편집(palallel editing)으로 나타나더라도 관객들은 더 이상 헷갈릴 이유가 없다. 두 가문의 갈등 탓이든 신분 차이 때문이든, 분명한 건 그로 인해 두 남녀는 결합이 불가능한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는 설정은 얼마나 분명한가.
이제 여기에 깔려있는 이데올로기를 살펴볼 차례다. 누군가 희생하라, 그러면 모든 갈등은 그것으로 해결되기 마련이고 이윽고 복잡하게 보이던 사건 또한 어느덧 해결되어 평화를 되찾게 된다. 단지 누군가의 희생 하나로 족할 터이니 그 이상의 불만은 필요 없다. 이것으로 상황 끝이다. <로미와와 줄리엣>의 내러티브는 전형적으로 '질서/ 무질서/ 질서의 회복'의 구조임은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두 연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두 가문은 화해를 이뤘고, 질서와 평화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존 매든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셰익스피어에게는 연극만을, 바이올라를 웨식스 경(콜린 퍼스)과 결혼하게 함으로써 혼란 되었던 무질서는 마무리되고 각자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동안 질서는 더욱 새롭게 강화된다.
감히 천한 극작가 신분을 뛰어넘으려 하다니, 어림 반푼 어치 없는 수작이 아닌가. 그러나 어쩌랴! 여전히 캔트로 변장한 바이올라에 대한 못 이룰 사랑으로 마음 아파할 세익스피어와 관객을 위해 존 매든은 로맨틱 코미디 <12夜>의 여주인공인 또 다른 바이올라 카드를 예비함으로써 신데렐라 못지 않은 환상적 꿈마저 성취하도록 한다. 이때쯤 관객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아름답고 꿈같은 영화야! 라고. 할리우드는 말한다. 현실의 고통이여, 그것을 해결할 방법은 바로 현실 그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될 터이니 어찌 그런 무질서를 초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현실의 고통은 고통 그 자체로 족한 것. 차라리 영화라는 꿈속에 젖어 잠시 현실의 고통을 잊어본들 어떠리요. 둘째, "플롯은 인물들이 끌고 가는데, 이 말은 내러티브가 심리적이며 따라서 개인적으로 동기 부여된다는 것을 뜻한다. 만일 최초의 사건이 은연중에 개인적이거나 심리적인 것이 아닌 이유로 동기 부여된다면 그것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아무런 설명 없이 그대로 넘어가기 쉽다. 보드웰은 소랭을 인용하면서 내러티브를 촉발시킨 것이 역사적인 사건일 경우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고 강조한다."(결과적으로 영화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사건들은 아무런 과거도 갖지 않고 설명, 원인조차 없기 때문에 탈역사화될 가능성이 크다) (*7)
극중 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가문의 갈등은 신분으로 인해 결혼이 불가능한 셰익스피어와 바이올라의 관계로 전환된다. 그러나 연극과 영화 모두 두 연인간의 연모의 정과 로맨스 자체가 내러티브의 근간이 된다. 당연히 두 극단이나 역시 두 집안의 갈등 양상은 내러티브 전개상 부차적 이유로 격하될 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와 바이올라,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 플롯을 끌어갈 요소가 그것 말고 또 있을까.
더구나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셰익스피어 자신의 애정 행각(?)에 일체의 초점이 맞취진 영화가 아닌가. 물론 극중 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와 셰익스피어와 바이올라의 관계를 따로 분리할 수 없지만 내러티브는 셰익스피어나 로미오, 혹은 그들의 연인과의 심리적 관계들을 뒤따르며 전개된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내러티브 측면에서 신분상의 갈등, 셰익스피어 극에서 두 집안간의 갈등은 두 연인들의 관계에 종속될 뿐이다. 또하나 지적할 것은, 존 매든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생애 중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들을 실증적 정보를 바탕으로 묘사하면서도 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역사적 배경들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이 영화가 당연히 두 연인들의 로맨스에 주제의 초점을 맞췄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원작인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두 가문의 갈등 외에 당대의 시대적 상황이나 역사적 요인들은 일체 배제되어 있다. 다시 말해 탈역사적인 거다. 결국 역사와 사회적 상황이 배제된 채 단지 등장 인물들만의 심리를 따라 전개되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플롯은 당연히 인물들이 끌고 가는 구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내러티브 전개는 '고전 할리우드 내러티브'적 특징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셋째, "고전 내러티브 영화는 어떤 장르에서든 상관없이 내러티브가 완결되는 결말을 갖는다.
플롯은 어떤 모호함도 가져서는 안 되며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해피 엔딩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또한 영화의 결말이 어떤 형태를 띠든 간에 그 결말은 거의 예외 없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메시지를 전하거나 언술한다.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메시지가 다른 모든 것들을 밀어내게 된다." (*8)
보드웰에 따르면,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대부분이 이성간의 로맨스가 배우들의 연기의 일부를 이루고 있고 영화의 결말은 대개 결혼으로 귀착된다. 수잔 헤이워드는 이러한 보드웰의 연구 결과에 대해, "로맨스 영화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지배 영화의 이데올로기적인 효과와 신화 생성 기능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고 논평하고 있다. '고전 할리우드 내리티브'의 세 번째 특징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더 이상 상세한 거론은 불필요할 것 같다. 다만 이 영화에서 존 매든의 영화적 센스가 매우 재치 있게 드러나는 마지막 시퀀스 <12夜>부분을 살펴보자.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희생을 통해 두 극단간의 갈등을 종식시키고 화해를 도모함으로서 결말을 맺는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인간적 갈등이든 개인과 소수의 희생을 통해서 갈등은 종식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살아남은 자는 새롭게 재생할 수 있다는 역설의 진리를 제시한다. 그래서 두 연인으로서는 비극적 결말이지만 사회적 집단의 입장에서는 헤피엔딩인 셈이다.
존 매든이 영화적 재치가 뛰어난 감독임을 알게 해주는 것은, 주인공들이 맞게되는 비극적 결말조차 로맨틱 코미디 <12夜>를 삽입함으로써 결국 이 영화를 완벽하게 헤피앤딩으로 처리하는 수법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올라의 분신이랄 수 있는 또 하나의 여인을 아름다운 섬 일리리아의 환상 속에 존재하게 하는 완벽함 마저 기한다.
<12夜>를 통해 영원히 로미오(셰익스피어)는 다시 줄리엣을 영혼으로 재창조하고, 사랑하게 된다. 죽었지만 상상력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신비로움. 그것은 바로 역설의 진리를 실현하는 예술만이 가능한 일이다. 어떤 이상을 설정하고 아련하게 손에 닿을 듯 남겨놓은 것. 그래서 다시 신비의 꿈을 꾸게 하는 것.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놀라운 각색의 효과는 바로 이 부분에서 찾을 수 있고, 관객들을 환상과 행복함을 지니고 극장 문을 벗어나게 된다.
존 매든은 셰익스피어는 연극의 길로, 바이올라, 줄리엣, 공작과 결혼하게 함으로써 혼란스런 무질서를 바로잡은 후 <12夜>를 마련 예술 속에서의 헤피앤딩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비록 극 속에서 그들은 죽었지만 메든은 셰익스피어와 바이올라를 살려낸다. 연극이니까. 바로 그거다. 할리우드는 당연하게도 현실과 영화를 구분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결코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의 고통을 다시 체험하게 하거나 도덕적 고민에 휩싸인다던가 양심을 후벼서는 안된다. 또한 자신과 타인들의 삶에 대해 반성의 눈빛을 하거나 행여 회의적으로 봐서도 안된다. (1999년 5월)
<출처: 문화카페-사람들>

셰익스피어의 시<소네트>
*소네트 (sonnet) =14행의 짧은 시로 이루어진 서양 시가. 각 행을 10 음절로 구성하며, 복잡한 운(韻)과 세련된 기교를 사용한다. 13세기에 이탈리아에서 발생하여 단테와 페트라르카에 의하여 완성되었으며, 셰익스피어˙밀턴˙스펜서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십사행시.
1.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번식을 바람은,
미(美)의 장미를 죽이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세월이 가면 장년(壯年)은 죽나니,
고운 자손이 그의 모습을 계승할지라.
그러나 그대는 자신의 찬란한 눈과 약혼하여,
자신을 연료로 태워 그 불꽃을 불붙게 하고 있도다.
풍요가 있는 곳에 기근(饑饉)을 만들고,
적(敵)인 양 자신에게 너무도 가혹하여라.
이 세상의 싱싱한 장식품이요,
찬란한 봄의 유일한 전령(傳令)인 그대는,
가진 전부를 자신의 꽃봉오리 속에 묻어버리고,
아낀다는 그것이 낭비를 함이로다. 아, 마음 고운 인색한 이여.
세상을 동정하라 안하려거든 걸귀가 되어,
모든 것을 무덤과 함께 먹어버리라.
2.
마흔 넘어 도랑파여진 얼굴
When forty winters shall beseige thy brow,
And dig deep trenches in thy beauty's field,
Thy youth's proud livery, so gazed on now,
Will be a tatter'd weed , of small worth held:
마흔 번의 겨울이 그대의 이마를 에워싸고(beseige)
그대의 아름다운 얼굴 (field)에 도랑을(trench) 팔 때가 오면,
지금은 이렇게 사람의 눈을 끌던 청춘의 자랑스런 차림새(livery)는
가치 없는 누더기의복(tatter weed)이 되어버리리라.
Then being ask'd where all thy beauty lies,
Where all the treasure of thy lusty days,
To say, within thine own deep-sunken eyes,
Were an all-eating shame and thriftless praise.
그때, 그대의 아름다움은 어디 갔으며, 인생( being)
한창 시절(lusty)의 보배는 다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움푹 들어간 그대의 눈 속에 있다고 대답하는 것은,
매우 속 썩이(all-eating )는 치욕이요 낭비한 것(thriftless)을 뽐내는 것이다.
How much more praise deserved thy beauty's use,
If thou couldst answer 'This fair child of mine
Shall sum my count and make my old excuse,'
Proving his beauty by succession thine!
This were to be new made when thou art old,
And see thy blood warm when thou feel'st it cold.
그때 그대가 ‘내 고운 아이가, 내가 받은 미의 값을 치르고(deserved),
늙음을 변호한다(excuse),’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 아이의 미가 그대의 유전(succession)인 것을 증명하면서,
그대의 미의 善用(thy beauty's use),이 얼마나 칭찬을 받을 것인가!
그 아이야말로 그대가 늙었을 때 젊게 해주고,
피가 차가워질 때 피가 따뜻함을 인식하게 하리라.
12.
시간을 알리는 시계소리를 세며
화려한 낮이 무서운 밤 속에 묻히는 것을 볼 때,
또 바이올렛꽃이 한창 시절을 지난 것을 보고,
또 검은 고수머리가 백은(白銀)으로 변한 것을 볼 때,
한때는 가축을 위하여 폭염을 가려주던
나무들의 잎이 다 떨어진 것을 볼 때,
여름의 푸른 것들이 모두 다발로 묶이어서,
희고 총총한 그 수염 보이며 영구차로 운반되는 것을 볼 때,
그때 나는 그대의 미에 대하여 생각하노라,
그대도 시간의 흐름 속에 가야 한다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제 모습을 버리고,
다른 것들이 자라나는 것과 같이 빨리 없어지기에.
세월이 낫으로 그대를 베어갈 때
막아낼 길은 없느니, 만일 자식을 낳은 것이 없다면.
18.
내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요...
그대는 더욱 사랑스럽고 더욱 온화한데
거친 바람이 5월의 사랑스러운 씨앗을 흔들고
여름날의 임대는 너무나 짧기만 합니다.
천상의 시선은 너무 뜨겁게 빛나고,
그 금빛 찬란한 안색도 때때로 흐려집니다.
미(美)에 연유한 모든 미(美)는 시들거나
우연히, 혹은 자연의 흐름에 따라 벗겨집니다.
하지만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시들지 않으오리다.
불후의 시 속에서 그대가 자라 시간이 될 때,
그대가 지닌 아름다움의 소유는 빼앗기지 않을 것이며
그대를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방황하게 못하오리다.
인간이 살아 숨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살 것이며....
이 시가 그대에게 삶을 주리니....
29.
When in disgrace with fortune and men's eyes,
I all alone beweep my outcast state,
And trouble deaf Heaven with my bootless cries,
And look upon myself, and curse my fate,
Wishing me like to one more rich in hope,
Featur'd like him, like him with friends possess'd,
Desiring this man's art, and that man's scope,
With what I most enjoy contented least:
Yet in these thoughts myself almost despising,
Haply I think on thee,--and then my state
Like to the lark at break of day arising
From sullen earth, sings hymns at heaven's gate;
For thy sweet love remember'd such wealth brings
That then I scorn to change my state with kings'.
소네트 29
운명에 버림받고 세상사람들로 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나 홀로 나의 버림받은 처지를 한탄할 때,
부질없는 아우성으로 귀먹은 하늘을 괴롭히고
내 자신을 돌아보며 나의 운명을 저주할 때,
희망으로 풍요로운 사람 같이 되기를 바라며
친구들이 많은, 그런 사람 같기를 갈망할 때,
이 사람의 기술을 탐내고 저 사람의 역량을 부러워하며
내가 가장 즐기는 것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할 때,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 속에 내 자신을 거의 경멸하다가도
문득 당신을 생각하면 그 때 나의 처지는
새벽녘에 음울한 대지를 박차고 솟아오르는 종달새 같아
하늘 문가에서 찬양의 노래를 부르노라.
당신의 감미로운 사랑 떠올리면 너무도 풍요로워져
나는 내 자신의 처지를 왕과도 바꾸지 않으련다.
43.
나의 눈은 낮에는 허술하게 세상을 보고
밤이면 가장 잘 봅니다.
잠이 들면 꿈 속에서 당신을 알아보아요.
어둠 속이라 해도 내 눈은
빛을 받는 곳으로 향하게 되어요.
당신의 그림자가 어두움을 드리워도
그것만으로도 그늘을 빛나게 합니다.
한밤 중 깊은 잠에 빠져 장님같은 눈이 되어도
아름다운 당신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여요.
이럴진대 대낮에 당신을 본다면
내 눈은 얼마나 황홀할까요.
내가 당신을 보기 전에는 낮은 밤이에요.
꿈에 당신을 본다면,
밤조차도 밝은 낮이 되어 버리니까요.
76.
왜 나의 시는 참신한 치장도 없고
도무지 변화 무쌍할 줄 모르는가?
왜 유행 따라 새로 고안된 방법과
기발한 표현에 유의할 줄을 모르는가?
왜 나는 한가지로 꼭 같은 것을 끄적이며
나의 시상(詩想)에게 눈에 익은 낡은 옷만 입혀,
거의 말 마디마다 내 이름을 말하며
그 출생과 출생지를 빤히 보이는가?
오오, 기억하세요, 사랑하는 이여,
언제나 나는 당신 얘기만 써요.
당신과 사랑이 변함없는 게 내 주제랍니다.
그러므로 나의 최선은 옛말을 새로 옷 입혀
이미 썼던 것을 다시 쓰는 것입니다.
마치 태양이 매일 새롭고도 옛스럽듯이
내 사랑은 했던 얘기 그냥 하는 거랍니다.
89.
사랑의 노래
Say that thou didst forsake me for some fault,
And I will comment upon that offence;
Speak of my lameness,
and I straight will halt,
Against thy reasons making no defence.
Thou canst not,
love, disgrace me half so ill,
To set a form upon desired change,
As I'll myself disgrace:
knowing thy will,
I will acquaintance strangle
and look strange,
Be absent from thy walks,
and in my tongue
Thy sweet beloved name
no more shall dwell,
Lest I, too much profane,
should do it wrong
And haply of our old acquaintance tell.
For thee against myself
I'll vow debate,
For I must ne'er love
him whom thou dost hate.
사랑의 노래
어떤 허물 때문에 나를 버린다고 하시면
나는 그 허물을 더 과장하여 말하리라.
나를 절름발이라고 하시면
나는 곧 다리를 더 절으리라.
그대의 말에 구태여 변명 하지아니하며
그대의 뜻이라면 지금까지
그대와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보이게 하리라.
그대가 가는 곳에는 아니 가리라.
내 입에 그대의 이름을 담지 않으리라.
불경(不敬)한 내가 혹시 구면이라 아는 체하여
그대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그리고 그대를 위해서
나는 나 자신과 대적(對敵)하여 싸우리라.
그대가 미워하는 사람을
나 또한 사랑할 수 없으므로
106.
지나간 세월의 기록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묘사를 볼 때,
또 죽은 귀부녀와 수려한 기사(騎士)를 예찬하며
미인 중의 미인의
손, 발, 입술, 눈, 이마를 보여준
고가(古歌)를 아름답게 만든 미를 볼 때,
나는 그들의 옛 필치가
그대가 지금 지닌 미를 표현하는 것으로 아노라.
그러므로 그드르이 모든 예찬은
그대를 예상하고 우리시대를 예언 한 것에 지나지 않노라.
그들은 다만 짐작하는 눈으로 보았으므로
그대의 진가를 노래할 만한 역량을 갖지 못했노라.
지금 이 현대를 보는 우리는
경탄할 눈은 있어도 찬미할 혀는 없도다.
Sonnet 106
When in the chronicle of wasted time
I see descriptions of the fairest wights,
And beauty making beautiful old rime,
In praise of ladies dead and lovely knights,
Then, in the blazon of sweet beauty’s best,
Of hand, of foot, of lip, of eye, of brow,
I see their antique pen would have express’d
Even such a beauty as you master now.
So all their praises are but prophecies
Of this our time, all you prefiguring;
And, for they look’d but with divining eyes,
They had not skill enough your worth to sing:
For we, which now behold these present days,
Have eyes to wonder, but lack tongues to praise.
109.
내게 신의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떠나 있어 나의 정열이 약해진 것 같이 보이오리나.
그대 가슴에 깃들여 있는 나의 혼을
그리 쉽사리 떠날 수 있다면 내 몸도 쉬 버릴 수 있으리라.
그대의 가슴은 나의 사랑의 보금자리라.
만일 내가 방황한다면 여행하는 사람같이 돌아가리라,
바로 제 시간에 그동안에 아무 변함도 없이
나의 오점을 씻을 수 있게.
모든 성격의 모든 약점이
내 천성 속에 있다더라도
그렇게 타락하였다고는 믿지 말라.
그대가 없다면, 나는 이 넓은 우주를 공허라고 부르리라.
나의 장미여, 그대는 이 세상에서 나의 전부라.
116.
우리의 사랑은
그 어떤 조건이 전제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혹 잘못되었다하여
또는 우리가 그사람의 변화된 마음에 괴로워 한다면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영원한것,
그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밤하늘 별자리와 같습니다.
순간 아름다워 보이는 사랑은
시간이 흐르며 퇴색되어가지만
진실된 사랑은 시간에 영원합니다.
아니 우리의 삶보다도 영원합니다.
만약 내가 이런 시간과 변화를 견디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았다 하여야 합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리어왕 King Lear]
1. 줄거리
영국의 전설상의 왕인 리어에게는 고네릴, 리건, 코델리아의 세 딸이 있었다. 그는 이제 늙었기 때문에 딸들에게 국토를 나누어주려고 했다. 두 언니가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하는 것을 보고 진실한 코델리아는 화가 나서 일부러 매정하게 응답했으므로 부왕에게 추방당한다. 러어는 두 딸들에게 교대로 머물기로 했으나 양쪽 모두에게 심한 학대를 받게 되자 궁정의 광대와 충신인 켄트 백작 두 사람만을 데리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야에게 두 딸을 저주하며 광란한다. 여기에서 리어는 결국 '왕도 역시 일개의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은 벌거벗은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프랑스 왕비가 된 코델리아는 부왕의 참상을 듣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가지만 리어와 함께 포로가 되고 그녀는 죽는다. 리어는 딸의 주검을 보고 슬퍼하여 절명한다. 두 딸은 불륜의 사랑으로 신세를 망치고 고네릴의 남편인 앨버니 공작이 왕위에 오른다.
2. 등장 인물
(1) 리어왕 - 성미가 급한 늙은 왕으로 두 딸에게 배신을 당하고 생을 마치는 인물
(2) 고네릴 - 리어왕의 첫째딸로 가식적이고 욕심이 많은 공주로 올버니 공작의 아내
(3) 리건 - 리어왕의 둘째딸로 아버지를 배신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공주이며 콘윌 공작의 아내
(4) 코델리아 - 리어왕의 막내딸로 진실하고 솔직하고 부왕을 매우 사랑하는 공주로 프랑스 왕과 결혼
(5) 켄트 백작 - 리어왕의 충직한 신하로 끝까지 왕을 섬기다 최후를 마친 인물
(6) 글로스터 백작 -
(6) 에더거 - 글로스터의 적자(嫡子)
(6) 에드먼드 - 글로시스터의 사생아로 서자(庶子)이며 의리가 없고 사악한 인물
(7) 버건디 - 코델리아와 결혼을 위하여 프랑스 왕과 대결하는 인물
3. 작품 구성
(1) 제 1 막
제1장 - 리어왕 궁성의 알현실
제2장 - 글로스터 백작의 저택
제3장 - 버니 공작 저택의 한 방
제4장 - 올버니의 저택
제5장 - 같은 저택의 앞뜰
(2) 제 2 막
제1장 - 글로스터 백작의 저택
제2장 - 글로스터 백작의 저택 앞
제3장 - 벌판
제4장 - 글로스터의 성 앞
(3) 제 3 막
제1장 - 황야
제2장 - 황야의 다른 곳
제3장 - 글로스터 백작의 저택
제4장 - 황야의 오두막집 앞
제5장 - 글로스터의 저택
제6장 - 글로스터의 저택 부근 농가
제7장 - 글로스터의 저택의 한 방
(4) 제 4 막
제1장 - 황야
제2장 - 올버니 공작의 저택 앞
제3장 - 도버 근처의 프랑스군 진영
제4장 - 프랑스군의 진영
제5장 - 글로스터의 저택
제6장 - 도버 근처의 시골
제7장 -프랑스 진영내의 천막
(5) 제 5 막
제1장 - 도버 근처의 영국군 진영
제2장 - 양국 진영 사이의 평야
제3장 - 도버 근처의 영국군 진영
3. 작품 감상
(1)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 내면세계의 극한을 추구하면서 시적 표현으로 가득찬 최고의 운문을 보여준 셰익스피어였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 ∼ 1616)는 영국이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대문호(大文豪)이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예리하게 그려냈다. 언어의 마술사인 작가의 절묘한 표현과 철학적 주제가 잘 어우러진 이 작품들(Hemlet·Othello·Macbeth·King Lear)은 '진실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최대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인간의 장대하고 비극적인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2) 두 번 다시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처절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아버지와 자식간의 애정과 신뢰에 관한 문제를 다원적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등장인물은 어느 정도 보편성을 띠고 있는데 충성과 미덕의 인물(켄트, 글로스터 백작, 셋째딸)은 악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식의 전환을 보여 주고, 배은(背恩)과 악덕의 인물(에드먼드, 둘째딸, 셋째딸)은 구제할 수 없는 지경이 이른다. 이 작품에서는 선만이 파멸되는 것이 아니라 악도 비참하게 끝을 맺는다.
(3) 리어 왕의 처절한 비극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지혜의 부족이다. 한 국가의 왕에게는 가식과 진실, 명과 암, 옥과 돌을 구별할 수 있는 명철한 지혜가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별력이 결여되어 비극의 원인을 자초했다. 리어왕의 비극은 명철함의 결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군을 이끌고 온 코델리아의 선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간악한 에드먼드의 군대가 승리하는 데에도 있다. 결국 리어왕은 광증에 빠져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황야에서 헤매는 그의 모습은 글자 그대로 참담하다. 그가 황야에게 보고들은 것은 천둥소리와 번갯불이며 비바람과 무한히 펼쳐진 어둠과 하늘이다. 이렇게 자기분열의 고통 속에서 이윽고 인간의식의 부싯돌은 빛을 발하게 된다. 일종의 깨달음인 것이다. 허식에 눈이 가리어 인간 실존에 눈이 어두웠던 그는 비로소 명철함을 얻게 되고 신의 섭리까지도 의식하게 된다.
리어왕이 광증에 빠지고서야 인생을 올바르게 관조하게 되었듯이 글로시스터 역시 두 눈을 뽑히고 맹인이 되어서야 적자인 에드거의 효심을 깨닫는다. 다시 말하면 위선에 눈이 멀어 진실을 모르다가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마음의 눈을 뜨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위대함과 숭고함은 가혹한 고난과 시련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의 죽음을 통해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4) <리어왕>은 1605년경에 집필되고 1606년에 첫상연된 것으로 보이는 비극이다. 고대 브리튼 야사(野史) 속의 일화에서 소재를 얻은 것인데 극은 배은(背恩)을 주제로 하여 병행하는 주(主)와 부(副)의 줄거리를 둘러싸고 전개된다.
늙은 왕 리어는 효성이 지극한 막내딸 코딜러어를 믿지 않고 오히려 부실한 맏딸과 둘째딸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나라를 물려주었기 때문에 배신한 그 두 딸에게 쫓겨나 황야를 헤맨다. 프랑스 왕에게 시집간 코딜리어는 왕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구하려 오지만 오히려 패하여 그녀는 포로가 되었다가 교살되고 리어는 번민하다가 죽는다는 것이 주된 줄거리이다. 버금되는 줄거리는 성실한 적자(嫡子) 에드거를 멀리하고 불실한 서자 에드먼드의 감언(甘言)을 믿다가 몰락하는 글로스터 백작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극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리어왕이 폭풍의 광야에서 광란하는 장면인데, 여기에 고뇌하는 리어왕에게 불후의 광대적인 성격을 부여하여 드물게 보는 비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해 영국의 비평가 램은 보통 사실극(寫實劇)의 구성과는 너무 동떨어진 극적 천재가 발휘되어 '상연 불가능'하다고 극찬을 했는가 하면, 톨스토이는 가혹한 평을 하는 등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멕베스 영화 주인공 (1971)
[맥베스(Macbeth)] (1605)
1. 등장인물
(1) 맥베스: 마녀의 예언대로 왕위를 가지게 되나 또 다른 예언대로 왕위를 잃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인물.
(2) 맥베스의 아내: 남편을 사주하여 왕위에 오르게 했으나 나중에는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하는 여인.
(3) 뱅코: 맥베스의 동료였으나 예언에 겁이 난 맥베스에게 죽음.
2. 작품의 주요내용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와 뱅코는 개선 도중 3명의 마녀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들은 맥베스에게 "코다의 영주, 미래의 왕", 뱅코우에게 "자손이 왕이 되실 분"이라고 부른다. 맥베스는 첫 번째 예언이 쉽게 들어맞자 그 다음 예언도 하루빨리 이루고 싶다는 야망을 품게 되어 마침내 남편만큼이나 욕심이 많은 아내와 손을 잡고 일을 도모한다. 국왕 던컨 부자가 손님으로 자신의 성에 방문한 것을 호기로 삼아 마침내 그는 잠들어 있던 던컨을 살해한다. 그리고 도망친 왕자들에게 그 혐의가 돌아가게 흉계를 꾸며 맥베스는 왕위에 오른다. 그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기에 눈엣가시로 여겨지는 뱅코 부자를 없애기 위해 자객을 보낸다. 그렇지만 뱅코만 살해되고 그의 아들은 도망친다. 그후 뱅코의 망령에 시달리고 귀족들에게도 의심을 사게 된 맥베스는 다시 마녀들을 찾아가 자신에게 예언을 내려줄 것을 청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맥베스에게 조심하라고 이르며, 여자에게서 태어 난 자는 맥베스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며 버넘 숲이 던시네인 언덕을 향해 움직이기까지는 괜찮다고 말해준다. 맥더프가 잉글랜드에 있는 왕자 맬컴 곁으로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은 맥베스는 그의 처자들을 모두 살해한다. 이로 인해 귀족들의 반감을 사게 되고 맥베스의 부인은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맬컴을 옹립한 잉글랜드 군이 진격해들어오고 거기에 스코틀랜드의 귀족들까지 합세한다. 그들이 버넘 숲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꺾어 몸을 숨기며 성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을 때 맥베스는 버넘숲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전장에 나가 맥더프와 만나게 되는데, 맥더프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찢어진 어머니 태내에서 꺼내진 자라는 말을 듣게 되다. 절망에 빠진 맥베스는 결국 맥더프의 손에 의해 처치되고 맬컴이 왕좌에 오른다.
3.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1) 4대비극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인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의 역사극에서 모티브를 취재한 것으로 1606년 덴마크 왕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상연하기 위해 쓴 것이다. 외형상으로 볼 때 가장 짧으며 단일한 내용, 급속한 전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포와 절망 속에서 죄를 더해 가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고독이 표현되어 있는 대사의 시적 완성도가 높은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2) 이 이야기는 살인에서 시작하여 살인으로 끝나며 피가 피를 부르고 무대 한쪽이 피바다를 이룬다. 어떤 이는 [맥베스]를 실제로 상연해서 "세계가 피의 바다로 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다면 그 연극은 실패작"이라 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작중인물들에 대한 심리적 경향이 매우 특이하게 장식되고 있는데, 주인공인 맥베스와 그의 부인에 대한 성격묘사가 그러하다. 맥베스는 애초에 야심은 있었지만 이를 실천할 능력이 부족하고 마음이 약하여 고민한다. 자신이 왕위를 찬탈하는 것이 반역죄임을 알고 있고 그로 인한 인간적인 번민에 사로잡히게 되나 그의 부인은 이와 반대로 양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욕이 많은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맥베스가 왕위에 오르자 상황은 정반대로 진행된다. 양심이 남아 있던 맥베스는 미래의 상황에 불안을 느끼고 위험인물들을 처단하며, 그의 아내는 지난날의 죄책감에 시달려 결국 몽유병환자가 되어 비참한 생의 종말을 고한다.
(3) 한마디로 이 비극은 야심의 비극임과 동시에 양심의 비극이다. 장군인 맥베스가 던컨 왕을 죽이고 왕관을 쓰지만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양심의 반격과 신하들의 반란으로 무참히 죽는다는 인과응보의 비극이다. 이처럼 인간이 자기 분수에 넘어 지나친 야심을 갖게 되면 이것이 바로 인간파멸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맥베스]가 그리스적이라는 극평가들의 지적은 타당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리스 3대 비극시인의 작품들 역시 공통적으로 '인과응보'의 원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햄릿(Hemlet)](1601)
1. 등장인물
(1) 햄릿: 부왕의 독살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방황과 고통 속에서 살다 죽는 왕자.
(2) 거투루드: 남편인 왕을 독살하고 남편의 동생과 결혼하는 부정한 여인
(3) 클로디어스: 햄릿의 숙부로 형의 아내와 간통하고 형을 독살한 뒤 왕이 된다.
(4) 오필리아: 햄릿을 사랑하는 재상의 딸로 부친의 죽음으로 광란상태에서 익사함.
2. 작품의 주요내용
덴마크의 왕자인 햄릿은 얼마 전 갑자기 죽은 햄릿 왕과 왕비 거투루드의 아들이다. 왕비는 남편이 죽고 얼마 후 왕위를 물려받은 시동생 클로디어스와 결혼하는데, 이는 아들 햄릿에게 있어 부친의 죽음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마침내 부왕의 망령이 아들을 찾아와 숙부인 클로디어스가 거투루드를 유쳬構í 자신을 독살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복수를 부탁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햄릿은 그 망령이 자신을 미치게 만들려는 악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복수하기를 주저한다. 그는 숙부의 의심스런 눈길을 피하기 위해 거짓으로 미친 척하며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아에게도 냉랭하게 대한다. 마침 그곳에 유랑극단이 들어오자 햄릿은 숙부를 떠보기 위해 국왕살해의 연극대본을 써서 상연케 한다. 그것을 본 클로디어스는 안색이 변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후 햄릿은 기도를 올리고 있는 무방비 상태의 숙부를 발견하게 되고, 그의 죄를 확신하게 되지만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다. 햄릿은 문 뒤에서 숨어 엿듣고 있던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숙부로 오인하여 그를 죽이고 이에 충격을 받은 오필리아는 머리가 돌아 물에 빠져죽는다. 이윽고 이 일로 햄릿을 의심하게 된 클로디어스는 그를 영국으로 보내고 영국왕에게 그를 죽여달라고 부탁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오필리아의 오빠 레어티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귀국하고 왕은 감언이설로 그를 속여 독을 바른 칼로 왕과 왕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햄릿과 펜싱시합을 하게 한다. 햄릿은 상처를 입지만 그 칼을 빼앗아 레어티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죽어가는 그의 입을 통해 왕의 음모를 알게 된다. 그러는 사이 왕비는 국왕이 햄릿에게 마시게 하기 위해 준비해둔 독주를 마시고 숨이 끊어지며 햄릿 역시 국왕을 죽인 뒤 숨을 거둔다.
3.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한 마리의 새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신의 섭리다."
이 작품은 중세이래 덴마크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내려오던 슬픈 왕자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영국문학은 물론 세계 문학 속에 항상 새로운 문제를 제공해주며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매력이 발견되는 작품이다. 햄릿에 관한 연구논문이 방대한 것처럼 이 작품을 복수비극, 성격비극, 사랑의 비극, 문제비극, 정치극이라고 다양하게 불리는 이유도 제각기 다른 관점에서 본 해석의 차이 때문이리라. 햄릿은 부친의 죽음이 자기 모친을 왕비로 삼고 현재 왕이 된 숙부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망부의 음성을 듣고 고민 중, 이 말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극중극의 계략을 꾸며 숙부가 당황해하는 행동을 보고 망령이 한 말이 진실임을 발견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놓쳐버릴 수 없는 것은,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도 그가 머뭇거리면서 결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가 오늘날까지도 가장 논쟁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 점에 대해 햄릿이 사색적일 뿐 성격의 담대성이 없었다는 성격적 무능설, 삶에 대한 비판의식이 너무나 예리해 행동이 미처 따르지 못했다는 비관론, 또는 도탄에 빠진 덴마크를 우선 구해야 되겠다는 구국 사명설, 햄릿은 복수를 부도덕이라고 치부하여 고민에 빠졌다는 양심설, 심지어 숙부이지만 지금은 부왕이 된 왕에 대한 시기심으로 어명에 복종하고 싶지 않았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설 등 매우 다양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햄릿이라는 인물의 성격은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남기고 있는데, 이 인물의 특징은 19세기이래 돈키호테의 행동형(투르게네프의 분류)과 대조되어 문학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찍이 괴테와 콜리지가 지적한 대로 '순수하고 내성적이며 우울한 성격'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어왔으나, 금세기에 들어오면서 냉소적이고 공격적인 '강한 햄릿'의 해석이 유력해지고 있다. 햄릿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음악과 이미지가 결합된 빛나는 대사다. 햄릿이 마지막 대사 "남은 건 침묵뿐이로다" 하고 읊으며 숨졌을 때 고요하고 한없이 숭고한 심정에 젖게 되며 그 순간 우리의 영혼은 그 높은 곳을 향해 비상한다.
[오셀로(Othello)] (1604)
1. 등장인물
(1) 오셀로: 베니스정부에 근무하는 귀족출신으로 무어 인. 단순하고 소박한 낭만적 이상주의자로 이아고의 간계에 속아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고 자살함.
(2) 데스데모나: 순진하고 아름다우며 자아각성을 할 줄 아는 여성. 오셀로의 아내.
(3) 이아고: 교활하고 야망이 많은 오셀로의 기수.
(4) 카시오: 충실한 군인이며 오셀로의 부관.
(5) 브라반시오: 원로원 의원이자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2. 작품의 주요내용
베니스 공국의 원로 브라반시오의 딸 데스데모나는 흑인 장군 오셀로를 사랑하여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때마침 투르크 함대가 키프로스 섬을 향한다는 보고를 받고 오셀로는 그 섬의 수비를 위해 아내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출발한다. 오셀로의 기수 이아고는 바라고 있던 부관 지위를 카시오에게 빼앗기자 앙심을 품고 두 사람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키프로스 섬에 도착한 날 밤 이아고는 주정이 심한 카시오에게 일부러 술을 마시게 하고 소동을 일으키게 하여 오셀로로부터 파면당하게 하는 한편, 데스데모나를 통해 카시오의 복직운동을 하도록 권유한다. 그 뒤 오셀로에게는 카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밀애중인 것처럼 보고하고, 오셀로가 그녀에게 주었던 귀한 손수건을 아내 에밀리아를 시켜 훔쳐오게 하여 카시오의 방에 떨어뜨려두고 거짓 증거를 만든다. 인간심리의 약점을 이용한 이아고의 교묘한 거짓말을 믿어버린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침대 위에서 목졸라 죽인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오셀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이아고는 가장 잔혹한 처형을 받게 된다.
3.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작품인 [베니스의 무어 인]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가정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은 햄릿이나 리어 왕의 경우처럼 주인공이 겪는 갈등으로 인해 나라가 흔들리고, 주인공의 죽음과 더불어 사회질서도 회복되고 주인공의 영혼도 구제된다는 내용과는 달리, 주인공의 운명과 국가의 운명은 아무 관계가 없으며 흑인 중년남자와 백인처녀 사이의 결혼은 비극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비평가 토머스 라이머가 지적한 대로 [오셀로]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신분을 초월한 축복받지 못한 결혼의 비극, 여자들은 손수건을 잘 관리할 것, 남편들은 질투를 하기 전에 과학적인 증거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두 남녀의 결혼에 문제가 있긴 했으나 악의 화신인 이아고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조화된 음악의 세계였다. 흔히 오셀로를 사랑의 비극이라고 평하는 것은 흰눈처럼 완전무결한 사랑이 오래된 탑처럼 무너져가는 실상이 이 작품의 주제이기 때문이리라.
질투심에 불타는 오셀로가 연연한 꽃잎처럼 잠든 데스데모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랑의 감정과 배신감이 부딪쳐 내적 투쟁이 일어나고 결국 자신의 삶의 보람이자 등불이었던 아내를 죽인다. 그러면 이아고는 왜 그와 같은 음모를 꾸몄을까? 그것은 '동기가 없는 악' 즉, 이아고는 악 그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악을 행한다는 콜리지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오셀로의 영혼을 어둡게 했던 절망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비로소 구제된다. 그가 데스데모나의 시체 위에 쓰러져 통곡하며 이아고의 흉계를 깨달았을 때, 데스데모나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오직 자기만을 사랑했다는 것을 각성했을 때, 자기의 과오를 뼈저리게 느끼고 여지없이 패배했음에 눈을 떴을 때 오셀로는 사랑의 살인자인 이아고에게 승리하는 것이다. 즉, 절망 속에서 죽은 맥베스와는 달리 오셀로의 죽음은 죽음으로써 영혼을 구제받고 있으며 그를 사로잡고 있던 질투의 올가미를 벗어나 깨끗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어 우리 앞에 찬연하게 떠오른다.

셰익스피어 작품(4대비극) 명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