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이 작품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던 건 지난 2002년 더 뮤지컬에 실린 이수진씨의 아모르 리뷰를 읽고부터 입니다. 그때는 음악이 어떤 건지, 원작이 어떤 건지 하나도 몰랐는데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았던 건 바로 소재의 기발함 때문이었죠... 그리고 작년 가을... 헤드윅 공연장을 빈번하게 드나들면서 광고를 보게 되었죠... 벽을 뚫는 남자... 홍보를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확신은 못했으나 제목에서 비롯되는 내용 때문에 아모르와 동일한 작품일 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기대를 갖게 되었답니다. 게다가 프랑스 뮤지컬을 오리지널 내한이 아닌 우리 배우들로 공연을 한다니 어떻게 나올지 굉장히 궁금했죠...
2.
먼저.. 하나의 장면으로부터 시작해봅시다.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파란색 실크 바지와 아랍풍의 의상을 입은, 절대 의사처럼 안보이는 한 남자가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가 그 공간으로 벽을 통과해서 들어옵니다. 벽으로 들어와서 놀라셨죠? 라고 하면서... 그걸 보면서 의사는 말합니다. 아니 반가워요. 환자가 너무 오랜만이야... 그리곤 남자의 증상을 진료하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바로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벽을 넘나든다는 것은 분명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환상’입니다. 그런데 이걸 받아들이는 의사는 전혀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진료를 해주거든요. 이 일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겠죠... 저는 이 부분이 벽을 뚫는 남자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네요. 바로 이 작품이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면서, 환상과 실재의 경계를 묘하게 일그러뜨리는 작품이라는 말입니다. 원작자인 마르셀 에메의 작품을 몇 가지만 살펴봐도 현실과 비현실, 기발한 상상력과 장난스러움...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죠. 그러니 이 작품을 내러티브나 줄거리를 따라가며 읽어 내려는 시도는 사실 무의미하다고 봐야합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여타의 다른 작품들 같은 드라마의 틀로 보는 건 이야기의 절반을 놓치는 일이거든요. 이 작품에서 정말 흥미로운 건 드라마적인 개연성을 벗어나는 순간, 비집고 나오는 동화적 상상력과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니깐 말이죠... ^^
3.
다들 아시다시피 이 작품의 원작은 너무나 짧은 단편소설입니다. 당연히 극화되기 위해선 등장인물도 더 필요하고, 주인공의 캐릭터에 색깔도 더 입혀져야겠죠. 그리고 주인공의 러브스토리도 빠질 수 없을 테구 말이죠... 사실 소설에서는 듀티율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가루가루로 자유를 충분히 즐기다가, 마지막 즈음에 프랑스를 떠나기 직전 이사벨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사벨의 등장후 단 두페이지가 넘어 가면 소설이 끝나버리구요. 꼭 이사벨이 듀티율을 벽에 갇히게 하기 위해서 등장한 인물 정도로밖에 안느껴지게 말이죠.. ㅋㅋ
뮤지컬에서는 듀티율이 극 중반에 이사벨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고의적으로 감옥을 가게 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소설에는 없었던 재판 장면이 추가되어 나름대로 극적 반전(?)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듀티율과 이사벨의 사랑이 맺어지게 되는 것이죠.
3.
사실 저는 쇼노트에서 이 작품을 들여온다는 소릴 처음 들었을 때, 왜 하필 이 작품을 들여올까 궁금했거든요... 왜냐하면 대부분 외국에서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들만 들여온다고 해도, 국내에서의 성공이 정확히 보장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일단은 제가 알고 있는 정보가 아모르 밖에 없었으므로) 브로드웨이에서 그다지 썩 흥행에 성공하질 못했던 걸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프리뷰를 31회를 했는데 정작 본 공연은 17회만에 막을 내렸다고 하니 뭐 말다했죠.. ㅋㅋ 그런 작품을 굳이 들여오는 이유가 궁금한 동시에, 왜 브로드웨이에선 실패를 했었는지에도 관심이 가더군요... 그래서 살짝 짚어 볼까 합니다...
미국에서의 인지도가 낮아서 제목을 아모르로 바꿨다고는 하지만, 제목 참 생뚱맞죠? ㅋㅋ 브로드웨이에 올려지면서 당연히 미국적인 색채가 많이 첨가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출을 인투더우즈의 연출가이기도 했던 제임스 라핀이 맡았다고 하는데, 그럼 충분히 이 작품의 특징인 동화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부분들을 잘 살렸을 꺼 같은데 말이죠.. 실패의 이유가 뭘까 살펴보니, 그 당시에 헤어 스프레이, 플라워 드럼 송, 맨 오브 라만차등 대작과 함께 공연이 올려졌기 때문에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중소형 작품이라서 외면당하기가 십상이었더라구요. 게다가 브로드웨이식 작품에 길들여져 있던 관객들에게 유럽 스타일의 재즈는 아름답긴 하지만, 뭔가 강렬함, 드라마틱함이 부족했던 것이구요..
이런 부분들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실패의 원인이구요... 제 생각에 실패의 가장 큰 원인중에 이 두가지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 했었다고 생각됩니다... ㅋㅋ
우선 원작과 비교해서도 그렇고, 다른 나라의 버전을 비교해도 그렇고, 아모르에서 좀 이해가 안되었던 것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원작에서는 듀티율이 이사벨과 사랑을 나누고 나오다가 벽속에 갇히거든요. 프랑스버전과 사계버전에서는 이사벨과 사랑을 나눈 다음 날, 그녀를 다시 찾아가다가 벽에 갇히구요. 그런데 브로드웨이 버전에서는 이사벨과 사랑을 나눈 다음 날 거리에서 그를 보고 이웃들이 벽을 통과해보라고 부추겨서, 아스피린을 먹고 벽을 향해 뛰어들다 갇힌다고 하더라구요. 거참... 어이없는 설정 아닙니까.. 대체 왜 이렇게 코미디도 아닌, 그렇다고 비극도 아닌 이상한 결말을 만들었는지... ㅡㅡ;;
그리고 원래 50여곡이었던 것을 브로드웨이 버전에서는 28곡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하나의 넘버에 여러 곡을 이어 붙였다는 거죠... 그러면서 빠진 곡도 있고, 새로 추가된 곡도 있구요. 여기서 아쉬운 건 형사와 간수의 이중창, 변호사의 노래 같은 곡들이 빠졌다는 겁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코믹한 노래들이잖아요... 작품의 전체적인 이야기에 그다지 클라이막스라고 부를 만한 고조가 없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고 평면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이런 부분들을 보강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들 코믹한 노래들인데... 이들 캐릭터들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어서 단순히 그 부분만 웃음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 극 전체를 좀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곡들인데 말입니다.
이 두 가지만 보더라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벽을 뚫는 남자라는 작품의 재미가 반으로 확 줄어들지 않습니까? 왜 브로드웨이에서 금방 막을 내렸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시죠? ㅋㅋ
4.
그리고 지금 토월에서 올려지고 있는 우리 공연...
마치 샤갈의 그림을 보는 듯한 예쁜 색감의 조명과, 40년대 파리 몽마르트 언덕을 재연한 듯한 무대, 그동안의 어떤 프랑스 뮤지컬과도 다른 느낌의 음악등이 잘 어우러져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는 거 같네요. 조그만 단어 하나의 차이로도 관객들을 극속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이지혜씨의 번역도 너무나 멋졌구요. 배우들 각자가 캐릭터에 맞게 스스로 안무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최대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게 만든 임도완 연출님도 극과 잘 어우러진 듯 보이구요. 각각의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동작들을 유심히 살펴보시면서 그 의미를 캐치해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듯 싶네요... ^^
게다가 12명의 배우가 23명의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이들의 다양한 변신이 극의 재미를 부가 시키는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죠..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유발시키는 코믹함도 있지만, 그 밑바닥에 깔려있는 프랑스 특유의 지루함이 보이기도 하구요.. ㅋㅋ 일단은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타의 작품과 다른 새로움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쯤 보시는 게 좋을 듯 싶어요. 사실 뭐 그다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저는 박상원씨의 듀티율은 상당히 지루하게 봤습니다만.. ^^;; 그럼에도 기준오빠의 듀티율을 볼때는 그 사랑스러운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모든 게 다 커버가 되더라는... 이 못말리는 애정이라니... ㅋㅋ
5.
마지막으로 생각해 봐야 할만한 흥미로운 부분....
듀티율이 굳이 문으로 안들어가고, 벽을 통과하려다 벽속에 갇히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요..
작품은 시종일관 자유로운 삶을 예찬했잖아요. 공무원이나 검사는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일반 시민들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이죠.. 그래놓고는 마지막에 듀티율을 벽에 가두는 것은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어차피 뭐가 정답이라고 정의 할 수는 없으므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봤답니다..
- 듀티율이 가루가루가 된 후 자유로운 행동을 (도둑질이나 은행을 털거나 하는) 한 대가로 벌을 받는 것일 수도 있죠.. (이건 마르셀 에메의 다른 작품들을 보아도 짐작이 가는데요.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가끔 결말만 놓고 보면 소름끼치게 무서운 부분들도 있거든요... 마치 잔혹동화... 뭐 이런 것처럼.. ㅋㅋ)
- 이사벨과 듀티율의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을 그대로 영원히 유지하도록 박제시킨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답니다. 이건 듀티율이 부르는 가사에도 있죠. ‘영원히 계속 되기엔, 너무나 아름다웠나.. 마침내 찾은 내 사랑..’ 이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원래는 벽을 뚫는 능력이 없던 이사벨도 듀티율과 함께 벽에 갇히잖아요. 이것 또한 이들의 사람의 영속성을 보여주려고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 벽에 갇히는 것 자체에 듀티율이 만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볼 수가 있겠죠. 초반 가사에도 나오지만, 벽에 둘러쌓여 있을 때, 그런 삶에서 안정을 느끼면서 살아왔으니까요. 그러니 그런 평범한 삶에서 행복을 느껴라... 평범한 보통의 삶을 예찬한다는 의미인거죠. 듀티율이 극중에서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은 아름답죠. ’라고 말하기도 하구요.
- 이걸 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벽이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우리의 무한한 욕망이면서 또한 반대로 아무리 애써도 결코 이루지 못할 우리의 현실적 한계를 나타낸다고 얘기할 수 있잖아요.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서라도) 그렇게 살아봐도, 그래도 결국 너는 원래의 너 자신일 뿐이다... 한계란 것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뭐 이런..
- 벽을 통과하는 능력과 자유로운 삶을 대립 관계로 본다면... 듀티율이 극단적인 자유를 얻게 된 것이 너무 갇혀 있었기 때문이니깐 말이죠.. 오히려 그래서 그를 벽에 가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 반대로 평범함과 특별함을 대립관계로 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동질의 개념일 수도 있겠죠. 관점의 차이에 따라 평범함과 특별함의 개념이 다르게 정의되니깐... 우리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 가에 따라서 그 삶이 평범해 질수도, 혹은 특별해 질수도 있는 것과 같은 이야기겠죠...
아뭏튼... 이 작품 의외로 생각할 꺼리들이 아주 많은 작품이더라구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구요... 나머지는 세 번째 보고 와서 정리를 좀 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