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암산[天岩山, Cheonamsan]
경상남도 통영시의 도천동에 있는 산이다(고도 : 258m). 통영의 주산인 여항산에서 서쪽에 있어 통영의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산이라고 한다. 조선 전기까지의 지리지에서는 지명을 찾을 수 없고, 『통영지』에 '천함산(天函山)'으로 적고 있다. "통제영의 서쪽 5리 지점에 있다. 크고 작은 괴석이 많이 있어 농암(籠巖)이라 부른다."고 수록하였다. 지명 유래는 산 능선의 큰 바위들이 마치 함(函)처럼 생긴 가구인 농(籠)을 포개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어, 이 바위들을 '농바우', 산봉우리를 '농바우골산', '농바우산'으로 부른 것을 한자 천함산으로 옮겼다는 설, 이 산의 바위가 하늘까지 닿을 것 같다고 하여 천암산(天岩山)으로 불렀다는 설, 그리고 바위가 많다고 하여 천암산(千岩山)으로 부른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한다.
출처:(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통영 백운서재 [統營 白雲書齋]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1803년 백운 고시완(高時浣)이 천암산(天岩山) 기슭에 건립한 서재로 가난한 집 자제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치던 서당(書堂)이다. 바위틈에서 샘물을 끌어다가 서재 앞뜰에 조그만 못을 만들고 주위에 꽃과 나무를 심어 아담한 정원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서재의 뜰에는 못과 대나무 등 옛모습 일부가 남아 있고 유림에서 매년 음력 8월의 하정일(下丁日)에 차례(茶禮)를 지낸다. 선생의 자는 문언(文彦), 호는 백운암(白雲菴)으로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두뇌가 명석하고 성품이 호방하여 학문에만 전념할 뿐 출세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실학(實學)의 연구에 몰두하여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고 이(理)와 기(氣)의 흐름을 밝히는 데 전심전력하였다.
평생 학문과 교육에만 전념하던 선생이 1841년(헌종 7) 12월 21일 59세로 타계하였을 때 제자들이 태평동(현 인평동) 국재언덕에 유택을 마련하고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선생을 추모하여 제자들은 강당 뒤 북쪽에 사우(祠宇)를 세워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백운에 대한 일화가 많은데, 역(易)에 달통했던 고인들의 일화가 대개 그렇듯 신비적으로 채색되어 전설화되어 전해지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통제영에서 군점행사를 벌이던 어느 날, 서당의 학동들이 강구안과 앞바다에서 펼쳐지는 수조(水操)를 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백운은 학동들을 불러 앞뜰의 못 주위에 앉혀놓고 못가의 계수나무 잎사귀를 손으로 훑어 못에 뿌리니 잎사귀 하나하나가 전선(戰船)으로 변하더니 대오를 지어 수조를 취하는 것이 일사불란하였다고 한다.
출처:(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통영 백운서재 (統營 白雲書齋)
2022-11-08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