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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웅 선교사 가족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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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 교 현 장 ☆┃ 스크랩 한국 사람이 감당해야 할 불교권 선교(유은식목사)
☆~구름꽃~☆ 추천 0 조회 99 11.06.09 21: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 사람이 감당해야 할 불교권 선교


유은식 목사(전 티베트선교사, 산돌성결교회 담임)


   불교는 지금 그리 영향력 있는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불교권 선교에 다소 소홀한 면이 있다. 불교권에 기독교선교사가 들어간 역사는 아주 오래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슬람교는 상대적으로 과거 전통 불교내지 힌두교지역을 이슬람화 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많은 나라와 민족에서는 불교가 가장 중요한 종교이며 그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또한 이제는 불교도 다른 민족과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불교권에서 복음화를 이룬 한국기독교가 불교권 선교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논의하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Ⅰ. 불교권 선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1. 한국인 선교사의 선교관심 편중현상


  요즘 한국에는 이슬람권 선교에 많은 관심이 있다. 전세계미전도종족의 상황을 볼 때 다소 편중되어 있다. 이 쏠림현상은 서양기독교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이슬람권 선교에 집중하고 있을 때 아시아의 20억에 가까운 힌두교권, 불교권의 영혼들이 복음에 소외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 전략을 계획하신다면 이 편중된 현상을 안타깝게 보실 것이다. 우리는 서양사람만큼 이슬람을 경험해 보지 못했고 서양인들은 우리만큼 불교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오랜 관계역사로 이슬람을 잘 아는 서양 사람들에게 이슬람권 선교를 맡기고 우리는 불교권을 감당해야 한다. 이 작은 나라 산마다 절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불교전문가이다. 서양 사람들은 동양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오래 걸리지만 한국인들은 교과서를 통해서라도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라는 말 정도는 안다. 이런 문화, 종교적 배경이 불교권에게로의 접근을 쉽게 한다. 그리고 한국은 바로 이 불교권 국가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화 된 나라이다. 그러니 우리가 당연히 이들의 복음화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2. 최근 불교의 영향력 확대현상


  불교 인구는 2005년 통계에 의하면 4억이라고 한다. 한편에서는 13-15억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근 불교의 특이한 점은 전통불교국가에서는 이탈자가 나오는 반면 서구에서 교회를 등지고 불교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불교의 대중화이다. 2001년 11월 호주 시드니에서 불교 전시회를 했는데 대중화 작업은 성공을 거두었고 현재 호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는 불교라고 할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산속에 있는 절이 상가로 오고 있다. 


  둘째, 불교 선교사들이 많이 있다. 2001년 미얀마 양곤에서 새로운 소승불교 선교훈련 대학이 개교하였다. 2000년 7월 방콕 포스트지에 의하면, 200명의 산족들이 태국 공공복지국과 불교도들의 지원을 받아 승려가 되는 의식을 행했다. 한국 승려들이 미국에 가서 불교를 전하고 많은 젊은이들을 한국의 사찰에 보내어 훈련받게 하고 있다. 티베트승려는 한국 사찰에 와서 가르치고 있다.


  셋째, 거대하고 화려하고 비싼 사찰들의 건축이다. 무슬림 국가인 말레이시아에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절이 세워졌다. 아프카니스탄의 고대 불상이 파괴되었지만 근처의 무슬림 국가인 타지키스탄에 불상이 다시 복구되었다. 2002년 중국 남부의 운남성에는 거대한 불교종합관이 세워졌다. 최근 불교국가인 미얀마의 고대 도시 파간에 있는 5,000여개의 불상 중 2,000여개의 불상이 새롭게 다듬어 졌다. 2001년 8월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절이 미국의 로키산맥 근처에 세워졌다. 이 사찰은 유명한 티베트불교의 명상 승려가 주도하였는데 그는 서방 지역 종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150곳의 명상센터를 네트워크 할 정도이다. 


  넷째, 1950년대 이후 인도에서의 불가촉천민 계층의 집단개종운동이 있어 왔는데 최근 인도의 4개 주에 있는 하류층 700만 명이 집단적으로 불교로 개종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도 계속 개종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대규모의 집단개종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목할 만한 불교의 성장은 힌두교와 함께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영적 파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어서 한국이 불교권 선교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Ⅱ. 불교권 선교전략


  신 선교사님께서 불교권을 세 권역으로 나누셨는데 신비불교도 크게는 대승불교에 속하며 우리나라 역시 불교권국가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종교인구가 53.1%이고 전체인구에서 불교인구가 22.8%이니 종교인구 중에서는 42%이다. 신비불교권인 티베트불교권은 중국에 편입된 전통 티베트 지역과 그 서쪽의 라다크, 네팔, 부탄, 인도에 최근 이주한 티베트 난민들, 중국내의 위꾸 등 55개 소수민족 분류 중 8개의 민족, 몽골, 러시아의 칼믹, 투반, 부리아트 등 광범위한 지역, 다양한 민족에 분포되어 있다. 개인의 열반에 관심이 많은 소승불교와 달리 대승불교는 중생의 교화를 목적으로 함으로 타문화권, 특히 최근 기독교가 쇠퇴해가는 서양에 영향을 준다는 면에서 우리가 관심 갖고 적극 대응해야할 필요가 있다.     


  소승불교지역, 특히 태국내의 선교 상황을 보면 정치체제가 기독교의 선교를 허용하는 곳이어서 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자료도 만들 수 있고, 연간 신학교졸업자가 200명 내외라는 상황, 성시화 운동 같은 대형전도집회를 할 정도라는 대단한 선교성과에 감사하며 그 노하우가 다른 불교권에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현지인교회개척단을 형성하여 ‘암퍼마다교회’라는 구호를 외치며 현지인을 세워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큰 성과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온 신 선교사님께서 발제한 선교전략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이 대승불교지역을 포함한 불교권 선교전략을 정리, 제시해 본다.


  1. 불교의 교리에 대한 이해를 통해 기독교 변증적으로 저들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은 비교적 불교를 잘 이해하고 있다. 우리의 이런 전문성을 살려 선교적 입장에서 불교의 교리와 기독교의 교리를 비교, 연구하여 선교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승려출신 목회자가 자신의 간증과 아울러 불교 교리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기독교의 교리로 변증하는 책을 출판하고 그것을 각 불교권의 언어로 번역하고, 거기에 불교권 각 지역의 현지 불교상황을 접목시켜 출판하여 승려와 지식인, 지도층, 대학생을 중심으로 문서선교를 하는 것이다. 현지 불교세계관을 가장 잘 아는 현지인사역자가 이 작업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같은 불교권이라도 교리나 믿음의 형태가 조금씩 다른데 소승불교 지역과는 달리 신비적인 것을 좋아하는 티베트 사람들은 늘 기적을 바라며 고행한다. 몸이 아프면 오체투지를 하며 병 낫기를 구한다. 또한 소승불교에서는 열반이 목적이라면 티베트불교에서는 더 좋은 곳으로 윤회하기를 바란다. 저들이 종일 손에서 마니통을 놓치 않고 돌리며 스투파(사리탑) 모양의 대형 백탑을 돌며 심지어 바람의 힘으로라도 통을 돌리며 평생을 사는 것도 지금 보다 더 나은 환경으로 윤회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변증의 예로 윤회의 허점이 선교접촉점이 될 수 있다. 윤회는 이들에게 삶의 소망이 되어 있지만 사실은 이들을 윤회의 사슬에 매어 꼼짝 못하게 만드는 고통이다. 이런 고통을 당하는 인간을 구원하고 그것을 끊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고통을 짊어지셨다. 이것을 믿을 때 모든 환생(윤회)의 고리로부터 해방되고 윤회가 아닌 영원히 변치 않는 생명을 소유할 수 있음을 전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부활이 강조되어야 하는데 즉 예수가 업보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요, 윤회의 사슬에서 인간을 해방하기 위해 왔고, 또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부활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환생이 있다고 해도 재생에 불과하지만 부활은 새로운 창조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아가 전문적으로 승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를 훈련, 배출해야 할 것이다. 


  2. 선교사가 삶으로 저들에게 본이 되는 것이다. 태국에서 현지인들이 보혈의 능력을 전하는 것 보다는 예수의 성자적 삶에 더 역점을 두고 자연적이고 계획성 있게, 인간의 선심을 바탕으로 충분한 예산에 의한 사역을 더 선호한다는 상황설명은 다소 충격적이다. 그만큼 선교사의 삶이 선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고난의 역사 속에 시련을 아는 한국선교사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하신 것처럼 중국내의 티베트불교권에서도 50년 나라 잃은 슬픔 때문에 35년 간 일제의 압제에 있다가 독립한 한국에서 온 선교사를 좋아한다. 저들에게 거의 비슷한 외모로 저들의 옷을 입고 함께 먹으며 삶을 나눌 때 저들은 사랑을 느낀다. 자기들은 말로만 자비를 말하는데 예수와 그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행동하는 사랑을 한다며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한 티베트 교사가 있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믿어 왔던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자존감이 매우 강하다. 그들은 종교로서 불교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불교가 인간의 생사화복에 대한 선명한 답을 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불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는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종교라고 본다. 불교도들이 기독교가 외국의 종교라는 인식,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종교라는 인식을 갖는 한 불교사회에 뿌리내릴 수 없다. 티베트인들은 기독교를 덜 성숙한 불교로 본다. 이런 사람들에게 삶으로 다가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이 가난하다고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선교사는 영적 전쟁을 하되 그들에게 직접 불교는 사탄의 세력이라는 등의 표현을 하는 것은 저들의 마음을 닫게 만든다. 결국은 사랑으로 다가가야 한다. 기독교 변증을 통한 지성적 접근, 행동하는 사랑을 통한 감성적 접근, 기적을 바라는 티베트불교권에서의 능력사역을 통한 접근이 우리 한국선교사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불교권 선교전략이라고 생각한다.            


  3. 전문인 선교 또한 하나의 중요한 전략이다. 하나님 말씀 사역의 보조사역이지만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지역에서는 주된 사역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불교권 지역은 여전히 현대문명과 동떨어져 있고 가난하며 교육, 의료, 경제적 기반 등에서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돕는 사역이 좋은 선교접촉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티베트 지역에서 한 미국 선교사는 20년 가까이 사업으로 접근하여 티베트 사람들이나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본인은 물론 동역자들에게도 중국인 또는 티베트인 직원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후 티베트 땅에도 서양 선교사들이 먼저 들어와서 우물 파주기, 보건위생사업, 회사운영 등 사회개발(social development)프로그램이라는 보조사역을 선교의 주 사역으로 삼고 직접 전도는 자제한 채 충실한 기초 작업을 해 왔다. 그 뒤로 9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선교사들이 들어가 그들과 함께 영혼을 거두고 있는데 저들의 충실한 기초 작업의 열매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고 헬라세계를 잘 아는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께서(갈 2:8) 불교권 국가에서 복음화 되었고 불교를 잘 아는 한국선교사들을 불교인들을 위한 사도로 부르셨음을 인식하고 한국적 선교전략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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