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제문 혜완 장향규소장본
남편이 아내의 제문을 지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갑사제문은 더 더욱 귀한 편인데 재령이씨 부인(1912~1935)의 남편 진성 이윤항 선생(1915~2002)이 부인의 무덤에서 읽은 환갑제문(갑사,혹은 갑제.. 사망37년 후)이다. 이윤항 선생은 현 안동시 도산면 하계리 원촌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이조참의를 지낸 소계 이중두 선생(1836~1914)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새영감댁(통정대부,정3품 당상관)으로 불렸고, 고택은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었는데 하계파의 여론 집결처였다고 한다. 진성 이씨 파중에서 하계파에서 문과급제자가 가장 많았다.(진성이씨 문과급제자 총 60명 중 퇴계혈손 35명,범 하계파 21명)
현재 도산별유사 소임을 하고 있는 이동신(1958생)선생의 백부가 이윤항 선생이다.
이 한글제문은 25세에 출산을 하고 2주 후에 사망한 (1935년112월 23일에 출산하고 (양력1936년 음력 병자년,1935년 1월5일 졸) 아내 재령이씨는 석계 이시명 선생의 후손으로 딸 동길을 낳고 사망했는데 아내의 회갑일에 묘소를 찾아서 백처남 우석선생과 딸 동길(재령이씨 소생)
장남 동택(유천.1943년생) 차남 동작(1946년생.참전용사,2005년 사망)
두 아들과 함께 주과포혜를 올리며 추모하는 내용의 생일제문으로 심금을 울리는 글이다.
성천 류달영 선생이 젊어서 독일에 갔을 때의 일화인데, 조상에 대한 제사개념이 거의 없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에게 우리는 4대 조상을 받들어 제사를 모신다고 했더니 ,그가 대성통곡을 하며
"우리는 짐승이외다"라고 했다는 일화를 류달영 선생께 직접 들었다.
회상곡/진성 이윤항
오홉다 유인이여 임자정월 초오일은 고실유인 재령이씨 육십회갑 이 날이니 그대 간지 삼십칠년 유명을 달리하야 생사가 판이하나 그대가 있었으면 생존유경 아닐손가 곰곰히 생각하니 인간일세 헛부도다 그대 나이 십칠세에 우리집에 입문하여 이십오세 들어서며 천추에 한을 안고 이 세상을 떠났으니 그대 인생 어찌하여 그렇게도 짧았던고 그시 당한 나의 소조 청천벼락 아닐손가 노친슬하 기가막혀 비통함도 몰랐었고 강보에 핏덩이가 고고히 울었으니 세상 난지 이칠만에 어미젖을 잃었구나 참혹함이 어떠하랴 그시광경 살펴보면 산천도 울었었고 초목도 울었었네 이십이세 어린 내가 어이할 바 모르고서 양친부모 봉양지도 불효를 면할손가 천만고에 드므시든 우리 부모 자애로서 그대 감을 애통하고 그대 인생 불쌍타고 식음조차 잊으시니 이 일을 어찌하며 강보에 핏덩이가 장부남아 아니지만 남녀 관계없어 그대의 일맥이니 우리 부모 거동보소 그대 혈맥 전하려고 일심정력 다하시어 명 길기만 축원하고 유모정해 젖 먹이고 양유 사서 대신 이어 주야불분 성력이니 친어민들 더할손가 우리 모주 일심공력 본 이마다 감탄하고 본 이마다 눈물이니 나 어린 내 심정에 무엇으로 표현하며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 일생 다하기 전 부모 은덕 잊을손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인세가 허무하여 계미년과 신묘년에 양친부모 다 가시고 고고히 남았으니 지나간 내 일생이 역역히도 새로와서 이런 소회 절로 나고 그대의 인생 일세 새롭게도 생각나서 그대 행적 살펴보면 우리 나라 고족으로 영양땅 석포리에 재령이씨 성을 받아 운악 선생 후예로서 임자정월 초오일에 소석처사 빙부님과 유인권씨 빙모님의 사녀로 태어나니 소석처사 닦은 업적 수신제가 창립가업 문향에 뚜렷하게 유인권씨 행검보면 충재선생 후예로서 여중군자 득명으로 문장을 검하여서 만인들의 부인중에 추앙을 받었으니 대대승승 혁혁하여 삼한에 갑족이라 그대 비록 여자이나 남에게 자랑거리 이에서 또 있으랴 무진년 팔월달에 십칠세 어린 나로 성례를 이뤘으니 나의 아내 되었었고 우리 부모 칠순슬하 장자부로 되었었네 십칠세 어린이가 신부 노릇 힘이 없어 봉제사 접빈객과 구고에 봉양지도 어른게 못지 않고 동기간에 우애있어 효우돈목 그지 없고 매사에 명민하니 범사가 출등하니 친사로 기림 받고 향내에 칭송이니 우리 부모 쇠모지년 이로서 즐기시니 내 마음 절로 기뻐 칭송은 하였으나 불섬한 우리 가정 사사에 고생이고 십사세 어린 내가 천하 응동 면치 못해 무슨 꾀가 있었으랴 그대 마음 발 맞추어 이해하고 협조함을 전연히 몰랐으니 그대의 썩은 마음 오즉이나 많었으랴 가장 도리 못한 내가 무엇이 떳떳하랴 그대의 천성탐이 너무나도 명민하고 너무나도 알뜰하여 내가 미쳐 못한 생각 추호도 책망없이 미소로 대하여서 한날 한시 변치 않고 깨처 주고 도와 주니 부화부순 이 아니며 요조숙녀 이 아닌가 이렇게 지난 내가 장래 만복 누리려고 백년해로 기대하고 조상세업 이어 받아 아들 딸 낳아 길러 세업창대 혈육창대 태산같이 믿었더니 천도가 무심하고 조물이 시기하여 덧없이도 흩어지니 내 가정 파괴되고 나의 믿음 허사되어 창공에 뜨인 마음 갈 바를 몰랐었네 나의 행적 살펴보면 그대 간 후 사십성상 머지 않아 육십되니 나의 인생 황혼이고 육십평생 지난 경력 너무나도 파란 많아 기록하기 어려워서 나쁜 일은 생략하고 좋은 일만 몇 개 골라 구원에 잠든 영을 위로라도 하여볼까 계미년과 병술년에 장부 남아 둘을 두어 가계를 잇게 되니 조상들의 닦은 은덕 쌍수로 받으온 듯 맏자식 동택이를 재작년 구월달에 성취를 시켰으니 부아의 현숙함이 남에게 출등하고 지난 해 윤오월에 장손남아 얻었으니 골격이 준수하고 대물로 생긴 모양 우리 집 장래 대감 분명히 될 것이라 하늘이 돌보시고 조상 음덕 돌보신듯 여기에 기대됨이 크기로 한이없네 둘째놈 동작이는 아직은 미혼이나 이십칠세 장성하니 머지않아 성취하면 안착이 될 것이라 이럭 저럭 내 인생에 조선 사업 자손 사업 이것으로 황혼인가 인생허무 한심함을 절실히도 느끼오나 모두가 분이온듯 나에게 지워진분 이것이 끝이라면 한탄하여 무엇할까 머지않은 나의여생 자숙하고 안정하여 고이고이 지나다가 그대를 찾아갈 때 반가이 맞어 주오 오홉다 유인이여 원통한 그대 영을 무엇으로 위로할고 그대 일맥 동길이가 혈혈히 자랐으니 봉화땅 거촌리에 변씨댁에 출가시켜 일등가랑 맞았었고 사댁가문 혁혁하여 성덕 자품 그지 없고 변랑의 천성자품 명민하고 자상하여 번창 가정 이룩하고 일남오녀 육남매를 여금여옥 두었으니 장부외손 적다하나 외손놈 형근이가 기품이 장부다와 장래 만복 누릴 것을 태산같이 믿어지고 다음 외손 오형제가 면면이 여옥이니 이것 정말 즐거움이 그대 위해 위로되오 오홉다 유인이여 인생 허무 세월 허무 인간 육십 꿈 속에서 덧 없이도 흘렀었네 임자신정 푸른 하늘 구름 한 점 볼 수 없이 창창하게 맑었으니 그대 자품 상징인 듯 오진에 거친 우주 백설로 덮었으니 그대 심성 그렸는 듯 깨끗하고 청백함이 이에서 또 있으랴 창공에 조각달은 외로이도 반짝이니 그대 마음 표현인가 그대 체백 무덤속에 한줌 흙이 될지언정 아름답고 아름답던 그대 자품 귀여워라 그대 심성 귀여워라 그대 영혼 길이길이 내 마음 깊은 속에 자리잡고 지하여 영원히도 영원히도 떠나지를 마옵소서 그대 정녕 천상에서 선녀로 있으오리 그대 정녕 극락에서 호화롭게 지내오리 인간세상 못한 한을 천상에서 즐기오리 인간세상 못한 한을 극락에서 즐기오리 속세에 머문 내가 그대 갑일 형송하기 정리상 어려워서 그대 무덤 찾아오니 택아 작아 두 형제와 변실 내외 같이 오고 부아와 장손놈도 함께 와 참석하고 그대 백남 우석선생 팔순노구 불구하고 한양에서 천리길을 그대 위해 여기 왔오 그 밖 친척 다수 모여 주과포와 술 한 잔을 그대에게 드리오니 그대 정녕 영혼 있어 한없이도 반가오리 그대 정녕 영혼 있어 즐겁게도 먹으오리 내 소회 백분일도 표현은 못했으나 평생에 못한 정을 다소나마 풀까하오.終
첫댓글 망자의 회갑날 무덤에서 지내는 제사를 甲祀라고 한다. 先亡室의 환갑제사까지 지내는 아름다움을 이제는 잊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