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다. 누가 언제 창건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법당은 본래 암벽 위에 있었으나 오래되어 붕괴되려 하자 1676년(조선 숙종 2) 혜행(惠行)이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중창하였다. 그 뒤 여러 번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범종각,요사체등이 있고, 유물로는 1676년 절을 옮길 때 세운 보덕사중수비가 전한다.
보덕사 전경
보덕사 일주문
혜행스님 중수비
1672년(현종13년)7월,호남 영광 사람인 혜행스님이 바다를 따라 호남에서
보덕포까지 오는 동안 서호의 산수가 아름답고 볼만한 곳도 많았지만 이곳
보덕포야말로 그 중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었다.
이곳에는 이미 불상이 한 분 모셔져 있었으니 그 영험 또한 비길 데 없어
기도드리는 사람이 모두 소원을 성취하니 신기하고 기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불행이도 부처님이 모셔진 의지처가 불과 3~4척(1m정도)인데 2층
형식이며 단주는 겨우 한척(30m)정도로 암벽이 가설되어 있는데 붕괴의
염려가 있어 드나드는 신도들이 매우 위험하였다.
또한 조그만 요사체는 많은 비바람에 시달려 앞으로 10년을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나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지나칠 수 없어 모연을 만들어 신도들에게
시주를 청하였으며 석공으로 하여금 언덕을 깎아 계단을 만들고 집을 축조
하였다. 그 결과 이제는 10여명이 들어가도 떨어질 위험이 없게 되었다.
신도들의 공덕과 석공의 힘이 아니었으면 오늘날 이처럼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 수행 정진하는 전당을 이룰 수 있었을까! 이 사실의 전말과 시주한
사람들과 석공의 이름을 돌에 새겨서 오래도록 전하고자 한다.
(1676년 8월 7일. 화주승 혜행 기)
가파른 절벽위에 자리한 대웅전
어둠과 고통을 여의는 범종각. 사바 세계 모든 중생들에게 법계의 종소리가 울리기를.....
보덕사 범종
법당에서 바라다본 옛 보덕포의 전경
원래 이곳 보덕포는 바닷물이 내륙으로 깊이 들어와 있고 수심이 깊은
천해의 양항(良港)으로 육로 교통이 미비하던 예전에는 인천을 비롯하여
오도항, 한진, 부리포등의 항구와 내륙의 여러 지방을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보덕포는 매우 흥성하였고 보덕사에는
이들 출영객을 중심으로 먼 길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불도들의 발길이 끊일
때가 없었다. 하지만 1987년 8월부터 시작된 석문지구 간척지 개발사업에
의하여 1991년 11월 13일 석문방조제가 완성됨에 따라 바닷물이 끊기고
광활한 농경지로 예전의 흔적은 서서히 없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오도와 송광면이 바라보이는 탁 트인 전망과 해돋이 광경, 석양에
물든 광활한 평야에 펼쳐져 나가는 보덕사의 범종소리등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보덕사 대웅전
신검당 앞에 가꾸어논 어리연꽃
심검당 현판
심검당내 부처님
석문 방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