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있는 인과율(因果律)에 대한 소고
인과율은 이 세상과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법칙 중의 하나입니다. 인과율은 “어느 결과든지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어떤 원인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인과론도 깊이 들어가면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닙니다.
‘단일인과론’은 단 하나의 원인에 단 하나의 결과가 따르는 것을 말하며, ‘복합인과론’은 한 결과에 대한 여러 원인이 있거나 한 원인에 대한 결과로 여러 결과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외에도 인과관계에서 확률이 적용되는 ‘확률적 인과론’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인과관계가 단순통일성을 갖는 것을 '프팩탈(fractal) 인과론'이라고 하며, 인과관계가 비통일적이고 확률적이고 복잡하여 혼동을 초래하는 경우를 ‘카오스(chaos) 인과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미시세계에는 인과율을 따르지 않는 현상이 있으며, 반대로 거시세계에서는 카오스로 인해 인과율을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어떤 인과율이 있을까요?
성경에서는 크게 두 가지 상반되는 인과율이 있음을 봅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것이며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런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긴 합니다.
1) 인과율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 ; 우리의 구원과 관련되는 면
디모데후서 1:9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야곱과 에서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데 에서는 형으로서 당연히 장자의 권리를 취하여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1장 2-3절에서 “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보면 영원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인과율"을 대체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예정론”이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표현하지만 오히려 단순하게 성경대로 “은혜”로 표현하는 것이 더 하나님의 의중에 합당치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왜 야곱은 되고 에서는 아닌가? 우리는 이것이 왜 그런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 신비는 오직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으로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것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은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코 행위대로 곧 인과율대로 했다면 그 누구도 은혜를 입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합니다!
2) 인과율이 적용되는 경우 ; 심판과 보상 그리고 조성과 변화의 면
고린도후서 9:6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또한 주님께서도 생전에 심은 대로 거둘 것이라는 교훈들 곧 인과율과 관련되는 많은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 곧 그 분의 신성의 ‘사랑의 면’을 말하고 있다면, 구원 받은 자나 그렇지 못한 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의 삶에 적용되는 인과율은 신성의 ‘의의 면’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인과율이 없다면 하나님의 의는 표현될 수 없을 것이며, 당연히 ‘심판’과 ‘보상’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3) 믿는 자의 조성과 변화에 적용되는 인과율의 법칙
갈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씨를 뿌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겠지만, 그 영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사람은 그 영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회복역)
이 말씀만큼 우리의 영적 삶에 적용되는 인과율의 법칙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구절도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한 면으로는 믿음이 없는 자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한 면으로는 우리 믿는 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육체를 위하여 씨를 뿌리면 반드시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둘 것이고, 영을 위하여 씨를 뿌리면 영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거저 주심이 결코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행한 대로 그리고 행한 만큼만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심각성 안에서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위의 말씀에서 ‘씨를 뿌리는’에 해당되는 단어는 원문에서 ‘스페이로’(σπειρω)로서 ‘씨를 뿌리다’, ‘씨를 받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위의 문장에서는 현재분사/능동태로 쓰였습니다. 즉 씨를 뿌리는 그 시점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거둘 것이다’에 해당되는 단어는 원문에서 ‘데리조’(θεριζω)로서 ‘추수하다’, ‘수확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위의 문장에서는 미래시재/능동태로 쓰였습니다.
먼저 씨를 뿌리는 것과 거두는 것이 둘 다 능동태인 것은 뿌리는 것도 거두는 것도 나라는 것을 말합니다. 곧 因과 果의 주체가 자기 자신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 에스겔 18:20은 이렇게 말합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거두는 것을 말하는 동사가 미래로 쓰인 것과 관련해 보통 미래라고 하면 현재와 일정시간 단절된 장래에 올 것을 생각하기 쉽지만, 어떤 시점 이후에 계속 이어지는 상태나 결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본문에서 표현된 의미는 분사로 표현된 씨를 뿌리는 행위와 이후에 바로 이어지는 '지금'의 추수의 결과도 포함합니다.
따라서 위의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추수에 따른 결과가 장래에 얻게 될 것도 포함하지만, 현재에 얻게 될 결과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지금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지금 썩을 거둘 것이고 또한 장래 썩을 것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뜻과 그리고 지금 영을 위하여 씨를 뿌리면 그 영에게서 지금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또한 장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인 추수에는 엄격한 인과율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엄중함 앞에서 항상 두려움으로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지나 간 것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냉혹한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육체를 위해 뿌린 것은 결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인과율은 결코 우리의 사정을 보아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회한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가 얼마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영을 위하여 씨를 뿌림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지금 그리고 장래에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본문에서 한 가지 더 유의해야 할 부분은 ‘영을 위하여’와 ‘생명’이라는 두 단어입니다. ‘영을 위하여’는 원문에서 ‘영 안으로’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보다 우리의 위치가 더 중요함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선 바른 위치에 선 다음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영 안에서’ 행해야 합당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위 구절에서 ‘생명’은 ‘조에’를 말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얻게 될 수확물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곧 ‘조에’임을 말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우리 안에서 성분이 변하여 피가 되고 영양으로 변화되어 우리 몸을 조성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을 위하여 씨를 뿌릴 때 그것이 우리 안에서는 ‘생명’으로 조성되고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씨를 뿌릴 때 우리는 지금 그것을 수확할 것이며, 또한 장차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심는 것은 인스탄트 음식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은 어떤 씨를 뿌릴 것인가의 결단의 연속적인 순간들입니다. 그리고 오직 우리가 무엇을 택하는 가에 따라 썩을 것이냐 생명이냐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결정은 곧 우리의 선택은 결코 되돌릴 수 없습니다.
------------------------------------------------------------
<추기 ; 참고로 성경에 나타난 인과율과 관련하여 본문에서는 단순한 인과론에 관한 예를 들었지만 구약에는 조상의 죄가 자녀의 대에까지 미친다는 내용도 있고, 신약에서는 날때부터 소경된 자의 예에서와 같이 그 원인이 하나님의 뜻에 있는 예도 있으므로 획일적으로 인과율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첨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