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이야기
낙엽이 지기 시작한 어느 해 가을, 일연 스님은 자그마한 암자 안에서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이제 우리 고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무렵,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를 옮기고 아주 오랫동안 몽고와 힘겨운 대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몽고군의 잔인한 말밥굽에 나라 전체는 황폐해 지고 백성들은 눈물과 원망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고려는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백성들을 위로해 줄만한 일이 없을까?' 일연 스님은 요즈음 밤낮 이런 고민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삼국사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건 김부식이라는 학자가 책임을 맡아 지은 역사책이 아닌가? 그래, 여기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일연 스님은 그 날부터 밤잠을 설쳐 가며 <삼국사기>를 읽고, 또 그 내용을 요리조리 뜯어 가며 연구 했습니다. '이 책은 지배층의 얘기를 중심으로 쓰여졌고, 신라에 비해 고구려와 백제의 기록이 너무 미약한걸?' 일연 스님은 <삼국사기>의 특징이나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을 차근차근 적어 내려갔습니다. '어허, 이게 가장 큰 문제야. 어찌 중국에 조공하는 일이 아름다운 일이란 말인가? 때 맞춰 남의 나라에 예물을 바치는일은 나라의 수치이거늘...' 일연 스님은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무언가를 결심한 듯 암자 안으로 들어가 예불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작은 스님 몇명에게 책을 구해 오게 했습니다. '나는 승려이다. 그리고 우리 고려는 지금 원나라의 허수아비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 백성들 사이에 떠도는 불교 이야기며 전설 같은 온갖 이야기를 모아보자. 그 속에는 백성들의 생각과 당시의 상황들이 숨어 있지 않겠는가? 원나라에 짓밣힌 우리 민족의 전통을 살려 보도록 하자!' 일연 스님은 이런 결심으로 <삼국유사>를 써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호기심>
우리의 고대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는 <삼국사기>와<삼국유사>가 대표적이야. 우리가 잘 아는 고대의 많은 얘기들은 바로 두권에 실린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말이지. 그런데 이 두권의 책은 같은 고대 역사를 기록했지만 많은 차이점이 있어. 과연<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해결> 백성들의 삶이 살아있는 <삼국유사>
●◎ <삼국사기>의 역사적 가치
<삼국사기>는 임금의 명령에 의해 편찬된 역사책으로 김부식이 그 일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김부식은 신라귀족의 자손이자 권력있는 가문 출신의 유학자였습니다. 김부식이 활동했던 당시(12세기 전반)는 고려 사회의 내부 갈등이 점점 심해지는 시기였습니다. 왕권은 땅에 떨어지고 지배층은 분열되었으며 묘청의 난 같은 대규모의 난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삼국사기>의 편찬을 지휘하고 1145년에 마침내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삼국의 역사를 정리하여 새로운 역사책을 편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려의 지배세력은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선 지배질서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세로운 역사책은 당연히 유교적 역사관을 반영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편찬된 <삼국사기>는 되도록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내용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서술은 하되 편찬자가 창작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였지요. 그래서<삼국사기>를 고대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역사책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유교적 사대주의 역사관에 따라 고대사회의 역사를 정리 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습니다. 신화를 비판하고 단군조선의 역사를 빠뜨려 전통문화의 범위를 축소시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책을 '사대주의에 충실한 역사책' 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 <삼국유사>의 역사적 가치
<삼국유사>는 승려 일연이 1281년 즈음에 완성한 역사책입니다. 일연이<삼국유사>를 쓸 무렵, 고려는 무신의 난 이후 농민, 천민의 항쟁이 일어나고 몽고족과의 오랜 싸움끝에 결국 원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가장 큰 피해를 입은건 일반 백성들이었습니다. 일연은 전국의 절을 돌며 백성들의 모습을 지켜 보는 동안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삼국유사>는 바로 고통과 억압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구원과 희망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편찬된 것 입니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신비하고 이상한 일들을 중심으로 편찬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원나라의 간섭아래 흔들리는 민족적 자주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삼국유사>는 다른 역사책에 비해 백성들의 대한 얘기가 두드러집니다. 그들의 생활 모습, 신앙, 생각은 물론 전설, 향가 등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여 당시 백성들의 삶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두고 사대주의 유교적 역사관을 기준으로 썼다.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일들을 기록해서 역사책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철저하게 기록을 참고로 편찬되었기 때문에 삼국의 제도나 정치 등을 아는데 가장 기본이 됩니다. 또, <삼국유사>는 신화나 전설, 향가 등은 물론 일반 백성들의 생활을 아는 데 가장 가치 있는 자료 입니다.
▷ 지은이 : 김용란
▷ 출 처 : "역사로 만나는 호기심 51가지" < ● ▲ ■ 삼성출판사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