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귀에서 애월 가는 해안도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길이었다
밤이 짧았다는 얘긴 아니다
우린 애월 포구 콘크리트 방파제 위를
맨발로 천천히 걷기도 했으니까
달의 안색이 마냥 샐쭉했지만 사랑스러웠다
그래선지, 내가 널 업기까지 했으니까
먼 갈치잡이 뱃불까지 내게 업혔던가
샐쭉하던 초생달까지 내게 업혔던가
업혀 기우뚱했던가, 묶여 있던
배들마저 컴컴하게 기우뚱거렸던가, 머리칼처럼
검고 긴, 밤바람 속살을 내가 문득 스쳤던가
손톱반달처럼 짧아, 가뭇없는 것들만
뇌수에 인화되듯 새겨졌던 거다
이젠 백지처럼 흰 그늘만 남았다
사람들 애월, 애월, 하고 말한다면
흰 그늘 백지 한 장, 말없이 내밀겠다.
-엄원태, ‘애월’ 전문
이 시인, 시 잘 쓴다. 대구 모 대학 조경학과 교수로 있는 그는 난치병을 앓으며 병상에서 본 광경들을 쓴 시집을 낸 적도 있다. 아프니까 시가 아프다.
화자는 예전 그와 갔었던 애월 해안도로의 밤을 기억한다. 초생달처럼 샐쭉했으나 사랑스러웠던 사람. 허나 뭔가 기우뚱거렸다. 이제, 그 기억은 흰 종이같이 하얗다.
제주의 애월 해안도로는 언제부터인지 명소가 되었다. 예쁜 이름의 팬션, 카페들, 바다로 떨어지는 벼랑. 그 이름 ‘涯月애월’, 달의 벼랑은 시적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이와 온 달밤, 그 애월에 대하여 그가 떠나간 지금, 시 쓰지 않을 자 있을 것인가. 어떤 식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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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애월 하고 부르면 명치 끝이...'이정환샘 작품이 생각나네요.^^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