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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 예수 그리스도의 의 (The Righteousness of Jesus Christ) - 능동순종 주장에 대한 반론 -
이지끼을 추천 1 조회 423 23.09.26 07:00 댓글 7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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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9.29 08:46


    8)
    그런데 님은 “세례 중생론을 단죄하신 칼빈 선생님처럼” 이라고 하였습니다.

    칼빈이 자신의 “세례중생론”을 단죄했다는 말인가요?

    칼빈이 세례중생론을 단죄했다는 말은 어디서 들었습니까?
    아니면 님이 만든 말입니까?


    칼빈이 세례중생론을 단죄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제가 위에서 설명한 것 처럼 중세카톨릭의 “세례중생론”을 단죄했을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초대 교부들의 세례중생론과 카톨릭의 세례중생론은 다릅니다.

    칼빈은 초대교부들의 세례중생론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세례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추가했고
    우리가 따르는 것이 바로 칼빈이 추가한 이해입니다.

    그래서 현재 세례에 관한 우리의 신학이 초대 교부들의 신학과 달라진 것입니다.

    게다가 조나단 에드워드는 이에서 더욱 벗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학을 님이 따르는 것입니다.

  • 23.09.29 10:51

    @이지끼을 또또또 강조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모르는 유치원생에게나 해야 할 설명을 계속했던 저는 앵무새와 같은 도돌이표 토론에 지쳤습니다. 그러므로

    저 그만 스토킹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세요. 예? 부탁드립니다.
    저 그만 스토킹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세요. 예? 부탁드립니다.
    저 그만 스토킹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세요. 예? 부탁드립니다.

  • 23.09.29 10:54

    @이지끼을 또 도돌이표 토론을 하고 싶으십니까? 계속 저를 스토킹하고 싶으시면 “믿고”의 정체를 말씀해 보십시오.

    “믿고”는 어떤 믿음입니까?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를 “내 주님”으로, 성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믿음입니까?

  • 23.09.29 11:08

    @이지끼을 칼빈 선생님 세례론이 적힌 <마가복음 16장 16절 주석>은 TR-RE 님이 {개혁신앙 푸르내}에서 언급하신 것 같은데, 찾아 보십시오.

    “같은데,” 라는 말은 이도 저도 아니니, {개혁신앙 푸르내}에서 찾아보려면, 찾아보시고, 말려면, 마십시오. 제발 이지끼을 님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저 그만 스토킹하십시오.

  • 작성자 23.10.03 08:22

    @四季 朴埰同
    1)
    제 형편상 여기 시간으로 금, 토, 주일은 답변을 드리기 곤란합니다.
    거기 시간으로는 토, 주일, 월 이 되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님은 여러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William Hendriksen 이 자신의 신학을 지지하는 분인 줄 착각하고 있고
    Calvin 이 “세례중생론”을 단죄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님은 칼빈이 한 가지 만을 말했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칼빈의 기독교강요 글을 제시하고 설명까지 해 드렸는데도 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님의 착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요일 5:1절에 대해서도 착각하고 있습니다.

    요일 5:1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된다고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님은 그렇게 착각하고, 이런 님의 착각을 근거로 인신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님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작성자 23.10.03 08:23

    @四季 朴埰同
    2)
    가끔씩 님은 상대에게
    “성경전체를 보지않고 일부만 보고 이해한다” 고 비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은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일 5:1절에 대한 님의 해석을 보면
    님이 요한일서 전체를 읽지 않고 해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다음 절인 요일 5:2절도 안 읽고 해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님과 같이 성경전체를 보지도 않고 해석하면서
    말은 성경전체를 보는 것 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이는 또한 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 작성자 23.10.03 08:23

    @四季 朴埰同
    3)
    왜 이렇게 착각하게 되는 지 아십니까?


    각 신학은 성경을 보는 렌즈를 제공하는데

    잘못된 신학이 제공하는 렌즈로 성경을 보면
    그 잘못된 성경을 더 강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신학으로 성경을 보면 성경이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신학을 배웠는데도
    그 잘못된 신학이, 잘못된 신학임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성경을 다르게 이해하는 것인데
    자신은 맞다고 생각하고 이를 근거로 남을 조롱하고 인신공격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착각을 거짓모함까지도 하는 명분으로 삼아
    거짓모함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23.10.03 08:24

    @四季 朴埰同
    4)
    사계님
    요일 5:1절에 대한 님의 해석을 보면
    님은 요일 5:1절에서 성경이 말씀하지 않는 것을 이해합니다.

    이런 해석을 뭐라고 해야될까요?

    저는 사오정 식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님은 님이 배운 신학으로 사오정 식 성경해석을 하고
    이런 해석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꾸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23.10.03 08:24

    @四季 朴埰同
    5)
    그리고 제가 님을 스토킹한다고 계속 불평하시는데

    스토킹은 님의 전문이지 저의 전문이 아닙니다.

    저는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스토킹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님은 정이철 목사 등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습니까?
    (저도 정이철 목사등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님은 해도 되는데 저는 안된다는 것입니까?

    전형적인 “내로남불”입니다 그렇지요?

  • 작성자 23.10.03 08:24

    @四季 朴埰同
    6)
    그리고 이 위의 게시글은 저의 글입니다.

    님은 이견이 있으니 제가 올린 글에 님의 의견을 적은 것이고
    저는 그에 대해 답을 드린 것입니다.

    다르게 말해서
    제가 님의 멱살을 잡아 끌어 제 글에 댓글달게 하고
    그리고 님의 댓글에 제가 답을 드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신이 누구의 글에 댓글을 달고 있는지 모르십니까?

    제가 님의 글에 댓글을 달아도 스토킹이 아니고
    이 게시글 밑에서는 더 더구나 아닙니다.

    사계님은 이렇게 사리분별이 없는 사람입니까?

  • 작성자 23.10.03 08:25

    @四季 朴埰同
    7)
    그리고 님은 조나단 에드워드의 신학이 개혁주의 신학인 것 처럼 말씀하는데
    에드워드의 신학은 개혁주의 신학이 아닙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중생론 -칼빈, 웨슬리의 신학 사상과 관련하여-』 노병기 박사학위 논문 요약

    http://egau.co.kr/bbs/view.php?id=e03_07_02&no=58


    [[ Ⅴ. 결 론

    에드워즈는 청교도주의의 영향을 받아 칼빈주의의 특질을 강하게 물려받았으나 그의 신학의 핵심이 되는 중생의 개념에서는 칼빈을 닮았다기보다는 독일 경건주의, 혹은 영국 웨슬리와 윗필드의 복음주의 운동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에드워즈의 중생의 정의는 칼빈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특히 중생 체험의 즉각성과 전체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중생의 내용적 깊이에서 칼빈과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 작성자 23.10.03 08:25

    @四季 朴埰同
    8)
    그렇기 때문에 중생의 개념에서 에드워즈의 견해와 칼빈의 견해를 동일하다고 보는 것은 정확한 해석이 아니다. 에드워즈는 중생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데서는 칼빈과 같고, 신비적 체험과 표현에서는 어거스틴과 비슷하고, 중생 체험의 깊이에 대한 강조는 웨슬리와 같다. 이 연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에드워즈의 중생론은 크게 보면 칼빈의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 위에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중생 체험의 성질 면에 있어서는 칼빈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웨슬리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

  • 작성자 23.10.03 08:26

    @四季 朴埰同
    9)
    노병기 목사님은 에드워드의 중생의 정의가, 칼빈의 중생의 정의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말씀하면서도
    에드워드가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 위에 있다고 말씀하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이 다르다는 것은 구원론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으로 믿음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곧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이 믿음 앞에 위치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는 믿음 다음에 중생이 있다는 신학입니다.
    믿음으로 중생한다고 이해하는 분들도 있지만,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중생한다고 이해하는 분도 많은 신학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은 믿음 다음에 중생(성령의 내주하심)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 작성자 23.10.03 08:27

    @四季 朴埰同
    10)
    그리고 님이 제가 말씀드리는 막 16:16절만 있는 것이 아니라며 요일 5:1절을 말했는데

    제가 막 16:16절만 말씀드렸습니까?

    베드로는 행 2:38절에서 막 16:16절 예수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얻으리니

    이 말씀에서 “성령의 선물”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믿음으로)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사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얻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중생(성령의 내주하심)이 어디 위치하는지 보십시요.

  • 작성자 23.10.03 08:28

    @四季 朴埰同
    11)
    그리고 갈 2:26-27절도 있습니다.
    갈 3:26- 27절
    26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현재시제)
    27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되었고], (과거시제)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현재완료시제) [새번역]

    갈 3:26-27절은 진리를 말씀한 것 뿐만이 아니라
    그 진리 그대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루어진 사실을 바울이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26절은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이고
    27절은 26절의 중간 과정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23.10.03 08:28

    @四季 朴埰同
    12)
    그래서 26-27절을 다시 쓰면
    26a: 믿음으로
    27 :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어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26b: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가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맞지만
    그 사이 중간 과정이 있다는 말입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믿음을 갖게 된다고요?

    사오정 식 성경해석입니다.

  • 23.10.03 10:55


    요한일서 5장에 1, 2절만 있고 4절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믿음을 갖게 된다고요?”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믿음의 씨를 주셔서 중생케 하셔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그래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사는데, 제가 언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믿음을 갖게 된다.”고 한 적 있습니까? ‘하나님을 저주하는 믿음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 자녀가 되는 중생을 하고 세례중생을 해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게 이지끼을 님 세례중생론 아닙니까?

  • 23.10.03 10:57

    위로부터 태어남인 중생 시 성령께서 믿음의 씨.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순종으로 획득하신 의義의 씨(부활의 생명)를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죄인에게 심으시면(주입하시면), 죽은 죄인은 즉시 살아나, 살아나자마자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하나님께 돌이킨다. 믿음의 씨가 새로운 힘으로 터져 나오는 열매를 맺는 이것은 중생 시 주신 믿음의 발현으로서 회심(믿음+회개)이자 중생 시 그리스도와 실제 연합을 했음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리고 중생자는 이 ‘내적 실제 연합’을 인치는 외적 표징으로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중생 시에 주신 믿음으로 사탄을 저주하며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불러 이 세상과 교회 앞에서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더욱더 풍성한 그리스도와 연합을 누린다. 바로 이것이 여태껏 제가 말해 왔던 것입니다.

  • 23.10.03 10:57

    이른바 “속도위반”이라는 것도 있어서 비유로 진리의 모든 면을 설명할 수 없지만, 제가 님의 세례 중생론을 두고 결혼 비유를 한 적 있습니다. 결혼식을 세례식으로 보면, 결혼식 전 사랑이 전혀 없어서 서로 저주했던 남녀가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불타는 사랑이 생겨 첫날밤을 치르면서 한 몸을 이루지요? 아니면, 결혼식을 올렸음에도 강제 결혼식이라서 불타는 사랑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후손을 낳으려고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밤, 첫날밤에 한 몸으로 이루는 연합으로 불타는 사랑이 생기지요?

  • 23.10.03 10:58

    “스토킹”이란 말이 왜 나왔습니까?

    까마귀 고기가 주식인 정이철 목사처럼 잊으셨으니, 적어 드리지요.

    여전히 제 질문에는 답변이 없는 채 장황한 글을 올리셨군요. 제 질문에는 2 년 넘게 답변 없이 이지끼을 님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시는 이 정도면, 토론이 아닌 스토킹이지요. 스토킹 그만두시기를 바랍니다.

  • 23.10.03 10:59

    또또또 적습니다.

  • 23.10.03 10:59

    저와 ‘도돌이표 토론’을 또 하고 싶으시면, 세례 앞에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를 답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회개의)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는다(죄사함을 얻고 중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돌이표 토론을 하고 싶으시면, 세례 앞에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를 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양자의 영으로서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성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하시는 ‘믿음’(롬 8:15. 갈 4:6)입니까? 아니면, 연중론에서 말하는 이른바 “일반 믿음”, ‘거짓(거진) 믿음’입니까?

  • 23.10.03 11:00

    또 도돌이표 토론을 하고 싶으십니까? 하고 싶으시면 “믿고”의 정체를 말씀해 보십시오. “믿고”는 어떤 믿음입니까?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를 “내 주님”으로, 성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믿음입니까?

    덧말: {기독교 강요}에 다음과 구절이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의 중생’을 서술한 구절입니다. 찾아보세요. 그리고 이 구절의 빛 아래 {기독교 강요}에 적힌 성례론을 읽어보세요.

    《아무리 작은 믿음(믿음의 씨)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떨어지면, 우리는 그 즉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평화롭고 고요하며 은혜로우신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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