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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바울을 택한 이유
어느 책에선가 바울은 예수의 복음을 가장 깊이 해석한 첫 제자였다고 한다. 또한 복음을 세계에 전파한 첫 선교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필요할때마다 교인들을 향하여 편지를 쓰기도했다. 나는 복음으로써 세계를 정복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 바울을 택하게 되었다.
2.선교사가 되기까지의 바울
바울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총사령관이었다. 하지만 기적적인 변화로 그리스도인이 되자 이제는 또한 그리스도교 전파의 용장으로서 세계를 무대로 맹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독실한 연구자이자 사색가이기도 하고 유대교의 경전을 철저히 공부한여 복음을 조직적으로 해석한 첫 학자이다.
1)바울이 살던세계
바울은 예수님보다 4,5년 늦게 태어났으며 A.D. 67년경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바울은 항구 도시인 다소에서 나서 다소에서 자라났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나 본래는 유태인이었다. 그래서 인지 로마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화와 풍습을 따라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유대교의 전통을 따라 사는 순수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본래 사울이
라는 유대인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바울이라 로마식인 이름이며 그가 로마 세계에서 전도 활동을 하기 시작한 후로 사용된 이름이다.
2)바울의 가정
바울은 유대인 중에서도 자랑스러운 혈통에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종종 자기의 가문을 자랑하였다고 한다. 또한 로마의 시민권을 갖는다는 것은 부유층의 자랑스러운 가문임을 의미하고 있다.
그들은 유대교의 율법이 규정한 대로 살았으며 안식일을 엄격히 지키었다. 이러한 엄격한 율법주의자들을 바리새인이라고 하는데 바울의 가정은 대표적인 바리새인 가정이었다. 또한 그의 부모는 유대의 서울 예루살렘에 있는 유명한 스승 가말리엘 밑으로 15세때 바울을 유학의 길을 떠나게 하였다.
3)바리새인 바울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최고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였으며, 율법을 단순히 연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실천함으로서 자기의 민족을 구하려는 열정가였다. 그는 참된 애국자였으며 자기 개인의 구원에만 관심을 갖는 종교가는 아니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는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질지라도 이를 달게 받겠다는 것이 바울이었다.(롬 9:3) 민족의 암담한 현실을 보는 바울은 더욱 율법에 충실하였으며 더욱 구세주가 나타나는 날을 갈망하고있었다.
4)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사울
모세의 율법과성전을 모독하였다고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인 바리새인의 무리들은 의기양양하였다. 이단과사교를 물리치는 것은 신앙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씨를 없이하려고 하였다. 바울은 본시 열정가일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고 어물어물 끝내버리른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교를 공부하는 일에 있어서도 어느 동료들보다 철저히 연구하고 철저한 신앙 생활을 하였었다. 이제 이단이요 사교로 인정된 기독교를 박해하는 일에 있어서도 전멸할 때가지 철저히 하지 아니하고는 직성이 풀리지 아니했다. 그래서인지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모였다는 다메섹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다메섹 성에 이르렀을 때 태양과 같은 빛이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사울과 그 일행을 둘러쌌고, 곧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대답하기를 "주여! 뉘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말할 자가 있느니라."함께 가는 사람들이 이 빛을 보고,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분명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았던 것이다. 이사건을 단순히 바울 자신의 변화와 구원의 사건인 것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전세계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선교하는 사도로 택하시는 하나님의 사건이기도 하였다. 또한 이사건은 강력한 그리스도교 박해자로서의 바리새인 사울이 싹터가는 교회를 계속 박해하였을 때의 그리스도교의 운명과,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룬 업적을 생각할 때 바울이 없는 기독교의 역사적 발전이 어떠한 것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실로 기독교 역사 전체의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또한 눈이 어두어진 이 때 바울은 그리스도가 보내신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가 체포하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흉금을 열어놓고 "형제사울"이라고 불러주었던 것이다. 이놀라운 그리스도인의 사랑에 접하는 이 때 바울의 눈은 또다시 열리게 되었다.
바울은 과거의 자기와 같이 어두움 속에서 헤매은 이방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여 광명한 하나님의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는 소명 의식에 불타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박해자 사울이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에 전하는 사도바울이 된 것이다.
5)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다메섹에서 아라비아로 간 바울은 3년간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을 가지고 또한 복음의 의미를 파약한 바울은 또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 바리새인 사울이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했다는 사실을 유대교의 입장으로서는 하나의 반역자의 행위였다. 그래서 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하였으나 이 사실을 안 바울은 밤중에 도망하기로 작정하였고,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했다.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은 바나바라는 사람을 만났고, 그사람의 안내를 받아서 예루살렘교회의 두 중심 인물인 주의 제자 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교보를 만나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보름 동안이나 함께 머물면서 이 세상에 계실 때의 예수님의 사실에 대하여 듣고 배웠다. 여기서 바울은 그가 직접 만나본 그리스도를 더욱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을 더욱 분명히 파악할 수가있었다. 바울은 곧 복음을 전하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의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대 땅에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설교한다는 일은 어렵고도 효과가 적은 일이었다. 이 때에 주께서는 바울에게 다시금 명령하신 것이다.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
리라."(행 22:21)
6)에루살렘에서 다소로
유대교와 관계없는 이방인들은 바울을 미워할 리 없고 따라서 그의 전도를 받아들일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예루살렘 유대인들 사이를 빠져서성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그는 고향 다소로 가게 되었다. 바울은 고향에서 10여 년간 더욱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의 훈련을 하고 전도자로서의 실력을 기르기로 하였다. 그는 집에서 공부와 기도만으로 10년을 지낸것은 아니고 자기가 믿는바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제로 전하면서 그의 믿음을 훈련하고 전도자로서의 실력을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1)바나바와 바울
외국인 중심의 안디옥 교회가 번창해 감을 보고 예루살렘 교회로서는 원조해 줄
생각과함께 지도해 줄 생각이 났다. 다행히도 예루살렘교회에는 바나바가 있었고
교회는 날로 왕성해가고 바나바한사람으로는 지도할 수가없게 되었다. 그래서 바나
바가 생각한 인물이 바울이었다. 바나바는 안디옥교회가 지금 필요로 하고 있는 가
장 적절한 인물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다소에서 바울을 만난 바나바는 그를
안내하여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2)안디옥으로 온 바울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온것은 주후 45년 경이었다. 그때 유대 지방에
는 큰 흉년이 들어 예루살렘에 있는 신도들이 재정적으로극히 어려운 중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체적인 경제적 원조를 계획한
첫 번일이 되었다. 안디옥 교회에서 헌금한 돈은 바울과바나바가 이것을 에루살렘
교회에 전해주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바울은 두번째 예루살렘방문의 기회가 되었다.
그때는 기독교를 박해하던 때였다. 요한의 형제야고보가 살해당하고 베드로가 옥에
갇히는 등 통 사도들을 만나볼수 없는 때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헌금을 교회 직원
에게 넘겨주고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왔다.
안디옥으로 돌아온 바나바와 바울은 그 교회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써 만족할 수 없
었다. 그리하여 안디옥 교회의 후원을 받아 바나바와 바울은 구체적인 세계전도 여
행의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3)바울의 첫 전도여행
가)안디옥에서 구브로 섬으로
A.D.46경에 바나바외 사울은 드디어 교인들의 기도와함께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먼저 그들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 섬으로 향하였다. 그들은 그 섬
동해안에 있는 살라미라는 곳에 상륙하여 그곳에서 첫 전도 설교를 하였다. 그 후
섬을 횡단하여 서해안에 있는 바보라는 곳으로 갔다. 그 곳은 구브로 섬의 중심
도시이며 따라서 그 섬을 다스리는 총독 세루기오 바울로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총독을 조종하고 있는 정신적 지도자는 유대인 점장이 바예수라는 거짓 선지자
였던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분개하고 그를 소경이 되게 하였다. 지금까지 참
신의 종인 줄 알았던 그가 바울 앞에서 거짓 선지자임이 드러나자 그를 믿고 따르
던 총독은 마음을 돌리고 바울이 전하는 참된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지금까지 바울은 자기의 유대인의 이름인 사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이제부터 그가 접촉하는 세계는 로마였으며, 또한 로마의 시민들이었다. 그러므
로 그는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일행은 구브로를 떠나서 소아시아의 버가라는 곳으로 배를 타고 건너갔다.
나)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전도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높은 산악 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비시디아의 안디옥이라
는 곳에 이르러서 전도하게 되었다. 바울은 으레 종교인이 모인 곳을 찾아가서
참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의 설교 내용은 첫째가 하나님께서는 긴 유대 역사를 통하여 지도하시고 축복을
약속하셨다는 것, 즉 구주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는것. 둘째로는 그
약속하시는 메시야로 오신 이가 곧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예수라는것이고 셋째로
는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참 메시야를 몰라보고 그를 십자가에 죽게 하였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었다는 것. 넷째
로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다시 부활케 하심으로 그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것. 마지막인 다섯째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
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이었다. 이와같이 설교할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다)루스드라의 소동
안디옥을 떠난 그들은 이고니온이라는 곳으로 왔다. 이곳에서 그들은 복음을
전하였다. 이고니온의 많은 사람들은 유대교를 믿었으며 이들은 두사도가 자기들
의 신도들을 어지럽게 한다고 생각하여 돌로 치려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루스
드라와 더베라는 두 도시가있는 곳으로 갔다. 이곳에서 앉은뱅이가 이들의 설교
를 유심히 들었고 그 앉은뱅이는 자신도 예수의 능력을 받기를 간절히 믿고 바라
게 되었다. 바울은 그가 예수 믿는 믿음이 큰것을 인정하고 그에게 일어서라고
하였다. 이 때에 놀랍게도 이 앉은뱅이는 두 다리를 쭉 펴고 서서 힘잇게 걸어다
니게 되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 후 그들은 새로운 도시로 가서 전도하기
보다 온갖 박해속에 있을 신도들을 돌보는 것이 보다 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바울과 바나바는 일단 그들의 출발지인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일년 가까운 전도영행에 피곤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세계 선
교 사업의 성과를 일단 보고 할 생각도 있었다. 그보다도 그들은 더 본격적인 세
계 선교 운동을 전개할 준비를 위해 일단 돌아가기로하였을 것이다.
4)복음의 자유와 첫 에큐메니칼 회의
가)유대주의자와 이방인 문제
유대에서 안디옥 교회로 온 사람들이그 곳에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
여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레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단정하여 가르쳤다. 이 말을 듣던 바나바와 바울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처럼 복음을 듣고 평화와 기쁨에 찬 이들 신도들의 마음을 소위 선배라는 유대
인들이 와서 분란을 일으킨 것이다. 대체 도는 왜 필요한 것이며, 그리스도는
왜 십자가에 돌아가셨단 말인가? 복음의 참 뜻도 모르는 풋나기들이 와서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는 것을 묵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는 단연
일어나서 그들과 변론하고 다투었다.
나)에루살렘 회의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지금까지 바나바와 바울이 생명을 걸고 전도한
모든 일이 헛된 짓이 된다. 그들의 주장대로 따라간다면 기독교는 결국 유대인의
민족 종교에 불과하다. 결코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세계적 종교일 수 없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확실한 복음 신앙을 밝히고 분명히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의 사도들과 회의를 열기로 결정했다. 열 두 사도들이 모여 있는 에루살렘 교회
는 기독교의 본산이었다. 그곳의 최고 지도자들과 해결하는 것은 기독교의 운명
을 해결하는 길이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 교회를 대표하여 에
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 외에 장로들로 구성된 참관자들이 회의에 참석하게 되
었다. 이 회의는 역사사의 첫 사도회의였으며, 또한 첫 에큐메니칼 회의였다. 바
울은 자기가 받은 바 복음에는 그러한 율법적 요구가 없는 것을 밝히었다. 무엇
보다도 바울 자신이 구원받은 체험과 또한 그가 율법 없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성과를 거둔 사실을 설명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의 내용을 밝히 설명하
였다.
다)안디옥 교회에서 생긴일
예루살렘 회의에서 바울이 거둔 승리는 기독교의 독립과 자유의 승리였다. 활
발히 움직이는 안디옥 교회를 방문한 베드로는 이방인 교인들과 함께 침식을 같이
하며 사랑의 교제를 즐기었다. 이것을 본 바울은 몹시 분개하여 베드로가 선배요
주의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사람앞에서 그를 면박하였던 것이다.
"당신이 유대인으로서 그러한 위선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이방인을 권하여 유대인
답게 살라고 하겠는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11-21)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진리였다. 유대인의 율법이 인간을 구원
할 수는 없다. 이것일 바울의 신앙이었다.
5)유럽으로 건너간 바울
가)바울의 독립전도
바나바는 바울에게 있어 둘도 없는 친구였고, 바울은 바나바에게 그간 함께 전
도하고 세운 각 교회들을 방문하자고 권하였다. 바나바는 곧 응낙하였다. 바나바
가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지만 지난 번 전도 여행 때에 동행하다가 어려움을 참
지못하고 도중에 돌아와서인지 바울은 의지 박약한 친구와 같이 다닐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이후로 두 전도자들은 서로 미워하는 원수가 되었고 그들은 비록 갈라
서기는 했으나 서로 존경하고 서로 사랑하였다. 바울은 이제 독립 전도를 결심하
였고, 육로를 따라 갈라디아 지방으로 향하였다.
나)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남
바울은 더베를 지나 루스드라에 이르렀다. 루스드라에 이르자 바울은 충실한
제자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전도여행을 같이 할것을 제의하고 바울은 흥
쾌히 승낙하였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주어 그가 유대인의 권위를 갖
게하였다.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는 할례가 하등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님을 주
장하기 위해 싸워온 바울이었다. 그런데 이제 디모데에게는 할레를 주어야만 했다.
이것이 바울의 자유 정신이었다.
다)유럽으로의 초청
바울 일행은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의 관문이 되는 드로아로 가게 되었다. 그
곳에는 빌립보에서 온 마게도냐 사람 누가가 있었다. 그는 바울을 유럽으로 안내
하였다. 바울은 누가를 만나자 복음을 전하였고 또한 자기의 경험과 함께 세계
전도의 포부를 이야기하였다. 유럽으로 건너가는 일이라 쉽게 결정을 짓지 못하
고 있을 때에 그는 꿈속에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
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
라"(행 16:9-10)
다음날 즉시 바울 일행은 누가의 안내를 따라 마게도냐로 건너갔다.
라)빌립보 전도
빌립보로 직행한 바울은 여인들에게 전도를 하였으며, 그중 루디아의 가족이
그리스도를 믿고 빌립보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하루는 한 무당이 예수를 믿게되
자 돈벌이가 떨어지자 바울을 고소하였으나 무죄한 것을 발견한 관리들은 그를 놓
아주라고 하졸에게 명하였다. 그 후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를 향하여 떠났고,
누가와 디모데는 빌립보에 남게 하고 새로이 시작된 교회를 돌보도록 하였다.
6)그리스 반도의 전도 여행
두번째 전도 여행의 연도
안디옥 출발-------------A.D. 49
빌립보 전도
데살로니가 전도 ------------ 49
아덴전도
고린도 전도--------------50-51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씀----------50
안디옥으로 돌아옴-------------52
가)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 많은 그리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이광경을
본 유대인들은 시기심이 일어나서 바울 일행을 없이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
은 불량자들을 매수하여 소동을 일으켰으며, 바울이 유숙하고 있는 야손의 집에
달려가서 바울을 끌어내려고 하였으나 바울을 없고 야손과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
이 잡히게 되었으나, 징게를 받고 석방되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는 교인들의
권고를 따라 데살로니가를 탈출하여 다른 곳으로 전도 여행을 떠났다.
나)베뢰아 전도
베뢰아로 온 바울은 복음을 전하였으난 유대인들이 바울의 소식을 듣고 따라오
게 되었으며 군중을 선동하여 소동을 일으키고 바울을 추방하도록 하였다.
다)아덴에서 설교한 바울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남겨두고 온 바울은 홀로 아덴으로 들어왔다. 바울
의 종교 강연 속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있는 듯 느낀 이들 아덴 시민들은 그를
데리고 광장 아레오바고로 갔다. 그곳은 철학자들이 정식으로 변론하는 곳이었다.
바울은 이제 그리스의 지성인 철학자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지 않으
면 아니되게 되었다. 다행히도 바울에게는 정통한 그리스의 교양이 있었다. 그
러므로 그는 여기서 일대 철학적인 설교를 훌률히 해낼 수 있었다.
바울은 훌륭히 창조주로서의 인격적인 하나님을 설명하였으며, 또한 회개와 심판
과 예수의 부활한 사실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철학적인 설명이 부족해서가 아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그들의 마음을 가로
막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의 큰 노력에도 불구
하고 이 지식의 도시 아덴에서는 교회를 세울 수가 없었다. 바울은 여기서 곧 인
간의 지혜가 인간을 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은 오로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금후 철학자들이 듣건 말건 오로지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려고
결심하였다.
7)고린도에서 안디옥까지
가)고린도 전도
문화에 닳아빠지 아덴에서 냉소당한 바울은 남쪽에 있는 신흥 도시 고린도로
왔다. 그곳 고린도는 사치와 타락의 도가니 속에 있는 도시였다. 바울은 그곳에
서 한 유대인 부부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들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안
식일이면 그곳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강론하고 전도하였다. 바울의 전도가
날로 성과를 거두는 것을 본 유대인들은 불안하여 바울을 몰아내려고 하였다. 그
러나 자신에게 힘이 없는 것을 안 유대인들은 다시 정치에 호소하는 비겁한 행동
을 취하여 바울을 고소하였다. 그러나 갈리오총독은 고소를 기각하였다. 유대인
들의 반항은 좀처럼 가시지를 않아 바울은 일시 고린도를 떠나버릴까도 생각 했지
만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
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10) 이 음성을 들은 바울은 굳게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열성을 다하여 복음
을 전하기로 하였다. 그는 고린도에 일년육개월을 유하면서 전도한 것이다. 그리
하여 활기 있는 고린도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나)바울이 보낸 최초의 편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그들이 믿음에 굳게 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
가 하는 것을 교훈하는 글을 썼다. 바울은 편지를 써서 그들의 신앙이 잘못된 것
을 타일렀다. 기독교는 결코 현실을 무시하교 미래만을 꿈꾸는 무책임한 낭만가
의 종교가 아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
현실에서 충실한 생활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결코 하늘나라에도 들어갈 수 없다
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진리이다.
다)안디옥으로 돌아가다.
고린도에서 일 년 반동안 수고하고 전도한 것이 효과를 얻어 활기 있는 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다. 이제 바울은 다시금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기로 했다. 두 번째
전도 여행에서 얻은 모든 성과를 보고하고 안디옥 교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면서
또한 다음 전도 여행을 위해 잠시 쉬면서 계획할 작정이었다. 그는 가까이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해안서을 따라 안디옥으로 올라갔다. 이리하여
바울은 두번째의 여행을 끝냈다.
8)복음의 투쟁과 세 번째 전도 여행
가)그리스도인의 독립선언서
바울이 안디옥에 이르자 그는 갈라디아 지방 교회에서 일어난 보도를 들었다.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더베 등 갈라디아 지방은 바울이 처음으로 생명을 걸
고 전도한 곳이며 그가 정성을 다한 교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는 바울을
배반하고 바울이 저한 복음을 배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유대주의자들은 전도자로서 바울을 공격하였으며,바울은 사도가 될수 없다는 것
이다. 왜냐하면 그는 주 예수를 직접 좇고 배운 제자도 아니요 한때는 그리스도
인을 박해하던 인간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거짓 전도자가 전하는 복음은 거짓이라
는 것이다. 이말에 갈라디아 교인들의 마음은 변해버렸고 그들은 바울을 멀리하
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갈라디아 교회들을 향하여 급히 붓을 들었고 "사람에
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죽
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갈 1:1) 이것이 편지의 시작이었다. 바울은 직접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
으며 또한 직접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인 것이다. 바울은 결코 간접적인
지식에 의해서 복음을 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저한 복음은 그
리스도에게서 받은 참복음인 것이다.
나)바울의 세 전째 전도 여행
갈라디아에 편지를 보낸 바울은 잠시 안디옥에 있으면서 세 전째 전도 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A.D. 53년 봄에 안디옥을 출발했다. 그는 제자들의 믿음을 굳
게하였다.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그리시 생소하지 아니했다. 그곳
에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간 자리잡고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는 석달동안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도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유대인들은 바울
의 전도를 훼방하였다. 사립학교 강당을 빌려 가지고 매일 정기적으로 몇 시간씩
강의식인 설교를 하였다. 이제는 50세가 넘은 바울은 십여 년의 눈부신 전도 활동
과 신앙의 투쟁을 통한 바울의 복음 이해는 무르익은 것이었다. 2년간의 강의는
그리스도교에 큰 공헌을 한 에베소 교회를 형성하게 하였다.
그곳에서 은으로 아데미의 신주를 만들어서 큰 벌이를 하던 은장이들이 장사가 잘
되지 않게 되자 폭동을 일으켰지만, 실패로 돌아갔지만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도교는 항상 미신과 투쟁하지 않으면 아니되기 때문이다.
9)고린도 교회 사건과 바울
가)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
에베소에 와서 2년 이상이나 전도한 바울은 이제 원대한 전도게획을 세우고 있
었다. 그는 마게도냐와 그리스를 돌아서 예루살렘에 일단 갔다가 수도 로마에 가
리라고 생가했다. 한걸음 더 나가서는 스페인에까지 전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
다. 그러므로 우선 선발대로 대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보내고 바울은 얼
마 동안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려고 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안에 당파를 짓고
분쟁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었다. 바울은 편지를 쓰기로 했다. 마침 그 때에 고린
도 교회가 보내온 편지를 받게 되었고 이 모든 문제에 해답하고 충고하고자 붓을
들고 편지한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린도 전서이다. 즉, 그리스도인은 자유
자로서 봉사적인 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
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9;19)고 하였다. 봉사하고 남에
게 덕을 세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나)고린도 전서 이후의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
고린도 전서를 쓴 후 바울을 비방하고 배척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즉, 바
울의 세력을 꺽으려는 유대주의자와 합세한 것이다. 바울은 이들을 반박하는 또
하나의 편지를 썼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
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고후11:13)고 단호하게 비판하고 책망하였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고후11:23-27) 위와 같이 편지를 쓴 바울은 너무 심하게 편지를 쓴것 같
아 염려한 바울은 편지를 받고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하였다. 그라나 바울의 편지
를 받고 자기들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며 거짓 선생들을 물리치고 바울에게 돌아온
소식이었다. 즉시 또하나의 편지를 썼다. 그것은 모든것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편지였다. 이것은 고린도 후서 1장에서 9장까지의 글이다. 바울은 글끝에 헌금에
대한 사무적인 부탁을 썼다. 바울은 신앙인이요 또한 현실적인 사무를 충실히 처
리하는 인물이었다. 이 편지를 가지고 디도는 또다시 고린도 교회로 내려갔다.
10)바울의 원대한 계획과 당면 과제
가)바울의 복음-로마서
바울은 화해의 편지를 보낸후 마게도냐에서전도하고 곧 고린도로 내려가기로
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헌금을 기다리며 한가로우면서도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바울은 로마 교회의 후원을 얻기 위하여 긴 편지를 쓰기로 했는데 이것이 고린도
에서 쓴 로마서이다. 로마서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가장 조직적으로 기록한 책
이다.
나)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해 편지를 써서 인편에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각 교회
에서 모여온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를 향해 떠나려고 하였다. 그런데 고린
도 지방에는 바울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유대인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바울은
이 음모를 알게 되어 육로로 마게도냐를 돌아가기로 한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에
이르러 의사 누가를 다시 만났으며 그와 함께 여행하게 된 것을 기뻐했다.
바울은 단순히 이방 교회에서 모금한 것을 예루살렘에 전하고자 하는 것만이 아니
었다. 그는 이제 원대한 서방 전도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예루살렘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유대주의자들과의 대립문제였다. 바울은 그가 전도 여
행을 떠나기 전에 유대인 크리스천의 본거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문제를 다시
한번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1)죄없는 죄수 바울
가)바울의 예수살렘 입성과 체포
A.D.56년 바울은 드디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오해
를 풀기 위하여 바울은 양심의 걸림없이 성전에 들어가서 유대인의 율법을 따라
예배하였으나 율법을 무시한다고 오해한 많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풀 수 있었다.
그런데 소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 있는 바울을 반대로 해석하여 민중을
선동하여 바울을 체포케 한 후 그를 성밖으로 끌고 나가 당장에 쳐서 죽이려고 하
였다. 예루살렘 치안관 로마군의 부대장은 즉시 군중을 진압하고 바울을 체포하
였다. 바울은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하며 자기의 무죄함을 주장하
였다. 바울은 "나는 바리생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고(행23:6) 하여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를 싸움에 붙이었으나 로마군
인은 이 회를 해산시키고 바울을 다시 가두고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 벨릭스에게로
호송하였다.
나)바울의 가이사랴 옥중생활
유대인들은 가이사랴까지 와서 바울을 다시한번 고소하였다. 벨릭스는 이 사
건이 유대인들의 종교적 분쟁에 지나니 아니한 것과 또 국가 법률레 저촉되는 것
이 아님을 잘 알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민심을 사기위해, 바울에게서 뇌물로 돈
이나 얻어 먹을까 하여 무죄인 줄 알면서도 2년이나 옥에 가두었다.
베스도라는 새로운 총독이 오게되었지만 여전히 감옥살이를 하였고 그를 유대인
의 손에 넘기려 하여 바울은 최후의 상소를 하기로 하였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사람들의 나
르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 하노라:(25:11) 바울은 로마시민권이 있어 로마 황제에게 재
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므로 베스도는 바울을 로마에 보내기로 작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법정에 나온 바울은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그리
고 여러 고관들 앞에서 말할 기회를 얻었으나 베스도는 바울을 미친 취급을 하였
다. 이어 바울은 아그립바를 향하여 "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
으시는 줄 아나이다."라고 하여 아그립바는 당황하고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
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느냐"고 반항하였다. 이에 바울은 "말이 적으나 많
으나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라"(26:29) 고관대작이 문제가 아니다. 인생의
근본 문제는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느냐 않느냐에 있다.
2)로마로 간 바울
바울의 만년에 관한 연대표
예루살렘에서의 체포----------A.D.56
벨릭스 앞에서의 심문------------57
베스도 앞에서의 심문------------58
로마로 출발-----------------58
로마 도착------------------59
바울의 순교-----------------67
가)로마로 출발한 바울 일행
바울은 하나의 죄수로 로마로 수송되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향해는 편안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바울만은 그속에서도 태연자약하여 그들에게
용기를 돋우어 주며 할일을 충고하였다. 멜리데에 상륙한 바울은 그곳에서도 봉
사하면서 지냈다.
나)로마에 도착한 바울
바울의 일행은 드디어 로마에 도착하였고, 재판사무는 2년씩이나 지연되어 바
울은 그동안 상당한 자유가 허락되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였고, 2년을 지내는
동안 바울은 드디어 친구들의 협조로 일단 석방되어진다.
다)바울의 옥중 서신
바울은 로마에 있는 동안 7통의 편지를 썼다. 우리가 흔히 옥중서신이라고 부
르는 골로새서, 빌레몬서, 빌립보서와 에베소서와 함께 목회서신이라는 디모데 전
후서와 디도서가 그 것이다.
그 중 에베소서는 3년간 심혈을 기울여 전도한 에베소 교회를 중심으로 그 근처에
있는 교회들을 향해돌려가며 읽도록 하나의 편지를 썼다. 바울은 비록 감옥에 있
었으나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라고 힘있
게 외쳤다.
3)승리자 바울의 신앙
바울과 빌립보서
빌립보서는 4장으로 되어 있는 짧은 편지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떠한 환경, 비록
옥중이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은 기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여실히
말해주는 힘찬 "기쁨의 서신"인 것이다. 빌립보선는 편지이니만큼 추상적인 논리
를 구체적인 문제와 정황을 다루면서 격려하기도 하고 충고하기도 하였다.
4)승리의 길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한다. (빌 2:3-4)
5.바울에 관한 나의 소견
바울은 지중해 세계일대에 교회를 세운 데 불과한다고 보나 그것은 세계역사안에 교회를 전파한 것이 되었다. 즉, 바울의 세계전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교는 서구 문화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세계문화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을 정도로 그는 외국 전도에 일생을 바쳤다. 그에게 나는 희생적 사랑과 겸손과 온유를 배웠으며, 또한 바울의 옥중서신은 어떠한 처지와 환경속에서도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일생을 달려온 그에게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법을 배웠다. 역시 "나를 본받으라"라고 외친 바울의 인격을 배우지 않으면 아니될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존경하는 인물중에 바울의 이름도 확실히 넣어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출처] 선교사 바울의 생애와 업적 연구|작성자 성산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