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손녀, 慇娥를 위한 노래
구월 마지막 날 햇볕도 시들할 때
축복을 듬뿍 받고 세상과 마주할 때
영모반*
또렷이 찍힌
네 모습이 낯설어
인연인지 업보인지 곰곰이 새겨가며
어쩌면 잊지 말자는 계시로 여겼다만
걱정은 날로 커져서
마음들이 타들더라
의술이 좋다해도 손쉬울 리가 없고
하루 이틀 아닐지니 긴 시간 끓일 속에
하마도 부모 얼굴은
펴지지를 않더라
*태어난 순간부터 피부에 새겨진 핏빛 흔적
-2021.09.30.
날마다
태어난 지 한 달 보름
날마다 손 모은다
모반이 옅어지고
팔다리에 살 붙기를
아빠를
닮은 웃음으로
엄마에게 힘 되기를
-2021.11.13.
백일기도
다달이 이어지는
상경 치료 날이 되면
시골 살던 조부모가
네 곁으로 달려간다
옅어진
코밑 흔적이
어찌 그리 고운지
피붙이 알아보는
고운 눈매 엷은 웃음
소리 내어 웃을 때면
근심 걱정 사라지고
다음 달
만날 그날을
미리부터 기다려
반가움 끝에
모처럼 틈이 나니
네 얼굴이 보고 싶다
전화 음성 들으면서
작은 손을 내미는 너
눈웃음
살풋 띄우며
입꼬리도 올리네
아직은 멀기만 해
안아주질 못한다만
그래도 다달 마다
함께하니 다행이다
걸음마
할 때쯤이면
인사말도 하겠지
첫돌을 앞두고
낯설이 하나 없이 또 한 계절 넘기누나
어느새 홀로 서서 짝짜꿍도 자유롭고
얼마나
높이 날려고
만세까지 부른다
기댈 곳 어디인지 잘 아는지 눕다가도
엄마 품 아빠 품을 가려가는 눈치까지
아마도
언니를 따라
예쁜 말도 닮겠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첫돌을 지나더니 날마다 달라졌다
엉거주춤 일어서서 몇 발짝 떼더니만
일주일 지나간 뒤엔
달리기할 태세다
영상으로 만난 고모 낯설이 하더니만
반나절 만남 끝에 재롱 피워 안겨드니
핏줄이 당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나 보다
제 식구 찾는 눈길 거두지 않으면서
이 품 저 품 넘나들며 2박3일 지낸 추억
동영상 몇 개 남기고
훌쩍 떠난 연휴 끝
-2022.10.10.
상경 치료
태어나 서울 구경 잦으니 걱정이다
혈반 치료 한 달에 한 번
그 기억도 몸에 새겨
그 병원
들어설 때마다
운다는 말 아프다
예방접종 받은 뒤에 혈소판 감소라니
있을 수 있는 일도 네게는 왜 잦으냐
어려서
일찍 겪는 게
꼭 다행은 아니잖니?
집 떠나 낯선 환경 서럽기도 하겠다만
따뜻한 엄마 품에 고운 미소 되찾으니
멀리서
손 모은 기도
마주보기 힘겹다
-2022.11.8. 서울 아산병원 입원 치료
귀가한 날
겨우 사흘 떠난 집에
다시 돌아오는 날
가랑비 부슬부슬
종종걸음 엄마 앞에
네 눈빛
반가움 가득
팔다리가 날개다
언니가 활짝 웃고
외할머니 두 팔 벌린
거실과 놀이방을
돌고 돌고 또 돌면서
낮잠을
떨쳐버리고
이 품 저 품 노닐다
-2022.11.12. 퇴원해서 집에 오다
두 돌 앞두고
이제 겨우 18개월 낱말 몇 웅얼댈 뿐
앞가림 멀었건만 어린이집 보낸단다
맞벌이 도와주려고
열일 모두 젖힌다
보내고 맞아주며 함께한 두 달여에
시큰둥 아웅다웅 끈끈해진 덕분인지
원위치 며칠 안 돼서
보고 싶어 난리다
도우미 잘 따르고 저희끼리 붙어 논다
마음은 놓이건만 조바심은 물결치고
소나기 예보 들으며
엉덩이를 들썩인다
안 보는 며칠 사이 손주들은 의젓하다
마당의 포도알도 나날이 살이 붙고
어쩌면 월말쯤에는
안고 일어 거닐지도
-2023.06.15.
할머니 검딱지
달포 만에 만난 뒤로
떨어질 줄 모르는데
밤낮없이 붙어서
재촉하는 군것질도
혼자서 잠자다가도
눈만 뜨면 품에 든다
아직은 이별이 뭔지
깨닫지 못하지만
부모보다 먼저 찾는
조부모가 반가워서
검딱지 떼어낼 그날
언제일지 모른다
카페 게시글
최상호 시인방
은아를 위한 노래
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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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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