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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태안 75코스 제1부
청산리나루터-시우치저수지-이화산-
갈두천제방-위생처리장-금골산용주사
20240124
1.가로림만 겨울 바람과 선돌바위
두루누비에서 서해랑길 75코스의 개요를 '가로림만 해안에 인접한 금굴산', '완만한 숲길을 지나 농촌 주변 경작지와 저수지를 지나는 코스'라 소개하고, 관광포인트는 '예전 이곳에서 금을 채굴하였다는 금굴산', '강물이 바닷가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방조제로 쌓아 막아 만든 '시우치 저수지'를 꼽고 있다. 출발지는 태안군 원북면 청산리 청산리나루터, 도착지는 서산시 팔봉면 호리 구도항이며, 거리 20.8km, 소요시간 7시간, 난도 보통이라고 안내한다. 서해랑길 태안 75코스의 개요와 관광포인트가 너무 허술하다. 20km가 넘는 가로림만 해안 둘레를 돌아가는 탐방길을 이렇게 무성의하게 소개해도 될까? 자신의 향토를 사랑하는 마음, 국토를 사랑하는 마음의 부족에서 이런 안이한 태도가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75코스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추억한다.
제1부 : 2주 전 서해랑길 74코스 탐방길을 따라 태안반도 북쪽의 이원반도와 작별하고 원북면 청산리나루터에 도착하였다. 그날은 미세먼지가 몹시 짙어서 풍경이 명쾌하게 전망되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그로부터 2주만에 서해랑길 75코스 탐방을 위해 청산리나루터에 다시 왔다. 날씨가 겨울답게 몹시 춥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날은 춥지만 날씨가 쾌청하여 풍경이 아주 명료하게 조망된다. 가슴이 달아오른다. 서해랑길 75코스 탐방의 행운이 길을 열고 있다.
청산나루터 언덕에서 가로림만 최남단의 서쪽과 남쪽 해안 그리고 남쪽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올라가는 가로림만 해안을 조망한다. 이번에 탐방할 75코스 가로림만 최남단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 75코스 종점인 구도항이 보인다. 태안군 원북면 청산리 청산나루터 언덕에서 출발하여 가로림만 최남단 해안을 서쪽, 남쪽, 동쪽으로 돌아서 건너편의 서산시 팔봉면 호리 가로림만 해안 구도항에서 끝마치는 탐방길이 서해랑길 75코스에 해당된다.
가로림만 청산리 지역 나루터길을 따라간다. 나루터길 언덕의 민가 대문과 벽에 범상치 않은 서예 작품들이 붙어 있다. 서예가의 집인가, 도학자의 집인가, 불가의 집인가? 판자문 입구에 '무공(無空)', '독(獨)' 현판이 세워져 적혀 있다. 창문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경덕(敬德)', '향수(享壽, 오래 사는 복을 누림)', '얻었다 해도 본래 있었던 것/ 잃었다 해도 본래 없었던 것/ 집착하는 순간/ 당신은 자유를 잃게 된다!/ 아무런 속박 없이 마음껏 즐겁게 살아보자!' 이런 문구들이 붙어 있다. 그 게시물은 결국 '무(無)', '공(空)', '독(獨)'의 삶의 자세로 '경덕(敬德, 덕을 공경함)'하고, '향수(享壽, 오래 사는 복을 누림)'하라는 뜻인가? 길손은 종교가 없고 오직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겠다는 교만감에 차 있다. 다만 인도의 명상가 크리슈나무르티가 얘기한 종교적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있다. 이런 길손에게 이 민가의 여러 게시물들은, 열반에 들기 전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부처님이 얘기한 뜻과 상통하는 것 같다. “헛되이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바람이 몹시 차갑게 세차다. 한겨울의 차가운 맞바람을 맞으며 길을 걷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럼에도 가로림만 해안의 투명한 풍경 조망은 이 악조건의 탐방길을 뜨겁게 달군다. 팔봉산, 오석산, 백화산, 금굴산, 이화산, 이교산, 이적산 등의 산 이름과 구도항, 도내나루터, 덤섬, 쌍도, 선돌바위 등의 나루터와 섬을 확인하며 걸어가는 즐거움을 무엇이 막을 수 있으랴.
나루터길을 따라 청산1리 감태마을을 통과했다. 산지마을, 아랫마을, 이적마을, 윗마을, 시우치마을 등을 버스정류장 안내판 지명을 통해 확인하며 청룡부리를 지나면 청산1리 감태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는 시우치저수지 제방에 이른다. 바람은 더욱 거칠게 불어댄다. 청산리에서 마산리로 넘어와 멀리 마산1리 지역의 중심지를 가늠하며 시우치저수지를 돌아서 이화산 자락길로 올라선다. 시후치저수지는 반계천이 가로림만 바다에 유입되는 입구를 막아 조성한 저수지인데, 시후치 지명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아마도 청산1리 청룡부리 해안에 자리한 시후치마을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시후치저수지는 반계저수지라고도 불리는데, 반계천은 원북면 반계리에서 발원하여 하천명이 반계천이라 지어진 것 같다. 그렇다면 저수지명 시후치는 저수지 제방이 있는 지명과 관련되어 있으니 청산1리 지명에서 따왔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래서 청산1리 시후치마을과 관련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이화산 자락길을 따라가다가 산길을 내려오면 보타락가사 입구에 이른다. 태안 보타락가사는 근래에 한국의 관음성지로 조성된 사찰로 계속 불사를 확장하고 있다고 하며, 이 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금불로 만든 길이 10m의 열반에 든 부처가 누워있는 ‘열반와불상’이라고 한다. 열반와불상은 평소에는 와불전 안에 있다가 정오 때 대웅전 위로 올라와 가로림만 바다를 바라보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관세음보살님의 대원으로 중생의 아픔이 사라지고 모든 중생이 구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또한 헛되고 헛된 것이 아닐까? 부처님의 말씀대로 “헛되이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이 말씀의 뜻을 따른다면 삐까뻔쩍한 와불상은 필요없는 것이 아닐까? 가로림만 바다를 바라보며 순결한 평화의 정신을 가다듬고 평화를 해치는 자들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보타락가사를 들르지 않고 가로림만 해안으로 나오면 갈두천 제방에 이른다. 갈두천 제방 안쪽에는 넓은 습지가 형성되어 있고 서쪽 끝에는 아마도 만리포 해안이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갈두천 제방에서 가로림만과 주변을 에워싸는 이적산과 이교산 능선, 이화산 능선, 동쪽 건너편의 구도항, 바다의 선돌바위와 쌍도 풍경이 투명하게 조망된다. 제방 앞의 풍화와 침식에 의해 형성된 선돌바위는 가로림만이 제방에 막히기 전 바다가 내륙 안쪽으로 깊숙하게 파고 들었을 때를 상상하게 한다. 그때 선돌바위는 가로림만을 지키는 외로운 파수꾼으로 바닷물과 바람에 씻겨 야위고 야위어져 지금처럼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갈두천 제방에서 시원하게 뚫린 가로림만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산줄기, 청산나루터에서 출발하여 길게 걸어온 나루터길과 이화산 자락길, 그리고 가로림만 서쪽 해안에 자리한 보타락가사와 바로 앞 선돌바위를 다시 한 번 조망한다. 아름다운 가로림만의 풍경에 환호하였다. 추위는 사라지고 열기가 치솟는다. 제방 안쪽의 습지에는 뎈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어 지난 시절의 개펄을 상상하며 뎈길을 걸을 수 있다. 제방이 있기 전 바닷물은 어디까지 들어갔을까? 간척농지 끝에 보이는 청산2리 지역을 넘어 장산리까지 바닷물이 들어갔다고 하니 예전의 가로림만은 더 깊이 굴곡진 리아스식 해안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평화의 가로림만 해안길, 겨울 바람은 차갑게 휘몰아쳐 인적은 탐방객 외에 없다. 원북면 청산리에서 갈두천 제방을 건너 태안읍 삭선리(朔善里)로 넘어와 가로림만 해안과 잠시 작별한다. 이제는 금굴산 용주사를 향하여 간다.
금굴산이 자락을 펼친 숲길 삭선길을 따라 올라간다. 아름다운 가로림만 해안을 차지한 리조트와 펜션 때문에 탐방길은 해안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금굴산 기슭의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금굴산(金窟山)은 행주산이라고도 하며, 태안읍 삭선리(朔善里)의 해창에 있는 산으로서 옛날 이 산에서 금을 캤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근래에 대한불교총화종(大韓佛教總和宗) 금골산(金骨山) 용주사(龍珠寺)라는 명칭 때문에 일반인들은 금굴산(金窟山)을 금골산(金骨山)이라 부르게 된 것 같다. 용주사 입구로 들어섰다. 입구에 일주문은 없고 석조 사자상 한 쌍과 석조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 비종교인인 길손은 특별한 관심 없이 입구를 통과한다. 경내 마당가에 겨울에도 푸르른 활엽상록수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다. 무슨 나무일까?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1.87km 중 8.81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25분 중 1시간 59분
충남 태안군 원북면 청산리나루터 언덕 공중화장실 옆에 서해랑길 74·75코스 안내도와 스탬프함, 그 왼쪽에 서해랑길 75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솔향기길 이정목 기둥에 솔향기길 4코스 노선도와 그 아래 서해랑길 75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청산리나루터 언덕 공중화장실 옆에 서해랑길 74·75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그 오른쪽 기둥에 스탬프함이 딸려 있다.
거리 20.8km, 소요시간 7시간, 난도 보통. 주요 경로는 시우치저수지, 이화산, 선돌바위, 금골산, 삭선리생태공원 등이다.
서해랑길 74·75코스 안내도와 함께 서해랑길 75코스 탐방 출발을 기념한다.
청산횟집식당 왼쪽 언덕에 청산리나루터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건너편 왼쪽은 오석산, 전봇대 기둥 뒤는 백화산이다.
청산리나루터 : 최초 운항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인천~구도간 정기 여객선이 운항되면서 내리 부도와 청산리에 기항, 우리 군 주민들의 경인지방 내왕에 편의를 제공하였다. 농산물과 잡화, 여객, 우편물을 운송하며 1927년대에 월 6회 운항하였으나, 1930년대에는 운항횟수가 1일 1회였다. 항로 기항 포구는 구도↔청산↔고파도↔내리↔오지↔풍도↔ 여흥↔인천이며 운항거리가 해로 320리 128km에 불과하며 그리 멀지 않아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였으며 연고지가 자연스럽게 인천 지방으로 형성되었다. 자동차 산업과 도로교통이 발전함에 따라 육로이용이 편리해져 화물의 물동량이 급속히 떨어지고 여객도 줄어 1978년도에 운항이 중단되었고 폐쇄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지금은 농어촌 정주 어항이다.(설명안내판)
건너편에 서산시 팔봉면 호리 구도항, 그 뒤 오른쪽에 팔봉산, 중앙에 태안군 태안읍 도내리 덤섬이 가늠된다.
맨 왼쪽에 덤섬, 그 오른쪽 곶부리에 도내나루터, 중앙에 오석산, 맨 오른쪽에 백화산, 그 앞쪽에 쌍도가 가늠된다.
맨 왼쪽에 오석산, 바다에 쌍도, 중앙 뒤에 백화산, 맨 오른쪽에 금굴산(금골산)이 가늠된다.
서해랑길 74·75코스 안내도 앞에서 출발하여 그 오른쪽 청산리나루터 언덕에서 잠시 가로림만을 조망하였다.
언덕에서 가로림만을 조망한 뒤 청산횟집식당 오른쪽 나루터길을 따라 시우치저수지 방향으로 이어간다.
중앙 뒤에 이화산, 가로림만 남쪽에 갈두천 제방과 선돌바위, 맨 왼쪽에 금굴산을 어림한다.
서해랑길은 나루터길을 따라가다가 왼쪽 뒤의 이화산 임도를 거쳐 맨 왼쪽 갈두천 제방으로 내려온다.
맨 오른쪽에 금굴산(금골산), 중앙 왼쪽 뒤에 태안의 진산인 백화산, 맨 왼쪽에 오석산, 바다에는 쌍도가 확인된다.
나루터길 403-1 주택 창문에 여러 서예 작품들이 걸려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경덕(敬德)', '향수(享壽)'. '얻었다 해도 본래 있었던 것/ 잃었다 해도 본래 없었던 것/ 집착하는 순간/ 당신은 자유를 잃게 된다!/ 아무런 속박 없이 마음껏 즐겁게 살아보자!' 그리고 판자문 입구에 '무공(無空)', '독(獨)'이 적혀 있다.
태안군 원북면 청산1리 감태마을에 자리한 썬황토마을 펜션 입구를 통과한다.
나루터길을 따라 청산1리 산지말 방향으로 이어간다. 태안군 원북면 청산1리 지역은 감태마을로 불리는 것 같다.
나루터길에서 가로림만 동남쪽을 다시 조망한다. 왼쪽에 팔봉산, 오른쪽에 오석산, 바다 왼쪽에 덤섬, 오른쪽에 쌍도가 보인다.
맨 왼쪽에 쌍도와 그 뒤에 오석산, 중앙 뒤에 태안의 진산(鎭山) 백화산, 맨 오른쪽에 금굴산(금골산)이 확인된다.
나루터길을 따라 태안군 원북면 청산1리 산지말 지역으로 이어간다. 맨 왼쪽에 금굴산(금골산)이 보인다.
왼쪽 언덕에 율하우스 펜션(율이네집)이 있다. 이곳을 산지말이라 이르는 것 같다.
청산나루터 언덕에서 나루터길을 따라왔다. 맨 오른쪽에 팔봉산과 덤섬, 중앙 오른쪽에 구도항이 보인다.
태안군 원북면 청산1리 산지말 언덕에 율이네집 펜션이 있다.
청산1리 산지말 버스정류장에서 청산1리 아랫말 지역을 나루터길을 따라간다.
나루터길을 따라 청산1리 아랫말 버스정류장을 통과한다. 언덕을 넘으면 청산1리 다목적회관이 있는 이적말인 것 같다.
나루터길 언덕을 넘어 창선1리 다목적회관이 있는 이적말로 내려간다.
가로림만 방향의 언덕에 대나무숲 앞에 농가 두 채가 있다.
청산1리 윗말에 청산1리 다목적회관이 자리한다. 다목적회관에 이적경로당이 있으니 이곳은 이적마을인 것 같다. "이적(梨摘)마을은 사창리 가마봉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로서 이적산 밑이 되어 마을 이름도 이적이라 부르게 되었음."(태안군지)
청산1리 윗말 버스정류소를 통과하여 나루터길을 계속 따라간다.
나루터길에서 가로림만 남쪽을 조망한다. 왼쪽에 백화산, 중앙 오른쪽에 금굴산, 그 사이로 가로림만 바다가 서남쪽으로 깊이 파고들었는데 지금은 산후방조제에 의해 간척되었다. 바로 앞 마을은 청산1리 청룡부리의 바닷가마을인 시우치마을인 것 같다.
나루터길을 따라 시후치마을 입구를 통과하여 청룡부리를 가로지른다. 왼쪽 뒤에 금굴산(금골산)이 보인다.
맨 오른쪽에 금굴산, 중앙 뒤에 백화산, 맨 왼쪽에 오석산이 확인된다. 맨 오른쪽 갈두천 제방 앞에 선돌바위가 보인다.
중앙 왼쪽 뒤에 금굴산(금골산)이 솟아 있고, 그 앞에 가로림만 갈두천 제방이 있고 그 왼쪽 앞에 선돌바위가 가늠된다.
나루터길 청룡부리를 돌아나간다. 바로 앞에 이화산이 우뚝하다.
시후치저수지 제방 앞에 청산1리 감태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가로림만에 자리한 청산1리는 감태 생산지로 유명한 듯.
이화산이 우뚝하고 그 아래 시후치저수지가 있다. 저수지 제방을 따라 이화산 임도로 올라가면 서해랑길을 단축할 수 있다.
나루터길을 따라 청룡부리를 넘어오면 마산1리 지역으로 들어온 것 같다.
나루터길을 따라 시후치저수지 옆을 통과한다. 앞쪽 지역은 원북면 마산리 지역으로 원이중학교가 있다.
마산리馬山里는 말미(말뫼). 본래 태안군 북일도면(北一導面)의 관할 지역이었는데, 이 북일도면이 북일면北一面으로 개칭됨에 다라 이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 때에 마산리·하이리下狸里·중이리中狸里·사증리思曾里·태포리笞浦里 일부를 병합하여 그대로 마산리라 해서 서산군 이북면에 편입시켜 최근까지 내려왔다. 1973년 7월 1일부로 법령 제2596호에 따라 이북면에서 원북면에 편입되었는데 1989년 1월 1일 태안군이 복군됨으로써 마산리는 다시 태안군의 원북면 관할 하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산이란 마을 이름은 마산馬山의 밑이 되어서 유래된 이름이다.(태안군지)
갈두천(풍천) 5.1km 지점이다. 반계천이 가로림만으로 흘러드는 입구를 막아 저수지를 조성했다.
서해랑길은 이화산 중턱의 임도를 따라 청산리 보타락가사 입구로 내려간다.
이화산(梨花山)은 살찐개 남쪽에 있는 산으로 182m 높이의 산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어 주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산, 조선시대 태종이 사냥왔던 곳으로 알려져 있음.(태안군지)
반계천은 가로림만 입구에 제방을 막아 시후치저수지를 조성하였다. 시후지저수지는 반계저수지라고도 불린다.
앞쪽에 원북면 마산리 중심지에 원이중학교 등의 행정관청이 자리하고 있다.
서해랑길은 다리 앞에서 반계천의 다리를 건너 이화산 임도 원이로를 따라간다.
태안군 원북면 마산리 85 지역, 75코스 시점 4km, 종점 16.8km 지점이다.
시우치저수지 입구에서 반계천을 따라 올라왔다. 정면에 보인느 산은 이교산이라 가늠한다.
이교산 아래 뒤쪽은 사창3리 태포마을과 사창저수지가 있을 것이다.
이화산 임도 원이로를 따라 이화산을 돌아간다.
왼쪽은 시우치저수지 전망뎈 100m, 오른쪽은 이화산 정상 1.7km 지점이다. 서해랑길은 임도를 계속 따라간다.
건너편 왼쪽에 구도항, 중앙에 쌍도, 그 뒤 오른쪽에 도내나루터, 중앙 맨 뒤에 팔봉산이 확인된다.
맨 왼쪽 앞에 쌍도, 그 맨 뒤에 팔봉산, 중앙에 오석산, 맨 오른쪽에 선돌바위가 확인된다.
맨 왼쪽에 선돌바위, 그 오른쪽에 갈두천 제방, 중앙 뒤에 백화산, 오른쪽에 금굴산이 확인된다. 오른쪽 임도로 내려간다.
이화산 임도에서 직진하면 목내미골인 듯, 서해랑길은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갈림길에서 걸어온 이화산 임도를 뒤돌아본다. 서해랑길은 이화산 임도와 헤어져 갈두천(풍천) 방향으로 이어간다.
이화산 임도에서 꺾어 내려오면 보타락가사 입구에 이른다. 서해랑길은 보타락가사로 내려가지 않고 직진한다.
보타락가산(寶陀洛伽山) : '보타락가'는 관음보살이 거주하는 포탈라카(potalaka)의 음역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선재동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보타락가산에 도착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바다에 접한 아름다운 곳이라 했다. 현장법사도 인도에 다녀와서 스리랑카로 가는 바닷길 가까이에 이 산이 있다고 기록했다.(불교신문)
이화산 임도에서 꺾어 청산길을 따라 보타락가사 입구로 내려왔다.
드넓은 초지에 축사들이 자리하고 곤포사일리지들이 보인다.
목장 울타리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태안군 원북면 청산리 259-5 지역, 75코스 시점 5.7km, 종점 15.1km 지점이다.
진선미농원 입구에서 청산길을 따라 내려간다.
진선미농원은 사과를 재배하는 과수원이다.
보타락가사 입구에서 청산길을 따라 오다가 목장 울타리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진선미농원 앞을 거쳐왔다.
가로림만 남쪽 해안 갈두천 제방 입구에 청산리 오토캠핑장이 있다. 보타락가사에서 해안을 따라오면 이곳으로 나온다.
갈두천 제방에서 바로 앞 선돌바위와 그 왼쪽 뒤 쌍도, 왼쪽 맨 뒤 구도항, 중앙 맨 뒤 팔봉산을 조망한다.
갈두천 제방에서 걸어온 가로림만 북쪽 해안을 돌아본다. 오른쪽 끝 청산리나루터에서 왼쪽 끝 이교산 아래의 시우치저수지 입구까지 걸어온 나루터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에 솟은 산봉은 이교산, 그 오른쪽 뒤에 이적산이 보인다.
걸어온 이화산 자락의 임도 흔적이 보인다. 왼쪽 솔숲에 청산리 오토캠핑장, 중앙 오른쪽에 보타락가사가 보인다. 보타락가사 와불전에는 금불로 만든 길이 10m의 열반에 든 부처가 누워있는 ‘열반와불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보타락가사 해수관세음보살님은 하루에 한 번 세상에 나투십니다. 평소에는 법당 내에 모셔져 있다가 정오가 되면 대웅전 위로 올라와 서해바다를 바라보도록 설계됐죠. 관세음보살님의 대원으로 중생의 아픔이 사라지고 모든 중생이 구제되기를 바라는 것이 보타락가사가 조성된 이유입니다.” - 보타락가사 회주 법진 스님(불교신문)
갈두천 제방에서 뒤돌아서서 가로림만 해안 안쪽의 서남쪽을 조망한다. 갈두천 위쪽에 청산2리 마을이 자리한다.
갈두천葛頭川은 풍천, 신내라고도 한다. 풍천風川은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곳을 통칭하며, 이 하천은 철마산에서 발원하여 소원면 영전리, 시목리, 원북면의 양산리, 장대리, 대기리, 청산리, 태안읍의 삭선리에 걸쳐 흐르는 군내에서 가장 긴 하천임. 청산리와 삭선리를 연결하는 제방을 축조하기 전까지는 해수가 장대리까지 들어왔으며, 바닥이 갯뻘로 되어 있어 수초가 무성하고 민물장어, 참게, 망둥이, 숭어, 남생이, 붕어, 새우, 잉어, 미꾸라지 등 수많은 바닷고기와 민물고기가 서식하였음.(태안군지)
가로림만 갈두천 제방에 이화산 설명안내판, 선돌바위 설명안내도, 솔향기길 노선도, 한 쌍의 다이아몬드 반지 조형물이 있다.
위 설명을 읽어보면 이화산은 금북정맥에서 분기한 산줄기 후망지맥에 속하는 것 같다.
이화산(梨花山)은 태안군 청산리와 마산리에 위치하며 가로림만에 접해 있는 산이다.(고도:182m). 『여지도서』에 "이산(梨山)은 군 북쪽에 있으며 산줄기가 백화산으로부터 와서 갑묘 방향에서 떨어져 오정 방향으로 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산군지』(1926)에 "이화산은 산맥이 소원면 철마산에서 나와 북쪽으로 와서 지맥이 나뉜다. 한 지맥이 본면 청산리·마산리 중앙에서 우뚝 솟아 이화산이 되고, 한 지맥은 원북면의 여러 봉우리와 여러 섬들을 지배하고 그 남은 세력이 또 포지리에 들어가 우뚝 솟아 오대산이 되었다. 여기에서 산맥이 떨어져 당산리 국사봉, 관리 노인봉, 내리 후망봉 등 여러 산이 되었고 북쪽으로 내리를 향하여 그친다."라고 되어 있다. 이 내용을 통해서 이산과 이화산이 같은 산임을 알 수 있다.
선돌바위는 침식과 풍화에 이런 모양이 되지 않았을까?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바위를 떼어 무엇에 썼을까? 의문이 든다.
가로림만(加露林灣) 바다에 있는 선돌바위는 본래 지금보다 크기가 훨씬 큰 형태이고 신성시 여기는 바위였다. 그런데 과거 일제강점기(1910~1945)에 일본인들이 바위를 깨뜨려 배에 실어 어디론가 나르기 시작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주민들이 더 이상 바위를 깨뜨리지 못하게 힘을 합쳐 막아 내어 지금의 크기와 형태로 남아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듯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갈두천 제방에서 선돌바위를 동북쪽으로 바라보면 가로림만 남쪽 해안은 모두 보이는 듯, 팔봉산이 이를 굽어본다. 맨 왼쪽 청산리나루터 왼쪽 뒤로 가로림만 북쪽 해안이 이어진다.
가로림만 바다의 선돌바위를 향하여 다이아몬드 반지 한 쌍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반지 안에 선돌바위를 담아야 하는데.
갈두천 습지를 배경하여 태안 서해랑길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능선 뒤 맨 뒤쪽은 서해 바다 만리포 해안일 것이다.
갈두천 제방으로 인하여 넓은 습지가 조성되었다.
가로림만 북쪽의 원북면 청산리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적산과 이교산 능선이 선명하다.
가로림만 청산리 해안이 서남쪽으로 이어진다. 시우치저수지가 중앙에 보이고 그 오른쪽에 이적산과 이교산 능선, 그 왼쪽에 이화산 능선이 이어진다. 왼쪽 가로림만 해안에 보타락가사가 보인다.
원북면 청산리에서 태안읍 삭선리로 갈두천 제방이 이어지고 중앙에 이화산 능선, 가로림만 해안 중앙에 보타락가사가 있다.
갈두천 제방에 의하여 드넓은 습지가 형성되었고, 그 사이로 뎈길이 조성되어 있다.
서해랑길은 청산길을 따라가다가 갈림길에서 왼쪽 위생처리장 입구 방향의 삭선길로 진행한다.
위생처리장 입구의 솔향기길 이정목에 5코스 노선도가 붙어 있다. 서해랑길은 위생처리장 입구 오른쪽 삭선길을 따라 이어간다. 위생처리장은 분뇨처리장을 미화한 용어이다.
솔향기길 5코스 노선도를 살피니 갈두천 제방에서 5코스가 시작되는데 현 위치가 잘못 표시되어 있는 것 같다.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꺾어 태안헬스리조트 입구 앞을 통과하여 삭선길을 따라간다.
태안헬스리조트는 가로림만 서쪽 해안을 장악하고 있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삭선길을 따라 올라간다.
태안헬스리조트 건물 뒤쪽 가로림만 바다를 조망한다. 중앙 뒤에 팔봉산이 멋지다.
오른쪽 이화산 정상에서 왼쪽으로 능선이 이어지고, 그 아래 거쳐온 목장이 확인된다. 갈두천 제방에 의해 조성된 간척농지에 하얀 곤포사일리지들이 놓여 있다.
태안헬스리조트 입구에서 삭선길을 따라 올라오다가 중앙 뒤의 이교산과 왼쪽의 이화산을 뒤돌아본다. 간척농지도 보인다.
삭선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꺾어 금골산 용주사와 삭선생태공원 방향으로 이어간다.
위생처리장 입구에서 삭선길을 따라 태안헬스리조트 앞을 거쳐 이곳으로 왔다. 왼쪽 뒤에 이적산과 이교산이 보인다. 생태공원 1.74km 방향으로 이어간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노인복지시설인 선한솔몬과 태안군환경관리사업소로 이어지고, 서해랑길은 오른쪽 금골산 용주사 방향으로 이어간다. 그런데 용주사는 대한불교 총화종 소속이다. 총화종? 대한불교 총화종(大韓佛敎總和宗)은 1960년대 불교 분쟁 때 최득연(崔得淵) 스님이 1969년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서 창종하였으며 원효 사상계에 속한 한국불교의 한 종파라고 한다.
삭선길을 따라 용주사로 이어간다. 오른쪽은 동식물 관련 건물 건축 공사 중이다. 중앙에 금굴산이 솟아 있다. 그런데 금굴산을 이제 금골산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금굴산(金窟山)은 행주산이라고도 하며, 태안읍 삭선리(朔善里)의 해창에 있는 산으로서 옛날 이 산에서 금을 캤던 데서 유래된 이름."(태안군지)
선한솔로몬 갈림길에서 용주사 방향의 석산길을 따라 동식물 관련 건물 건축 공사 현장을 거쳐왔다. 중앙 왼쪽 뒤에 이화산, 중앙 오른쪽 뒤에 이교산이 보인다.
대한불교총화종(大韓佛教總和宗) 금골산(金骨山) 용주사(龍珠寺)의 창건 연대는 미상이라고 하나, 고려 말엽에 금굴사로 창건되었다고 추정하며 1950년 6.25 전쟁 때 전소되었다고 한다. 그 뒤 '복성암(福成庵)'으로 불사(佛事)를 시작하여 이후 가로림만 바닷물 속에 달빛이 비추는 모습을 보고 암자명을 '수월암(水月庵)'으로 바꾸었다가, 현재의 주지스님이 1971년 용주사(龍珠寺)라고 개명하고 대대적으로 확장하였다고 한다. 입구에 일주문은 없고 석조 사자상 한 쌍과 석조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