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의 본 53선지식 12, 12. 효령대군이 인욕을 배우는 연주암에 올라
연주암을 방문하기 위한 추억이 생각난다, 연주암에 주지로 았던 스님이 그리워진다, 아 그날에 스님을 생각하면서 효령대군이 인욕을 배운 연주암에 올라가자는 제안을 받고 박물관장 탄탄 스님과 문화부장 성공 스님과 처음만난 베트남 파병 용사의 차를 타고 연주암을 방문하기 위하여 관악산 산 등선에 세운 삭도차를 타고 올라갔다
삭도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고 올라가는데 연주암이 멀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삭도차를 타는 것은 시간적으로 단축될 수 있는데 삭도차를 세우지 전에 연주암에 올라서 춘성 선사가 설법하던 날을 기억하였다, 춘성 선사가 설법할 때에는 연주암까지 걸어서 땀을 흘리면서 올라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이다,
연주암이 가까이 보이는데 12월 28일이라는 겨울날을 기억하게 하려는 모습인 듯이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어 날씨는 가을 날 같은 모습이지만 단풍이 들 때가 참으로 아름다운 관악산이라고 느낌이 들었다, 정상에 삭도가 도착했을 때 나는 연주암까지 가는 삭도가 있었다, 그 삭도를 타고 내려갔다,
연주암에 도착해 보니 연주암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신도들의 참배는 소수이지만 전 박물광장 스님이 차를 공양한다고 하여 차방으로 갔다, 차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효령대군이 연주암에 거주할 시기에 한양을 바라보고 있던 기다림을 생각하게 하였다,
연주암이라는 의미는 바로 효령대군을 위한 암자라는 사살을 기억하게 하려는 뜻에서 보면 연주암의 의미는 매우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주암에 오르는 길은 나를 더욱더 성장하게 하는데 삭도가 나를 연주암에 오르는 길을 힘이 들지 않는 몸이다,
효령대군이 원하던 세상은 바로 자신의 수행관이다, 효령대군은 권자에서 벗아나던 이후에는 정치에 있어서 기다림이 아니라 연강이라는 승려의 이름으로 출가를 하였다, 연강이라는 승려의 이름으로 조선불교를 전승하게 하였다, 효령대군이 불교를 수호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오늘날에 불교의 흔적은 소멸되었다고 본다,
효령대군은 연강 스님으로서 부모은중경 사경을 하였던 역사를 남긴것은 천안에 있는 광덕사에는 부모은중경을 사경을 한 자료가 남아있어 보물이라고 칭한다, 불교경전을 사경하는 이유는 바로 효령대군의 정신을 이어가려고 결사한다,
효령대군을 생각하면서 나는 묘볍연화경 사경을 9차에 임하고 있는데 연주암에서 효령대군을 더욱더 생각하게 하였다, 나는 효령대군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정치에 있어서 불교계의 정치에 있어서 소극적이다,
불교개혁을 이루이후에 주지 직에 임하기라도 했으면 나에게도 자본의 논리를 고찰했을 것인데 주지직에 임하지 못해 자본에 대한 이론을 알지 못했다, 연주암에는 겨울이다, 나를 떨게 하는 연주암이다, 다시 연부암에서 내려와 나를 잠들게 하고 있다,
2021년 12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