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모르는 세상을 보다

[원지호]

모르는 세상을 보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를 읽고

1.

첫째 유림이는 한국사를 좋아한다. 평소 한국사 학습만화를 많이 본다. “용선생 시끌벅적 한국사”나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을 좋아한다. 초등학생이 읽도록 쉽게 쓴 역사책도 본다. 유홍준 교수의 “10대들을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나 역사 인물을 이야기 형식으로 쓴 책도 종종 읽는다. 학교를 안 다녀서 역사 수업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코로나 유행이 끝나가자 도서관에서 역사 강의를 열어서 수강했다. 고조선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일년에 걸쳐 다 들었다. 

  가족여행을 계획하면 꼭 역사 유적지를 가자고 요구한다. 작년에는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를 다녀왔다. 서울에 갔는데, 궁궐투어를 했다. 서울을 다녀온 뒤로는 서울에 살고 싶다고 한다. 사람도 많고, 갈 곳도 많다는 이유다. ‘어디 가고 싶은데?’ 물으면 못 가본 궁 다 가고 싶다고 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요즘부모연구소>를 새롭게 시작한다. 출범식에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축하 강의를 최재천 교수님이 하신단다. 셋째 유얼이에게 소식을 알려주며 가고 싶은지 물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셋째는 꼭 가야한다고 했다. 첫째도 끼었다. 서울 간김에 다른 곳을 둘러보고 싶다고 한다. 금방 몇 군데 정했다. 숭례문,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 종묘.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첫째가 신기하기만 하다.

2.

올 5월에 친하게 지내는 슬아와 함께 경주월드에 갔다. 경북 영천인 집에서 멀지 않아 자주 간다. 그 날은 서둘러 오전 일찍 입장해서 문 닫기 직전까지 놀았다. 같이 입장한 아내는 녹초가 되었다. 아이들은 더 놀지 못해 아쉬워했다. 자기들끼리 다음에는 1박 2일로 오자고 한다. 첫날 경주월드에서 놀고, 숙소에서 자고, 다음 날 ‘오픈런’을 하자고 한다. 생각만으로도 힘들다. 이틀 연속 놀이공원이라니.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상상을 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다녀온 뒤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경주 여행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역사 기행’으로 컨셉이 바뀌었다. 첫째 유림이가 설득했을 것이다. 용돈을 모아두었던 통장에서 돈을 빼서 회비를 모았다. 무려 30만원. 숙소비, 식비, 간식비까지 계산해서 모은 돈이다. 첫째 아들은 어디 갈지를 정하고, 둘째 딸은 회계를 맡았다. 모든 아이들이 방문할 곳을 책을 읽으면서 조사해서 자료집을 만들기로 했다. 경주월드에 같이 갔던 슬아네도 참여했다. 

  날짜를 정하고, 숙소를 잡았다. 아이들은 일주일 전부터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각자가 맡은 곳을 정리하였다.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넣었다. 탐방한 곳을 잘 배웠는지 확인하기 위해 문제도 출제했다. 첫째가 다른 아이들이 정리한 자료를 받아서 자료집을 완성했다. 나와 아내는 완성된 자료집을 보고 놀랐다. 이 정도로 잘 만들지 몰랐다. 자료집에 실린 참고도서 목록에는 네 권의 책이 적혀 있었다.

드디어 여행 당일이 되었다. 첫 여행지는 분황사다. 슬아네와 주차장에서 만나서 입구로 들어갔다. 들어서자 모전석탑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서 있었다. 석탑이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막 들어선 것만 같았다. 자료를 준비한 첫째 유림이의 설명을 듣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남쪽 문으로 나서자 황룡사 터로 이어졌다. 들판 한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서 황룡사 터를 볼 수 있었다. 풀에 덮여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어진 길로 황룡사역사문화관으로 갔다. 문화관에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십분의 일 크기로 복원한 모형이 있었다. 모형은 건물 2층 높이다. 당시 얼마나 웅장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근처에서 시원한 메밀국수를 먹으며 잠시 쉬었다. 다음 목적지는 선덕여왕릉이다. 이번 여행 첫 능이다. 첫째 아들은 여행을 계획할 때 능을 네 군데나 가자고 했다. 똑같이 생긴 능인데 두 군데만 가면 안되냐고 설득했다. 아들은 수긍했다. 그리고 ‘선덕여왕’을 여행 전체 테마로 잡았다. 분황사와 황룡사는 선덕여왕 재임기간 지어진 절이다. 저녁엔 첨성대도 갈 예정이었다. 선덕여왕릉으로 향했다. 능산 꼭대기에 있다. 산은 높지 않았지만 도착했을 때 다들 숨을 헐떡였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왜 이렇게 높은 곳에 묻혔을까? 

  오후에는 날이 더워서 숙소에서 쉬고 저녁에 월성과 첨성대 야경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비가 내려 첫날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둘째날 우리는 태종 무열왕릉으로 갔다. 두 번째 왕릉이다. 선덕여왕릉에 비해 더 컸다. 평지에 있어서 둘러보기도 좋았다. 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자 네 개의 능이 더 나왔다. 누구 것일까?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무열왕릉보다 높은 곳에 있으니 더 많은 업적을 남긴 왕이 아닐까. 일정이 예상보다 일찍 마쳐 경주국립박물관을 둘러보자고 했다. 마침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그림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말다래(말 탄 사람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밑에 늘어뜨린 판)에 그려진 천마가 신비로워서 한참을 보았다. 

  모든 일정을 마쳤다. 점심을 먹고, 황리단길에 있는 카페로 갔다. 방에 둘러앉아 아이스크림과 팥빙수를 먹으며 첫째 유림이가 준비한 퀴즈대회를 시작했다. 부모팀과 자녀팀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맞추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틀린 답도 재밌었다. 첫째의 말솜씨와 진행 덕분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우승은 아이들이!

아이들이 보여준 경주는 또 다른 세계였다. 어른인 나와는 다른 시선으로 보았다. ‘굳이 이런 곳까지 가야해?’라고  생각했지만, 가보고 싶어했다. 그들의 호기심이 나의 게으름과 익숙함을 이겼다. 작은 발을 따라가는 내내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세계만 아니라 그들 안의 세계도 보았다. 그 안의 세계가 이렇게 자랐는지 몰랐다. 앞으로 더 다채롭고 아름답게 자랄 그 세계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