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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문학기행
김윤자
2005년 4월 23일 토요일
채석강, 이순신 촬영지, 선운사
* 가는 길
수원역에서 김제 행 오전 8시 기차를 탔다. 이 열차는 선운사 동백꽃 관광을 위한 임시 특별 열차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몇 명씩 앉아 담소를 나누며 간다. 우리도 봄맞이 가족 기행이다. 작은 아들은 대학 4학년 중간고사가 오늘까지 있어 못 가고 큰 아들과 남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떠난다.
오늘의 여행 일정은 변산 반도의 채석강과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 촬영장, 마지막으로 고창 선운사를 둘러보고 정읍에서 상행선 기차를 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당일 관광이다.
여행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 최상의 투자라 했다. 또 어느 의사는 3년만 여행하면 웬만한 병은 약을 먹지 않고도 고친다 했다. 우리 가족은 시간만 허락하면 여행을 한다. 두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가능해진 일이다.
나는 큰 아들과 앉아서 갔다. 일찍 일어나서 조금은 피곤하지만 여행의 설레임으로 기쁨이 앞선다. 이야기도 나누다가, 바깥 풍경도 보다가, 잠시 눈감고 쉬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들을 레일 위에 깔아 놓으며 남쪽으로 달린다. 서대전을 지나면서 호남선으로 갈라져 논산을 통과한다.
촉촉이 눈뜨는 들녘과 산 자락이 정겹고 아름답다. 새싹과 봄꽃들이 겨울을 헤집고 나와 생명이 눈떴음을 보여주고 있다. 들녘에는 농부들이 농사일을 시작하느라 분주하다. 주로 비닐하우스를 손보고 있다. 호남선 열차는 자주 타 보지 않은 노선이다. 그래서 더욱 신비롭다. 기차는 어느새 익산을 지나 김제역에 도착했다.
김제역에 도착하여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과 함께
* 김제 평야
김제역에 도착한 것은 11시다. 처음으로 내려본 역이다. 이곳은 남동생 아내의 고향이라서 정이 가는 곳이다. 아담하고 조용한 도시가 눈 앞에 들어오고, 역사 또한 아담하다.
버스를 타고 채석강으로 향했다. 시가지를 지날 때 높은 건물이 없음이 대도시와는 다름을 보여준다. 올망졸망한 가게들과 집들이 여행을 실감하게 한다.
시가지를 벗어나 들녘길로 차가 접어들었을 때 시야는 확 트였다. 학창시절에 배운 김제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사실 나는 김제 평야를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오늘의 여행은 이 김제 평야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산이 아주 멀리 보인다. 중국의 어느 한 토막을 보는 듯하다. 광활한 저 땅이 우리 대한의 땅임이 자랑스럽다. 우리나라는 비행기를 타도, 기차를 타도 거의 산이 보이는데, 생각보다 훨씬 넓은 대지가 가슴을 뜨겁게 한다.
김제 평야 농토에는 파란 새싹이 일어서고 있다. 바둑판처럼 네모 반듯한 토지에 보리인 듯한 식물이 끈끈하게 엉겨 살고 있다. 산도 저 멀리로 밀어버린 들녘에 중국 소주의 물길처럼 긴 물길이 흐르고 국토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나의 올케가 이곳에서 나고 자라 생활력이 그리도 강함을 이해시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동진강은 대지의 아버지처럼 한 가운데로 넓게 자리잡아 흐르고 있다. 아직은 찬 봄기운에 일어서지 못한 땅에 저 젖줄이 속속히 스며들면 생명은 더욱 힘차게 일어서리라. 아침 햇살과 가물거리는 안개 사이로 버스는 채석강을 향해 달리고 있다.
김제역에서 채석강 가는 길에 본 김제평야.산이 아주 멀리 보이는 광활 들녘
* 변산반도 채석강
김제역에서 1시간을 달려온 버스는 낮 12시 30분에 채석강에 도착했다. 날씨는 매우 화창하여 눈부신 하늘이다. 여행객을 위한 상가 시설이 잘 되어 있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퉁이를 돌아 조금 걸어가니 드넓은 서해바다가 펼쳐진다.
나의 고향은 충남 보령이다. 대천 해수욕장의 바다를 자주 보며 자랐다. 낯설지 않은 저 바다, 나의 정신을 흡입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나의 유년의 걸음처럼 바닷가를 즐거이 거닐고 있다. 대천 해수욕장 해변에 비하면 아주 협소한 해변이지만 끝없는 수평선과 깊은 물의 뚝심은 동일하다. 바다를 만끽하며 바위가 보이는 쪽으로 갔을 때 그 초입에서부터 우리는 감탄사와 함께 두 눈이 커졌다.
당나라 이태백이 빠져 죽은 강과 비슷해서 채석강이라 불리는 이곳은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의 최서단 땅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위치에 놓여 있는데 켜켜이 쌓인 바위 형상이 시루떡을 쌓은 듯, 책들을 쌓은 듯 기묘한 풍경이다. 어느 조각가의 손길로도 탄생시킬 수 없는 신비가 격포항 오른쪽 닭이봉이라는 작은 산 아래 절벽 전체에 깔려 있다.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곳이다. 바닷물이 들어와 다 돌아보지 못했지만 면적이 12만 7372m²라 한다.
산모롱이에서 만난 밀물이 순식간에 차 오른다. 바닥의 바위들도 물결 모양, 혹은 떡장을 쌓은 모양이다. 절벽의 바위 사이에서 물이 흐르는 곳은 검고 싱싱한 생명의 빛이 흐른다. 어느 한 곳 뭉툭한 바위가 없다. 톱니 바퀴를 빠져나오듯 바다와 책장을 무수히 쌓아놓은 바위 절벽 사이를 잰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바다 쪽에 있는 바위조차 떡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의 아름다운 변산반도 풍경
떡장을 쌓아놓은 듯한 채석강 바위 절벽 앞에서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과 함께
* 채석강 이어도 횟집
바닷가에 길손을 맞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우리의 시선을 끈 곳은 채석강 이어도 횟집이다. 해변의 결고운 모래사장에 주황색 철계단을 비스듬히 세워 쉬이 오르도록 지은 건물이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채석강에 왔으니 채석강이 들어간 집에서 먹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상냥한 여주인이 다가왔을 때 메뉴에 대해 물었더니 쭈꾸미 회가 좋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도 3, 4월은 쭈꾸미가 산란을 준비하는 달로 알배기여서 영양가가 많다고 들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넓은 유리창 밖으로 바다를 보았다.
하얀 물보라를 품고 달려오는 바닷물이 해변에 춤춘다. 보트 유람선 선착장이 통째로 바다 위에서 이동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아까는 채석강 기묘한 바위 절벽이 보이는 바닷가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밀려드는 물로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식당가의 안전한 땅에 긴 사다리 모양의 선착장 통로를 옮기고 있다. 처음 보는 신기한 풍경이다. 주위에는 손님을 맞으려는 소형 보트 행렬이 카퍼레이드(car parade)인양 바다를 누비고 다닌다.
아름다운 점심 식사가 나오고, 먹는 즐거움만큼 바다를 바라보는 눈이 즐거운 시간이다. 싱싱한 쭈꾸미회가 참 부드럽다. 머리 부분에서 씹히는 알들이 오도동 오도동 입안에 구른다. 한 접시에 3만원이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다. 구수한 미역국과 황석어 젓갈이 일품이다.
2시 30분에 다음 여행지로 옮김에 서둘러 나와 주변의 나머지 경치를 둘러보았다. 부안군 농수산물 마트 앞의 솔숲이 울창하다. 바다와 백사장과 바위와 솔숲까지 완벽한 아름다움이다.
변산반도 해변에 있는 채석강 이어도 횟집.쭈꾸미회로 점심식사한 곳
채석강 이어도 횟집에서 점심식사 중 금새 물이 들어오고. 바다 위에서 통채로 옮기는 보트 선착장
*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 촬영지
채석강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KBS 대하드라마〔불멸의 이순신〕촬영 세트장이 있다. 약 20분 후, 채석강을 떠난 버스는 산 중턱의 언덕 도로에 멈추었다. 오늘이 토요일, 쉬는 직장이 많은 날이어서 이곳을 가족과 함께 찾아온 행렬로 차도가 막힌 것이다. 요즈음 드라마에서 임진왜란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까닭이기도 하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긴 산길을 걸어서 내려가니 바다가 보였다. 양쪽이 산으로 둘러쳐진 아늑한 바다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긴 등대길이 연결된 등대였다. 꽤나 높은 산 중턱의 도로 위에 서 있어 바다는 저 아래에 있다. 사람이 사는 정경도 보이고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한동안 산길을 따라 걸어간 바다 가까운 절벽 위에 층층이 지어놓은 기와 지붕이 보인다. 높다란 망루도 입구에 서 있다. 언뜻 보면 부자가 살던 옛집같은 느낌이 든다. 문을 들어서니, 이곳이 드라마 촬영지였음을 실감케 한다. 건물의 벽면 곳곳에 이곳 전라 좌수영에서 촬영한 드라마 장면들이 대형 액자로 걸려 있다.
나무 문턱을 여러번 넘어 바다 쪽으로 가니 아직도 깎아지른 절벽 낭떠러지 저 멀리 바다에 포진한 쪽배의 깃발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섬으로 떨어진 한 도막 산 위에는 망루가 있어 적군의 침입을 감지하던 그날을 재현시키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푸르고 날카로운 눈동자가 조선의 바다를 지키셨음에 오늘의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지 않겠느냐는 전율이 가슴에 흐른다. 눈부신 햇살이 장군의 뜨거운 충정으로 발목을 적신다. 교훈적인 여행지다.
불멸의 이순신 KBS 대하드라마 전라좌수영 촬영지
이순신 촬영장 전경.사극을 좋아하는 큰아들의 늠름한 모습
이순신 촬영장에서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과 함께.저 멀리 그날의 푸른 바다와 망루
* 고창 선운사
산 깊은 곳에 들어앉은 우람한 절이었다. 전라 좌수영 이순신 촬영지에서 1시간을 달려온 곳이다. 버스 주차장에서 한동안 걸어갔다. 양쪽에 줄지어 늘어선 벚꽃나무 터널이 오랜 역사를 증명해 준다. 벚꽃이 지지 않았다면 환상적인 길일 것이다. 선운사의 높은 맥으로 장엄하게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발걸음으로 오르지 못하는 산자락 아래 넓은 뜨락의 선운사가 자리하고 있다. 절의 마당도, 건물들도 예사롭지 않은 선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높다란 석탑이 있고, 기묘하게 곡선의 가지로 서 있는 나무가 있다. 아직 잎이 피지 않아 구부러진 가지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생의 굴곡이 저러하리라.
이 절은 불교의 기본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조선 후기에 지어진 절이라 한다. 불교 학자 긍선이 처음 입산수도한 절이기도 하다. 도솔천 맑은 물이 굵은 가로수 아래 적막하게 흐르고 한참을 올려 보아야 산봉우리가 보이는 깊은 터에서 참선으로 이어진 선인들의 자취를 본다.
해가 넘어가는 산에는 삼천그루의 동백이 커다란 군락을 이루고, 대웅전 뒤켠에 매어둔 개 두 마리가 생명의 소리를 읊어댄다. 푸르다 못해 검은 기운이 감도는 선운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선운사를 기념하는 대형 불이 대웅전 앞 건물에 놓여져 있다. 인간 고뇌의 아픈 고리를 잠재우는 무아의 함성이 서리어 있다. 마당 가 약수물로 속진을 사르고 나니 조금은 수련된 몸과 마음으로 가벼운 걸음이다.
선운사 입구의 연등 터널.우리 가족 (좌)남편과 큰 아들그리고 본인 김윤자
선운사 본전 대웅전 앞에서 남편과 큰 아들 .아름다운 곡선 가지의 나무와 석탑
* 선운사 동백꽃
동백꽃을 만난 것은 선운사 뒷마당에서다. '선운사하면 동백꽃' 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왔다. 시인들이 무수히 노래한 시제이기도 하다. 선운산 한자락 거의 전면을 동백꽃 나무들이 차지하고 있다. 상당히 가파른 산인데 층층이 까치발로 서서 길손을 맞는다.
삼천 그루 동백꽃 군락 앞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 눈과 가슴이 분주하다. 동백나무 푸른 숲 물결 위에 눈물겹도록 피워올리는 붉은 사랑에 가슴이 탄다. 유난히도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금년 봄, 4월 하순이면 만개했어야 할 동백꽃들이 아직은 꽃잎을 활짝 피우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저 모습이 나으리라. 몽실몽실 붉은 입술만도 황홀한데 네가 여기서 활짝 웃고 서 있다면 내 영혼 어이 돌아가리.
오백년 세월, 서해바다의 겨울 풍파를 이긴 나뭇가지가 부채살처럼 밑동에서부터 퍼져 탄탄한 둥지를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것은 꽃물결을 받치고 선 밑동가지물결도 마찬가지다. 선운산 땅의 정기를 뿜어 올리는 뽀얀 맨살의 나뭇가지 군락이 부끄러이 요동치고 있다.
해는 산을 넘어가고 석양을 등진 동백나무들이 더욱 크고 동그란 사랑을 쏟아낸다. 돌아서야 하는데 등 뒤에서 시리도록 고운 꽃아씨들이 마음을 있어 모두들 떠나지 못한다. 아쉬운 걸음으로 돌아갈 때 선운사 입구의 공원에 세운 미당 서정주 시인님의 시비 곁에는 분홍꽃 동백나무 한그루가 님을 기리고 있었다.
선운사 뒤편 선운산의 삼천그루 동백꽃 붉은 물결
동백꽃 물결 앞에서 꽃처럼 웃고 있는 본인 김윤자.사람들 아쉬움에 떠나지 못하는 걸음들
선운사 국립공원에 세워진 미당 서정주 시비 앞에서.좌측의 분홍 동백꽃 가신 님을 기리고
* 돌아오는 길
선운사 동백꽃들의 뜨거운 안녕 함성을 뒤로 하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되돌아 가는 길에 칡차 한잔씩 사 마셨다. 그 옛날 산에서 캐다가 씹어 먹던 그 맛이다. 쌉쌀하면서도 목을 개운하게 한다. 동동주와 토산물을 파는 이곳 아낙들이 도로변에서 삶의 소리를 외친다. 버스 주차장에 다달았을 때 마지막 만난 젓갈장수 아저씨에게서 새우젓과 황석어젓을 한통에 각각 만원씩 주고 사 왔다.
선운사를 출발한 것은 오후 5시 40분이다. 정읍에 가서 상행선 기차를 타야 한다. 해는 저물어 가고 차는 아름다운 고창 선운사를 뒤로 하고 노련한 질주로 달려 나간다.
정읍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 20분, 우리는 6시 40분 기차에 몸을 실었다. 김제와 용산을 왕복 운행하는 임시 특별 열차다. 변산 반도와 고창 선운사 봄철 여행을 위해 주말에 잠시 철도청에서 배려해 준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우리 가족이 탄 객실은 2호차, 맨 끝부분 좌석으로 한적하다. 중간 좌석이 텅 비어 있어 앞좌석의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
어느새 창 밖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다. 창문 가까이 눈을 대고 하늘을 보니 둥근 낮달이 높이 떠 있다. 왼편 들녘에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가 붉은 몸부림이다. 둥근 해와 둥근 달이 좌우 양편 하늘에서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큰 아들이 전화기로 다운받아 들려주는 노래가락에 따라 부르며 돌아오는 길은 참 행복했다.
고창 선운사에서 상행선 열차를 타기 위해 정읍역에 와서.남편과 큰 아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핸드폰으로 다운 받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큰 아들과 본인 김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