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애도 (1498)
알브레히트 뒤러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탐구 정신이 풍부한 사상가였으며,
‘독일 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최고의 화가이다.
뒤러가 태어나고 활동한 뉘른베르크(Nürnberg)는 유럽 한가운데에 자리한,
당시 신성로마제국 최대 도시인 쾰른 다음가는 규모의 도시로,
인문주의를 비롯한 학문, 인쇄, 항해와 천문 도구 개발을 중심으로 한
과학 기술과 무역이 발달한 국제적인 도시였다.
뒤러의 아버지는 헝가리에서 이주한 금 세공사로,
뒤러도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금 세공사 교육을 받았다.
15세가 되던 1486년에 그림으로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한 뒤러는
화가 미하엘 볼게무트(Michael Wolgemut)의 도제로 4년을 보내며,
제단화를 비롯한 종교화와 책의 삽화, 목판화 등을 배웠다.
도제 수업을 마친 그는 견문을 넓히려고,
19살이 되던 1490년부터 4년간 독일, 네덜란드, 북부 프랑스, 스위스를 여행했고,
23살 되던 1494년부터 2년간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고향 뉘른베르크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베네치아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방을 열었다.
뒤러가 1498년경에 그린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현재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이 작품은 마태오복음 27장 57-61절이 그 배경이다.
저녁때가 되자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으로서 요셉이라는 이가 왔는데,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자,
빌라도가 내주라고 명령하였다.
요셉은 시신을 받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시고 나서,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다.
거기 무덤 맞은쪽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마태 27,57-61)
이 작품은 뉘른베르크의 성 요한 교회에 있는
칼 홀츠슈허(Karl Holzschuher)의 가족 경당을 위해 제작되었다.
뒤러의 서명은 예수님의 흰 아마포 모서리에서 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작품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작품으로 간주 된다.
아래에는 가시관과 홀츠슈허(Holzschuher) 가문과 그뤼버(Grüber) 가문의 문장이
봉헌자들의 가족들과 함께 작은 비율로 묘사되었는데,
왼쪽은 홀츠슈허와 아홉 명의 아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딸이 있다.
이 그림의 중심에는 흰 아마포 위에 죽은 그리스도가 길게 누워 있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여섯 명의 사람이 있다.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도 성 요한은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색 옷을 입고,
예수님의 시신을 깨끗한 아마포로 정성스럽게 감싸며 부축하고 있다.
그 옆의 흰 수염을 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합장하고 기도하는데,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했고,
예수님의 시신을 새 무덤에 모신 사람이다.
그 옆에 믿음을 상징하는 흰 두건을 쓰고,
깊은 바다의 색인 감청색 옷을 입고 머리를 비스듬히 하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눈물을 흘리는 여인이 성모마리아이다.
슬픔을 절제하려는 성모의 모습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더 큰 감동을 준다.
성모 오른편에 있는 그분의 이모는 두 손을 높이 들며 대성통곡하고 있는데,
성모의 슬픔을 몸짓으로 대변하고 있다.
뒤에 두 사람이 장례를 치르려고 향유 병을 들고 서 있는데,
중앙에 믿음과 하느님의 사랑을 뜻하는 흰색 두건과 푸른색 옷과
붉은색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는 여인이 마리아 막달레나이고,
오른쪽에 희망의 색인 녹색 모자와 녹색 옷을 입고 있는 이는 니코데모이다.
왼쪽 배경에는 두 명의 도둑이 여전히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골고타가 보이고,
십자가 아래에는 예수님을 처형한 군인들과
백마를 타고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을 찌른 백인대장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마태 27,40) 하고
예수님을 조롱했던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있다.
골고타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데,
이는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루카 23,44)는 성경 말씀을 시각화한 것이다.
오른쪽 원경에는 산과 언덕이 있고 중앙에 강물이 흐르는 성채 도시가 보이고,
오른쪽 중경에는 무덤이 있는 바위 절벽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기 때문이다.”(요한 19,4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