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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구
—제 1 의 논리—
김 동 리
노인이란 별명을 가진 강정우(姜政佑)는 오늘도 해가 산마루에 걸쳤을 무렵에야 그 부여스름하도록 낡은 검정 외투에 꾸부정한 등을 싸고 학교 문을 나섰다.
“로진 센세이!”
“타바코 센세이!”
어디서인지 바람결에 분명히 이러한 소리가 그의 귓전을 울리고 지나갔다.
‘노인’이란 별명 하나가 부족해서 아이들은 다시 ‘담배쟁이’란 별명까지 하나 더 붙이어서 저희들끼리는 흔히들 이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교 센세이!”
“타바코 상!”
역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이번엔 그보다 훨씬 굵은 목소리로,
“선생님.”
하는 소리도 분명히 들리었다. 그래 그 꾸부정한 등을 돌이키자 바로 그 때 저쪽 짚둥지 뒤로 까만 머리들 몇이 사라지는 것이 보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는 자기의 한 여남은 걸음 앞에 검은 안경을 쓰고 역시 검정 외투 밑에 누런 코르덴 당꼬 즈봉을 입은 키 큰 사내 하나가 자기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이었다.
“선생님.”
사내는 거기서 모자를 벗어 쥐며 이렇게 불렀다.
“선생님.”
곁에 와서 또 이렇게 불렀다.
그 사내는 금방 어느 주막에서 나오는 길인 모양으로 아랫입술엔 빨간 고춧가루까지 하나 붙이고 있었다.
“네 웬일이십니까?”
정우는 그 사내가 바로 자기 집에서 골목 하나를 돌아서 그쪽 후미키리를 향한 한길 어귀에 있는 주막집 주인이고 또 얼마 전 학교 운동장을 넓힐 때 이노우에 상이란 사람과 더불어 그 일을 맡아 보던 그 송가란 사람임을 깨닫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일간 날씨 안녕하십니까? ……네에 전 이런 사람이올씨다.”
사내는 품에서 명함지 한 장을 내주며,
“네에 전 송또생이올씨다.”
하였고 명함엔 ‘士木工事 經驗者 宋且祥’이라 박혀 있었다.
정우도 한쪽 손으로 그 명함지를 받는 일방 다른 한쪽 손으론 자기의 모자를 반쯤 벗으며,
“네 그렇습니까?”
한즉, 송가는,
“에에 또 그런데 시방 선생님께 여쭐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저어 우리 집 계집애 하나 말씀에요, 왜 아시겠지요. 오년급에 다니는 송학숙이란 년 말씀입니다. 에 또, 그런데, 이년이 그만 학교에 다니기가 싫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그뿐이에요. 죽어도 싫다는데야 암만 부모라도 구처(구분하여 처리함) 있습니 까?”
“송학숙? 네에 그렇습니까? 학숙이가 학교에 다니기 싫답니까?”
“네, 네, 그렇습니다. 송학숙이올씨다. 송학숙가 퇴학올씨다.”
“그렇지만 소학교에선 특별히 아이들이 가다가 뭐라고 하든간 부모 되시는 분이 항상 훈계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내일 학교에 오면 잘 타일러 보겠지만 댁에서도 다시 한 번 충분히 훈계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네, 그렇습지요, 두말할 여부가 있습니까? 충분 훈계해야 되다뿐입니까? 그렇지만 이건 당자가 반대니까 구처 없단 말씀이올씨다.”
“좌우간 댁에서 한 번 더 훈계해 주십시오, 저도 내일 한 번 이야기 해 보 겠습니다.”
“네, 네, 그러면 충분 부탁입니다. 자아 소관 보십시오.”
정우는 이튿날 방과 후에 학숙(學淑)을 불렀다. 말을 듣고 보니 그런지 이 며칠 동안 학숙은 평소보다 그 동작에 과연 활기가 훨씬 없어 보이고 얼굴에도 수심기가 떠돌고 있어, 오늘도 정우가 자기를 좀 따라오라고 한즉 학숙은 파랗게 질리었다.
“학숙이 너 학교에 다니기 싫다고 한 건 정 말이냐?”
“…….”
학숙은 새빨개진 낯을 수그리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응? 그런 일이 있었니? 있었으면 있었다고 바로 대답을 해야지, 거짓말이냐?”
“…….”
“응 대답을 해야지, 너의 집에서 와서 그러는데 정말 그랬니?”
“네.”
학숙은 나지막하나마 또렷한 목소리로 마침내 그것을 승인하였다.
정우는 도리어 어떤 기대에 어그러진 듯한 불만을 느끼며,
“거 무슨 소리냐? 왜 그랬단 말이냐?”
“응? 왜 그랬어?”
“…….”
“학숙아.”
“네.”
“선생님이 묻는데 대답을 해야지.”
“…….”
그러나 학숙은 대답 대신 까만 두루마기 소매로 이마를 가리며 느껴 울기를 시작하였다. 참으려고 무진 애를 쓰다 드디어 터져나오는 듯한, 그렇게 설움이 복받치는 울음이었다.
그러자 정우도 담배를 붙여 물고, 한 오 분 간이나 모로 서서 느껴 우는 학숙의 옆얼굴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정우의 이러한 점을 가리켜서 아이들은 ‘노인’이란 둥 ‘담배쟁이’란 둥 하는 별명을 지은 모양이고, 또 가다가는 동료들까지도 역시 이러한 별명으로써 그의 위인을 간주하려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그의 위인의 소치는 아니었고, 그보단 칠 년 간이란 흥미 없는 교원 생활에서 얻은 한 개 버릇이라는 편이 옳았다.
그것은 물론 십년 이십년씩이나 같은 생활을 겪은 사람들에 비겨서 그다지 오랜 세월은 아니었으나, 정우 자신의 말투를 빌리면 그것은 날마다 아무런 흥미도 정열도 없는 기계적 반복이었고 이러한 기계적 반복이란 단 칠 년 간도 그에게는 영원과 같이 길고 지루한 세월이었고, 그러한 지루한 세월에 부대끼느라 그러한 야릇한 버릇까지 익혀진 것이었다.
“학숙아.”
“…….”
학숙은 대답 대신 젖은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네가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마는 어쨌든 그러지 말고 학교에 그냥 다녀라. 응 알겠니? 어저께 너의, 아버지께서도 대단 걱정이신 모양이던데, 네가 학교에 안 다닐랜다구…… 지금까지 일껏 착실히 해오던 걸 오학년이나 되어서 갑자기 그만둔다니 너의 부모도 부모지만 학교에서도 퍽 섭섭단 말이지. 응 알겠니? 그러면 다니도록 약속하는 거야 응?”
“네.”
학숙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튿날부터 학숙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에 워낙 상냥하고 착실하던 아이인 만큼 저의 동무들뿐 아니라 교장 이하 다른 여러 선생들까지도 모두 궁금해 하였다.
그러자 정우는 그 동안 오학년 아이들 사이에 뜻하지 아니한 이야기가 돌고 있음을 들었다.
그 애는 바로 학숙의 이웃집에 있는 저의 동무였는데, 걔 말을 들으면 학숙은 제가 다니기 싫은 것이 아니라 저의 집에서 보내주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우는 그 때 속으로 이상한 충동이 일어났으나 여러 해 동안의 기계적 습성과 또 그것이 아이들의 말이란 이유로 더 캐어묻질 않고 그냥 덮어 두었던 것이었다.
그 뒤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정우가 학교에서 나와 자기 집(주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숙의 집 앞을 지나려니까 거기 깨끗한 택시 한 대가 서 있고, 그 집 안에서는 여자의 노랫소리와 장구 소리가 뒤섞여 들려 나왔다.
본래가 술집이라 으레 그런 게려니 하며 그 앞을 얼른 지나가려니까 그 때 막 안에서,
“선생님!”
하는 굵은 사내 목소리가 들려 왔다. 본즉 며칠 전 ‘士本工事 經驗者 宋且祥’이란 명함지를 꺼내 주던 학숙의 아비란 사내였다.
“선생님 실례의 말씀 같습니다만 자, 잠깐 이리로 좀 들어와 주십시오, 자아!”
술이 취해서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말씨로 이렇게 말하며 그의 앞에 그 넓적한 두 손바닥을 펴 뵈는 것이었다.
“네 좋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십시오.”
한즉,
“아아니 이리로 좀 들어오시라는데.”
사내는 오른쪽 손으로 그의 외투 자락을 덥석 잡았다. 정우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놓십시오, 나 좀 바쁘니 할 말씀 있거든 예서 하십시오.”
분명히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아니 이리로 좀 들어오시라는데, 원.”
사내는 외투 자락을 잡고 끌었다.
정우도 자기 외투 자락을 잡고 힘껏 버티었으나 이 사내의 완력엔 도저히 대항할 길이 없었고 또 자칫하면 술 취한 작자에게 어떠한 봉변을 당할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라 작자가 끄는 대로 그냥 끌려 들어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안채 아랫방이었다. 밖으로 걸린 문고리를 벗기고 작자가 끄는 대로 끌리어 들어가다 그는 문득 그 방구석에 서서 당황하는 학숙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저희들(학숙과 학숙의 남동생과 어린 계집애 하나)이 거처하는 방인 모양으로 저희들의 책상과 침구들이 놓여 있었다.
정우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학숙은 새빨개진 얼굴을 수그리며 곧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그것을 송가는,
“가만 서, 어들 나가?”
하고, 호령을 한즉, 학숙은 그 가냘픈 어깻죽지를 오들오들 떨며 그 자리에 그냥 발이 붙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자 송가는,
“꼼짝 말고 가만 서.”
다시 한 번 다지고는 밖을 나갔다.
방 안에는 학숙과 그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거기서 학숙을 보기는 본의가 아니었고 그러므로 그에게 무슨 말을 건네 보고 할 경황도 있을 턱이 없었다. 송가의 뒤를 따라 마땅히 그는 그 방을 나가야 할 일이었고 또 나간댔자 그 자리에선 우선 아무도 그의 외투 자락을 잡고 끌 사람도 없을 성싶었다. 그렇건만 그는 일어나질 못하고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마치 꿈 속에서와 같이 일방 곧 일어나려고 하면서도 일방 또 자기도 모를 그 어떤 다른 힘에 지배되어 오금이 떨어지지 않는 듯도 하였다.
곁방에서는 역시 여자의 노랫소리와 이에 화창(담화하는 것처럼 가창하는 부분)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장구 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일 새 없이 뒤섞여 들려 왔다. 그는 그 한 일 분 동안에 자기의 전 생활과 질서가 송두리째 뒤집어질 듯한 그러한 불안과 초조를 느끼면서도 의연히 그 노랫소리와 장구 소리와 웃음소리에 그냥 귀를 팔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송가는 제 손으로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송가는 술상을 방 가운데 쳐놓고는 그리 바쁘게 서둘러 손에게 술을 권하는 법도 없이,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딴은 은근히 점잔을 뽑아 보는 셈인 모양이기도 하였다.
“제가 오늘 술기가 좀 있습니다. 이 점만큼 선생님께서 좀 용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다시 한 번 다져 놓고는,
“그런데 다름 아니라요, 오늘 제가 선생님한테 조용히 한 번 여쭤 볼 말씀이 있어서, 에에 또 이와 같이 뉘추한 방이지만…….”
송가는 여기서 잠깐 말을 끊고, 술주전자를 들어 비로소 술을 치더니,
“자아 드십시오.”
하고 정우의 손에 술잔을 건네 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에에 또, 그런데 다름 아니라요 제가 오늘 선생님께 꼭 여쭈고저 하는 얘기는 제가 이전부터 늘 선생님께 한 번 말씀드리고자 하던 것인데 또 간단히 말하면 우리 저년 말씀이에요. 학숙이란 년 말씀이에요…… 선생님, 시방 전 염치 불고하고 선생님께 얘깁니다, 그런데 말씀이죠, 시방 제가 염치 불고하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는데 대해서 간단히 말하면 전 예전부터 근본 무식한 놈이올씨다. 제 아버진 옛날 군노올씨다 네? 알아듣겠습니까? 선생님 제 아버지가 옛날 군노란 말씀입니다. 아주 불학무식한 상놈들이지요. 허지만 요새 세상에야 상놈이고 양반이고 다 마찬가지 되잖았습니까! 허지만 난 언제든지 말합니다. 우리 어버진 옛날 군노다! 나는 상놈이다! 고. 허허허허허 선생님 알아듣겠습니까? 나는 상놈이다! 울 아부진 군노다! 이렇단 말씀입니다. 허허허허 허.”
송가는 눈썹에서 사측으로 걸쳐 비낀 번들번들한 흠터를 불빛에 번쩍 거리며 이렇게 유쾌한 듯이 웃어 대었다.
화로와 고기가 들어왔다.
송가는 젓가락을 집어 정우의 손에 쥐어 주며,
“자 안주 듭시다, 아아니 참 이거 왜 이러시는 겝니까? 술은 왜 이래 여태 그냥 두고 앉아 있는 겝니까? 원, 자, 얼른 듭시다, 그리고 안주도 좀 들어 봅시다. 자아!”
드디어 술잔을 들어 또상은 강제로 권하기 시작하였다.
정우는 처음부터 모면할 수 없는 봉변이라곤 하였지만 더구나 바로 곁에 학숙을 두고 술을 먹기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굴욕이었다. 하나, 굴욕이기로 말하면 당장이라도 놈의 따귀나 한 대 후려갈겨 주고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그렇건만 그러지도 못하고 또 이럴 수도 없다고 해서 권하는 술도 받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라면 이건 더욱이 사내의 명색으로선 말이 못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어느덧 자기의 술잔을 한숨에 들이마시어 버린 것은 무어 이러한 경우를 추궁한 결과였다는 것보다는 역시 꿈 속에서와 같이 자기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그 어떤 불가항력적 힘에 휩쓸리어 그리되었던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 밖에 거기 굳이 그 자신의 의식을 캐어 본다면 그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자기의 그 당장의 굴욕을 조금이라도 속히 잊어 보려는 데서였다고나 할까?
그는 연거푸 석 잔을 들이켰다. 속이 좀 후련해진 듯도 하였다.
“아아 안주도 좀 듭시다, 자아!”
또상이가 권하는 대로 그는 화로 위의 고기도 집어먹었다.
“선생님 그럼 내 이야기를 마저 하리다.”
또상은 연방 입에다 고기를 집어넣으며 이렇게 다시 말을 잇는 것이다.
“선생님도 아시 다시피 난 원래가 토목 경험자올씨다. 그러자니까 학교에 가서 학문 공부하는 것과는 남이올씨다, 반대올씨다, 네에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평생 가야 늘 이렇게 술이나 먹고 노름이나 하고 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 어느 하가에 학문 공부 들여다볼 시간이 있겠습니까? 그저 늘 토목 공사나 하고 그게 일일밖에…….”
또상은 그 새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잊어버리고 이렇게 또 딴전을 벌이는 눈치더니 그 때 문득 학숙이 앉아 있는 쪽을 힐끔 보고 나서,
“으음 그런 게 아니라 선생님! 선생님께 꼭 한 가지 여쭤 볼 이야기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저년 학숙이란 년에 대한 이야기올씨다 네 아시겠습니까? 선생님도 잘 아시다시피 난 본래가 재산가가 아니올씨다. 무산자올씨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손 하나로 벌어먹고 살아가는 기술자 노동자란 뜻이올씨다. 자아, 그럼 아시겠습니까?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단지 이 손 하나만 믿고
사는 기술자! 이 손 하나 없으면 우린 다 굶어 죽습니다, 네 선생님 똑똑이 듣습니까? 굶어 죽습니다. 누가 먹 여 살려 줍니까! 그런데 이 보십시오, 이건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에 다친 흠터올씨다.”
또상은 오른쪽 팔을 걷고, 바로 한 치 길이나 넘어 되는 흠터를 내 놓았다.
“오 년 전 저 낙동강 철교 놓을 때 다친 것이올씨다. 여기를 아주 분질러서 임 술을 먹고 하자니까, 좀체 낫질 않고 그래서 오래 고생을 했지요. 그 뒤루 이 괄은 끝내 못 쓰게 됐습니다. 지금도 무거운 걸 들거나 날새가 흐리거나 하면 그만 이 팔은 통히 못 씁니다. 그러니 우리 식구가 모두 어떻게 삽니까? 선생님, 어떻게 살아온 줄 압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만 선생님 우리 인생이란 절대적으로 굶어 죽는 물건이 아니올씨다. 네, 아시겠습니까? 전 이와 같이 남마다 술이나 먹고, 그럭저럭 상업 일도 보고 그러고 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 학숙이란 년과 그 다음 놈은 다 학교엘 다니구, 제일 끝의 년은 또 내년에 학교에 입학할 겝니다. 어디서 돈이 납니까? 네 선생님 이 점을 좀 깊이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 돈이 다 어디서 납니까 간단히 말씀드리면 순전히 모두 딸에서 나옵니다, 딸에서 ! 단단히 아시겠습니까? 시방도 저쪽 방에서 바로 내 딸이 듣고 있지만 순전히 그 딸에서 납니다. 사위되는 사람도 바로 저 방에서 시방 듣고 있겠지만 순전히 저 딸이 우리 식구를 보두 먹여 살려 주는' 겝니다. 시방 저 방에 있는 내 사위 되는 사람은 전북 도의원의 한 사람이올씨다. 그리고 부자 올씨다. 에에 또 간단히 말하면 부자올씨다. 양반이올씨다. 즉 특등 인물이올씨다. 선생님 자 생각해 보십시오, 내 딸은 본래 기술자의 딸이올씨다. 상놈의 딸이올씨다. 즉 하등 인물이올씨다. 단단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내 딸이 무슨 재주로 어찌어찌 해서 오늘날과 같은 인물이 됐겠습니까? 내 딸은 지금 부자올씨다. 그리고 양반이올씨다. 이 점을 단단히 생각해 주십시오. 본래 그와 같은 하등 인물이 무슨 재주 어떻금 해서 오늘날과 같은 특등 인물이 됐겠습니까? 다른 게 아니올씨다. 단지 이 목 하나올씨다. 이 목에서 나오는 노래뿐이을씨다. 단지 노래 한 가지로써 이와같은 상지상등(시문을 끓는 등급 중의 하나. 첫 등 가운 첫 등) 인물이 된 것이올씨다. 선생님 생각해 보십서오, 이 점을 깊이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내 딸이 처음부터 노래를 배우지 않고 세상에 꽉 찬 다른 여자들과 같이 질쌈질이나 바느질 같은 걸 배웠으면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또 처 하속이 년 모양으로 학교나 했으면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선생님, 생각해 보십시오, 모두 뻐언한 일입니다, 나 같은 상놈의 집 딸이 아니더라도, 버젓한 보통 사람의 딸이라도 그 장래가 어떤가 그걸 한 번 보십시오, 어디 멀리 가 볼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 집 여자들을 보십시오. 하루에 죽 한 끼도 어려울 때가 뻐언합니다. 시방 저 우리 집 부엌에서 부엌일을 하고 있는 내 사촌누이 하나가 있습니다. 서른네 살에 남자가 죽은 뒤부터 여기 와서 부엌일을 거들고 늙어 갑니다. 세상 천지 간에 여자들 살림살이 맛이 어떻단 것은 저 늙은이한테 물으면 잘 압니다. 평생 누더기로 살을 가리고 죽국물로 목에 풀칠을 하다가 늙어 죽더라도 서방한테 모진 매나 맞지 않고 지독한 구박이나 받지 않으면 그건 여간 상팔자가 아닙니다. 그만 간단히 말하면 열에 아흡은 한 번 시집이라고 가 놓으면 못 죽어 사는 겝니다, 못 죽어. 선생님 깊이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상놈이올씨다. 그리 고 기술자올씨다. 그러면 학숙인 지금 학교 공부를 하고 바느질을 배워서 시방 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제 고모와 같이 시집을 가야 옳겠습니까? 저의 형과 같이 노래를 배워야 옳겠습니까? 난 학숙이더러 꼭 나를 먹여 살리란 건 아닙니다. 내 살기 때문이라면야 큰딸 하나로 만족합니다. 난 다만 제 일신 하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단단히 알아듣겠습니까? 제 하나 특등 인물 만들고자 해서 하는 말입니다. 선생님, 그년 제한테 한 번 물어 봐 주십시오, 제 고모같이 되기가 원인가, 제 형 같이 되기가 원인가고, 난 언제든지 제 좋도록만 해 줄려고 했습니다. 좀 물어 봐 주십시오 네, 선생님!”
또상은 한쪽 손에 술잔을 잡은 채 정우와 학숙을 한참 동안 번갈아 보며 이렇게 정우의 의견을 재촉하였다.
“후후후후후 학숙에게! 후후후.”
정우는 그 동안 실상 송가의 눈썹 위의 번찍거리는 흠터만 바라보고 앉아 있다, 이렇게 대중 없이 대고 웃는 것이었다.
“음! 이년, 썩 이리 와서 선생님께 술 쳐드려라 응! 그래도 당장 이리 안 와?”
“학숙! 흐! 별 말씀! 홋홋홋홋.”
정우는 역시 이렇게 대중없이 웃으며 또 술잔을 기울였다.
바람이 불고 달이 훠언한 밤이었다. 자기는 군데군데 빗물이 괸 동네 안 골목을 철버덕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문득 자기는 뒤에서 누가 무서운 매를 들고 자기를 쫓아옴을 깨달았다. 자기는 힘껏 걸음을 재게 놀렸으나 뒤로부터 쫓아오는 무서운 매는 미구에 곧 자기의 뒤통수를 찌를 것만 같았다. 골목을 돌아 큰 홰 나무 밑을 지나려니까 거기서 그 무서운 사내는 자기의 앞을 가리고 섰다. 순간 자기는 그 앞에 쓰러져 버렸다. 사내는 큰 발로 자기의 가슴을 밟고 그 무서운 매로 온몸을 내리훌쳤으나 웬일인지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도리어 시원하였다. 시원할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문득 그 사내는 자기의 죽은 아내의 형제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한없이 한없이 울고 싶어졌다.
―― 눈을 뜬즉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방 안엔 전등이 그대로 화안히 켜져 있고, 그의 머리맡엔 분명 히 까만 치마 저고리의 소녀 하나가 앉아 있었다. 한순간 호옥 이것이 꿈 중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는 자기 자신을 시험하듯 일어나 앉아 보았다. 소녀는 의연히 앉아 있다. 책상 위에 뺨을 대이고 소녀는 잠이 들어 있었다. 그는 몹시 갈증이 남을 깨달았다. 그는 샘으로 나가 찬 물을 실컷 들이키고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앞뒤를 살펴보아야 분명히 그의 주인 집이요, 또 방은 틀림없이 자기의 방이요, 책상 위의 시계는 오전 세시 반이 좀 지나 있었다. 그는 소녀를 깨우려다 말고 그대로 사뿐 안아다 이불 속에 넣어 주었다. 또 몸이 부르르 떨리었다. 그는 두 손으로 외투 깃을 여미며 한참 동안 소녀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 이 애가 언제 여길 왔을까? 그는 외투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내어 담뱃 하나를 붙여 물었다. 그러자 문득 어제 저녁 일이 며리에 떠올랐다. 그의 눈앞에는 상기도 그 시뻔겋게 취한 송또상의 얼굴과 술상과 화로와 그런 것이 어른거리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옆방의 노랫소리와 장구 소리와 웃음소리와 그런 것도 뒤섞여 들려오는 듯하였다. 송또상은 시방도 그에게 무엇을 군정군정 지껄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작 그 때 송또상이 딴은 통정 이라고 늘어놓던 그 지루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뚜렷이 귀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 사내가 한 이야기 가운데는 무엇인지 자못 중대한 문제가 들어 있은 듯하였다. 그리고 그 문제란 자기가 해결짓지 않으면 아니 될 자기의 전 인격과 운명에 관련된 그 어떤 문제인 듯도 하였다.
― 그렇지만 학숙이 어찌해서 여길 들어온 것일까?
어렴풋이 생각나는 바로는 호옥 학숙이 어젯밤 정신없이 취한 자기를 이끌고 이까지 바래다 준 것이나 아닌가 하는 것이었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으레 저의 집으로 돌아갔어야 할 학숙이 어찌해서 방 안에까지는 들어왔으며, 또 들어와서는 거기 그렇게 앉아 있어야 했던 것이었는지 이에 대해서는 아무리 해도 짐작할 도리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이것은 분명히 어젯밤의 그
어떤 중대한 문제란 것에 관련된 것이려니 하는 생각은 직각적으로 곧 깨달아졌다. 그리하여 그것은 그 뒤 얼마 되지 않아서 학숙의 잠이 깨이자 곧 확실해졌다.
그 때 마침 그는 일기책을 펴놓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데 뒤에서 이불을 젖히는 소리가 나기에 돌아다본즉 학숙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왜 더 자지 벌써 일어나?”
“…….”
학숙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잠자코 있더니 한참 뒤에 고개를 들어 겨우 들릴 듯한 목소리로,
“저의 집에서 안 찾아왔어요?”
하고 물었다.
“안 왔다, 왜?”
거기는 대답이 없고, 또 한참 뒤에,
“아무도 안 왔어요? 저이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무도 안 왔다.”
“저이 형아가 와도 없다고 해주서요.”
“그러마, 그렇지만 왜?”
“저 이 어머니가 와도 없다고 그러세요.”
“글쎄 그러마고 하잖냐?”
그러자 갑자기 학숙은 두 손으로 낯을 가리고 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마치 무슨 발작과도 같이 솟아오르는 설움에 그의 조그만 몸뚱이는 너무도 가법게 흔들리었다.
정우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러자 어젯밤에 겪은 그 모든 광경이 한꺼번에, 먼저보다는 훨씬 선명한 윤곽으로써 그의 머릿 속에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지금 이 학숙의 여러 가지 야릇한 행동까지도 한참에 모두 알아질 듯하였다.
“너이 형이 이번에 널 데려갈려느냐?”
학숙의 울음이 좀 진정되려 할 무렵에 그는 이렇게 물었다.
“네에.”
학숙은 연방 비죽거리는 입술로, 그러나 분명 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하였 다.
왜? 하고 정우도 자칫하면 잇달아 물을 뻔하던 것을 얼른 도로 삼켜 버렸다. 어젯밤 송가의 그 장황한 통정과 지금의 학숙의 행동만으로써도 그는 그것을 족히 짐작할 수 있을 일 같았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학숙에게 물을 필요는 없었고 또 물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학교는 네가 다니기 싫다고 하잖았나?”
“거짓말얘요, 제 책과 책보는 모두 어머니가, 감춰 버렸어요, 불에 넣어 버렸어요. 그리고…….”
“그래도 그 날은 네가 싫다고 하잖았어?”
“네. 아버지가 벌써 선생님께 말씀하시더란 걸 그럼 어떡해요?”
날이 훤히 새었다.
“너 인제 집에 가야지?”
“…….”
“너이 형은 언제 가니?”
“어쩌믄 갔을 거애요, 전날 보니 그러다 꼭 밤중 되어 잘 타고 돌아가더구먼 요.”
“가끔 오니?”
“네.”
“그럼 인제 없을 터이니 너 돌아가도 괜찮을 테지?”
“…….”
학숙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 학숙은 눈에 이상한 광채를 가득히 담고서,
“선생님.”
하고 불렀다.
“어젯밤 아버진 선생님한테 의논해서 헐란다고 그러잖았어요? 선생님께 모든 걸 물어서 헐란다고 하잖았어요?”
“…….”
정우는 고개를 끄덕여서 그것을 승인하였다.
“선생님! 말해 주셔요, 안 된다고! 전 죽어도 안 된다고 그러세요! 네? 선생님 전 죽어요…… 죽어도, 안 된다고! 전…….”
학숙은 다시 발작과 같은 설움에 휩쓸리어 정우의 무릎 위에 쓰러졌다. 그는 학숙이 그의 방엘 들어온 이유를 그제야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학숙이,
“선생님…… 선생님, 네? 전…….”
하고 애원하듯 다시금 다지었을 때, 그는 묵묵히 학숙의 싸늘한 손을 꼭 쥐어 주었다.
그 날 정우가 학교에서 돌아온즉 주인 집 노파는 대뜸,
“오늘 학숙이 학교에 안 왔지요?”
하고 물었다. 그래 그렇다고 한즉,
“낮에 걔 즈 어머니가 와서 학숙이 어젯밤에 선생님을 모시고 나가서 여태 안 들어온다면서 찾아다니더니만 점심때가 지나서야 어디서 붙잡았는지 끌고 들어가더구먼요.”
그러고는 다시 묻지도 않는 것을,
“그 집엔 딸을 잘 둬서 인제 아주 살게 됐답니다. 그렇게 한 번씩 자동찰 타고 친정에 오면 돈을 수백 환씩 쓰고 간답니다. 그 사내가 아주 썩 활량이래요. 그렇게 가끔 처가에 각시를 데리고 와서는 노래를 불리고 술을 먹고 아주 왼 동네가 들먹하도록 한바탕 놀다 가지요; 그리고 오고 가고 할 때 타고 다니는 그 가시끼리도 학숙이 어머니 말로는 바로 그 사위 것이라나요, 아, 아무라도 돈만 있으면 그런 차를 맘대로 사서 타고 다니는 거유?…… 허지만 인물이야 제 동생보다 못하지요, 그래 저이 어머니도 그런다는데요, 큰딸이 만 냥짜리면 작은딸은 이만 냥짜리라고, 어쨌든 그 집은 딸 덕분에 팔자가 늘어졌지요, 아무라도 다 그럴 바에야 누가 아들 낳겠다고 앨 쓸까? 왼 동네서 누가 하나 안 부러할까?”
이렇게 동네 사람들보다도 우선 노파 자신의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었다.
정우는 실상 오늘 학교에서 나오는 길로 그의 집에 들르기로 학숙이와 아침에 약속이었으나 그 집 앞까지 오도록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건에 대한 자기 자신의 태도가 스스로 확실하지 못함을 깨닫고 역시 좀더 생각해서 갈밖에 없다고 그냥 지나 와버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집에 올 때까지도 또 집에 와서 저녁상을 받을 때까지도, 다시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인제 가봐야 된다고 생각했을 때까지도 의연히 이에 대한 자기의 태도란 한결같이 애매한 데는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 밤 송또상이,
“선생님 난 학숙이 년더러 꼭 날 먹여 살리란 건 아니올씨다. ……학숙이란 년 제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하는 말이올씨다. 제 하나 특등 인물 만들기 위해서 하는 말이올씨다.”
하고 하던 말이 다시금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우는 오늘 학교에서 일을 보는 동안에도 온종일 자기는 학숙을 어떡하든지 해주어야 한다는 막연하면서도 절박한 의무감을 깨닫긴 하였으나 그것이 꼭 어떻게 해야 된다는 생각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설령 학숙의 의견을 좇아 그 부모들의 의견에 반대를 하고 그를 그들의 계책(計策)으로부터 굴레를 벗겨 주는 것이 학숙을 구원하는 일이요 또 이것이 정의의 길이라고 하더라도 ― 그리고 이것이 정우의 평소의 소신이기도 하였지만 ― 그러나, 여기에 그는 어떠한 말로써 능히 송가의 고집을 설복할 것이며 그로부터 학숙을 구원할 것이냐 하는, 즉 송가의 생활 감정의 세계에서는 유령보다도 더 허황하게만 들릴 ‘영혼’이니 ‘생명’이니 하는 문구를 비켜 놓고, 송가와 더불어 현실적이요 물질적이요 육체적인 견지에서, 그리고 또 어디까지 합리적이요 상식적인 논리를 어떻게 추출(抽出)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그것으로 송가와 학숙의 사이의 선악과 흑백을 과연 어떻게 가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어젯 밤 송또상이,
“선생님 어째야 되겠습니까? 학숙을 위해서 어느 길로 들어서라고 해야 옳겠습니까? 네? 학숙이 년더러 한 번 물어 봐 주십시오, 제 고모같이 되기가 원인가, 제 형 같이 되기가 원인가?”
이렇게 몇 번이나 거듭 닥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주책 없는 웃음과 술잔을 기울임으로써 이것을 때워 넘기곤 한 것이 반드시 그 때 송가의 폭력을 저어함이나 술이 취한 탓만이 아니었음을 이제 새삼스레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는 이 즈음도 가끔 밤이 깊도록 바이블(주로 신약 전서)이나 논어를 읽는 일이 있지만 예수나 공자 같은 이가 이것을 부인한 바와 같은 이유로 해서 오늘날의 자기가 그것을 그대로 좇기란 사실 겸연쩍은 일이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포착한 자연(自然) ―세계― 의 질서와 조화를 위한 윤리였으나, 그 자연의 모든 원칙이 혹은 기계(機械) 혹은 황금이란 괴물에게 여지없이 유린된 오늘날 오히려 그것의 질서와 조화를 위한 윤리만을 이들에게 요구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고 해도 그는 이것이 반드시 파괴주의자의 구변에 그칠 것만은 아닐 성싶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면 그는 오히려 또상의 용단을 동정해야 할 일이며 세상 사람들의 모든 그릇된 상식과 인습으로부터 그를 변호해야 될 일이지 자기가 유독 팔을 걷고 나서서 그를 항거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리고 또 오늘 아침의 학숙의 눈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꼭 인간의 고귀한 영혼이나 혹은 생명 의 발로라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절로 다르겠으나 그러나 그것 역시 다만 총명한 인습과 변동에 대한 불안일 따름이지 그 무슨 절대의 선(善)이라고만 일컬을까 보냐고, 우긴다면 자기는 그 말의 진실성을 또한 무엇으로 부정할 것이며 그 눈물의 신성성(神聖性)을 어떻게 변호해야 할 것인가 자기 자신에게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거늘 그 눈물에 처음부터 감동을 하여 쉽사리 학숙의 손을 쥐어 주고 한 자기의 신념을 부인할 수 있으며 자기의 평소의 이성(理性)은 거부할 수 있는가?
그러나 정우는 자기 자신을 부인할 수도 의심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그러한 논리로써 그 사건 자체의 흑백을 분명히 따질 수가 없으면 없을수록 학숙을 그대로 송가의 처분에 맡겨 두고는 도저히 한시라도 그냥 배길 수는 없을 일 같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에게 항거를 하지 않고는 자기 자신이 무서운 죄악의 짐을 져야 될 것만 같았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잠시도 잊어볼 수도, 모른 체해 볼 수도 없는,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이기만 하였다.
정우는 지금까지 자기의 인격으로써 족히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선과 악은 그 때마다 이에 대한 자기의 태도만을 확실히 인식함으로써 교묘하게도 번번이 그것을 묵과(默過)할 수가 있었다. 학교에 나가선 날마다 정해진 시간을 기계와 같이 반복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밤이 깊도록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얼마든지 궐련을 태우고 이리하여 그는 자기의 구구한 생명을 구차히 변명하려고도 않고 그대로 그렇게 늙어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방 자기의 이러한 생활이 그의 일생의 운명과 과연 어김없이 맞아떨어질 것이며, 자기 운명이란 과연 자기의 이러한 생활 속에 절로 포용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점에 있어서는 언제나 한 타래의 불안과 회의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일찍이 사랑해 본 적도 없던 아내였으매 아직 중학 삼년이란 어린 나이에 ‘쓰마기도쿠’란 전문을 받고도 그 어두운 하숙방에서 그냥 대수 문제를 풀고 앉았던 것이 그 뒤 그의 일생을 두고 져야 할 무거운 부채(負債)로서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었던들 이렇게 밤마다 책상 앞에서 담배를 피워 허비하는 시간으로 혹은 보다 빛난 다른 인생을 꾀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며 이제 와 이렇게 하필 학숙의 운명에 기어이 연대(連帶)를 서지 않고서도 어떡하든지 배겨날 길은 절로 있었을 것이 아니냐고도 그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외투를 입고 책상 앞에 앉은 채 문종이에 호부연 새벽빛이 어리일 무렵엔 잠깐 눈을 붙였던 모양으로 머리를 몽탁 잘라 버리고 새하얗게 옷을 갈아입은 학숙이 문 밖에서 머리만 방 안으로 들이밀고는,
“선생님…… 선생님…….”
부르는 것이다. 자기는 곧 고개를 든다는 것이 그러나 학숙은 기다리다 못 해,
“아이 선생님! 전 가요…… 전 떠나요…….”
그러고는 그가 고개를 들어 그 부허연 창문을 보았을 때엔 학숙은 이미 없었고, 방문은 그냥 닫혀져 있었고, 때마침 머언 산 모퉁이를 돌아 나가는 기적 (汽笛) 소리가 이날따라 유달리 목이 잦게 울었다.
이런 것을 가리켜 몽환이라 부르는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현실 같고 현실이라 하려니 실상이 없고, ― 아아, 얼른 가야 된다, 얼른 가봐야 된다! 이렇게 혼자 속으로 거듭거듭 중얼대며 방문을 여니 밖은 흐리터분한 하늘에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그러나 습관인지 의무인지 아침엔 역시 학교로 나갔고, 아아 얼른 가봐야 된다 가봐야 된다, 이렇게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그러나 학숙의 집 앞은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점심 시간에 동료들은 모두 벤또를 펴고 앉았고 정우는 쓰디 쓴 담배를 빨고 있는데 교원실 문이 삐긋이 열리며 거기 누런 코르덴 바지에 검정 외투를 걸치고 시뻘건 얼굴에 꺼먼 안경을 쓴 키 큰 사내 하나가 나타나더니, 사내는 바로 교장 앞으로 걸어가,
“전 이런 사람이올씨다.”
하며 품에서 명함지 한 장을 내어 교장에게 들이밀며 다시 한 번,
“예에 전 송또생이올씨다.”
하는 것은 틀림없이 예의 ‘土木工事 經驗者 宋且祥’이었다.
“내 딸년을 퇴학하러 왔는데 참 그년이 오늘 학교에 안 왔습니까?”
송또상은 대뜸 이렇게 말을 부딪뜨렸고, 교장은 이를 눈치로 짐작한 모양으로,
“아아 송학숙 말이오? 학숙인 벌써 여러 날째 결석 인걸요.”
한즉, 송또상은 그저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일 따름으로 별로 의외란 빛도 보이지 않고,
“아, 그런데 그년이 대체 학굘 안 다닐란다구 그래요, 그렇지만 집에선 모두 가랄밖에, 그래서 자꾸 가라고들 했더니만 지난 밤엔 아마 선생님한테 글 배러 간 모양인데 아, 여태 들어오질 않으니까 이런 법이 어딨단 말이오?”
“지난 밤에?”
“네 지난 밤이지요, 하긴 내가 없었으니까 밤인지 새벽 인지 그건 똑똑이 몰라도 좌우간 자고 나니 없단 말씀이죠, 그러니 필시 선생님한테나 갔을밖에, 아 그렇쟎소?”
“…….”
교장은 잠자코 고개를 모로 재웠다.
“아 아니 이년을 어째야 되겠습니까? 학교는 그럼 그만두라고 해야 되겠지요? 그렇지만 대체 이년을 온 어디 가 찾습니까?”
“무엇보다 강제적으론 하지 마시오, 언제든지 아동 의사를 존중해서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내 맘대로만 하려고 하지 말고 잘 타이르고 서로 상의해서 하시오…… 학숙은 학교에서 성적도 좋고 행위도 착실했었소.”
“네에, 아무렴 그렇다뿐입니까? 이게 어느 세상이라고 강제적으로 해서야 세상사가 어디 될 리가 있소? 그럼 자 소관 보십시오.”
송또상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그제야 교원들 있는 쪽을 획 돌아다보고 거기서 강정우를 발견하고;
“선생님 이리 좀 나옵시다.”
하는 한 마디만 휘딱 던져 놓고는 제 먼저 앞서 나가 버렸다. 정우는 동료들을 돌아다보고 얼굴을 붉히며 묵묵히 송가의 뒤를 따라나갈 수밖에 없었다.
멀리도 가지 않아 바로 현관 앞까지 나와서 송또상은 주춤하고 서며,
“오늘이 반공일날 아니오?”
한다.
“그렇습니다.”
“오늘 선생님을 좀 만나야 될 일이 있습니다. ……학숙이란 년 일로, 알아듣겠습니까?”
“…….”
“선생님 형편은 어떻습니까? 만약에 오늘이 꼭 안 됐으면 내일로 미뤄도 상관없습니다.”
“오늘도 별로…….”
“네에 그렇습니까, 그럼 오늘 밤에 좀 만납시다. 저녁 잡숫고…… 아니 저녁은 그만 나하고 같이하면 어떻습니까?”
“…….”
“그 점만큼 선생님 자유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오실 때 말씀이죠, 제 집을 들를 것 없이 바로 저 후미키리 너머 샘골 주막으로 오십시오, 단단히 알아듣겠습니까?”
“…….”
정우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을 때는 송또상은 벌써 운동장 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었다.
샘골 주막으로! 순간 그는 어떤 불길한 예감으로 몸이 부르르 떨리었다.
장날 밤마다 사고가 난다는 그 후미키리 건너 샘골 주막으로 혹 학숙은 팔려 가버린 것일까, 그리하여 혹은 그 후미키리에 조그만 몸뚱이를 내어버린 것이나 아닐까? 아니 그렇다면 오늘 송가의 태도가 그렇게 태연할 리가 있을까? 그러면 왜 하필 그 샘골 주막으로 오라는 것일까?
거리의 불빛 한 점 비치지 않는 그 외지고 어두운 곳으로 오라는 것일까? 이러한 무거운 불안에 머리가 휑 하도록 휩쓸리면서도 다만, 가야 된다는 의식만은 그의 전 의지를 봉쇄해 버린 듯하였다.
一― 가야 된다, 가야 된다.
그는 학교에서 나오는 길로 혼자서 가끔 다니는 우편국 뒷골목 ‘노파 술집’을 찾아갔다. 혼자서 조그만 술집을 경영하고 있는 그 노파가 정종 한 가지를 꼭 그의 비위에 맞게 데워 주므로 그는 그것을 노파 술집이라 부르고 겨울 한철 동안 종종 다니는 곳이었다.
“오늘은 많이 고단하신 게죠, 아주 얼굴빛이 안됐군요.”
노파는 처음 정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아 아니오, 좀 치워서…….”
“아아 그렇구먼요.”
하고 그제야 얼굴을 펴고 고뿌 잔에 술을 놓았다.
정우는 잔을 잡기가 바쁘게 입에다 들이부었다.
그렇게 석 잔을 거푸 들이키고 나니 지금까지 사뭇 떨리기만 하던 속이 후끈해지며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었다.
“인제 그 전 얼굴이 됐습니다.”
노파는 그의 낯을 바라보며 기뻐하였다.
“에에…….”
정우는 어느덧 자기의 혀가 맘대로 잘 돌아가지 않음을 깨달았다. 며칠 밤 연거푸 잠을 설친 위에 또 오늘 온종일 거의 빈 속에다 담배만 피우고 난 다음이기에 따뜻한 정종 서너 고뿌에 끔세 술기가 돌아버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때부터 술은 정말로 자꾸자꾸 먹어야 할 것 같이만 생각되어, 나중엔 노파가 술 놓기를 거절했으리만큼 그저 자꾸 들이부었던 것이다.
정우가 술집을 나온 것은 열시가 남짓해서였다.
― 가야 된다, 송가를 만나야 된다.
다만 이 한 가지 의식 밑에 그의 몸은 움직이는 것이었고, 그러나 그의 두 발은 그의 의식에 그다지 알뜰한 역군은 아니던 모양으로 몇 번이나 진흙 속에다 그의 몸을 내던지곤 하였다.
그러나 다시,
― 가야 된다, 가야 된다!
이 한 가지 의식은 잠시도 잊을 수 없어 진흙에서도 구을고 시궁창에도 빠지고 하면서 그 먼 거리의 불빛 한 점도 보이지 않는 후미키리 밑 주막을 찾아 골목을 지나고 집 모퉁이를 돌아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실 그의 몸은 가고 있는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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