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세돌-알파고 대결. 신의 한수로 불린 백78수가 나왔던 제4국 복기장면. |
○● [일요신문] 이세돌의 ‘신의 한수’ AI최신 버전에 넣어보니 - 기사 원문 보기 ☜ 클릭
김수광 기자(세계사이버기원 컨텐츠팀장)는 바둑AI에 관심이 많다. 그는 바둑전문기자로 2016년에 열린 이세돌-알파고 5번기, 2017년에 일본이 개발한 딥젠고가 나온 월드바둑챔피언십, 커제-알파고 3번기 대결까지 AI가 출전했던 큰 바둑대회는 모두 현장에서 취재했다.
엘프고와 릴라제로 등 바둑AI가 나오면서 그의 인공지능 탐구열은 더욱 불붙었다. 고성능GPU(GTX 1080Ti)를 장착한 컴퓨터를 사용해 과거와 현재 대국을 복기하며 인공지능 수법을 연구한다. 최근에는 프로기사와 협업해 AI 바둑을 이론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참신한 발상과 신선한 자극을 끊임없이 던져주는 AI 바둑이론이 바둑팬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바둑은 어떤 방식으로 연구하나.
“수백 년, 수십 년 전 명국을 AI로 복기해 승부처를 살피거나 잘 알려진 포석을 인공지능에 넣어 재해석하며 데이터를 쌓는다. 고바야시류 포석, 3연성, 중국식 포석에 대한 AI의 시각은 아주 흥미롭다. 상식을 깨는 수를 찾을 때 더 즐겁다. 인공지능 수법에 의미를 탐구하는 건 고대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느낌과 유사하다. 부지런히 기보를 넣어보고 공통점을 하나씩 엮어 의미를 추측해가고 있다. AI가 보여주는 유행수법은 ‘결과물’일 뿐이다. 심층심경망을 사용한 딥러닝을 거치면서 변천을 겪지만 그것을 자세히 공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과거 기보에 주목한다. AI는 우리가 과거에 쓴 수법들도 이미 사용해 봤고 평가를 내렸으며 그 과정에서 정석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했다. AI는 별로 좋지 않은 결과를 나타낸 정석이나 변화를 그 과정 속에서 배제했다. 왜 배제됐는지를 아주 많은 양의 AI 참고도로 분석하면 인공지능이 의도하는 바를 추측해 낼 수 있다. 그게 쌓이면 이론이 된다.”
―AI 바둑이 보여주는 특징을 몇 가지 꼽는다면.
“행마의 속도가 다르다. 인공지능은 굉장히 발이 빠르다. 기풍으로 본다면 이창호 9단보다는 조훈현 9단에 가깝다. 또 선수를 지나치다고 느껴질 만큼 중시한다. 다소 무리로 보이는 변화를 강행해서라도 어떻게든 선수를 잡으려 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어깨 짚음, 붙임수 등에 대한 인식도 폭넓다.‘어깨 짚음’은 상대의 폭을 제한하는 용도 외에도 다양한 이유를 들어 사용한다. 어깨짚음을 사용하는 시기도 우리의 예전 바둑보다 이를 때가 많다. ‘붙임’수도 애용한다. 대체로 상대 돌에 붙여 가면 호흡이 격렬해진다. 기다리기보다는 앞장서서 국면을 자신의 의도대로 바꾸려 한다. 이창호 9단이 추구한 '기다리는 바둑'은 지금 인공지능 시대에는 미덕이 아니다.”
―요즘 프로바둑에서 자주 나오는 '이른삼삼침입' 수법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이른삼삼 침입은 좋은 수다. 선수로 실리를 쉽게 확보한다는 장점이 뚜렷하다. 대신 상대에게 외벽을 내주게 되는데, 상대 응수에 따라 외벽의 약점을 다시 노릴 수도 있다. 삼삼 침입에 AI는 높은 승리확률을 매기며 추천하곤 한다. 다만 AI는 상상을 초월하는 타개능력이 있다. 웬만한 곤마는 내버려 두고 다른 곳에서 득을 본다. 타개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삼삼도 몸에 맞지 않은 옷일 수 있다. 사실 인공지능은 이른 삼삼 침입 외의 다른 곳에 두고도 바둑을 잘 운영하며 이른 삼삼 침입을 놓쳤다고 해서 국면이 이상해졌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또 초반에 높은 승리확률을 보이는 수는 삼삼 외에도 많다. 인공지능이라고 해서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닌 데다가 매번 다르게 두기도 한다. 이른 삼삼 침입이 자신의 스타일에 잘 맞지 않는다면 굳이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극초반엔 인공지능의 추천수를 참고만 하는 게 좋을 수 있다. 반면 초반과 중반 사이에는 AI가 즐기는 포석을 외우는 게 유익하다. 그러나 중반부터는 참고하기가 쉽지 않다. 원리를 깨치는 것 외에 도리가 없다. 그게 어려운 거지만.”
―현재 나와 있는 인공지능들 실력 순위는? 알파고Lee(이세돌과 대결했던 v18)-알파고Master(커제와 대결한 업그레이드 버전)-알파고Zero(바둑룰만 입력해 자가학습)와 이 밖의 페이스북의 ‘엘프오픈고’, 중국 텐센트의 ‘줴이’, 또 벨기에의 '릴라제로'의 실력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나.
“신진서 9단은 ‘대부분의 AI가 알파고Lee 수준은 능가했지만, 알파고Zero 수준보단 아래’라고 말한다. 실력비교를 위해선 각 인공지능 특성을 알 필요가 있다. 엘프오픈고를 만든 페이스북은 애초에 개발목표가 알파고제로의 대중화였다. 알파고제로는 인간기보를 참조하지 않고 자습만으로 뛰어난 실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딥마인드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지는 않았다. 페이스북은 딥마인드가 공개한 논문을 바탕으로 엘프오픈고를 재생산(복제)했다. 페이스북이 추구하는 공유의 정신을 살린 것이다. 오리지널 알파고제로만은 못 하겠지만 어느 정도 잘 구현한 것 같다.
릴라제로는 릴라제로 구버전 또는 엘프오픈고와 대국을 시행하며 딥러닝을 지속하고 있는데 엘프오픈고와 비교해 형세판단과 수읽기에서 안정적이다. 축을 잘못 보는 실수도 더 적다. 지난해 4월엔 릴라제로가 엘프오픈고와의 대결에서 크게 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릴라제로가 미세하게 앞선다. 텐센트사가 개발한 중국AI 줴이(FineArt)는 2018년 무렵엔 중국 위빈 감독이 알파고Master 수준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더 발전했을 것이다. 굳이 순위를 추측하면 알파고Lee < 엘프고 < 릴라제로 ≦ 알파고Master ≦ 줴이 < 알파고Zero 정도일 것이다(알파제로가 알파고제로보다 뒤에 발표됐으나 알파제로의 기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 구글이 공개한 알파고 vs 알파고 대결이다. 흑이 백의 중국식포진을 공략했다. 흑이 알파고제로, 백은 알파고리. 그 결과 중국식포석이 꿈꿨던 웅장함은 모두 사라지고 쪼그라든 실리만 남았다. 아직은 섣부른 추측일 수 있지만 중국식 포석은 흑2 자리의 급소, 흑12 자리의 어깨짚기 급소, 3·三침입 뒤 ▲와 같은 들여다 봄, 또한 배석에 따라서는 견제로서 들어오는 상대의 굳힘 방향까지 갖가지 사항을 신경써야 한다. 한마디로 운용이 쉽지 않은 포석인 것 같다.
카페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iframe 태그를 제한 하였습니다. 관련공지보기▶ |
―이세돌-알파고 대결 4국에서 구리 9단이 ‘신의 한수’라 이름 붙였다는 백78수를 최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나.
“이미 국가대표팀 자체 연구에서도 밝혔지만 성립하지는 않는 수였다. 백78수를 최신버전 릴라제로에 넣어보면 30만번 플레이아웃에서 승리 예측이 13.8%에 그친다. 그 수가 훌륭했다기보다는 이후 알파고가 받는 방법이 이상해서 바둑이 역전되었다. 알파고의 폭주를 유도한 측면에서는 의미를 줄 수는 있다. 원래 제대로 받는다면 백78은 부분적 이득을 보는 데까지는 성공할 수 있지만 이세돌 9단이 그걸 가지고 역전하기까지는 부족했다. 백78에 알파고가 잘못 받은 게 '버그'는 아니었다. 버그는 '개발자의 명백한 잘못'을 뜻하지만 알파고는 마치 수학문제가 어려워서 힘들어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이세돌 9단과의 매치 당시 사용됐던 알파고 버전 18은 약간의 결함이 있었음이 훗날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밝혀졌다. 딥마인드의 개발자들은 물론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AI와 바둑계 미래를 전망하면.
“인공지능을 통해 우리는 이미 미래의 바둑을 보고 있다. 한국기원 국가대표팀 목진석 감독은 ‘인공지능은 인간이 축적해 놓은 바둑이론을 극대화한다.’고 말했다. AI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읽기를 빠르게 해내면서 인간보다 더 좋은 수를 둘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창의적인 수들이 나온다. 우리가 그걸 연구해 흡수한다면 아주 유익하다. AI가 인간보다는 바둑의 ‘궁극’에 가깝게 다가갔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궁극까지의 거리에 비하면 오십보백보일 것이다. 아직도 바둑에서 구현할 수 있는 변화와 경우의 수는 밤하늘의 별보다 많다. 어차피 신의 한수를 찾아 노력하는 입장이라면 AI는 인간의 동반자, 아니 조력자다.
지금은 '통역'이 필요한 시점이다. AI는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바둑이론 발전을 좌우한다. AI와 소통하며 더 정밀한 이론을 구축하는 게 전문가가 맡은 역할이다. 프로기사들이 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