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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장자권!(20) : 이런 부모와 이런 자녀가 되라!”
+ 본 문 : 사무엘하 18장 31절 - 33절 (구약성경 494쪽)
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아멘!
서로 축복 / “나는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 어버이 주일에 인사 하나 더합시다. /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아멘!”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장자 –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권세를 회복하고, 그 권세를 누리며 살아갑시다.
지난 주일은 “장자여! 행복한 가족으로 살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주일에는 “이런 부모와 이런 자녀가 되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주일에 먼저 이런 자녀가 되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런 자녀가 되라는 말씀의 주제는, 부모 공경하여 축복받으라는 말씀입니다.
명절이면 우리 어버이들께서는 자녀들에게 용돈은 얼마나 받으셨나요? 선물은 무얼 받으셨습니까?
반대로 묻습니다. 우리 자녀들, 부모님들께 용돈은 얼마나 드렸고? 선물은 무얼 주셨습니까?
아주 재미있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딸이 주는 돈은 서서 받고, 아들이 주는 돈은 앉아서 받고,
영감이 주는 돈은 어떻게 받는다?” 그렇습니다. “누워서 받습니다.” 영감이 제일 만만하고 편합니다.
그런데 할 수 있다면, 며느리가 주는 돈을 뒹굴며 받을 수 있도록 고부간에 좋은 관계를 가지십시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줌마! - 엄마와 주부의 줌 말입니다.
열 명이 탄 배가 조난을 당했습니다. 연락을 받고 헬리콥터가 구조를 하려 왔습니다. 밧줄을 내립니다.
열 명이 다 매달렸습니다. 위에서 조종사가 말합니다. “열 명은 안 됩니다. 아홉 명만 됩니다.”
그러자 밧줄을 붙잡고 있는 아홉 명이 일제히 한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 한 사람은 아줌마였습니다.
아줌마가 소리 질렀습니다. “그래. 지금까지도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는데,
이까짓 희생을 못하겠습니까?” - 그 말에 감동한 아홉 명의 남자가 감동해서, 다 박수를 쳤습니다.
그 결과 아줌마 혼자만 살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가신 분들은, 안 웃고 있습니다.
웃는 분들이 안 웃는 분들에게 설명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남자들이 박수치느라 밧줄을 놓았습니다.
아버지는 강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보다 엄마는 더 강합니다. 아줌마이기 때문입니다.
번지 점프가 뭔지 아시지요? 번지 점프는 뉴질랜드 퀸스랜드의 해캐트라는 사람이 처음 개발하였습니다.
그는 1986년, 파리의 에펠 탑에서 뛰어내리는 번지점프를 했던 사람으로도 유명한 번지 점프가입니다.
그가 처음 시도한 뉴질랜드 퀸스타운의 카와라우 강의 다리 위의 번지점프는 번지점프의 원조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 를 촬영했는데, 카와라우 강의 다리의 높이는 43미터입니다.
한번 뛰어내리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12만원입니다. 어느 한국 여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그 곳에 갔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번지 점프를 시도하였습니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뛰어내리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환불은 안 됩니다. 환불이 안 된다는 말에 어머니가 “아까운 돈” 하더니, 대신 뛰어내리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강한 아줌마였던 어머니, 가족을 책임졌던 아버지도 늙어 노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 막 철이 들어 효도 한 번 해볼까 생각했더니, 어버이는 이미 내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마땅히 효도해야 할 줄 알면서도,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다보니, 마음뿐 – 죄송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도 “효도, 부모공경” 이라는 설교를 하면서도 늘 죄송하고, 마음 아플 때가 참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걸 명심합시다. 부모 공경은 무조건적인 것이요, 절대적임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명심하십시오. 육신의 부모와의 관계가 바로 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로 됩니다.
언제나 조건 없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짝사랑을, 부모님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어느 훈련병의 어머니가 아들이 사열하고 있는, 훈련소 연병장으로 참관을 갔습니다.
많은 병사들이 질서 있게 사열하는 모습을 지켜 본 다음,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바보 같은 놈의 자식들, 그렇게 발도 하나 못 맞춰! 발이 맞는 놈은 내 아들 하나 밖에 없었다니까."
어머니의 눈에는 자기 아들만 보입니다. 그리고 자식이 최고입니다. 이것이 자식을 향한 짝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눈에는 저와 여러분 밖에 안 보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최고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짝사랑입니다.
하나님만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저와 여러분의 부모님도 자식을 향해 짝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부모의 간을 먹고 자란 자식들임을 아십니까?
“애간장이 녹는다.” 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부모들은 애간장을 녹이며 자녀인 우리들을 길렀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간을 녹이고, 자식은 이렇게 녹아내린 부모의 간을 먹고 자란다는 말입니다.
우리 부모님의 사랑은 애간장 - 간을 녹여 자식들에게 먹이며 길렀고, 우리는 그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은 어버이의 사랑과 피를 머금고 태어나, 어버이의 눈물과 땀을 먹고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 잘 하고, 특히 나이 드신 부모님을 잘 보살피는 효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부모공경을 잘 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에베소서 6장 3절에 부모 공경자를 이렇게 축복합니다.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멘!
십계명 중에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여러분! 아멘입니까? 여러분 모두 이 축복을 받아 누리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이런 부모가 되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이런 부모가 되라는 말씀의 주제는 용서하는 부모가 되라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33절에 아들을 잃은 아비의 통곡이 나옵니다. 아들 압살롬이 에브라임 숲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이 창자를 쥐어짜며 외친 애끓은 통곡이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아버지로서의 다윗의 이 통곡은, 역사상 가장 애처롭고 가장 가슴을 찢는 통곡 중 하나일 것입니다.
압살롬의 죽음은 다윗이 마셔야 할 쓴 잔이었습니다. 다윗이 누굽니까? 그토록 많은 축복을 경험했고,
그토록 풍성한 기쁨을 누렸던 다윗,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시 23:5)
고백하며 찬양했던 다윗,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구원의 잔” 을 높이 들며 건배했던 다윗,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의 배신과 죽음 앞에서, 지금 가슴을 찢으며 창자를 쥐어짜며 통곡하고 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한 다윗의 이 비극적인 통곡은, 11년 전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압살롬의 친 누이 다말이, 배다른 형제였던 암논에 의해 강간을 당합니다. 그 강간 사건을 알게 된,
다말의 친 오빠 압살롬은 격분했고, 사랑하는 누이 다말을 위해 보복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렇게 잔인하게 암논을 살해한 압살롬은, 요단강을 건너 어머니의 고향인 그술로 도망을 갔습니다.
압살롬은 그렇게 도망자의 삶을 산 지 3년 만에, 집으로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완전히 용서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보기를 거부했습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아비로서 아들 압살롬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증오심이 그것을 가로 막았습니다.
이렇게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을 받게 된 아들 압살롬은 속이 탓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돌아와 자기 집에 있었지만, 이것은 삶이 아니라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용납받기를 원했습니다. 인격적으로 용서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압살롬은 진심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은혜와 자비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윗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압살롬을 아들로 받아들이기를 철저하게 거절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 말씀이 나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서 아버지 재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던 아들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면, 무조건 용서하고 다시 아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달려가 그를 맞이하고 뜨거운 포옹으로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리고 소를 잡고 함께 먹을 밥상을 차렸습니다. 거대한 잔치를 벌이며 온 집이 함께 기뻐했습니다.
만일 다윗이 탕자의 아버지만 같았더라면, 아들 압살롬에게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네 동생 다말을 얼마나 아꼈으면, 네 형 암논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미웠으면,
형을 죽였겠느냐? 그렇다고 네 형을 죽인 것은 정말로 잘못된 일이지만, 네 마음을 내가 이해하마,
그 일로 집을 떠난 객지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니?” - 그러면서 아들 압살롬을 용서했더라면,
아들 압살롬의 배신도 반역도 없었을 것이고, 아들에게 쫓겨 피난 가는 일도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더더구나 아들 압살롬이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애통하며 우는 일도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들을 용서하지를 못했습니다. 모질게 대했습니다. 얼굴 보는 것조차 거절했습니다.
다윗 자신이 그렇게 하므로, 살인죄에 대해 책임과 고통을 뼈저리게 느낄 때까지 계속 벌을 주어야,
아들 압살롬을 위해 좋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실수였고, 그 결과 뼈아픈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반역을 일으키고, 그 반역 때문에 도망가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게 됩니다. 결국 아들도 잃었습니다.
고통은 우리의 태도에 따라 우리를 더 나빠지게 하는 대신, 더 나아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보십시오.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풀기를 거부하고, 그에게 매정하게 대하면서,
자신 역시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 역시 줄어들었고, 기도의 삶도 줄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에 대한 증오심으로 아들과 가까워지기를 거부할수록, 하나님과의 관계도 멀어졌습니다.
내 곁의 사람들에 대한 용서가 사라질수록,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도 잃어 갑니다.
그러다가 다윗은 사실 아들 압살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납니다.
그렇게 쫓겨나고서야 비로소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서 자신이 멀어진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쫓겨나고서야 비로소 다윗은,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멀리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은 비로소 사람을 미워한 것이 곧 하나님을 미워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다윗은 왕위와 왕도에서 쫓겨나 광야로 도망가면서, 다윗다운 삶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아버지로서, 사랑하지 못하였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조건 없이 용서 받은 자신이었으면서도, 용서하지 못한 자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사실에 그는 그토록 통곡한 것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그렇게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면서, 다윗은 비로소 진정한 다윗다운 신앙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아들의 반역으로 광야에 내몰린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겸손을 회복했습니다.
“죽은 개” 같은 시므이의 저주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선포로 받아들이고, 회개의 신앙을 회복했습니다.
특별히 신복이었던 아히도벨의 배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윗의 기도는 뜨겁게 회복되었습니다.
다윗은 다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삶의 정수였던 기도생활을 다시 회복하여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구원하여 주신 주님으로 기뻐하며 찬송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예배가 회복되었습니다.
기도가 회복되었습니다. 찬송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렇게 회복되니 아들을 향한 마음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기를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비록 아비에게 칼을 겨누고 반역을 주도한 압살롬이지만 죽이지만 말아다오.” 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다윗은 아들의 반란으로 광야로 내몰린 최악의 상태에서, 심령의 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아는 삶을 회복했습니다.
아히도벨의 배반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어떤 분인지를 아는 삶, 기도하는 삶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들 압살롬을 향한 용서와 사랑의 삶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부하 요압 장군은, 다윗의 그러한 자비와 사랑에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쟁터에서 머리채가 나무 가지에 걸려 매달려 있는 압살롬을 기어이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죽음은, 아들의 죄를 용서하지 못한 자신의 강팍한 마음 때문에 죽은 것이요.
아들을 사랑하지 못해, 그토록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아들을 멀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고난, 아들의 죽음 앞에 처절하리만큼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다윗은 이전보다 더욱 겸손하여졌고, 더욱 더 기도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였으며,
하나님을 사랑하였으며,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랑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왜 용서해야 하고,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가를 아는 참 좋은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십니까? 진심으로 용서하셨습니끼?
비록 자식이라도 미움과 분노를 오래 마음에 품게 되면, 나 자신이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무릎 꿇는 기도가 멀어지게 됩니다. 예배와 찬송과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로부터도 멀어집니다.
그러면 다윗처럼 자신도, 자녀들도 비참한 결론에 이르고 맙니다. 그래서 부모가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부모인 내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부모인 나의 기도가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부모인 나의 예배와 찬송이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부모인 나의 사랑과 용서가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인 내가 먼저 회복되면, 자녀들이 회복됩니다.
자식들에게 효도하라고 하기 전에, 부모인 우리가 먼저 회복되어 믿음의 축복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자녀를 축복하는 축복권을 주셨습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축복하고 기도한 대로 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축복했습니다.
이삭도 그의 아들 야곱을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그의 열두 아들들에게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가 축복한 대로 됩니다. 부모가 기도한 대로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그 축복을 받은 우리 또한, 부모의 축복권을 가지고 우리 자녀들을 안수하며 축복하면 그대로 됩니다.
간절히 바랍니다. 축복권을 가진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많이 정말로 많이 축복하십시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부모인 우리가 축복하는 대로 잘 되는 기적을 체험하며 행복하시고,
자녀들은 부모 공경하여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행복하시므로,
건강하고 복 있는 가정, 건강하고 복 있는 가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