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 미국, 성장드라마, 118분,1993년, 라세 할스트롬 감독
<개같은 내 인생>으로 유명해진 스웨덴 출신의 감독 라세 할스트롬의 영하다.
결이 있다. 내게 영화에서 ‘결’이란 삶의 애환이나 그늘, 감정 등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말이다.
이 영화는 개인의 성장을 다루고 있으면 그 안엔 비교의식으로부터의 자유 문제도 있다.
아버지의 자살로 인한 충격 뒤 고래같이 뚱뚱해져 소파에서만 생활하는 어머니와 정신지체아 동생을 돌보며 두 명의 누이와 함께 살며 가장의 역할까지 맡아야 하는 이제 막 청년이 된 길버트! 길버트의 내면은 가족 이외를 도무지 생각할 수 없다.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바쁘게 살다보니 그에겐 가고 싶은 곳도 미래도 꿈도 없다. 도무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어 아예 포기한 듯하다. 그는 성실하고 착하고 모범적이지만 지쳐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해소할 방법도 없다. 배달하다가 관계가 시작된 마을 유부녀와의 불륜이 조금은 위안이 되지만 내면은 내내 공허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캠핑족 베키가 나타나고 그의 삶은 크게 흔들린다.
사춘기 아이들이 그렇듯이 길버트도 길버트의 누이도 고래같이 뚱뚱한 어머니를 창피하게 여긴다. 길버트는 그런 마음을 숨기려고 오히려 동네 아이들이 어머니를 엿보는 걸 도와주며 자신과 가족을 심리적으로 분리하려고까지 한다. 어머니가 부끄러워 숨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죽자 어머니의 명예를 지켜주고 놀림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른다.
특별히 유복한 가정의 아이가 아니라면 가족과 집에 대한 창피함은 사춘기면 대부분 겪는 일이 아닐까? 가족의 울타리에만 있을 땐 편했지만, 울타리를 벗어나 학교를 다니면서 우리는 은연중 나와 남은 물론 나의 가족과 남의 가족을 비교하게 되고 초라함과 창피함을 느끼게된다. 나도 초등학교 들어간 이후 다른 엄마들보다 많이 늙은 우리 엄마가 창피했다. 고생해서 그런 걸 알지만 창피하다는 생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가 운전을 하시는 것도, 집이 여유롭지 못한 것도 그랬다. 물론 내 외모와 능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비교의식과 자의식이 팽창하니 현실은 더 절망스러웠다. 한편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많이 느꼈다. 남과 다르다는 것이 그렇게 두렵고 창피했다. 있지도 않은 남의 시선에 참 민감한 나이였다. 나를 긍정해야할 나이에 부정하기 바빴으니 염세적인 성격이었다. 물론 나의 성장에도 좋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화려함의 극치를 매일 세뇌하는 텔레비번과 쇼윈도, 그리고 끊임없이 시험을 보고 평가하여 비교의식을 조장하는 학교구조 등 사회의 왜곡된 가치관을 내면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린 나이에 그런 걸 통찰할 순 없었다.
우리는 사춘기에 많은 아이들이 겪게 되는 이런 심리적 위기를 질풍노도라 하며 일종의 통과의례로 치부하거나 심한 경우 심리적 질병으로 규정한다. 그럼으로써 아이의 심리적 위기를 개인화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겪는다는 것이 부당한 가치관과 관행을 합리화시키는 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이렇게 사춘기의 갈등을 통과의례라고 규정할 때 그것은 올바른 주체의 자립보다는 자칫 수동적인 사회적응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현대심리학의 심리적 처방이라는 것도 개인을 사회에 적응시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사춘기의 갈등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부모와 교사 및 주변의 사람들이 적극 도와주는 것이 우선 중요할 것이다. 올바른 가치관과 행복한 삶은 바른 정체성 즉 자신과 가족을 긍정하여 자신감을 갖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비교의식의 허위를 깨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비교의식과 오만을 조장하는 현대사회에서 비교의식을 깨기란 참으로 어렵다. 지지란 외적으로 내적으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비교가 오만과 불행 등 잘못된 의식을 낳고, 그런 비교를 낳는 차별은 고쳐져야 한다는 걸 알도록 해야 한다. 전제로 어느 정도의 사회 정의와 평등, 그리고 사회보장이 실현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부당한 사회에 굴종하지 말고 싸우면서 자기식대로 바른 가치관을 기르며 살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신념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더 그렇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가족과 개인의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짐은 길버트에게처럼 아이에게 전가될 것이다. 부모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올바르다면 아이의 훌륭한 응원군이 되겠지만, 대개의 경우 부모도 비교의식의 피해자로서 사회적 가치관을 내면화한 상태가 많아 아이에게 제대로 도움을 못주는 것이 현실이다. 가난과 질병이 가족의 족쇄가 되고, 가족은 울타리가 아니라 감옥이 된다. 어차피 아이는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립을 해야 하지만, 애초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길버트처럼.
물론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길보트에겐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비록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독립의 기회가 주어진다. 영화를 보며 우리는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자기 자신을 긍정하며 성실한 길버트의 가슴이 더 넓어졌다는 걸 느끼게 된다.
베키는 떠나기 전날 밤 길버트와 함께 보낸다. 아침에 일어난 할머니는 둘이 풀밭에서 함께 자는 걸 발견하지만 모르는 체하며 빙그레 웃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너 임신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다그치며 혼낼 텐데 반응이 180도 다르다. 서양 영화들을 보면 이런 장면이 많다. 오히려 자식들에게 이성을 많이 경험해보라고 충고하는 게 다반사고 자식의 사생활을 존중하여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가치관에도 단점은 있겠지만, 내가 놀라는 것은 사랑과 신뢰에서 비롯된 할머니의 눈빛 때문이다. 그러니 길버트와 잠을 잔 베키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자연스럽다. 자신감이 있다. 서양 아이들의 장점은 이렇게 길러진 자신감과 자연스러움이다. 그것이 자칙 이기적인 면으로 드러라기도 하지만, 각종 금지와 의무 불안 죄책감에 휩싸여 자라는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천양지차가 아닌가? 도대체 안되는 게 우린 왜 그렇게 많은가? 여러 금기와 편견을 버리고 우선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잠깐이지만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길버트는 이듬해 동생 어니를 데리고 베키의 캠핑카를 따라 간다.
나는 자유가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삶의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과 비교의식의 족쇄, 그리고 어리석은 편견에 기인한 여러 의무와 권리조차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내적 외적 자유를 동시에 추구할 땐 더욱 더.
줄거리 :
넓은 평원의 시골 마을 아이오아주 '엔도라'에 사는 길버트 그레이프(죠니 뎁)는 식료품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며 무거운 집안의 가장 역할과 가족들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욕망 속에서 살아간다. 그에게는 남편이 목매달아 자살한 이후의 충격으로 몸무게가 500파운드나 나가는 거구인 어머니(다레네 캐이츠)와 정신 연령이 어린 아이 수준인 저능아 동생 어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34살의 누나(로라 해링턴)가 있고, 16살로 한창 멋내기 좋아하는 미모의 여동생 엘렌(매리 케이트 쉘하드트)이 있다.
틈만 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어니는 어머니의 엄청난 몸무게와 함께 집안의 골칫거리이다. 사춘기 여동생 엘렌은 항상 툴툴거린다.
길버트의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생활. 그 속에서 길버트는 동네의 카버 부인(매리 스틴버겐)과 불륜 관계를 갖는다. 물론 카버 부인에게 이끌려 그렇게 되었지만 답답한 틀 속에 갇혀 있던 길버트는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한편, 캠핑족 소녀 베키(줄리엣 루이스)는 자동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일주일을 엔도라에 머무르게 되고, 우연히 가스탱크에 올라 가 있는 어니를 따뜻하게 대하는 길버트를 보고 호감을 느낀다. 길버트 또한 같은 또래의 여자인 베키에게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길버트의 내면은 자유롭지 못한 처지와 창피한 가족으로 더 불편하다.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와 식구들은 그렇게 바라던 어니의 18번째 생일을 맞고, 식구들은 그동안 쌓였던 갈등을 푼다. 길버트는 베키를 어머니에게 소개시켜 주고, 베키는 다음 해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캠핑을 떠난다. 어머니는 침대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죽는다. 어머니를 놀림감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과거의 족쇄를 끊기 위해 길버트와 누이들은 낡은 집을 태운다. 누나 에이미와 동생 엘렌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고, 길버트도 어니와 함께 베키의 도움으로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