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시 직인이 찍힌 편지를 받았다. 사회과장 이해돈이 나에게 보낸 편지였다. 당근 그럴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너무 예상과 똑같은 내용이라서 우스웠다. 코끼리 더듬는 식으로 캄캄한 미술사학을 공부하다 보니 나의 예지 능력이 크게 늘어난 것 같았다.
한 달쯤 전에 서울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서울시에 바란다의 행정개선 요망사항에 대해 쓴 적이 있었다. 무슨 거창한 개선은 아니고 노숙자들 겨울철에 지하철 통로 맨 바닥에서 자면 추울 테니까 대형 온풍기를 하나쯤 통로 입구쪽에 설치하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심야전력을 이용하던가, 밤에 에스컬레이터 안 돌리는 비용으로 대신하면 소외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온정 행정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에서 보내온 답장은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자활 센터가 버젓이 있는데, 거기에 입소하지 않는 것은 개인 사정들이고, 안 들어오는 사람을 강제로 데려다 둘 수는 없으며, 가령 대형 환풍기 같은 설비를 가동하면 사회에 복귀해야 할 노숙자들이 오히려 따뜻한 지하철을 새 둥지 삼아 노숙생활이 고착화 될 우려가 크다는 논리였다. 맹추위에 당장 추워서 진짜로 얼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판에 무슨 얼어 죽을 사회복귀 타령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어 죽을지언정 시설에 절대 입소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진짜 이유를 들어나 보았는지 궁금했다.
노숙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회의 관심과 따뜻한 눈길, 그리고 추위를 다소나마 가려줄 수 있는 온풍기 같은 시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추위에 떨어본 사람은 약간의 온기가 있는 경우와 완전히 추위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만약 온풍기가 서울시의 주장대로 노숙자들의 건강한 사회복귀에 장애가 된다면, 무슨 단체에서 하고 있는 노숙자에게 점심식사 나누기 운동 같은 것은 그들이 가장과 사회에 복귀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조속한 복귀를 저해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란 말인가? 배고픈 사람,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는 한 숟갈의 밥이나 따뜻한 곁불이 무엇보다 절박한 법이다. 오장육부가 얼어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직업교육 무료 수강권을 나누어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서울시는 아직 실제 노숙자의 수와 여러 가지 이유로 노숙 중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통계도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가령 독일의 경우 노숙자들의 잔존 수명이 6개월에서 2년 반이라는 기사를 유학 시절에 읽은 적이 있다. 서울시의 나 몰라라 행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며칠 전 신문들을 뒤적이다가 이번 주 초에 실린 기절초풍할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노숙인 재활 지원을 위한 기금을 3억을 삭감한 대신, 시의원 전용 테니스장 건설에 8천만원을 시 예산에서 우선적으로 따로 챙겨놓았다는 한 일간신문의 기사였다.
서울시의원들의 머릿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들이 들어있는지 대강 알만 했다. 혹시 그네들은 사람을 자동차나 미싱기계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망가지면 고철값에 팔아넘기고, 철지나면 폐기처분하는 그런 기계로. 나는 인천시민이다. 삼화고속 타고 가끔씩 서울에 간다. 서울역 지하 통로를 지나다니는 서울 시민들은 왜 아무도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
첫댓글 흠...생각을 해보게 하는 문제...공감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