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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피고 피고
“여기 내려오는데 꽃이 많이 피었지?”
하고 큰스님께서 물으셨다.
사월 첫날, 서울은 여전히 겨울 같은 날씨였다. 고속버스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아지랑이 같은 꽃들이 하얗게 멀리서도 ‘꽃이다’ 하며 흔들렸다.
절정은 부산이라는 듯 노포터미널 입구의 벚나무들은 꽃터널을 만들었다. 문수선원앞의 동백나무에도 붉은 동백들이 피다가 떨어지고 있었다.
염화실지의 젊은 사진기자는 부산에는 벌써 꽃들이 피었다가 다 지고 있는 중이라면서 “서울로 꽃구경 가야하나 봐요.”라고 했다.
봄꽃 구경은 동경이면서도 해야만 하는 숙제같기도 한데, 남쪽 사람들이 서울로 꽃구경을 와야겠다는 말은 어쩐지 숙제를 면제받은듯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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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은 겨울 두루마기와 머플러를 하고 내려오셨는데 감기로 고전중이셨다. 콧물이 나서, 휴지를 두장씩 접어서 법상에 안경과 경전과 함께 갖다 놓게 하셨다.
부회장 스님이 오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시다가 “감기많이 걸리셨네요. 스님 누가 옮겼습니까?” 하고 여쭸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저절로 왔지.”큰스님은 대답하셨는데 곁에 계셨던 분들의 이야기는 달랐다.화엄전에 최근 매화가 몹시 만개해서, 큰스님께서 아침마다 매화 꽃 아래를 걸으시고 낮에도 저녁에도 수각에서 물을 길어다 주시느라 찬바람을 많이 쏘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당에 또 새로운 매화나무도 심으셨다고 했다. 큰스님은 절대 감기가 매화탓이 아니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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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님이 보여주신 사진 속 화엄전 매화는 싱싱하게 핀 나무에서도 어여쁘고, 마당에 흩날려서도 아름답고, 찻물속에서도 설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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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아서 스님들이 많이 빠지셨나보다." 라고 걱정하셨지만 다른 때보다도 더 많이 스님들이 자리를 가득히 채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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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kbs에서 탄허스님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찍으면서 큰스님을 취재하시고, 화엄경 강의하는 모습도 찍기위해 문수선원에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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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가 갈비뼈를 다쳤다는 도원이 학교를 쉬고 석원이 형을 따라 선원에 왔다.
큰스님께 오랜만에 인사를 올리자 “오늘은 학교 안가는 날인가” 하시고는
“선재동자가 니다 여기 이리 와 봐. 니가 선재동자다 그제 맞제?” 하고 염화실 표지의 그림을 보여주셨다. 염화실지 37차에는 물방울 바지를 입은 선재동자가 귀엽게 웃으며 선주비구에게 합장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四
賢首品 第十二之一
二. 賢首菩薩의 偈頌答
오늘 화엄경 353페이지 두 번째 단락 할 차례다. 불교에서는 연기설(緣起說)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업으로 인연해서 돌아간다고 보는 것은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이고 모든 것이 진여라고 보는 것은 진여연기설(眞如緣起說)이다.
이중에서도 화엄경에서는 법계연기를 이야기 한다. 법계연기란 우주 법계는 낱낱이 존재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모두가 연관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는 설이다.
모두가 연관 관계를 맺고 변화발전하고 생주이멸(生住異滅)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 하며 존재한다. 이 세상 일체 존재와 세상사와 사람이 하는 일이 모두 법계연기적인 이치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 수행을 하는 것, 일선에서 포교하고 교화하고 스스로 깨달음을 성취하고 심지어 업을 짓고 살아가는 모든 삶도 전부 법계연기의 원리대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서 사찰마다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사찰을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인 주지스님의 사상과 생각과 수행이력에 따라서 인연되어진다.
주지스님이 무엇을 열심히 공부했고,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따라서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절도 있고, 사경이나 다라니위주로 수행하거나 금강경만을 독송하는 절도 있다.
그 절의 주지스님이 삿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면 신도들에게도 삿되게 가르친다. 정법으로 살아가는 스님은 신도들에게도 정법으로 가르친다. 그 영향을 받아서 그 절의 신도들 역시 또 다른 도반들에게나 이웃이나 친지들에게 정법으로 가르친다. 그런 것이 저절로 파급이 되는데 그 이치가 그대로 세상 이치이고 존재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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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니까 곳곳에서 봄소식을 알린다. 나무에서도 풀에서도 매화나무 벚꽃나무 할 것 없이 곳곳에서 꽃이 필 것은 다 피어서 봄소식을 알린다. 말이 달라서 그렇지 이런 것도 사실은 법계연기의 관계다.
부처님의 깨달음이든 그 깨달음을 통한 화엄경의 가르침이든 없는 것을 새로 만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미 있었는데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을 드러내서 우리에게 인식시켜주는 것이 불교다. 우리가 그 원리를 인식함으로 해서 원리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원리대로 살아간다면 수류화개(水流花開)다.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봄이 오면 저절로 자연스럽게 만물이 생장하고, 필 꽃은 피고 자랄 잎은 움이 터서 자란다.
그렇게 살라는 이치를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것이 화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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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품에서는 법계연기의 이치를 글의 형식으로도 보여준다.지난 시간의 내용만 봐도
‘만약 미묘한 복으로써 단정하게 장엄한 몸을 얻는다면 그 사람의 몸은 빛나기가 금으로 만든 산과 같이 빛나고 32상으로 장엄이 될 것이고, 만약에 32상으로 장엄이 되면 80종호로도 장엄이 될 것이고, 80종호를 갖추어서 장엄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몸에서 광명이 비추는데 한량없는 광명을 비출 것이고, 그 사람의 몸에서 광명이 한량없이 비춘다면 곧 부사의(不思議) 광명으로 또한 장엄하게 될 것이고, 만약 부사의 광명이 장엄할 것 같으면 그 광명이 모든 연꽃을 피우게 될 것이고, 그 광명이 연꽃을 피우게 될 것 같으면 한량없는 부처님이 그 연꽃위에 앉아계실 것이고 그래서 시방세계에 두루하지 아니함이 없어서 모두 다 능히 모든 중생들을 다 조복하고 만약 이와 같이 중생들을 조복한다면 곧 한량없는 신통력을 나타내리라’고 하였다.
부처님 교화를 말씀하시면서 글이 전부 연관관계를 갖고 표현되는 것이 신기하다.
무엇이 되면 무엇이 되고, 그것은 또 무엇이 되고 그것이 다시 다른 무엇이 된다는 식이다.
내용은 수행중심, 깨달음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우주법계가 무엇하나 빠뜨릴 수 없이 전부 연기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는 것을 글의 형식으로도 보여주고 있다.
아래도 다 그와 같은 형식이다.
나, 語業의 德
若現無量神通力이면 則住不可思議土하고
演說不可思議法하야 令不思議衆歡喜니라
만약 한량없는 신통력을 나타내면
곧 불가사의한 국토에 머물게 되고
불가사의한 법을 연설하여
부사의한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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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語業)의 덕(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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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현무량신통력(若現無量神通力)이면 : 만약 한량없는 신통력을 나타나게 될 것 같으면
즉주불가사의토(則住不可思議土)하고 :불가사의한 국토에 머물게 될 것이고, 불가사의한 국토에 머물게 되니까 불가사의한 이치를 다 안다. 그러면 또
연설불가사의법(演說不可思議法)하야: 불가사의한 법을 연설하게 될 것이고
영부사의중환희(令不思議衆歡喜)니라 :불가사의한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환희케 할 것이다.
어업(語業)의 덕(德)을 말하면서 ‘불가사의’라는 말로 통일을 한다.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하면 화엄경의 이치로 우리 삶이 장엄이 되고, 또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화엄의 이치대로 살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내용이다.
다, 意業의 德
若說不可思議法하야 令不思議衆歡喜면
則以智慧辯才力으로 隨衆生心而化誘니라
若以智慧辯才力으로 隨衆生心而化誘면
則以智慧爲先導하야 身語意業恒無失이니라
만약 불가사의한 법을 연설하여
부사의한 중생을 환희케 하면
곧 지혜와 변재의 힘으로써
중생의 마음을 따라 교화하리라
만약 지혜와 변재의 힘으로써
중생의 마음을 따라 교화한다면
곧 지혜로써 먼저 인도함을 삼아
신(身). 어(語). 의업(意業)에 항상 잃음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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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업(意業)의 덕(德): 의업의 수승한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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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위에 나온 이야기와 연관이 된다. 이 세상에 살면서 나와 남과, 사람과 사람 외의 자연, 이런 것들이 서로 연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사실 그 삶을 인정받을 수가 없다.
내용을 알고 보면 나와 남이 긴밀하게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미운 사람이든 고운 사람이든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든 불필요한 것이든 어떤 자연현상도 그대로 나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예를 들어서 오늘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벌써 가뭄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날이 이렇게 밝아서 좋은 사람도 있다. 날이 들면 좋겠고, 비가 오면 좋겠고 하는 것은 나의 판단이지만 날이 들든 비가 오든 전체적으로 볼 때는 모든 것이 다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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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설불가사의법(若說不可思議法)하야: 만약 불가사의한 법을 연설할 것 같으면. 위에서 불가사의 법을 연설한다고 했는데 여기에 이어진다. 만약 불가사의한 법을 연설하게 될 것 같으면
영부사의중환희(令不思議衆歡喜)면 : 불가사의한 중생으로 환희케 한다면. 위에 나온 것을 그대로 이끌어 왔다. 곧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즉이지혜변재력(則以智慧辯才力)으로 : 지혜변재력으로써
수중생심이화유(隨衆生心而化誘)니라:중생들의 마음을 따라서 교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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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지혜변재력(若以智慧辯才力)으로: 만약 지혜와 변재의 힘으로써
수중생심이화유(隨衆生心而化誘)면: 중생심을 따라서 교화를 한다면
즉이지혜위선도(則以智慧爲先導)하야 :곧 지혜로써 선도를 삼는다. 이것이 중요한 말이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은 지혜다. 지혜가 있음으로 해서 자비를 제대로 실천할 수가 있다. 정상적인 지혜를 가졌다면 자비는 저절로 따라온다.
즉이지혜위선도(則以智慧爲先導)하야 : 지혜로써 선도를 삼아서
신어의업항무실(身語意業恒無失)이니라: 삼업이 항상 손실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혜가 없는 까닭에 신어의업 삼업에 손실이 많다.
라, 三業의 功德
若以智慧爲先導하야 身語意業恒無失이면
則其願力得自在하야 普隨諸趣而現身이니라
若其願力得自在하야 普隨諸趣而現身이면
則能爲衆說法時에 音聲隨類難思議니라
若能爲衆說法時에 音聲隨類難思議면
則於一切衆生心에 一念悉知無有餘니라
若於一切衆生心에 一念悉知無有餘면
則知煩惱無所起하야 永不沒溺於生死니라
만약 지혜로써 먼저 인도(引導)함을 삼아
신. 어. 의업에 항상 잃음이 없으면
곧 그 원력이 자재함을 얻어서
널리 모든 갈래를 따라서 몸을 나투리라
만약 그 원력이 자재함을 얻어서
널리 모든 갈래를 따라 몸을 나투면
곧 능히 대중을 위해 설법할 때에
음성이 종류를 따라 사의하기 어려우리라
만약 능히 대중을 위해 설법할 때에
음성이 종류를 따라 사의하기 어려우면
곧 온갖 중생의 마음에
한생각에 다 알아 남음이 없으리라
만약 온갖 중생의 마음에
한생각에 다 알아 남음이 없으면
곧 번뇌가 일어나는 곳이 없음을 알아
길이 생사에 빠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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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업(三業)의 공덕(功德) :삼업의 광대한 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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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지혜위선도(若以智慧爲先導) : 만약 지혜로써 선도를 삼아서
신어의업항무실(身語意業恒無失)이면 : 신어의 삼업이 항상 손실이 없을 것 같으면
즉기원력득자재(則其願力得自在)하야 : 그 원력이 자재함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원력을 세우고 그 원력을 실현한다고 하면, 일단 삼업이 충실해야 된다. 삼업이 충실할 것 같으면 그 원력이 자재함을 얻을 것이다.
보수제취이현신(普隨諸趣而現身)이니라 : 삼업이 충실하고 그 원력이 자유자재해지고, 그 다음에는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그 모든 곳을 따라서 현신(現身)하게 된다. 누구를 제도하려 하더라도, 아무리 높은 고위층 정치인을 제도하거나 시골의 하찮은 사람들을 제도하거나, 어떤 경우의 사람을 제도하거나 간에 거기에 맞춰서 현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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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기원력득자재(若其願力得自在)하야 : 만약에 그 원력이 자유 자재함을 얻어서
보수제취이현신(普隨諸趣而現身)이면 : 널리 6취를 따라서 현신하게 된다면
즉능위중설법시(則能爲衆說法時)에 :곧 능히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할 때에
음성수류난사의(音聲隨類難思議)니라 : 음성이 류를 따라서 사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대중들을 다 따라서 그 사람에게 맞는 말로, 상황과 중생들의 근기와 그 사람들의 수준에 맞춰서 설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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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능위중설법시(若能爲衆說法時)에 : 만약 능히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할 때
음성수류난사의(音聲隨類難思議)면 : 음성이 류를 따라서 사의하기 어렵게 될 것 같으면
즉어일체중생심(則於一切衆生心)에 : 곧 일체 중생들의 마음에
일념실지무유여(一念悉知無有餘)니라: 일념에 다 안다. 일체 중생들의 마음을 일념에 남김없이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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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어일체중생심(若於一切衆生心)에 : 만약에 일체 중생들의 마음을
일념실지무유여(一念悉知無有餘)면 : 한 순간에 다 알아서 남김없이 한다면
즉지번뇌무소기(則知煩惱無所起)하야 :곧 번뇌가 일어남이 없음을 알아서
영불몰익어생사(永不沒溺於生死)니라 :생사에 영원히 빠지지 아니할 것이다.
우리가 금방 읽었듯이 눈 뜬 사람은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相共和)다. 번뇌가 본래 없다. 번뇌 때문에 기도가 안 되고 공부가 안되고 참선이 안 되고 화두가 안 된다고 하지만 번뇌무소기(煩惱無所起)다. 번뇌는 일찍이 일어난 바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야말로 번뇌라고 하는 환영에 사로잡혀서 번뇌 때문에 하고자 하는 것이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번뇌무소기를 안다면 생사를 따라갈 것이 없다. 그것을 아는 분들이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相共和)라고 가르친다. 번뇌가 본래 일어난 바가 없는 도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는 사람들이 쓰는 마음은 이미 번뇌가 아니다. 설사 무엇을 보고 욕심을 부려도 이미 그것이 번뇌가 아니다.
생사와 열반이 서로 함께 하는데 더 이상의 번뇌가 있을 까닭이 없다. 번뇌가 곧 보리고, 번뇌가 곧 지혜라는 것이다. 결국 그것이 답이다.
우리가 무엿무엿 많이 일어나는 생각들을 번뇌라고 하고 망상이라고 해서 제거하고 없애려고 한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 한단 말인가. 그렇게 하면 답이 없고 끝이 없다.
일어나는 번뇌를 번뇌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쓸어없애겠다고만 한다면 영원히 쓸어없애는 일만 반복할 뿐이다.
번뇌가 곧 보리이고,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아는 것이 정답이다. 그것이 우리 가슴에 얼마만치 제대로 와 닿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그러나 이치는 그렇게 되어있다고 하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마, 得法獲地
若知煩惱無所起하야 永不沒溺於生死면
則獲功德法性身하야 以法威力現世間이니라
若獲功德法性身하야 以法威力現世間이면
則獲十地十自在하야 修行諸度勝解脫이니라
만약 번뇌가 일어나는 곳이 없음을 알아
길이 생사에 빠지지 아니하면
곧 공덕의 법성신(法性身)을 얻어
법의 위력으로써 세간에 나타나리라
만약 공덕의 법성신을 얻어서
법의 위력으로 세간에 나타나면
곧 십지(十地)와 십자재(十自在)를 얻어서
모든 바라밀의 수승한 해탈 닦아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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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법획지(得法獲地) : 법을 얻어 지위가 이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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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지번뇌무소기(若知煩惱無所起)하야: 만약 번뇌가 일어나는 바가 없음을 알아서
영불몰익어생사(永不沒溺於生死)면 : 영원히 생사에 몰익하지 아니하면
즉획공덕법성신(則獲功德法性身)하야 :공덕법성신을 얻게 될 것이다.
이법위력현세간(以法威力現世間)이니라 : 법의 위력으로써 세간에 나타난다. 그 때는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 처하더라도 우리는 법의 위력으로써 세간에 현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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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획공덕법성신(若獲功德法性身)하야 : 만약 공덕법성신을 얻어서
이법위력현세간(以法威力現世間)이면 : 법의 위력으로써 세간에 현신하게 될 것 같으면
즉획십지십자재(則獲十地十自在)하야 :곧 십지에 십자재라고 하는 것을 얻어서
수행제도승해탈(修行諸度勝解脫)이니라: 제도의 수승한 해탈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제도라고 하는 것은 육도이고 화엄경에서는 십도 즉 십바라밀이다.
십바라밀의 수승한 해탈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여기 글 형식도 법계연기의 원리에 맞게 썼다. 꼭 이렇게 써야할 이유는 없지만 화엄경의 주된 사상은 법계연기인데 그 법계연기의 원리에 맞춰서 쓴 것이다.
또 십지(十地)도 나오고 십자재(十自在)도 나오는데 그렇게 열(十)이라는 숫자를 맞춰야 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아홉 가지도 될 수가 있고, 여덟 가지도 될 수가 있고, 열 한가지 열두 가지도 될 수가 있다. 그래도 무조건 십지(十地)라고 만수(滿數)를 쓰는 것은 원만의 이치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세상의 존재는 현재 그대로 하나도 건들이거나 고치지 아니하고, 지금 있는 그대로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암암리에 보여주는 것이다.
십자재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갖추고 있는 열 가지 초능력 같은 힘을 말한다.
십자재(十自在)의 첫 번째가 명자재(命自在)다.
우리들은 수명이 자유자재 하지 못한데 십자재를 얻으면 수명이 자유자재하다. 다음은 심자재(心自在)다. 마음이 자재하다. 마음이야말로 정말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봉행불교상섭심(奉行佛敎常攝心)이라고도 했었다. 불교를 봉행한다고 하는 것은 항상 마음을 단속하는 일이다.
나는 그 구절을 보고 마음에 새기는 바가 아주 컸다.
한 마디로 마음 단속할 줄 아는 것이 불교다. 그런데 십자재를 얻은 이들은 마음이 자유자재 하다. 어떤 마음현상, 경계에 끄달리지 않겠다고 한 번 작정해버리면 다시는 끄달리지 않고 무심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무심하라고 하도 많이 배우고 들어서 알기는 안다.
‘아이고 내가 마음 안 끄달려야 되는데 안 끄달려야 되는데.’ 속으로 별별 궁리를 다 하고, 관세음보살도 불러봤다가, 옴마니반메훔도 불러봤다가, 지장보살도 불러봤다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해봤다가, 있는 처방을 다 써본다.
열 가지 처방 백 가지 처방을 다 써보지만, 결국 그러한 마음, 그러한 현상에 끄달려서 그것들을 치다꺼리 하다가 상처받고, 마음에 병드는 일들이 부지기수다.
화엄경에서 불교를 받든다는 것은 마음을 단속하는 일이다.
마음 관리 잘하는 일이다. 그런데 보살은 그런 것 저런 것이 다 소용없다. 정행품(淨行品)에서 봤듯이 보살은 어느 순간 어느 때나 항상 중생을 위한 마음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단속하고 말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세수를 하든 옷을 입든 화장실을 가든 목욕을 하든 양치질을 하든 뭘 하든 보살은 중생을 위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마음 관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선방에도 주련 같은 데 보면
‘단자무심어만물(但自無心於萬物) 하방만물상위요(何妨萬物常圍繞)’라고 새겨있다. ‘만약에 만물에 걸리지 아니할 것 같으면 만물이 나를 아무리 에워싸고 있은들 무엇이 방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만물에 무심하고, 나 이외의 모든 다른 상황에 무심하면 아무리 시끄러운 상황이 천 가지 만 가지로 나를 에워싸고 짓누르고 쫓아온다 하더라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속이 시원한 말이다. 그런 것을 선방주련에 척 걸어놓았다. 십자재를 얻으면 재물에 대해서도 자재하다.재(財)자재다. 업력난사의(業力難思議)라고 해서 지어 놓은 업을 정말 어찌하지 못하는데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에게는 업이 자재하다.또 생자재(生自在)다. 태어나는 것도 자유자재하다.
우리는 업 따라서 태어나는데 보살은 태어나는 것이 자재하다. 다음은 승해자재(勝解自在)다. 수승한 이해가 자유자재하다.또 법자재(法自在)다. 법에 대해서 자유자재하다.
다음은 원자재(願自在)다. 원력이 자유자재하다.
또 신통(神統)이 자재하고 지혜가 자유자재하다. 이렇게 해서 십지(十地)에 따라서 열 가지 자재(自在)를 얻는다.
바, 三昧
若得十地十自在하야 修行諸度勝解脫이면
則獲灌頂大神通하야 住於最勝諸三昧니라
若獲灌頂大神通하야 住於最勝諸三昧면
則於十方諸佛所에 應受灌頂而昇位니라
若於十方諸佛所에 應受灌頂而昇位면
則蒙十方一切佛이 手以甘露灌其頂이니라
만약 십지와 십자재를 얻어서
모든 바라밀의 수승한 해탈 닦아 행하면
곧 관정(灌頂)하는 大신통을 얻어서
가장 수승한 모든 삼매에 머물리라
만약 관정하는 대신통을 얻어서
가장 수승한 모든 삼매에 머물면
곧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서
응당 관정을 받아 지위에 오르리라
만약 시방의 모든 부처님 계신 곳에서
응당 관정을 받아 지위에 오르면
곧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손수 감로(甘露)로써 관정함을 입게 되리라
*
삼매(三昧) :삼매(三昧)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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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득십지십자재(若得十地十自在)하야 : 만약 십지(十地)에서 십자재를 얻어서
수행제도승해탈(修行諸度勝解脫)이면 : 제도를 수행하여 수승한 해탈을 얻을 것 같으면
즉획관정대신통(則獲灌頂大神通)하야 : 곧 관정의 대신통을 얻는다.
관정(灌頂)이란 이마에 물을 부어주는 것이다. 왕이 자기의 대를 이어서 왕위를 계승할 태자를 세우는 의식을 집행할 때, 사해에서 물을 떠다가 그것을 합해서 태자의 이마에다 부어주는 전통이 인도에 있었다.
지금도 그런 유사한 의식이 많고, 다른 종교에도 그런 의식이 있다. 그러한 관습에 의해서 불교에서는 부처가 되기 직전 장자의 지위인 십지를 관정이라고 말한다.
왕이 돌아가시면 바로 왕이고, 설사 왕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왕을 대신해서 왕 노릇을 할 수도 있는 지위가 관정이다. 바로 부처 직전의 지위다.
여기서 물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수다. 지혜의 물로써 머리에 부어준다. 그 지위는 대신통을 얻는 지위다.
주어최승제삼매(住於最勝諸三昧)니라 : 가장 수승한 모든 삼매에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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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획관정대신통(若獲灌頂大神通)하야: 관정위의 대신통을 만약 얻어서
주어최승제삼매(住於最勝諸三昧)면: 최승의 제삼매에 머물게 되면
즉어시방제불소(則於十方諸佛所)에: 곧 시방제불소에서
응수관정이승위(應受灌頂而昇位)니라 : 응당히 관정 지위를 받아서 부처의 지위에 올라간다. 여기서 승위(昇位)라고 하는 말은 부처의 지위에 올라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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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어시방제불소(若於十方諸佛所)에 : 만약 시방제불소에
응수관정이승위(應受灌頂而昇位)면 : 응당히 관정을 받아서 지위에 올라가면
즉몽시방일체불(則蒙十方一切佛)이 : 곧 시방의 일체 부처님이
수이감로관기정(手以甘露灌其頂)이니라 : 손수 감로로써 그 이마에 뿌려줌을 입게 될 것이다. 불교에서는 죽지 않는 불사(不死)를 감로(甘露)라고 한다. 감로수를 마시면 병도 사라지고 죽을 사람도 죽지 않는다. 생사를 초월한다.
한 부처님도 아니고 시방일체불이 손수 그 감로수를 머리에 부어준다.
사, 大用難測
若蒙十方一切佛이 手以甘露灌其頂이면
則身充遍如虛空하야 安住不動滿十方이니라
若身充遍如虛空하야 安住不動滿十方이면
則彼所行無與等하야 諸天世人莫能知니라
만약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손수 감로로써 관정함을 입으면
곧 몸이 허공같이 두루 충만하여
시방에 가득하여 움직이지 않고 편안히 머물리라
만약 몸이 허공같이 두루 충만하여
시방에 가득하여 움직이지 않고 편안히 머물면
곧 저 행하는 바가 같을 이 없어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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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용난측(大用難測): 큰 작용이 측량하기 어려움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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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몽시방일체불(若蒙十方一切佛)이: 만약 시방일체불이
수이감로관기정(手以甘露灌其頂)이면: 손수 감로로써 그 이마에 부어줌을 입을 것 같으면, 계속 이렇게 연기의 형식을 택해서 글을 썼다.
꼭 이렇게 써야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법계 연기적 원리에 입각한 화엄경의 서술법이다. 경에서는 법계연기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을 통해서 법계연기를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즉신충변여허공(則身充遍如虛空)하야 :곧 몸이 충변해서 허공과 같다.
안주부동만시방(安住不動滿十方)이니라 : 허공 가운데 안주해서 시방에 가득하다. 몸이 두루두루해서 허공과 같아졌다.
어느 한 곳에만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방허공에 가득 찼다. 그럼 달리 움직이고 말고 할 것이 없다. 작아야 움직일 것이 있다. 그러나 온 시방세계가 내 몸 전체이니 온시방과 하나가 되어 달리 움직일 공간이 없다.이것은 곧 온 우주법계가 그대로 진리의 세계라는 말이다.
법계라고 하는 말은 화엄경에서 잘 쓰는데 ‘진리의 세계’를 법계라고 한다. 시방 전체가 진리의 세계다. 그래서 우주법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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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신충변여허공(若身充遍如虛空)하야 : 만약에 몸이 충변해서 허공과 같아서
안주부동만시방(安住不動滿十方)이면: 안주부동하여 시방에 가득하면
즉피소행무여등(則彼所行無與等)하야:곧 그 사람이 행하는 바가 더불어 같을 이가 없어서
제천세인막능지(諸天世人莫能知)니라:모든 천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능히 알지를 못할 것이다. 그런 지위에 오른 사람이라면 아무도 따라와서 알 수 없는 경지다.
(10) 結歎功德
가, 法
菩薩勤修大悲行하야 願度一切無不果일새
見聞聽受若供養이면 靡不皆令獲安樂이니라
彼諸大士威神力으로 法眼常全無缺減하야
十善妙行等諸道의 無上勝寶皆令現이니라
보살이 대비행(大悲行)을 부지런히 닦아
일체중생 제도하기를 원함이 그 결과일세
보고 듣고 청수(聽受)하고 공양하면
다 하여금 안락을 얻지 못함이 없으리라
저 모든 대사(大師)의 위신력으로
법안(法眼)이 항상 온전해 결감(缺減)이 없어
십선(十善) 묘행(妙行) 등 모든 길의
위없는 수승한 보배 모두 나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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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탄공덕(結歎功德) :그 덕을 찬탄하여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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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을 맺어서 찬탄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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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 : 법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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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근수대비행(菩薩勤修大悲行)하야 : 보살이 부지런히 대비행을 닦아서
원도일체무불과(願度一切無不果)일새 :일체 중생들을 제도하기를 원해서 그 결과를 이루지 아니함이 없을새
견문청수약공양(見聞聽受若供養)이면 :보고 듣고 청수해서 만약에 공양한다면
미불개령획안락(靡不皆令獲安樂)이니라 : 모두들 안락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떤 한 보살이 대비행을 닦아서 일체 중생들을 제도하기를 원한다면 그것도 다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영향으로 우리가 보고 듣고 할 것 같으면 그리고 공양을 올릴 것 같으면, 모두가 안락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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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제대사위신력(彼諸大士威神力)으로 :저 모든 대사의 위신력으로. 대사는 보살을 말한다.
법안상전무결감(法眼常全無缺減)하야 :법의 눈이 항상 온전해서 결손이 없어서. 법안은 진리를 보는 눈이다.
금강경에도 법안이라는 말이 있었다. 진리를 보는 눈이라고 해서 5안을 말하는데 5안이 완전무결하게 갖춰졌을 때 진정한 부처라고 한다.
십선묘행등제도(十善妙行等諸道)의: 우리들의 수준으로 이끌어서 이야기 하면 십악의 반대가 십선이고 십선이 곧 묘행이다. 십선의 아름다운 행이 제도(諸道)와 같다. 6바라밀이라든지 사섭법이라든지 사무량심이라든지 37조도품이라든지 하는 것을 여기서 제도라고 한다.
무상승보개영현(無上勝寶皆令現)이니라 : 제도와 같이 가장 높은 수승한 보배를 다 하여금 나타나게 한다. 우리가 계행을 이야기할 때도 근본 오계를 중요시 여긴다.
출가한 사람이나 재가의 신도나 공히 오계를 준수해야 된다. 사실 오계만 제대로 일러주고 제대로 실천하면 끝이다
거기에서 십선이 바로 나오게 된다.
여기에서는 십선묘행으로 6바라밀이라든지 사섭법이라든지 사무량심이라든지 하는 제도가 저절로 다 하여금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가장 높은 수승한 공덕이어서 이보다 더 좋은 보물은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축소해서 말하면 십선보다 더 중요한 보물은 없다. 십선이 무상승보라고 말해도 좋다. 그보다 더 축소하면 오계가 가장 수승하고 묘한 보물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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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스님도 각 사찰에서 인연 따라서 소규모라도 수계식을 하실 것이다. 수계식을 할 때는 평소에 신심이 있다 하더라도 형식상으로 새롭게 삼귀의를 설하고 받는다. 그것을 삼귀의계를 받는다고 한다.그리고 나서 이미 불자가 되었으므로 오계를 설해준다. 계는 그것으로써 완벽하다.
거기에서 나아가 팔만대계도 있고, 십계도 있고, 보살 48계, 십중대계, 사십팔경구계, 이런 것들도 부수적으로 따른다.
나, 譬喩
譬如大海金剛聚가 以彼威力生衆寶호대
無減無增亦無盡인달하야 菩薩功德聚亦然이니라
비유컨대 큰 바다의 금강덩어리가
저 위력으로써 온갖 보배를 내되
덜함도 더함도 다함도 없듯이
보살의 공덕덩어리 또한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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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譬喩) : 비유로써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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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대해금강취(譬如大海金剛聚)가 : 그러한 사실을 비유하자면 큰 바다에 다이아몬드 무더기가 있다.
이피위력생중보(以彼威力生衆寶)호대 : 그 다이아몬드의 위력으로써 온갖 보물이 거기에서 나오게 하되
무감무증역무진(無減無增亦無盡)인달하야 : 감함도 없고 증함도 없고 또한 다함도 없어서 그야말로 부증불감이다.
보살공덕취역연(菩薩功德聚亦然)이니라 : 보살의 공덕의 무더기도 또한 그러하니라. 보살의 공덕의 무더기가 결국은 십선으로 인해서 온다.
십선묘행을 통해서 오듯이, 십선묘행이 바다 속에 있는 다이아몬드 무더기와 같다. 무슨 보물도 그 보다 더 지나치지 않는다. 거기에 다 있다. 그래서 그것은 무감무증역무진이다. 보살의 공덕의 무더기도 또한 그러하다.
비유가 아름답게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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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법계연기...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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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以智慧辯才力으로 隨衆生心而化誘면 則以智慧爲先導한다 <지혜가 있음으로 해서 자비를 제대로 실천할 수가 있다. 정상적인 지혜를 가졌다면 자비는 저절로 따라온다> <번뇌가 곧 보리이고, 생사가 곧 열반이라고 아는 것이 정답>..수고 많이 하셨어요..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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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행불교상섭심(奉行佛敎常攝心)/불교를 봉행한다고 하는 것은 항상 마음을 단속하는 일이다.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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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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