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누구나 접해볼 만큼 <흥부전>은 비교적 재미있고 쉽고도 아이들이 배울 만한 교훈적 요소가 들어있는 작품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그런 친숙함이 <흥부전>을 보다 넓고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해보는 일에는 방해 요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흥부와 놀부라는-선과 악의 전형으로 해석되는- 인물에 대한 해석을 뒤집어보려는 시도도 있기는 했다. 요즘 세상에 흥부 같은 나약한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놀부를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시각으로 인물들을 해석ㆍ평가하고자 하는 의도와 노력은 높이 살 만한 것이지만, 이 역시도 흥부와 놀부라는 인물들을 '선과 악'의 차원 안에서만 이해하려 한다는 점에서 좀더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흥부전>의 기존 해석과 인물의 양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해보고자 한다.
2. 본론
1)기존의 해석
이미 '들어가는 글'에서 간략히 언급하였지만, 그 동안 <흥부전>은 흥부와 놀부라는 인물들의 선과 악의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결과 착한 흥부는 복을 받고 악한 놀부는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며(고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가 권선징악이라는 점과 맞물려), 또한 읽는 이들로 하여금 형제간의 우애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어린 아이일 때 그렇게 머릿속에 박힌 채로 <흥부전>은 계속 곱씹어져 왔다.
물론 이 작품이 형제간의 '우애'를 다루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나있는 내용만으로 그 주제를 논하기에는 가벼운 느낌이 든다. 혹시 <흥부전>은 그 내면에 어떤 은유와 상징을 담고 있는, 매우 의미심장한 작품이 아닐까?
2)넓게 보기
그렇다면 우리는 <흥부전>을 좀더 넓고 새롭게 해석해 보는 것이 어떨까? 고전 작품인 만큼 한 명의 작가가 특정 의식을 담아 지어낸 소설이 아니며, 세월의 경과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지금의 <흥부전>이 되었음을 염두에 둔다면, <흥부전>은 의외로 폭넓고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을 법하다.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흥부와 놀부, 심지어는 제비까지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고 의미 지어졌을 수도 있고 말이다.
①'흥부, 놀부'의 해석
-흥부와 놀부는 형제 사이이다. 흥부는 욕심 없이 형 놀부에게 순종하는 착한 동생이고, 놀부는 욕심과 심술이 끝이 없는 못된 형이다. 이런 인물 해석은 한글을 막 뗀 어린 아이들도 쉽게 내릴 수 있는 아주 당연한 내용이다. 만약 이런 1차적인 해석만으로 <흥부전>의 주제를 이끌어내자면 그것은 단연 '우애'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좀더 나아가 동생 흥부처럼 마음을 곱게 써야 잘 살 수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흥부전>은 어린이들에게 교육용으로 널리 읽힐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발 나아가 흥부와 놀부에게 다른 의미를 붙여보고자 한다. 흥부와 놀부가 선과 악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 넓혀서, 흥부와 놀부는 어떤 특정 계층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흥부전>의 배경이 된 시대 상황을 힘센 자가 군림하는 시대(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라고 볼 때, 분명히 약한 민중들의 가슴 속에는 울분이 쌓여 있을 것이고, 그런 의식은 문학 작품에 반영될 수 있다. 특히 판소리계 소설은 특정 작가의 개인적인 작품이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입담이 덧붙여진 것이라는 점에서 민중의 현실 인식과 감정이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리하여 흥부는 복 받고 편한 삶을 누리기를 갈망하는 민중의 의식이 반영된 인물이며, 놀부는 그런 민중을 괴롭히는 집단을 상징한다고 해석해 보는 것이다.
여기서 굳이 흥부와 놀부를 특정 계층으로 한정짓기보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자신이 누리고 있는 여러 배경과 관계 없이 누구나 좀더 누리기를 원하고 좀더 존중받기를 원하는 욕구)와 관련지어, 흥부는 '끊임없이 억압받고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삶'을 상징하고 놀부는 '타인을 계속 억압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삶'을 상징한다고 보아도 해석의 여지가 더욱 넓어져 이야기거리가 많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즉,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데 원한다고 모두 누릴 수는 없으며, 따라서 쉴새없이 불만에 가득차 있게 된다고 볼 때, 흥부는 결핍된 욕구를 상징하고 놀부는 그런 결핍의 원인으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②내용의 해석
-그렇다면 흥부가 핍박받는 민중이건 결핍된 욕구의 상징이건 간에 <흥부전>의 스토리대로 '그래도 흥부는 모든 걸 참아내고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다보니 복 받았다'는 결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늘 착한 마음만 있으면 복을 받는다고 배워왔고, 또 그렇게 가르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진리라고 하기는 힘들 때가 너무나 많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흥부 같은 경제적 무능력자보다는 놀부가 낫다'는 소리도 나오고,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흥부전>을 재해석해보라고 하면 '놀부도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란 의견이 나오기도 하고 '흥부처럼 사는 게 한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을 보면 분명 그 동안의 구태의연한 해석 방식과 그것을 강요하는 교육 방식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앞에서 인물을 새롭게 해석해 본 바에 따라 그 내용 해석을 달리 해보자면, 흥부가 결국 복을 받게 된다는 설정은 흥부가 착하다는 그 천성적인 면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 흥부가 복을 받는 설정은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라는 교훈의 문제가 아닌, '제발 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흥부라는 인물이 민중을 대표하건 결핍된 욕구를 대표하건 이것은 결국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것이다.(대신 '민중'이라고 볼 때, 이 작품의 독자층은 아무래도 지배 계층은 아니었을테니 그들은 배제하고) 우리는 항상 지금보다 낫게 살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한탄하게 마련인데, 현실에서 달성 못하는 모든 욕망들을 소설에서만큼은 이루어낼 수가 있지 않은가. 소설을 쓰는 이유 중에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고 싶은 욕구가 포함된다면, 이것은 맞는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놀부가 벌을 받고 결국 흥부에게 의탁하게 된다는 설정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흥부전>의 주제는 '지금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잘 살고픈 욕망'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교훈적인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소설이 교훈을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3)새로운 인물 설정
만약 놀부가 좀더 일찍 자신의 악한 성품을 반성하게 된다면 어떨까? 아니면 놀부가 그렇게 못된 성품을 지니게 된 원인을 천성적인 것이 아닌, 어떤 계기로 인한 것으로 설정한다면 어떨까? 그럼 보다 입체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놀부가 최소한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기 직전에라도 제 잘못을 반성하게 된다면, 그래서 굳이 큰 벌을 받지 않고도 흥부와 오붓하게 잘 살아가는 것으로 결말을 짓게 된다면, 독자들에게 강렬한 교훈(못되게 살면 큰 벌 받는다)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오히려 효과적인 주제 전달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즉 '착하게 살자'류의 교훈을 주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라고 보았을 때, 놀부가 벌을 받는 장면을 보는 우리로서는 그 장면에서 두려움을 느낀다거나 '나도 조심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 참 잘됐구나. 고소하다!'하는 반응이 지배적일 것이다. 인간은 남의 잘못 보기를 쉽게 하고 남 잘못되는 것을 고소해하지만, 정작 제 잘못을 들여다보는 데는 인색하고 서투르다. 따라서 <흥부전>을 통해 교훈을 얻기는 하되 그것을 스스로에게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차라리 한 차원 높게 놀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과 그 때의 인식 과정, 그의 심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을 떠나가고 얼마나 큰 곤란을 겪게 되었는가 하는 보다 현실적인 내용을 설정했더라면 사람들의 가슴 속에 더 깊이 남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놀부가 어린 시절 어떤 계기로 인해 그런 못된 성품을 지니게 되었다고 설정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단 둘 뿐인 친형제 간에 사실 억지스러울 정도로 상반되는 성격을 설정해놓는 것보다는, 흥부처럼 착하고 평범한 성품을 가지고 있던 놀부가 어떤 계기를 통해 변모했다고 설정해보는 것이다. 즉, 그 어떤 인간도(우리 모두) 정말 작은 계기이건 사회적 문제 때문이건 간에 전혀 다른 인간으로 변할 수 있으며, 바로 지금 그런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변모한 놀부가 처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통하여 우리의 현실의 비극성을 암시하고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위와 같이 놀부라는 한 인물만을 새롭게 설정하여도 주제는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보다 풍부하고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인물 설정과 그에 따른 주제를 연구해 보는 것도 의미있고 즐거운 작업이지만, 이런 색다른 인물 설정 과정을 통하여 또 다른 <흥부전>의 창조가 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매우 즐거운 작업이다. 특히 이것을 교육 현장에 적용하여 아이들과 함께 진행해본다면 아주 뜻깊은 고전 수업이 될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되었다.
3. 나오는 글
새로운 해석, 새로운 인물 설정에 각각 관심을 두다 보니 막상 두 가지를 서로 연관짓는 데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좀더 체계적으로 두 가지 작업을 병행하다보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사회 생활 전반에 적용 가능한 <흥부전>의 재창조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 동안 갇혀있던 틀을 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나,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공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