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수십억의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지만 같은 얼굴,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를 지목할 때 흔히 “그는 쭛쭛 유형의 사람”이란 말을 쓴다. 모두 다르지만 그 가운데 공통점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슷한 기질의 사람을 군으로 나누어 유형화시킬 수 있다. 수백 명의 인물이 나왔다 사라지는 『삼국지』의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는 이런저런 유형에 속하는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인물들을 유형별로 분석하여 『삼국지』가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를 더해보고자 한다. 유형별 특성을 이해하는 일은 나와 남을 좀더 깊이 앎으로써 요즘 정가에서 흔히 말하는 상생相生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필자의 인물유형 분석에는 성격유형지표인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가 이용되었다. 이 검사는 1988년 한국인을 위한 표준화 작업을 거친 후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고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MBTI는 정신분석학자인 융(C. G. Jung)의 선호 경향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인간은 교육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기 전에 이미 선천적인 심리 경향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쉽게 각 개인의 타고난 ‘기질’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융은 인간이 외부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행동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데 저마다 선호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며 이 방법에 따라 심리유형을 나누었다. 인식하고 판단하며 실행하고 생활할 때 감각(Sensing)과 직관(iNtuition), 사고(Thinking)와 감정(Feeling), 외향(Extroversion)과 내향(Introversion), 판단(Judging)과 인식(Perceiving) 등의 심리적 장치가 이용되는데 이 장치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표출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유형도 저마다 다르게 구분된다는 것이다. MBTI는 이 4쌍의 선호성향을 지표로 16가지 성격유형을 만들어 도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선호성향 혹은 기질에 따라 유형을 구분짓는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으며 지나치게 유형화하여 어떤 대상을 판단하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기질이라는 것이 선천적인 것이라 해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화되는 것도 있고 강해지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내 주변 사람을 좀더 쉽게 이해하고 좀더 제대로 알게 해주는 매개체로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각 개인은 자신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앞의 4가지 이분척도 중 하나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MBTI는 이 선호성향을 각각 조합해서(E, S, T, J × I, N, F, P) 아래와 같이 16가지 성격유형 지표를 제시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물론 현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허구의 인물들이므로 그들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행동양식을 통해 그가 어떤 유형의 인물일 것인가를 추측해볼 수는 있다. 또 그들의 성격유형을 보면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에는 수백 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개인적 특성을 뚜렷이 발견할 수 있는 인물은 수십 명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 중 어떤 인물은 짤막한 활약상만을 보여주므로 그것을 토대로 성격유형을 밝혀내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인물이 보여주는 행위 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가 어떤 형의 인물인가를 가려내는 것이 허무맹랑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삼국지』의 등장인물 가운데 16가지 성격유형을 모두 찾아내기는 어려우므로 그 중 비교적 개성이 살아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유형을 분석해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