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콩깍지에 씌인 것도 아닌데 갑자기 20대 중반~30대 초반에 걸쳐서 제가 했었던 주식투자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뭐 지금 현재 저는 개인적으로 주식이니 채권이니 유가증권투자는 하고 있지도 않고, 저너므 테크(tech)라는 게 財에 붙어있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편이라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등등의 일로 옛날 실패담을 적게 되네요. 참고로 저는 금융업종엔 종사한 바도 없고 현재도 금융관련 업무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전에 부동산 등 투자로 고통스러워 하는 경우의 얘기를 들었는데다 환율이 다시 1500원대를 뚫고 올라섰고 GM의 계열사인 스웨덴 사브사가 파산신청, 동유럽과 러시아를 둘러싼 흉흉한 소식과 더불어 중국이 외환보유고 포트폴리오 조정에 이미 나섰다는 등의 소식들로 저도 좀 꿀꿀해졌나 봅니다. 참, 어디 동유럽만 있습니까? 이 넓은 세계에... 중남미도 있군요.
<26살때 동생과 함께 찾아갔던 쌍용투자증권 김모 대리에게서 말보로 담배를 얻어 피우다.>
항상 의기투합했던 동생과 함께 20대 중반에 시내에 있는 증권사를 방문했습니다. 증권투자를 해보기로 한 거죠. 쌍용증권이 눈에 들어오길래 일단 들어갔는데 지금도 그 외모가 생생이 기억나는 김모 대리가 우리를 맞아줬습니다. 아 참 그때가 86년 초였습니다. 김모 대리란 분은 우리에게 친절히 상담도 해줬는데요. 상담도중에 담배를 권하는데 양담배를 주더군요. 맛있게 피우기도 했지만 얼라 양담배를 주고 참 좋구나 증권사..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 후에 증권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로 이사도 가고 등등 큰 일이 집안에 많아서 증권투자란 이슈가 매몰되어 버렸다고 하겠습니다.
<근로자 증권저축 만기 한달을 두고 해약까지 하며 과감하게 뛰어들었다가...>
20대 중반이후에 직장 그리고 학교를 서울에서 다녔습니다. 회사가 강남역 근처에 있었고 집도 근처라 강남구에서 주로 떠돌아 다녔는데요. 어느날 근처 빌딩과 동네에 증권사 간판이 하나 둘씩 늘더군요. 완전히 포위를 당했다고 해야겠습니다. 마침 친구가 맞은 편 건물의 모 증권사지점으로 전근을 왔다고 해서 친구보러(약간 땡땡이성)들락날락했죠. 증권사영업부 직원인 친구는 주식 이런 거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요.
* 이 친구는 지금도 증권사 다니고 있는데요 제가 보면 " 야... 니 진짜 짱이다. 세상에 증권사 지점장을 십년 넘게 하다니...." 그리고 속으로 미안하다 " 니 그때 증권사 때려치고 닭집 하겠다고 할때 말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 친구 한때 그러니까 30대 때죠 닭집 하겠다고 하는 걸 내가 극구 말렸습니다. 왜냐면 내가 봤을때 저 넘은 최소 증권사 사장할 거 같았거든요. 에휴 그때 말리지 말았어야는데 ^^.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그랬던지. 지(我)나 잘하지 훈수는 무슨.
하여튼 그렇게 들락거리는 중에 몇 년이 지났는데 마침 제게 몫돈이 좀 생겨서 주식투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투자목적은 한 몇배 만들어서 미국유학을 다시 준비하기 위해서였거든요. 민통선 인근에 땅을 사놓을까도 했습니다 처음엔... 그런데 빨리 승부를 보기에는 주식이 났겠더군요. 부동산은 몇년 기다려야 하니 그러다 세월 다 갈거 같았죠.
그당시 증권사 가면 잘 아시겠지만(일부 세대는) 장난아니었습니다. 유상증자 공시 그리고 주가지수가 000대를 뚫는 소식이 전해지면 완전히 파티장 분위기였죠. 칵테일 돌리기도 하고... 완전히 페스티벌. 돈을 구좌에 넣고 주식을 샀죠...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으면 되는데 위에서 말했지만 제가 유학비용(몇년)을 벌어야 겠다는 큰 목표ㅎㅎ에 빠져서 과감하게 신용거래를 한 겁니다. 그 목표한 유학비용이 지금 기준으로도 꽤 큰 돈입니다.<--지금 생각해보니까요.
주가하락기가 이어지고 신용미수금문제는 갈수록 커지고 또 이 당시에는 신용미수금이 지금처럼 프로그램상 자동매매로 하지 않았던터라 증권사에서 꽤 봐줬습니다. 즉 연체기간을 어느 정도 묵과해준거죠.---> 더 박살. 그 당시에 손절매의 의의를 뭘 알기나 했겠습니까. 손절매는 지금도 실행하기 힘든다는데.
하락은 계속되는 중에 저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 좋다 어디 한번 해보자, 큰 스케일이란 게 이때 나오지 언제 나오겠냐"하면서 결단을 내린거죠. 하여튼 결단은 지금도 엄할 때에 내린다니까요. 돈을 탈탈 다 긁어 모았습니다. 타인자본(형의 돈)까지 동원 그리고 자기자본 깡그리 긁어모았죠. 저 돈도 기천만원 정도가 되었을겁니다. 옆 건물에 있는 한신증권(이게 동원증권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한투증권인가)에 달려가서 근로자증권저축을 해약했습니다.
당시 담당여직원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저... 손님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한달만 더 넣으면 1년이라 세제 등등에서 혜택이 생기는데..." , 과감한 제가 어디가겠습니까, 저는 단호히 담당직원의 애절한 조언을 뿌리치고 해약을 했고 그 돈을... * 저 담당 여직원이 끝내 해약하고 가는 저 뒤통수에 대고 얼마나 즛즛 했을까요^^. 저런 총각한테 절대 시집안가야지 했겠죠.
결론은 뭐 나중에 찾을 게 없더군요. 그나마 형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완전 깡~깡통이 되었을텐데, 마지막에 다 정리하고 몇 푼 남은 거 집에 돌려줬습니다. 물론 그 과감한 배팅도 역시 신용거래를 했었죠^^. 후유증... 왜 없었겠습니까. 그 이후 딱히 취미거리도 없고 해서 저녁에 학교를 다녔는데 등록금 그때 그때 조달하느라 등등의 후유증을 겪었답니다. 잠깐만요--> 증권사 탓하는거 아님 ㅎㅎ.
<맺음말>
사실 유가증권에 눈을 진짜 좀 띄게 된건 30대 후반~40대 초반이었습니다. 뭐 투자를 다시 했냐구요.. 절대 아니구요, 회사때문이었습니다. 상장을 하니 안하니 그리고 주주들, 뭐 지분율 다른 회사에 투자, 주식스와핑, 지겨운 유상증자 등등 이런 걸 좀 신경쓰야 하는 자리에 있었거든요. 아이고 저것도 할 짓이 아니더군요.
주식투자 관련 얘기를 얼마 전에도 누구랑 했는데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 나는 내 딴에는 꽤 괜찮은 정보 아니 뉴스나 카더라 통신을 듣고 내지는 파 뒤집고 해서 하는데, 어느 넘은 그러는 나 같은 넘을 바보쪼다로 생각하면서 00년 산 와인 마실 거 생각하면 기분나빠서 나는 주식투자 그거 못하겠다 "
주변에서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서 잘살기 위해 한 투자와 공부에도 불구하고 이래저래 고통을 겪는 걸 봅니다. 그런 뉴스를 접할때에 듣는 사람도 편치가 않게 되네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의 발생을 사전에 알았던 몰랐던 같이 고통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리는 game은 게임같기나 한데, 결국 패자만 남는 game은 좀 썰렁하더군요.
예전에 어느 경제모임에 가서 한 후배에게 " 나중에 주식시장 이거 없애버립시다... 세상에 이게 한 두해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다들 뭐하는 건지 " . 이런 무식한 소리를 제가 했습니다.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그걸 중개해주는 사람이나 뭐 도대체 한쪽이라도 행복해야지 정히 안되면..., 이건 결국 셋다 고통받으니. 물론 고통의 정도는 차이가 있겠죠. 한편 자통법이 지난 2월4일 통과한 마당에 이런 말을 금융업계 계신 분들이 들으면 큰 일 날 소리이겠죠. 저~~~저~~ 무식한 넘 우리가 저거 통과시킬려고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하고 뒷 장독대에서 냉수 떠놓고 빌었는데. 그러면 나는 이럽니다. " 자슥아 나는 무식해도 사람은 안죽여, 내한테는 살상무기가 없거든".
그 참내 왜 한 때는 나스닥상장 이런 걸 입에 달고 다녔는지^^.. 즛~~즛. 아 요즘도 누가 상장(그나마 최근에는 나스닥 떠드는 넘 다 들어갔음) 어쩌고 하면..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Amen" 하고 말죠. 상장은 왜 해... 골아푸게. AND X사장님(제가 아는 지인)에게 덧붙이는 말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아, 니 그너므 차트인지 뭔지 그렇게 연구한 노력같았으면 저탄소 녹색성장기술하나 개발했겠다", 에디슨은 고막터져가면서 전기자동차도 개발했다는데...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도 깜빡하는 게 비일비재하군요, 증권사직원들도 참 여러가지 시련과 고통을 많이 겪었다고 하겠습니다. 죽었던 사람들도 꽤 있었죠. 그리고 투자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중에 가까운 사람들도 있었겠죠)과의 분쟁으로 금감원 등에 불려다니고 조사받고.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