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는 경주에서 출토된 거니까 이것도 일제가 옮겨 심었을거라고 그냥 넘겨짚었는데, 다시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 있어서 캡쳐해 봤습니다.
‘서역과의 교류의 흔적..’, ‘서역 문화가 신라화한 양상..’, ‘실크로드-서역과 관련된 것..’, 이런 내용들을 얘기하고 있는데, 이게 고구려 세력의 절정기와 맞아 떨어집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사 내용 중에 ‘고구려’라는 말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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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 신라 유물일까 하고 의심하다가 송계선생님이 올려주신 ‘한반도의 실체를 밝혀라’ 글을 읽었던 기억과 매치되면서 다시 찾아서 읽어 봤는데, 그 내용을 뒷받침하는 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네요.
영토는 넓어도 좋은 땅은 부족했던 고구려에게 한반도는 어떤 의미였을까.
태조왕, 광개토, 장수왕 등 메이저급 왕들 시절이라면 부동항이 있는 반도가 해상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전진기지는 아니었을까.
진짜로 검증된 8세기 유물이라면 그 시절 반도 동남쪽에 있는 나라는 어디에서 금광을 찾고 금을 캐서 이런걸 만들었을까.
경주에 있는 배고픈 반도국가가 금덩어리를 수입해서 그토록 많은 장신구들을 만들었다면 그 반대급부로 수출할 자원은 뭐가 있었을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봤습니다.
(호우총 호우명그릇은 친일사학자들이 버젓이 교과서에 실어 놓았고, 저도 고등학교 때 그걸 배우고 시험문제까지 풀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이 신라한테 원병을 보냈다는 기록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금관총, 황남대총에서 나온 고구려 유물들도 같은 논리로 우기면 그만일 것입니다. 수 백점, 수 천점이 출토돼도 이놈들은 똑같이 우기면 그만이니 참 편하겠습니다..)
경주지역에서 나오면 무조건 신라로 강제된 역사의 비애입니다. 조선의 북방강역이 올바로 세워지고 고조선의 시원무대가 알타이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것이 후세에 입증되면 현 열도까지의 모든 유물,유적은 재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알타이산의 유적지에서는 말안장에 두르는 쌍어문양이 출토되어 러시아 고고학자들이 복원을 해 놓았습니다. 박혁거세의 부모가 모두 알타이산근방에 거주하던 사람들이니 신라의 금세공기술이 알타이산 근방의 주도세력에게서 전수되었을 것입니다. 어려운 해석의 문제입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경주지역에서 나오면 무조건 신라로 강제된 역사의 비애입니다. 조선의 북방강역이 올바로 세워지고 고조선의 시원무대가 알타이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것이 후세에 입증되면 현 열도까지의 모든 유물,유적은 재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알타이산의 유적지에서는 말안장에 두르는 쌍어문양이 출토되어 러시아 고고학자들이 복원을 해 놓았습니다. 박혁거세의 부모가 모두 알타이산근방에 거주하던 사람들이니 신라의 금세공기술이 알타이산 근방의 주도세력에게서 전수되었을 것입니다. 어려운 해석의 문제입니다.
고대사에 관해서는 더 많은 증거들이 나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네요.
고맙습니다!